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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1화) (166) (166/310)



〈 166화 〉하얀 고래의 발자취

탐험은 계속되었다.
나는 여전히 일행의 거대한 도움이 되었다.
비록 앞에 나서서 싸우진 못했으나,
실험체들을 먼 거리에서 먼저 발견할  있었기에.

복잡한 미로의 정답을 아는 자넷 덕이라서 그럴까?
우리는 헤매지 않고 정답을 향해 나아갔다.
물론 나도 정답을 아는  아니기에 자넷의 확신 어린 발걸음을 보고 그리 생각할 뿐이었다.
곧 자넷의 특성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문이네.”

미로의 가장 중심부.
이 유적의 주인인 ‘트리스 메기스투스’란 연금술사가 살던 방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확신하냐고?


- 띠링!


=
[아이템 정보 확인] - [건물 정보 확인]
이름: 트리스 메기스투스의 중앙 실험실
종류: 구조물
레벨: -
상세:
악랄하고 위대한 연금술사 트리스 메기스투스.
그가 실질적으로 거주하던 방입니다.
평생을 걸쳐 모은 자료와 금품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 이 장소에 보관된 연구 자료  금품은 침입자의 눈을 가리기 위한 가짜입니다! - 아이템 정보 확인 Lv 2
* 어쩐지 이 유적 안에 비밀스럽게 감추어진 장소가 있을 것 같습니다. - 아이템 정보 확인 Lv 2
=

시스템이 정답이라 말해줬으니까.

“방이라… 여태까지의 갈림길이 아니네요.”


“함정? 아니면 이 미로가 숨기고 있던 장소에 도착했나?”


“글쎄요. 단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음… 함정은 아닌 것 같아.”

자넷은 신중하게 대답했다.
그녀의 감은 정확했다.
원작대로라면 이 앞에 함정 따위는 없다.


하지만 감이란 건 어디까지나 신뢰도가 높지 않은 이야기.
실제로 감만을 믿고 무작정 몸을 들이미는 건 멍청한 짓이다.
함정의 유무를 시간을 들여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문을 여는 즉시 함정이 발동될 경우 어찌할 수가 없다.

“단장님. 제가 열죠. 제 방패가 가장 단단하니까.”


상반신을 전부 가릴 정도로 커다란 방패를 든 롬이 앞으로 한걸음 나섰다.
실제로 오른손에 든 그의 비늘 방패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어지간한 충격이라면 충분히 막을  있으리라.

그것도 전에 본 마법 함정처럼 전기에 튀겨지는 종류라면 소용없겠지만.

- 띠링!

‘…일단  자체에 함정은 걸려있지 않네.’


문의 정보를 확인해 보아도 평범한 나무문이었다.
아마  문에 함정이 걸려 있을 확률은 하염없이 낮으리라.

“일단 내 감은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다치거나 뒤지면 값은 톡톡히 쳐줄게. 롬 넌 고향에 가족이 있었지?”

“예.”


“…알겠어.”

문고리가 있는 나무문.
그렇기에 사람이 열수밖에 없다.
롬은 손잡이를 조심스레 돌린 뒤, 문을 발끝으로 슬슬 밀며 열었다.
방패로 자신의 몸을 최대한 가린 채.

- 끼이익…

“…아직 아무 일 없네. 멜! 그,그… 이름이 뭐였지… 아! 데이비드슨! 어쨌든 걔 시체 한 구만 가져와 봐!”

“넵!”

내 곁에 있던 멜이 방금 전투가 있었던 통로로 사라졌다.
실험체의 시체를 가지고 오기 위해서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랜턴  개를 건넸다.
다리가 멀쩡했다면 직접 도왔겠지만, 지금은 그러지 못한다.

- 털썩!


멜이 들고 온 놈의 시체를 문이 열린 방 안으로 던져도 무언가가 일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자넷은 함정의 확인을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부단장. 토끼 챙겨 온  있어?”

“두 마리만 가져왔습니다.”


“둘  안쪽으로 밀어 넣어봐.”


“네.”

버둥버둥…

하얀 고래가 항상 들고 다니는 토끼 자루.
 자루를 전부 들고 오지는 못했다.
하지만 두 마리면 생명체를 대상으로 한 함정이 있는지 확인하기는 충분하리라.


- 휘익, 폴짝! 폴짝!


부단장이 우악스러운 손으로 발버둥 치는 토끼를 안으로 던졌다.
두 마리의 토끼는 바닥에 닿은 즉시 사방으로 폴짝거리며 흩어졌다.
여전히 방안은 고요히 어둠에 잠겨 있었고,
토끼의 비명 같은 건 전혀 들리지 않았다.


“…전진해 보겠습니다.”


- 끄덕.


자넷이 허락이 떨어지자 롬이 긴장된 표정으로 방 안에 진입했다.
조심스럽게, 발을 끌면서.


- 스윽. 슥…

내 눈에는 어두운 방 안이 대낮처럼 보였다.
침대로 보이는 가구 밑에 숨은 토끼의 모습까지 선명하게.
위험해 보이는 물건은 없었다.


