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1화) (161) (161/310)



〈 161화 〉하얀 고래의 발자취

‘이거… 미리 크리스에게  안 해두면 큰일 나겠네…’

다쳐도 보통 다친 것이 아니다.
포션과 자연치유를 고려해도 완치를 단언할 수 없었다.
그녀가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내 다리를 보는 순간 억장이 무너지리라.
그 전에 미리 이야기해주는 것이 좋겠지.


멜이 내게 열심히 책을 가지고 오는 중.
나는 잠깐 지구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크리스와 함께.



- 후욱…

“…어라? 찬영?”


“어쩐지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


크리스에게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눈치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을 보니.

“무슨 소리야? 몇 시간 전에 봤지 않아?”

“그러네. 근데 너랑 이렇게 떨어져 있는 게 오랜만이라 유독 그렇게 느껴지나 봐.”

“…응. 나,나도…”


크리스가 수줍게 웃으며 내 말에 동의했다.
간단한 잡담을 서두로 본론은 천천히 꺼내기로 했다.
최대한 그녀의 걱정을 덜기 위해서.


“지금 나가는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인데, 조금 시간이 걸릴 수도 있을 것 같아.”


“하루 넘게 걸리는 거야?”

“그럴 수도 있는데, 아직 모르겠네. 물이랑 식량은 여기서 가져가면 되니 큰 걱정은 없지만.”

확신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분명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있으리라 생각 한다.
원작에서 멜이 찾은 장소 또한 나갈 방법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장소보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배나 더 중요해 보였지만…
출구가 없으리란 생각은 여전히 들지 않는다.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쪽은 어때?”


“알겠어. 우리는 일단, 찬영과 멜씨가 사라진 곳에 몇 명을 남긴 채 앞으로 가고 있는 중…이야.”

크리스는 내게 흔들림 없는 말투로 말했다.
마치 별다른 특이 사항은 없다는 듯이.
그야말로 어지간한 사람은 속여 넘길만한 연기 실력이다.


허나 나를 속이지는 못했다.
크리스는 내게 무언가를 숨기는 중이다.

“또 뭐야.”


“…응?”


“음… 알겠다. 너 또 자넷이랑 싸웠지.”


- 움찔!

크리스가 크게 움찔거렸다.
아까 그녀가 말한 상황을 머릿속에 시물레이션해 보니,
간단한 게 일의 전후를 파악할  있었다.


“어…어떻게 알았어?…”

하얀고래는 우리가 사라진 장소에서 하염없이 기다릴 수는 없었다.
어찌 되었든 그들은 선금을 받고 의뢰 중이었으니.
우리가 사라진 장소에 단원 몇 명을 남긴 것은 자넷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배려일 것이다.


‘크리스는 스스로를 ‘앞으로 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지.’


마치 그녀는 자넷과 함께 통로를 이동 중이라는 것처럼.
내가 사라진 곳에서 크리스가 기다리고 있다는 말투는 아니었다.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크리스치고는 의아스러운 행동이다.
그녀는 하얀 고래가 마음에 들어서 함께하는 것이 아닌, 그저 내 곁에 있기 위해서 용병단에 가입한 것이니까.


그럼에도 크리스가 남지 않을 이유라면…
아마 자넷이 남으려고 하는 크리스를 말렸을 것이다.
탐사대에서 내가 사라진 지금.
어둠을 꿰뚫어 보고 실험체의 기습을 눈치챌  있는 사람은 크리스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크게 싸운 거야?”

“…아니… 조금 싸우다가, 결국 자넷의 말대로 하기로 했어.”


“네가 엄청 양보 했네?”

“찬영은 지금 무사하고,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게 확실하니까.”

숨기던 사실을 들켜 살짝 부끄러운지, 배시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리고 찬영이 돌아왔을 때, 나랑 자넷의 사이가 틀어져 있으면 곤란하지? 찬영은 용병단에 오래 있을 것 같이 행동했으니까.”

