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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9화 〉하얀 고래의 발자취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골렘의 움직임은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다.
뼈와 관절이 없어 일부분이 뭉개져도 자유롭게 공격이 가능한 놈이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팔뚝 자체의 형태가 사라졌는데 칼을 휘두를 수는 없지 않은가?


- 콰아앙—!!


마나를 회복하고, 다시 주먹을 휘두른다.
집중은 한 치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콰앙——!!

내가 사용 하는 기술은 일정권(一正拳)과 금강수(金剛手) 둘밖에 없다.
필살기로 여기는 쌍요궁(雙搖躬)은 지금껏  번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쌍요궁은 마나의 공명을 이용해 내부를 진창 내 버리는 기술이다.
겉가죽이 단단하면 단단할수록 위력이 높은 기술이지만,
놈은 겉은 물론 속내도 똑같은 강도를 지녔다.
자연히 효과가 없으리라 예상을 했다.

물론 테스트 삼아 한참 전에 사용해 보긴 했다.
혹시 놈의 내부에 있는 골렘의 핵에 타격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허나 놈에게 핵 같은 것은 없었다.
당연히 쌍요궁의 결과는 허무했다.
놈이 보인 반응은 그저 웅- 우웅— 하고 몇  몸을 떠는 것으로 끝이었다.
오히려 여타 잡기술 없이 마나의 소모가 파괴력에 집중된 일정권이 훨씬 유용했다.

- 콰앙—!

다시.


콰아앙——!


몇 번이고.
놈이 회복하지 못할 때까지 주먹을 휘두를 것이다.

종아리의 뼈가 삐걱대는 소리가 들린다.
착각이 아니라, 정말로 청각이 예민해 신체 내부에서 나는 소리를 잡아챈 것이다.
소리가 아니어도  다리가 위험한 것은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
‘통각’이라 불리는 생체 신호는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자기 과시가 뛰어났으니까.

권격에 힘을 온전히 담기 위해서는 하체의 힘이 너무나 중요하다.
자연스럽게 싸움이 길어질수록 부담을 받았다.
점점.
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고통은 커져만 간다.


콰아앙——!!


‘이제 좀 뒤져!!’

몸이 반으로 접혀가면서도 꾸역꾸역 회복하려 든다.
그 질김에 슬슬 역겨워지기 시작했다.


골렘을 상대하느라 소모한 마나만 생각해도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많다.
놈의 제작자가 원망스럽다.
그는 골렘을 약간 약체화시킨 대신에 치명적인 약점을 완전히 지워버렸다.
차라리 몸 내부에 핵을 만들어 두었다면 훨씬 상대하기 편했을 텐데.


영구 유지, 자가 수리, 신체 변형, 고급 검술 패턴, 기초적인 인공 지능, 마지막으로 터무니없는 기본 스텟까지.
내가 파악한 골렘에게 사용된 모든 마법과 연금술이다.
심지어 약점까지 없다니?

너무나 악랄했다.
만일 오래전에 본 유골이  골렘의 주인이 맞다면…
놈의 몸속에 든 뼛조각을 꺼내 어떻게든 부관참시할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한 공격에 부서지지 않고 무사하다는 가정하에.

- 콰아앙——!!


인간의 형체를 완전히 잃은 것조차 오래되었다.
이제는 압축기에 구겨진 폐차.
혹은 발에 밟혀 내장이 터진 매미의 사체.
이와 비슷한 것들로 보였다.


- 후욱… 까아앙!! 기긱… 긱…


“큭…! 막았어요!”


“잘했어! 멜!”

놈의 신체 변형 공격은 여전히 이루어졌다.
가까이 있는 나를 향한 공격도 있었다.
허나 멜에게 향하는 비율이 훨씬 더 높았다.

아무래도 약한 적부터 쓰러뜨리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나 보다.
겨우겨우 버텨 내는 멜에게는 미안하지만, 아주 큰 희소식이었다.

