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5화 〉하얀 고래의 발자취
-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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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 정보 확인]
이름: 하급 포션
종류: 소모품
레벨: -
효과: 체력 재생 증폭
상세:
경구 섭취 또는, 상처 부위에 뿌리는 것으로 상처를 서서히 치료합니다.
후유증이 있는 상처를 상흔이 남는 정도로.
불구가 되는 상처를 후유증이 있는 정도로.
죽음에 가까운 상처를 불구가 되는 정도로 치료해줍니다.
이 포션을 너무 신뢰하지는 마세요. 어디까지나 ‘하급’ 포션입니다.
* 연금술로 만들 수 있는 하급 포션입니다. [재료 열람]을 눌러 재료를 확인 가능합니다. - 아이템 정보 확인 Lv 2
* 제작자의 주관이 들어가지 않은 합성 방법으로 제조되었습니다. ‘추가 효과’나 ‘패널티’가 없습니다. - 아이템 정보 확인 Lv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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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포션이 맞네.’
포션 자체를 본 것에 놀란 건 전혀 아니다.
함정에 빠졌을 때.
멜이 포션을 본 뒤 보인 반응에서 알 수 있었다.
이 세계에도 포션이 존재한다는 것을.
내가 놀란 것은 자넷이 포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다.
원작 속 그녀가 실험체의 기습에 당해 치명상을 입었는데도,
정신을 잃은 채 며칠이나 사경을 헤맸으니까.
그런 명백한 위기에서도 포션을 사용했다는 묘사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포션이 생각보다 무척이나 귀하다고 생각했다.
일류 용병단의 용병 단장도 손에 넣지 못할 만큼이나.
‘…아니. 생각해 보면 그럴 만 한가? 자넷이 회복하는 과정에 대한 서술이 나온 건 아니었으니까.’
멜을 비롯한 나머지 단원들은 의식 없는 자넷을 베이스캠프에 둔 채 탐색을 계속했다.
이후 몸을 회복한 그녀가 본대에 합류했고.
소설이라서 크게 짚지 않고 넘어갔지만, 현실이 된다면 걸리는 점이 있다.
아무리 회복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다고 한들…
독에 중독당하고, 지독한 외상을 입은 자넷이 전선에 나설 정도로 회복하는 것은 이질적이다.
평범한 사람이 일주일을 조금 넘는 시간 만에 건강해질 리 없다.
베이스캠프에 상주하는 치료사가 신의(神醫)가 아닌 한.
‘…포션이란 건 구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것은 아니란 뜻이군. 적어도 하급 포션은.’
새로운 정보를 알아내었다.
이건 꽤나 도움 되는 정보다.
나는 원래 포션이 너무나 희귀하다 생각해, 판매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만일 포션이 국가 단위로 통제가 들어간 물건이라면…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의심의 시선을 살 테니까.
급할 경우에는 포션을 팔아 금전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 포션은 암시장에서 구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 나도 암시장에 내다 팔면 되는 일.
눈에 띌 행동만 자제한다면, 큰 문제는 없다.
물론 대체 불가능한 자원인 카르마를 현물로 바꾸는 일인 만큼 쉽게 하지 않을 선택이리라.
허나 선택지가 넓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꽤 값어치가 있었다.
“…그건 그런데… 이건 왜 제게 주신 겁니까?”
“아! 파계승 넌 수도원에 박혀 사느라 모르려나? 이건 포션이라는 놈인데… 존나게 비싼 놈이지.”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마시거나 상처 부위에 발라서 사용하는 것이죠? 치료를 돕는 용도고.”
“뭐야, 알고 있었네?”
자넷이 어색하게 볼을 긁적였다.
그녀의 시선은 내 다리에 가 있었다.
혼자서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음… 후유증이 남을 정도면, 써서 치료하라고.”
“설마… 주시는 건가요?”
“그럴 리가. 포션의 값어치는 너도 대충 알고 있지? 이거 줄 테니, 나랑 가계약 하나만 맺자.”