“그건 그렇지.”


“응. 내 고집 때문에 찬영에게 짐이 되기는 싫었어…”

나는 살짝 미소 지었다.
그녀의 고백은 명백한 희소식이다.


연인을 한번 잃으며 남은 깊숙한 상처.
연인에게 민폐가 되기 싫은 마음.


이 상반 된 싸움 속에서 이긴 것은 후자였다.
그녀는 나를 위해 자넷의 말을 따랐으니까.
나를 향한 애정이 트라우마를 이겨내었다는 말이다.

‘어쩌면 그리 머지않았는지도 모르겠네.’


멜과의 관계를 그녀에게 말해 줄 날이.

서두는 이것으로 끝났다.
나는 크리스에게 본론을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입은 부상과 관련이 된.


“크리스. 내게는 신기한 능력이 많이 있는 걸 알고 있지?”


“응. 한둘이 아니라서 어디부터 의문을 느껴야 할지 엄청 헷갈리지만…”


“우리가 다른 차원에  수 있는 것과 관련된 이야기인데…”

나는 뒷말을 약하게 흐리며 고민했다.
어디까지 밝혀야 할까?
소설 속 차원에서 죽어도 실제로 죽지는 않는 것까지?
아니면 죽으면 시간을 돌릴  있다는 것까지?

아니.
그건 안된다.
너무 전능한 능력일뿐더러,
그녀가 있던 세계인 ‘테라포밍’은 소설이 완결되며 더는 시간을 돌릴  없으니까.


나도 아무리 소설  세계라고 한들 죽을 생각은 없다.
이번 골렘과의 싸움에서도 절대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니  사실은 비밀로 하자.
알고 있든 그렇지 않든 우리가 할 행동은 차이가 없을 테니.
적당히 상처가 공유되지 않다는 정보만 전달해도 충분할 것이다.

나는 크리스에게 다른 차원에서 상처를 입어도 멀쩡하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럼… 거기서 죽어도 지구에서는 멀쩡한 거야?”


“그건 모르겠네. 실제로 죽어 본 적이 없어서.”


“아… 그러면 절대 죽으면 안 되겠다. 혹시 정말로 죽게 되면 돌이킬 수 없으니까.”

“그렇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크리스의 말에 동의해 주었다.
그녀든 나든 죽어서야 크게 곤란하다.


“나도 내가 가진 능력에 대해 전부 아는 건 아니야. 하나씩 겪으며 서서히 알게 되는 거지.”

“이상한 능력이네…”


“새로 생겨나는 능력도 있고, 이번 경우처럼 원래 있었는데 알게 되는 경우도 있고… 그래.”

내가 가진 능력은 점차 강해질 것이고, 그 종류 또한 다양해질 것이다.
그렇기 위한 변명으로는 이것이 제격이다.
나도 잘 모른다고 얼버무리는 것.

“아하… …잠깐. 뭐? 상처 공유가 안 된다는 능력은 새로 생긴 것이 아니라, 원래 있었지만 방금 알게 되었다고?…”

“…응.”

“그 말은… 지금 큰 부상을 입었다는 뜻 아니야?”

크리스는 내가 은근슬쩍 흘린 말을 재빠르게 잡아채었다.
한 번에 알아들은 덕에 계속 빙빙 돌려 말할 수고가 줄었다.

아무리 나라도 크리스가 얼마나 나를 걱정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 앞에 대놓고 ‘포션을 써도 후유증이 남을 것 같은 큰 부상을 입었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찬영?”

“음… 맞아.”


나는 쓰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크리스가 빠르게 내 몸을 보았지만 상처는 존재하지 않았다.
큰 부상뿐만이 아니라 작은 상흔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얀 고래의 발자취 세계로 돌아간다면,
골렘의 공격을 흘리거나 피하던 도중 스치며 생긴 미세한 부상이 십수  있을 것이다.
허나 지구에서 보니 그조차 없었다.
골렘과의 전투에서 생긴 부상 전체를 AI가 동기화시키지 않았나보다.

