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1화) (156) (156/310)



〈 156화 〉하얀 고래의 발자취

“끄윽…!”


- 콰앙!

내 등이 벽에 박혀 있는 책장을 강하게 때렸다.
책이 우수수 떨어지며 내 머리를 두드린다.
그러나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등과 머리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리… 가…’


- 뿌드득…


입술 안쪽의 이빨이 강력한 치악력에 비명을 질러 대었다.
고통을 참아내기 위해 이를 악물어야 했기 때문이다.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방금의 일격에 내 다리가 잘못되었다.

“차,찬영님!!”

멜이 빠르게 다가오며 내 위에 쏟아진 책을 치웠다.
겨우겨우 눈꺼풀을 밀어내며 다리를 보니…
오른쪽 종아리가 꺾이면  될 부분에서 꺾여 뒤틀려 있었다.
심각한 골절이었다.

강철 관… 아니, 금속 골렘은 하단에 위치해 있었다.
멜이 시체를 건든 순간, 그녀의 하단을 노리고 공격이 들어왔다.
나는 그녀를 밀쳤기에 대신 공격에 당한 것이고.


“큭… 젠…장…”

“흐윽!… 죄송해요!… 죄송!… 아까 함정에 이어, 이번에도 생각 없이…!”


 다리의 상태를 본 멜의 눈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멜의 얼굴이 죄책감에 일그러진다.

나도 저 철 덩어리가 골렘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책임이 없지는 않았다.
조금만 더 신중하게 행동했더라면…
적어도 골렘의 기습에 내 다리가 부러지지는 않았겠지.

그러나 저 표정을 보니 지금 당장 타박 하지는 못하겠다.
주먹 쥔 그녀의 손을 쳐다보니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며 피를 흘리고 있었다.
이미 그녀는 너무나 아파하고 있다.


“흑… 흐윽… 찬영님… 다,다리가… 훌쩍!”

“…이 빚은 나중에 받아 낼 거야. 끄윽… 큭큭… 멜, 각오해라?”


“이거… 흡…! 치료를… 흐윽… 후유증…이…”

장난스럽게 말해도 상황이 심각한 것은 변하지 않았다.
멜도 내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뇌를 칼로 저미는 고통에 제정신을 차리지 못할 법했지만, 나는 의외로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  수 있었다.
심각한 부상에서 오는 쇼크나 스트레스에도 『자연치유』가 정신을 회복 시켜 주나보다.


과연 이 다리로 지금 당장 일어설  있을까?
나온 답은 안타깝게도 부정이었다.
통각을 없애더라도 이 덜렁거리는 다리로는 서지 못할 것 같다.
추가 조치가 없는 이상에야.

- 쿠웅! 쿵!


골렘이 일어섰다.
두 다리와 두 팔.
거기다 자신의 신체를 일부 떼어 만든 거대한 칼까지.
우습게도 액체 골렘인 놈은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키가 3M를 넘고, 뼈와  같은 나약한 육신 대신에 금속이 들어차 있다는 것만 제외하면.


아니, 생각해 보니 뼈는 제대로 포함되어 있으려나?
관 안에 있던 시체는 골렘의 안에 들어가 있으니.


“큭큭… 철덩이 주제에 눈, 코, 입까지 다 있네…”


고통을 무시하기 위해 억지로 입가를 끌어 올려 비죽였다.
식은땀 한 방울이 턱을 타고 내려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라면…
피는 많이 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부러진 뼛조각이 근육을 찌르고 있는 것 같지만, 피부 밖으로 삐져나오지는 않았다.
끔찍한 내출혈로 시꺼멓게 멍들었을 뿐이지,
개방성 골절은 아닌 것이다.


어차피 나중에 피부를 찢어 고인 피를 빼내야 하겠지만, 지금 당장은 나쁘지 않다.
따로 지혈하지 않아도 피가 가득 차게 되면 저절로 출혈이 그칠 테니까.

나는 일단 통각을 없애기로 했다.
지금 당장은 굳이 통증을 견뎌야 할 이유가 없다.

‘후우…’

찌르르 울리던 고통이 사라지자  더 눈앞의 상황이 선명히 보이기 시작한다.

인간의 형태를 취한 골렘.
놈이 칼을 들어 자세를 잡았다.
그 자세는 검술에 능하지 않은 내가 봐도 너무나 빈틈이 없어 보여,
마치 놈이 골렘이 아닌 능숙한 전사처럼 느껴졌다.


“검술까지 쓰나 보네… 젠장.”

“…”


어느새 울음을 그친 멜이 몸을 일으켰다.
아니, 헐떡임만 그쳤을 뿐.
그녀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 저벅저벅.

내 다리에서 떨어진 그녀의 시선은 앞을 향했다.
당당히 자세를 잡은 골렘을 향해 말없이 걸어가기 시작했다.
발길에 망설임은 없었다.
꽤 작은 체구의 등이 조금씩 멀어져 갔다.


“제가 깨웠으니, 제가 처리 할 거예요.”


- 스릉!


그녀가 볼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을 닦으며 말한다.
손에는 허리춤에서 뽑아 든 칼이 들려 있었다.
잡철이 섞여, 골렘의 거대한 칼과  번이라도 정면으로 부딪치면 유리처럼 깨어질 것이 분명한 칼이.