- 콰아앙 ! 쾅—!!


말없이 주먹질을 반복한다.


그때.
놈의 반응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수복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공격의 위력도, 속도도 확연하게 줄었다.

- 후우욱…!

“하아… 하… 흐읍!!”


- 카가각!! 가각!!


멜은 반쯤 부서진 칼로도 잘 버텨주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도와주기보다는 기세를 몰아쳐 공격에 집중했다.
슬슬 때가 왔음이 느껴졌다.
골렘은 명백하게 힘을 잃고 있다.

놈의 공격과 달리 내 주먹은 변함없는 강력함을 품고 있었다.
마나를 회복하고, 전신의 고통을 견디며 주먹을 뻗는다.

또 반복한다.


-  !


다시 한번 반복한다.

- 콰앙 ! 콰아아앙——!!


신체에 새겨진 집중을 과거로부터 이어 받는다.
기계처럼 그 작업을 반복하고 있을 때.

띠링!


어느 순간,
내 귀에 시스템 음이 울렸다.


“…”

“후으… 헉… …찬영님?”


멜은 주먹질을 멈춘 나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완전히 멈춘 골렘을 천천히 돌아 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녀와 달리 골렘을 보고 있지 않았다.

[*HARD MODE* 퀘스트, ‘극기’ 클리어!]

내가 보는 것은 허공에 뜬 퀘스트 클리어 창이었다.

‘…끝났다.’

놈은 완전히 기동을 정지했다.
시스템이 인정할 정도로.

“헉… 허억…! 골렘이! 골렘이 멈췄어요!”

“응. 이겼네…”

도무지 끝나지 않을  같았던 전투가 끝났다.
살짝 얼떨떨했다.
멜에게는 짧을지 몰라도 내게는 며칠이나 되는 긴 시간이었기에.

우선적으로 처리할 것이 있다.
실시간으로 식은땀을 짜내는 이 격통.
더는 이것을 견딜 필요가 사라졌다.


나는 무엇보다 통각부터 완전히 차단했다.

후우…

나를 괴롭히던 고통이 사라졌다.
온갖 스트레스에서 해방되는 기분이다.
이 감격스러운 순간을 짧게 즐기고 있을 때.


“다리! 다리부터 지혈하세요!!”


“다리? 아…”

다급한 멜의 외침이 나를 일깨웠다.
그녀의 지적에 내 오른쪽 다리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바짓단 전체가 시뻘겋게 물들여져 있었다.

- 찰박. 찰박.


심지어 지금  있는 와중에도 바닥에 피가 고이기 시작한다.
종아리에 난 구멍은 단검이 낸 아주 작은 구멍이다.
하지만 흘러 나오는 피의 양은…


등이 섬뜩해지는, 심상치 않은 출혈량이다.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스윽!

“이리 누워 보세요!”


멜이 나를 향해 빠르게 다가온 뒤, 꽤나 다급하게 바닥에 눕혔다.
거부하려면 거부할 수 있었지만 조용히 그녀의 손길에 따랐다.
멜은 바닥에 누운 나의 오른쪽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렸다.

‘이쪽 세상에도 출혈에 대한 응급 처치 지식이 있나 보네?’

출혈이 발생한 곳을 심장보다 높이 올려라.
지구에서는 당연한 상식이었다.

효과가 있는지 허벅지를 타고 아래로 흘러내리던 피가 약간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양이 많은 것은 변하지 않았지만.

‘큰일  뻔했어…’


어찌보면 모든 사건의 원인은 그녀지만,
멜의 참전이 도움 된 것은 사실이다.
그녀 덕에 한참이나 시간을 단축했다.
어쩌면 놈이 작동을 멈추는  보다 내 출혈이 많아져 정신을 잃는 것이 빠를 뻔했다.

찌이익!