“계약… 말씀이십니까? 음…”
“그리 거창할 건 없고, 그냥 가벼운 구두 계약.”
하급 포션은 구하기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다.
허나 구하기 힘들 단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적어도 큰돈이 필요하거나, 인맥이 필요하거나.
둘 중 하나다.
그렇지 않으면 구태여 나를 이렇게 구석에 끌고 와 포션을 건네 줄 리 없다.
“무려 포션이 오가는 거래인데… 보증도 없이… 괜찮으신가요? 제가 먹고 모르는 척한다면?”
“떠보기는. 너 성직자잖아. 그런 것을 제외하더라도… 내 감이 틀리지 않는다면, 넌 꽤나 믿을만한 놈이거든.”
돈 관련해서는 내 판단이 무조건 옳아, 자넷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그리 말했다.
그녀가 보인 행동을 생각해 본다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발언이다.
보유한 특성도 그러했지만…
자넷이 금전적인 부분에서 손해를 보는 건 도무지 상상이 안 되니까.
“낯간지러운 칭찬 감사합니다.”
“킥킥. 새끼 부끄러워하기는.”
“흠… 포션이라… 확실히 고민되네요.”
이미 하급 포션은 쓸 만큼 다 썼다.
다리에 약효가 떨어질 때마다 계속써줄 생각이지만, 현재는 더 써봐야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피 대신에 포션이 흐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사용했으니까.
받더라도 당장 쓰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이 포션 받게 된다면 포션 한 개 값을 아낄 수 있긴 하다.
허나 고작 100 카르마를 아끼자고 이상한 계약을 맺을 생각은 없다.
그러니 내 결정은 손쉽게 뒤바뀔 것이다.
자넷이 내건 조건에 따라서.
“뭐? 수락이 아니라 고민이 된다고? 너 다리, 급한 거 아니였냐?”
“아직 요구하시는 조건도 듣지 못했잖습니까. 혹시 덥석 포션을 받았다가, 저와 사귀어 달라고 한다면 곤란하잖아요. 크리스한테 살해 당할 겁니다.”
“푸하핫! 미친놈.”
“그래서, 포션의 대가로 요구하실 내용은 무엇인가요?”
“으음… 그게…”
자넷이 약간 주저했다.
내게 요구할 조건이 그리 말하기 어려운 것인가?
그러나 망설임도 잠시.
자넷이 내게 조건을 말했다.
“견문을 넓히려는 네겐 조금 안 좋게 들릴 수 있겠지만, 정해 둔 기간 동안 하얀 고래를 나가지 말아 줘. 일단생각 하고 있는 건 2년.”
“즉… 계약 기간인 2년 동안 저를 용병단 안에 묶고 싶다는 뜻입니까?”
“…뭐 그렇지. 네 능력이 상당히 쓸모가 많아서. 게다가 널 묶으면 크리스도 따라서 오고.”
“그럼 이 포션은?”
“값은 받지 않는 거로. 그걸 계약금으로 하자고. 통 크게.”
큰 결심을 한 얼굴이다.
포션을 완전히 양도하는 것은 뼈아픈 지출이라는 것 마냥.
‘…엄살은.’
저건 어느 정도 연기가 섞인 보여주기식 표정이다.
높은 확률로 이 포션값은 용병단의 공금에서 일정 부분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자넷’과 계약하는 것이 아닌, ‘하얀 고래’와 계약하는 것이다.
그녀가 사비로 부담을 하는 것은 일부겠지.
어찌 되었든…
여전히 끌리지 않는 건 사실이다.
그녀에게라면 몰라도, 포션은 내게 큰 값어치를 지니지 못했기에.
“으음… 아무래도 어딘가에 메이는 건 조금…”
“잠깐. 끝이 아니야. 더 들어 봐.”
“더 있습니까?”
“그래. 네게도 나쁘지 않을 거야.”
“오… 그리 말씀하시니 기대가 되네요.”
“계약 기간 동안 용병단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정산에서 0.5 몫을 더 쳐줄게. 너는 물론이고 크리스까지.”