내가 눈으로 본 사실을 단원들과 공유했다.
그제야 롬의 발걸음에 조금씩 자신감이 실렸다.
그의 몸이 전부 방 안에 들어가더라도…
무언가 일어날 낌세는 없었다.

“안쪽 구조를 봐서는 숙식을 하는 방 같습니다.”


“…함정도 안 보이고… 제대로 찾았다는 이야기네.”

“그런 것 같네요.”

- 성큼성큼.

자넷이 횃불을 들고 들어갔다.
사방을 경계하고 있던 롬이 뻘쭘할 정도로 망설임 없는 걸음을 하며.

“횃불 걸이도 있어?”

그녀가 벽에 있는 횃불 걸이에 횃불을 넣었다.
드디어 방 안에 빛이 채워지기 시작한다.


반쯤 주저앉은 침대.
비교적 멀쩡한 책상과  위에 널브러진 종이.
거대한 책장과 가득 들어찬 책.
그리고 다른 방으로 이어진 입구까지.

“평범하네. 아니, 너무 평범한 방인데?”

“책이 많네요.”


- 챠락.

나는 책상 위에 놓인 책 한 권을 들어 펼쳤다.


그런데…
적힌 내용이 좀 이상했다.
정확히는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그 글자가 문제였다.

“파계승. 읽을 수 있겠어?”

“예. 그런데… 이거 왕국 언어인데요?”


“…응? 그게 뭐가 문제야? 이 유적 입구에 적힌 경고 글귀도 왕국 언어였잖아?”


“그러…네요.”

다른 이들의 눈으로 보면 전혀 이상하지 않으리라.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비밀 실험실에 갔을 때,
거기 있던 수많은 책 전부가 문양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어울리는 애매한 언어로 적혀 있었다.
지금처럼 왕국 언어가 아니라.

아까 시스템이 알려주기를  방 안에 있는 자료는 눈속임용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 방에 있는 모든 책은 다 왕국 언어로 적혀 있는 것일까?

- 스륵.

나는 손에 든 책을 바닥에 두고, 책장에 꽂혀 있는 다른 책 하나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다른 책도,
또 다른 책도.

“…모두 다른 언어네요. 저 책상 위에 놓인 책만 읽을 수 있습니다.”


“정말? 어라? 진짜로 처음 보는 언어네? 왕국 글자나 제국 글자도 아니고.”

책상 위에 놓인  한 권을 제외하고는 전부 비밀 실험실에서 봤던 그 언어로 적혀 있었다.
자넷이 살펴보았지만, 처음 보는 언어인 눈치였다.


사실 책의 내용은 전부 읽을 수 있다.
그저 전문용어가 많아 이해하기 힘들 뿐.
하지만 읽을 수 있다는 티를 내면 안 된다.
만약  언어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언어라면?
분명 나중에 의심을  것이다.

이 문자라기보다는 도형을 닮은 언어는…
타인이 알아보지 못하게 연금술사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언어일 확률이 있다.

“그런데… 이거 글자는 맞는 거야? 도형이나 그림처럼 보여.”

“형식은 언어와 비슷해 보입니다.”

- 턱.


연금술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책을 덮으며 말했다.

다시 책상 위에 놓인 왕국 언어로 적힌 책으로.
다른 책과 뚜렷한 차이점을 보이는 만큼,
좀 더 상세하기 분석할 필요가 있다.


- 챠락.


“어? 이,이거…”


그리고 책을 좀  자세히 들여다봤을 때.
발견한 두 가지 정보에 크게 놀라고 말았다.


“무언가 알아차렸어?”

“이 책… 만들어진  얼마 안 된 것 같은데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 슥! 챠락.

“보기 쉽게 다른 책과 비교해 드릴게요. 보세요. 잉크도 훨씬 선명하고, 종이도 변색이 거의 안 됐죠?”

“…그러네.”

자넷은 그녀의 앞에 놓인 두 책을 비교해 보고 침음을 흘렸다.
아무리 봐도 전자는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되었다.
그러나, 이 유적은 아주 오래전 만들어졌다.
이 단서가 의미하는 건…

“…여기에 사람이 다녀온 적이 있다는 거네. 최근까지도.”

“유적의 주인은 아닐 겁니다. 그렇다기엔 유적 자체가 너무 오래되었어요.”

“도굴꾼이겠지. 왕실이나 용병보다 이곳을 먼저 발견 한.”

“아뇨. 그건 아닐 겁니다. 이  내용을 보세요.”


“…파계승 너 나 맥이냐?   못 읽는다고.”

“아… 크흠.”

나는 내가 파악한 ‘읽을 수 있는’ 책의 내용을 알려주었다.
글을 못 읽는 모두를 대신해서.


“이건 다른 책에 적힌 도형을 닮은 글자를 해독하려고 한 내용입니다.”


“해독? 그러니까, 도굴꾼은 책장에 있는 책의 내용을 해석하려고 했다?”