멜은 단검으로  바지의 종아리 부분을 찢었다.
걷어 올리거나 벗기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판단이 들었나 보다.
그녀가 보여주는 모습을 보니 충분히 믿고 맡길  했다.
나는 포션 몇 개를 꺼내며 응급 처치를 준비했다.

바지 위에는 부목이 들러붙어 있다.
지혈을 하기 위해서는 떼어내야 한다.
멜은 그것을 손으로   긁어보더니,
내려놓은 단검을 다시 들어 올렸다.
토치로 녹인 절연 테이프가 피부에 달라붙었나보다.


“이거… 뭔지는 몰라도 피부까지 붙어 있어요…! 찢을게요.  아플 겁니다!”

- 찌익. 투두둑.

단검이 부목에 달라붙은 테이프를 가른다.
 피부에 칼끝이 닿지 않도록 신중하게.
특히 상처 부위는 살점이 같이 뜯어나가지 않게 세심히 다루는 것이 느껴졌다.


- 텅그렁!…

합금 막대로 이루어진 부목이 바닥을 뒹굴었다.
내 부러진 종아리가 완전히 공기 중으로 노출되었다.

“흐윽…!!”


기어코 드러난  다리 상태를 보고는 멜이 눈물을 흘렸다.
다행히 부목이 없음에도 두 동강 났던 다리는 제 형태를 유지했다.
나의 격렬한 움직임 속에서도 중력을 이겨 낼 정도까지는 뼈가 붙은 것이다.
어린아이가 주먹을 날리면 단숨에 다시 부서질 강도겠지만.

새빨갛다 못해 살점이 흘러내린 것 아닌가 싶을 정도의 핏덩이가 군데군데 보인다.
허나 그런 것을 세세하게 걱정할 정신은 없었다.
종아리의 상태가 나와 멜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허…”

“이거, 이… 어떠,어떻게… 흡…”

멍이  것인지, 괴사가 진행 중인 것인지 종아리 전체가 시꺼멓게 변했다.
나조차 섬찟할 정도로 압도적인 비주얼이다.

멜이 절박한 얼굴로 내 종아리의 주변을 손가락으로 찔러 보았다.

“아파요? 아프죠? 아프다고 말해주세요. 제발…”


“…아파.”

“흐윽… 정말요? 그럼 아직, 아직 늦지 않았어요. 치료할 수 있어요. 일단 지혈부터.”


- 스윽.


통각 차단 때문에 멜의 손가락이 멍든 종아리를 찔러도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허나 실제로는 분명히 느꼈으리라.
아프다고 말한 것의 절반은 거짓말이지만, 나머지 반은 진실이다.

멜은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은 채 다급하게 손을 움직였다.
또한 미리 뚜껑을 열어둔 포션을 허겁지겁 상처에 부었다.
칼자루와 그녀의 손에 묶여 있던 붕대 비스름한 천을 풀더니,
재빠르게 내 종아리에 감으려 했다.


“아. 잠깐만.”


“네? 지,지금 급한데. 출혈이…!”


- 띠링!

함부로 더러운 옷가지를 대었다가는, 자칫하면 이차 감염이 일어날 수 있다.
상점에서 깨끗한 붕대를 구매했다.
 손에 갑자기 나타난 붕대를  멜은 살짝 놀랐지만,
이내 아티팩트의 효과라고 납득한 것처럼 보였다.


내게서 깨끗한 붕대를 받아든 멜이 상처 부위에 빠르게 감았다.
지혈이 될 정도로 강하게.

- 꽈악.

“…”

“흡…! 거짓말쟁이…! 고통  느껴지죠? 네? 왜  아파하세요…! 상처 부위에 이리 강하게 묶었는데에…!!”


멜의 어깨가 부들거리며 떨린다.
통각을 꺼 놓았기 때문에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조용히 있었더니, 그걸 본 멜의 멘탈이 크게 흔들려 버렸다.
 다리가 고통도 못 느낄 정도로 괴사한  알고.