생각보다 조건이 좋았다.
연봉 50% 인상이란다.
통이 커도 꽤 컸다.
어지간한 사람은 그녀가 내민 손을 망설임 없이 잡을 만큼이나.
“와… 돈 좀 쓰시네요? 단원의 반발은 없습니까?”
“내 용병단에서 돈 관리는 모두 내가 결정 해. 그게 결과적으로 모두의 이득으로 돌아오니까. 그게 아니꼬운 놈들은 나가면 돼. 그리고…”
자넷의 시선이 내 손에 들린 포션으로 향한다.
어쩐지 가슴 아파 보이는 시선이다.
“놀라는 포인트가 틀렸어. 2년간 0.5 몫이 느는 것보다 포션 값이 훨씬 쎄.”
“…아하.”
포션 값이 꽤 크긴 하나 보다.
아까의 표정 연기가 절반은 진심일 만큼이나.
“그래서… 어때 파계승. 구미가 좀 당겨? 신중히 생각해. 넌 지금 포션이 필요하다고.”
“…괜찮네요. 좋습니다.”
“그, 그래? 좋아! 그럼 이제부터 너는…”
“잠깐만요. 단. 조건을 하나 추가하도록 하죠.”
“…조건? 어떤?”
“계약금으로 받은 포션 말입니다. 그걸 갚게 된다면, 언제든 계약을 파기 할 수 있는 것으로 하죠. 당일의 시세에 따른 금전적인 형테이든, 포션을 그대로 갚든.”
언제든 빠져나갈 수 있는 탈출구는 만들어 둬야지.
당연히 계약을 깰 때는 포션으로 갚을 것이다.
돈보다 포션을 구하기가 쉬우니.
조건을 들은 자넷이 살짝 미간을 좁혔다.
아무래도 한쪽이 일방적으로 파기가 가능한 방법이 있다는 사실이 살짝 거슬렸나 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 조항을 넣지 않는다면 나는 계약을 무를 생각이다.
내게 중요한 건 고작 돈이 아니니까.
“…말하는 것을 보니 포션의 효과는 알아도 시세는 잘 모르나 본데… 이거 엄청 비싼 거야. 네 상상 이상으로. 어지간해서는 못 구할걸?”
“그런가요?”
“괜히 중급 이상의 포션부터는 귀족을 대상으로만 파는 게 아니지. 살 사람이 없거든. 상인 가문이 아닌 이상에야…”
“그러네요. 그럼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있으나 마나 한 조항인데요.”
“…그런가? 분명 그럴 텐데… 으음… 왠지 내 감이 요상해서.”
- 끄응… 끙…
자넷이 나를 부축하지 않은 손으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돈의 냄새에 민감한 그녀답다.
분명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하등 의미 없는 조항일 텐데,
그녀의 금전 감각은 경고했나보다.
내가 손쉽게 포션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조항. 굳이 넣어야겠어?”
“어디까지나 만약을 대비한 조항입니다. 제게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길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위약금이 고작 건넨 계약금만을 돌려주는 거라니… 이건 불공정한데.”
“그렇다고 포션 두 개는 너무 세잖아요? 정 그렇다면 포션에 소량의 위약금을 추가로 얹어 지불할 의향이…”
“…에라이. 씹. 아니다. 파계승 네 마음대로 해. 괜찮겠지 뭐.”
결국 자넷은 어쩔 수 없이 감을 무시했다.
내가 물러날 수 없다는 강경한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다.
약간의 양보를 받아내었다.
‘어째선지… 자넷은 내가 떠나는 걸 막으려고 하고 있어.’
이유를 모르겠다.
하지만 이 사실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저 나를 묶기 위해,
비싸다고 입을 닳도록 말하는 포션을 고작 미끼로 사용했으니까.
내게는 굳이 하얀 고래 용병단을 나올 이유가 없다.
아직 연중이 된 시점까지는 꽤 넉넉히 남아 있으니까.
게다가 주인공인 멜은 어지간해서 나와 함께 하려 할 것이다.