‘하긴… 『자연치유』가 없었다면 몇 년만 지나도 흉터가 온몸을 뒤덮을 테니 당연한가?’

나는 특성이 있어 자잘한 부상쯤은 흉터 하나 남기지 않고 재생시킨다.
하지만 시스템은 『자연치유』를 가진 대상을 위해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렇게 큰 싸움이 일어날 때마다 수십 수백 개 작은 흉터가 지구의 몸에 생기면 크게 곤란하리라.

“어디 다쳤어.”


“팔하고 다리가 좀?”


“얼마나, 얼마나 다친 거야?”

크리스의 눈동자가 살짝 떨렸다.
불안과 걱정이 점칠 된 눈빛이다.

“여기서는 괜찮아. 봐봐.”


나는 그녀의 앞에서 보란 듯이 팔과 다리를 굴렀다.
지구에서의  팔다리는 멀쩡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제서야 격해진 그녀의 숨결이 다시 고르게 변한다.


“…많이 다쳤어? 포션은 가지고 있지?”

“응. 어느 정도 응급조치는 하고 있어.”

“휴…”

“다리가 좀 부러졌지만, 부목을 대서 이제는 괜찮고. 잠깐 보니까 실시간으로 뼈가 붙고 있던데?”

“부러졌어?!”


크리스가 깜짝 놀란다.
내가 전혀 심각하지 않은 얼굴로 말했기에 중상인지는 몰랐다는 눈치다.
여전히 나는 별것 아니라는 어조를 고수했다.
내가 표정을 굳히면 크리스가 불안해한다.


“함정은 함정인가 보더라고. 적이 없는  알았는데, 위장하고 있었어.”


“지금은 괜찮은 거야?”

“당연히 이겼지. 나랑  둘이서.”

골렘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해주었다.
그녀가 내가 상대한 적을 물어왔기 때문이다.


크리스가 아는 난 강하다.
매번 하는 대련에서 거의 이기지 못할 만큼.
그렇기에 내가 중상을 입었을 거라곤 쉽게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와… 약점이 없는 골렘이라니…”


크리스는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적의 약점이나 드러난 빈틈을 찾는 크리스의 전투 스타일로는 절대 상대하지 못하는 적이기 때문이다.


멜의 실수 때문에 부상을 입었단 사실은 숨겼다.
지금의 크리스는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생각을 정리할 때가 온다면 내 부상의 근본적인 원인은 멜이란 결론에 닿을 것이다.
멜이 벽에 있는 문양을 건드리며 함정에 빠진 것으로 보일 테니까.


거기서 골렘을 깨운 그녀의 실수를 밝힌다면?

‘…큰 반감을 가질 수도 있어.’


내가 바라는 방향은 절대 아니었다.
그러니 나는 거짓말을  것이다.
멜에게는 정말 못  짓이지만.

“겨우 이겼지.  덕분에.”


“멜씨?”

“응. 멜, 걔가 큰 도움이 됐어.”


“…돌아오면 감사 인사를 해야겠네.”

“서로 목숨을  번이나 빚졌지.”


“크,큰일날 뻔했다. 멜씨가 없었다면…”

크리스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서 멜을 포장했다.
그녀가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은 거짓말이 아니다.
그러나 지은 죄가  큰 만큼 도저히 내세우지 못하는 것이지.


‘…멜이 크리스에게 한 거짓말을 한  알게 되면… 앞으로 크리스의 앞에선 고개도 못 들겠네.’

멜에게 미리 이 거짓말을 할 것이란 예고를 하지는 않았다.
도저히 받아드리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크리스에게서 연인을 절반쯤 빼앗은 것.
나를 큰 위협에 빠뜨린 것.