‘젠장… 출혈이 많기는 하나 보네. 머리가 제대로 안 돌아가.’


살짝 어지러웠다.
누워 있는 상태로 고통 하나 없이 나른하게 있으니 졸음이 한도 끝도 없이 몰려온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로 정신을 잃어버리면, 멜이 패닉 할지도 몰랐다.
정신을 유지하려면 할  있었기에 최대한 눈을 부릅떴다.

“…이를 악물고 참은 거야. 실제로는 아팠어. 정말이야.”


“믿을게요. 믿을, 게요… 흑…”

멜의 걱정과 다르게 내 다리는 아직 괴사까지 가지는 않았다.
통각을 조금만 올려도 잠이 확 달아나는 고통이 느껴졌다.
미리 포션을 어마어마하게 사용해 둔 탓도 있었고,
『자연치유』의 도움도 분명히 있었으리라.

- 텅그렁… 스윽.

“이거… 흐읍…! 부목인가요? 훌쩍… 다시…해드릴게요.”


“응. 아프니까 살살 해주고.”


“…정말로 아프신  맞죠?…”

- 끄덕.

나는 멜을 향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내 얼굴을 보고 복잡한 얼굴을 만들었다.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결국 멜은  말을 믿었다.
사실 나의 대답을 믿기 보다는, 믿고 싶었기에 그리하는 축이 강했다.
하긴,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죄책감을 가질만한 일이긴 하다.


이대로 후유증 하나 없이 완치되어도 멜은 내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할 것이다.
한데 영구적인 장애가 남는다면?
아무리 마음이 강한 그녀라도  트라우마가 되리라.

- 스윽. 슥.

멜은 말없이 부목을 다시 메어주었다.
테이프는 피가 말라붙어 접착력이 떨어졌기에, 아까 자른 바지 밑단을 붕대로 대신해 묶어서.

그녀는 손을 움직이는 내내 도저히 나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죄책감 탓이다.
피와 땀에 젖은 멜의 입에서 작은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제가 아니었다면… 저만 없었더라면… 찬영님 혼자서 다치지 않고 골렘을 잡으셨을 텐데…”

“…”

가장 마음이 쓰이는 것은, 이런 그녀의 자책이 담긴 말을 적극적으로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멜이 보는 나는 무시무시한 권격을 쉼 없이 쏟아내는 괴물일 테니.

‘…편법을 쓰긴 했지만, 실제로도 맞는 말이고.’


역사에 IF란 없으니 단언할 수는 없으나…
내가 기습을 당하지 않은  골렘과 싸웠다면 훨씬 손쉽게 잡았을 가능성이 높다.


억지로 위로해 줘 봐야 역효과다.
저 고통스레 일그러진 표정을 봐라.
지금 그녀의 잘못은 그녀 스스로가 누구보다  깨닫고 있다.


- 스으윽…

“저만 아니었다면… 이런 이상한 곳에 오지도 않으셨을 텐데…”


“…”

무슨 말이라도 꺼내고 싶다.
하지만 최대한 억눌렀다.

위로를 하는 순간,
‘피해자에게 위로를 받은 가해자’가 되어 버린 그녀가 자신을 혐오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럴 때는 신중하게 말을 골라야 한다.


스윽. 꽉.


꽉 묶인 매듭을 마지막으로 부목이 고정되었다.
방금처럼 완전히 고정된 것이 아닌 만큼 절대 전투는 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 걸을 수는 있으리라.


“부목 고마워. 멜.”


“…”


멜은 내 입에서 나오는 고맙다는 말에 고개를 숙였다.
도저히 감사의 인사를 들을 자격이 없다는 듯이.

“팔도… 주세요…”


“아. 여기.”

내  역시 크게 다쳐 있었다.
골렘의 공격을 흘리거나 막으며 찢긴 상처다.