“그렇죠. 아마 학자가 아닐까 생각되네요. 책을 적었다는 건, 글을 알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맞네.”


“이 책상. 다른 가구에 비해 썩지 않은 이유가 있었던 거죠.”

책의 제작일과  내용.
이 두 사실이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이리 해석을 해야 앞뒤가 떨어져 맞는다.
하지만…
이상한 점은 여전히 있었다.


이 유적은 혼자서 탐험하지 못한다.
너무 위험하고 넓으니까.
어지간해서는 우리보다 먼저 들어온 침입자는 개인이 아닌 단체일 것이다.

‘…그건 아니야. 침입자는 혼자일 확률이 더 높아.’


 감이 그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여럿의 인물이 이 방에 들어왔다고 하기에는 흔적이 너무 적었다.
또한 이 방의 바로 앞 통로까지도, 전투의 흔적 따위는 찾아볼  없었다.
실험체는 여전히 살아서 우리를 반갑게 마주해 주었다.


드넓은 미로와 함정.
그리고 통로마다 유적을 지키는 실험체까지.
만일 혼자서 이 모든 장애물을 뚫고 중앙 실험실을 찾을만한 방법이라면…

‘실험체의 상태창! 실험체는 ‘열쇠’를 가진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했어. 만약 ‘열쇠’란 것이, 이 실험실의 위치를 알려주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면?’


아무런 무력을 가지지 않은 학자라도 손쉽게 미로를 돌파하리라.
위협이 될만한 건 바닥에 눈에 띌 정도로 새겨진 함정이 끝이었으니까.


“…학자. 학자라…”

자넷이 조용히 서서 고민에 잠겼다.
무언가 짚이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혹시 이 유적에 관련된, 왕실이나 용병 길드장에게 들은 정보는 없습니까? 가령… 유적의 입구가 있던 땅의 주인에 대한 정보라던지요.”


“…”

자넷에게서 정보를 듣기 위해 질문을 했다.
그런데  말을 듣자마자 표정이 딱 굳은 것이, 정곡을 찌른 눈치다.


“…외부자에게는 숨기라고는 했지만…  단원이니 외부자는 아니지.”


“그렇죠?”

“이 유적이 발견된 계기가… 입구가 숨겨져 있던 건물. 그 땅의 주인이 죽어서, 왕실이 회수를 하다 보니 발견했다고 말했었나?”

자넷이 내게 말해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허나 원작에서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이 땅은 작위 세습이  되는 준 귀족이 죽어서 회수된 땅이라고.


“…일단 계속 말씀하세요.”

“그 작자가 연금술사야. 그것도 왕실 연금술사.”


“설마… 지난번에 실험하다 사고로 사망했다는?…”

“너 그런 것도 기억해? 어쨌든 맞아. 왕실 연금술사는  귀족 취급이거든.”


어마어마한 위업을 쌓은 고대 연금술사의 실험실.
그리고 그 열쇠를 손에 얻은 왕실 연금술사.
어째서 이 책들을 해석하려 들었는지 충분히 납득  만했다.
연금술사도 하나의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니까.


전부 원작에는 나오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단순히 배경 스토리라고 치고 넘어가기에는 무게가 꽤 있었다.

“그렇다면 이 흔적은 전부 그 연금술사의 것일 확률이 높겠네요.”

“어떻게 미로를 통과했는지는 도통 모르겠지만 말이지. 냄새나는 음지의 인맥이라도 있나 봐?”


- 슥.

자넷이 부단장의 손에 들린 랜턴을 넘겨받았다.
그녀가 향한 장소는 방의 구석, 다른 방으로 이어진 입구였다.
우리가 있는 방과 벽 하나로 구분된 옆방은 문이 없이 훤하게 열려 있었다.


- 저벅. 저벅.

“내가 관심 있는 건 음모나 뒷이야기가 아니야. 돈이지. 여기에는 우리가 먹을  없잖아? 그럼 대충 넘어가자고.”

아무래도 흥미가 식었나 보다.
그녀의 말대로 이 실험실 안에는 흥미를 끌 만한 물건은 없었다.
물론 이 책들을 전부 해석 완료한다면 거대한 학술 가치를 지니겠지만,
그런 것을 자넷이  리가 없다.

‘게다가 눈속임용 자료라고 한 걸 봐서는 그리 가치가 없을 수도 있고.’


멈추지 않고 걸어가던 자넷이 방 안쪽으로 사라졌다.

“내가 바라는 것은 좀 더 반짝거리는, 비쌀  같은 물건… 허…?”

- 저벅. 저벅. 탁.

“…그래. 이런 것처럼.”

그녀의 목소리에 열기가 섞인  같았다.
 안쪽의 물건들이 흥분케 했나 보다.
충분히 그럴 만 했다.

‘원작 속에서는 부상을 입은 것도 잊고 방방 뛰었으니까.’

나와 다른 단원 역시 그녀의 뒤를 따라 이동했다.
그렇게 밝혀진 방의 안에는…
작은 황금의 언덕이 랜턴빛을 눈부실 정도로 반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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