내가 용병단을 떠나든 그렇지 않든.
그렇다면 같이 다니는 동안은 연봉을 올려두면 좋은 것 아니겠는가?
언제든 파기할 수 있는 계약은…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좋네요. 앞으로 2년간 잘 부탁드립니다. 적어도 포션 값 이상의 몫은 하겠습니다.”
“그래! 그렇지! 넌 충분히 그럴 것 같단 말이야?”
나를 성공적으로 영입한 자넷의 표정이 환해졌다.
꽤나 기쁘나보다.
어쩐지 후련해 보이는 것이, 한동안 그녀를 괴롭히던 스트레스에서 벗어난 느낌까지 주었다.
“그런데… 단장님은 포션을 가지고 계셨네요? 구하기도, 보관하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음. 이건 비밀이긴 한데…”
“비밀?”
“…쩝. 너랑 크리스도 우리에게 많은 비밀을 밝히기도 했고, 네 성품을 생각해 보면 이 정도는 밝힐 만 한가?”
- 스윽.
품을 빠져나온 것은 하나의 작은 돈 주머니였다.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였으나, 그랬다면 이 타이밍에 꺼낼 이유가 없었다.
나는 그 주머니의 상태창을 띄웠다.
-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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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 정보 확인]
이름: 공간 확장 주머니
종류: 장비
레벨: -
효과: 내부 공간 증폭
상세:
공간 확장 마법이 영구적으로 걸려 있는 주머니입니다.
보이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물건을 보관할 수 있습니다.
무게가 가벼운 상태로 고정되어 있습니다.
보관 가능 공간 - 2M x 1M x 1M
* 주머니 내부에 왕국 금화가 들어 있습니다. - 아이템 정보 확인 Lv 2
* 이 아이템은 인벤토리에 넣지 못합니다.
* 이 아이템은 ‘공간 확장 마법’ 및 동류 스킬이 걸린 공간에 담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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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이건…”
“어라? …아하! 넌 물건을 감정 할 수 있었지? 눈으로만 봐도 알아낼 수 있는 거야?”
“되는 것도 있고, 안되는 것도 있습니다.”
“그야 그렇겠지. 세상에 만능인 능력이 있을 리가.”
거의 만능에 가까운 능력이 내게 있기는 하다.
아직 완전히 개화되지 않았을 뿐.
“이게… 전에 말씀하신 공간이 넓혀진 아티팩트인가 보네요.”
“맞아. 놀라운 건, 이 주머니가 포션보다 싸다는 거지.”
“…그건 좀 신기하네요.”
“최근에 포션 가격이 좀 뛰었거든. 무엇보다 왕국에는 연금술사가 정말 귀하고.”
연금술사라…
그러고 보면 영지전을 벌이기 전.
상인을 호위하며 들었던 정보 중, 왕실 연금술사가 사고로 사망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원작에 나오지 않은 배경지식을 알 기회였기에 귀를 열고 외운 기억이 난다.
포션의 가격이 급상승한 것과 관련이 있으려나?
“아무튼… 난 중요한 물건은 다 여기에 보관해.”
“혹시 돈도 그 안에 보관하시나요?”
“…어…?”
“아… 비밀로 하고 있으셨으면 함구하겠습니다.”
“그,그래. 큼… 모은 돈이 한두 푼이 아니라 은행에 맡기려니 보관비가 엄청 나가길래…”
저 주머니 안에 모든 재산을 보관 하나 보다.
그것까지 내게 알려 줄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고.
누구라도 자신의 전 재산이 담긴 장소를 들키게 되면 당황한다.
자넷 역시 다르지 않았다.
“이 주머니의 존재는 부단장도 모르니까 그것도 비밀로 하고.”
“알겠습니다.”
어찌 되었든 원작 속 자넷이 정신을 잃었을 때 왜 바로 포션을 사용하지 않은 것인지 알게 되었다.
다들 저 작은 주머니 안에 포션이 들어 있을 거라 상상도 못 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