아무래도 상흔을 보니 포션을 써도 흉이 지는 것은 막지 못할  같다.
어차피 현실을 비롯한 다른 차원에는 하등 영향이 미치지 않기에 상관없지만.

그러나 멜이 이 사실을 알 리가 없다.
내게는 수많은 차원  하나의 육체일 뿐이지만, 멜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연인의 육신이니.

주르륵.


멜이  팔 위에 조심스럽게 포션을 흘렸다.
포션을 마시지는 않았다.
내게는 한참 전으로 느껴지지만, 골렘과의 전투 전에 위가 출렁거릴 정도로 미리 마셨기 때문이다.
아직 마신 포션의 20%도 소화되지 않았으리라.

방금 쓰고 남은 깨끗한 붕대가 내 팔에 감기기 시작한다.
혈관이 다칠 정도로 깊은 상처는 아니기에, 출혈은 진작에 멎어 있었다.
굳이 지혈할 필요는 없었다.


- 스윽. 슥…


“…찬영님이랑 베넷씨.  둘 사이에 억지로 끼려  것도 있었죠… 찬영님은 마음이 여리셔서인지 저를 모질게 쳐내지 않으셨지만요…”

“너 혼난다?”

“…”


내 경고에 멜이 도로 입을 다물었다.

허나 그것도 잠시.
그녀의 입이 울먹임을 담고 다시 열렸다.

스으윽…

“차라리 그때 깔끔하게 차였더라면 이런 민폐도 없었을…”


“멜.”


“…네…”

 목소리에 분노가 담겼음을 알아챈 멜이 숨을 죽이며 대답했다.
그녀는 지금 겁먹어 있었다.
홀로 골렘을 상대할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사실 진심으로 화난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심신은 너무나 지쳐 있으니까.
자기혐오에 뒤덮인 지금,
 정도의 자책은 충분히 떠올릴 수 있다.

다만, 그녀의 연인으로서 화를 내야 하는 발언이다.
그렇기에 화를 내는 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부목을 손가락으로 건들어 보이며 말했다.

- 툭툭.


“너. 오늘 내게 잘못한 것 많아. 그렇지?”

- 움찔…!!

나의 행동에 멜의 숨이 한순간 멈추었다.
그리고는 겨우 새는 듯한 소리로 내게 대답 했다.
여전히 숨은 들이쉬지도, 내쉬지도 않고 있다.

“…맞아요…”

“이거 후유증 남을 수도 있어. 아니, 높은 확률로 그러겠지.”

“…네에… 흑…!”

멜은 입술을 비집고 나온 울음 덕분에 겨우 숨을 들이쉴 수 있었다.


나는 괴로워하는 그녀에게 냉정한 말을  것이다.
허나 말 자체는 냉정하되, 말의 어조까지 냉기를 품어서는 안 된다.
상냥함을 담아,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그럼 네가 잘못했으니 네가 책임져.  도망치려고 해?”


- 도리도리!

“도,도망치려 안 했어요! 정말로!… 제 평생을 걸쳐 갚으려고…!”


“좋아. 그게 바로 내가 원하던 대답이야. 어때, 멜. 내 다리를 보면 무슨 기분이 들어?”

멜은 시선을 돌려 내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가슴께 옷자락이 와락 구겨졌다.
멜이 주먹을 들어 스스로의 가슴을 지그시 눌렀기 때문이다.

“…아파요. 많이…”

“그게 네 죗값이야. 평생 옆에 있으면서 보고 살아.”

“하지만… 그래서야…”


“그리고 내가 하는 말에 반박하지 말고 얌전히 수용할 것. 이것까지 추가하고.”

“…”


“이 정도면 저지른 죄의 벌이 되지? 그러니 서로 이상한 생각 하지 말자.”

나는 가볍게 웃음을 흘리며 멜을 다독였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멜은 그저 땅을 보고 숨죽여 눈물만을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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