이미 거대한 죄악감을 가지고 있는 그녀다.
호기심이 많을 뿐, 성향 자체는 선한 멜의 성격상…
여기서 더 죄를 쌓는 것을 감당할 리 없다.

하지만 내게 있어서 이 거짓말은 반드시 필요 한 일이다.
 이후, 크리스가 멜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러니 내가 책임지기로 했다.
그녀의 의견을 하나 구하지 않고, 나 혼자 단독으로 해버린 거짓말로.

‘그렇다고 멜이 죄책감에 벗어나지는 않을  같지만, 잘 다독여 주면 되겠지.’

멜이 크리스에게서 고개를 못 드는 것도 어찌 보면 나쁘지 않았다.
언젠가 만들어야 했을 여성진의 서열이 자연스럽게 세워진 것이다.

한 명의 여인도 빼놓지 않고 공평하게 애정을 준다?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모두에게 공평한 시간을 쓰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아니, 솔직히 이상론으로 들린다.

‘안젤리는 크리스를 나의 첫 애인으로 알고 있지.’

차라리 공식적으로 내 첫 연인인 크리스가 가장 큰 발언권을 쥐는 것이 좋다.
교관의 경험도 있는 크리스다.
이후 관계가 얽혀가며 일어날 골치 아픈 일들을 잘 조율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슬슬 밥시간이네. 슬슬 뭐라도 먹을까?”


“응! 그러자!”


이왕 지구로 온 것.
크리스와 함께 약간 시간을 보내었다.


*


사방이 깔끔하다.
사실 그리 깔끔하지는 않았다.
바닥에는 책장이 부서진 나뭇조각과 먼지, 박살  연금석 조각, 뼛가루가 뒤섞인 채 내려앉아 있다.
그러나 책이 사방팔방에 널브러진 처음에 비하면 깔끔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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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 정보 확인] - [건물 정보 확인]
이름: 트리스 메기스투스의 비밀 실험실 #3
종류: 구조물
레벨: -
상세:
악랄하고 위대한 연금술사 트리스 메기스투스.
그가 자신의 거주지에 만든 3개의 비밀 실험실  가장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실험실입니다.


평생을 걸쳐 연구한 ■■■ ■■에 관한 방대한 자료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 ■■과 관련되어 보이는 마법진이 바닥에 새겨져 있습니다.

* 미로에 비밀스럽게 새겨진 글귀에 물리력을 가하면 입장 가능합니다. - 아이템 정보 확인 Lv 2
* 실험실 내부에 있는 글귀에 물리력을 가하면 퇴장 가능합니다. - 아이템 정보 확인 Lv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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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 불사의 비약인가?'

하드모드 퀘스트를 완료하고 새로 받은 추가기능.
그것을 사용하니 나가는 방법을 찾았다.
원작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과 비슷 했다.
새겨진 문양에 손을 대는 것.

바닥은 마법진이 새겨져 있다.
사방의 벽은 책장이 들어차 있다.
그렇다면 문양이 새겨져 있을 만한 곳은 단  곳이다.

‘찾았다.’


천장에 희미한 색으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에브리카(ˈeβrika).
입장 시 봤던 ‘깨달았다’라는 뜻을 가진 글귀다.


이제는 그가 무엇을 깨달았다고 하는지 알게 되었다.

“멜! 나가는 방법 찾은 것 같아!”

“네? 정말요?”


나는 멀쩡한 책장을 유심히 살피는 멜을 향해 소리쳤다.
슬슬 이 실험실을 벗어날 때가 되었다.


그리고 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아이템 정보 상세 확인.’

- 띠링!


역시.
가루가 되어 먼지와 뒹구는  유골은 트리스 메기스투스가 맞았다.
비약의 제작자이자 유적의 주인인.
반전이 없음을 확인하니 찜찜하던 것이 일시에 사라지며 후련해졌다.


내가 굳이 지구에서 크리스와 함께 시간을 보낸 이유다.
‘아이템 정보 상세 확인’의 쿨타임을 기다리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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