“저 때문에 찬영님까지 죽는다니? 그건 죽어도. 아니, 죽는 것보다 훨씬 싫어요.”

- 척.


그녀가 손에 칼을 든 채 준비 자세를 취했다.
몇 번 보아 이제는 눈에 익은 모습이다.
칼끝은 그녀의 키의 두 배에 달하는 골렘을 향하고 있었다.

“저 이길 수 있어요.”


강한 다짐은 담담히 내뱉어졌다.
목소리는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그 원인은 결코 두려움이 아니다.
그저 울음의 여파가 아직 그치지 않았을 뿐.

“다리. 부러진 다리는 제가 책임질게요. 평생 업고 다니면서. 잠잘 때조차 불편하시지 않게 시중을 들고. 하려고 하셨던 것, 하고 싶으신  전부 이룰 수 있도록 책임지겠습니다.”

뼈가 꺾여 뒤틀린 오른쪽 다리.
누가 보아도 후유증이 진하게 남을  같은 심각한 부상이다.
그것이 멜의 죄책감을 크게 건드렸나 보다.
목소리에서 깊숙한 고통이 느껴진다.

내가 멜을 그리 바라보듯,
멜 역시 나를 사랑하고 있다.
연인이 자신 때문에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니?
그녀의 속내가 얼마나 시꺼멓게 타들어 가고 있을지 읽혔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완치시켜드릴게요.”

그녀가 정면을 바라보고 있기에 표정을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울고 있음을  수 있었다.
어깨너비로 벌린 다리 사이에 물방울이 툭툭거리며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내 다리의 완치가 사실 상 불가능 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후우.’

멜은 이 공간을 무사히 빠져나간 미래를 그리고 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눈앞의 골렘을 이겨낼 생각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저 싸움의 결말을 알고 있었다.
기나긴 골렘의 정보창에는 놈의 스텟까지 담겨 있었기에.

아무리 싸움이란 것이 스텟의 차이로 결정 나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차이가 너무 심했다.
온몸이 멀쩡한 나조차 승리를 장담하지 못할 만큼이나.


게다가 이곳은 밀폐된 공간.
도망칠 곳은 없다.
그녀의 칼이 골렘의 몸에 상처를 입히리란 보장 역시 없다.
멜의 뒤에는 지켜야 할 나까지 있다.


눈앞의 적은 그녀보다 훨씬 강하고,
주변 환경은 족쇄뿐.
분명 멜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큭큭… 최악이네.”

상황은 꽤나 암담했다.
저절로 쓴웃음이 나온다.
그런 나의 앞에,
시스템  하나가 열렸다.


띠링!

=
*HARD MODE*
[퀘스트]
내용: 극기
상세:
적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합니다.
다리에는  부상을 입었습니다.
도망칠 곳은 없습니다.


그러나, 지켜야 할 연인이 있습니다.

반드시 이겨내야 하는 위기의 순간이 있다면 지금입니다.
모든 힘을 다해서 눈앞의 적을 이겨내세요!

보상: [아이템 정보 확인] 부가 기능 [건물 정보 확인] 해금, [직업] 획득 가능.
제한 시간: -
실패 조건: 사망 혹은 ‘멜[용병]’의 사망
실패 패널티: 12시간 동안 일반 퀘스트가 등장하지 않음.
포기 패널티: 6시간 동안 일반 퀘스트가 등장하지 않음.
=


[’극기’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오랜만에 보는 하드모드 퀘스트 창.
시스템 AI는 우정이나 사랑 같은 단어들을 좋아하나보다.
천사가 만든 시스템답다.
현실은 연인이 곁에 있다고 스텟에 버프를 받는 것은 결코 아닌데.

내가 경험한 어떤 퀘스트보다 클리어가 힘들어 보인다.
이 퀘스트를 클리어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10%? 20%?

어쩌면 그냥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이득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하드모드 퀘스트의 실패나 포기 패널티를 받지 않으니까.
하지만…

- 띠링!


[*HARD MODE* 퀘스트가 수락되었습니다!]

나의 손가락은 [수락]을 눌렀다.


실수로 누른 것이 아니다.
내 의지로 퀘스트를 받은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최선을 다해 발버둥 칠 것이다.
멜과 마찬가지로, 내게 주어진 삶은 단 하나인 것처럼.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아직 내겐  수 있는 것이 남아 있다.

“멜. 5분이야.”


“…네?”

“딱 5분만 버텨 줘. 그럼  일어설  있어.”


“그 다리로 일어서려 하지 마세요! 그럼 진짜 완치가 불가능해져요! 제가. 저 혼자서 이겨낼 수 있어요.”


“지금부터 5분 시작이야. 부탁할게.”

나는 멜의 말을 일축했다.
그녀는 내게 무언가  말이 있는 듯 보였지만…
말을 이어 하지는 못했다.
거대한 쇳더미가 멜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그르릉… 쿠웅!! 쿵!

그야말로 묵직하고 파괴적인 질주.
놈이 발을 디딜 때마다,  넓은 석실이 진동에 떨었다.
바닥이 평범한 내구도를 지닌 돌이었다면 분명히 놈의 발밑은 모래 가루가 되었을 것이다.


“흐아압!!”

- 탁탁탁!


멜은 자리에 서서 골렘을 기다리지 않았다.
오히려 칼을 쥔 채 놈을 향해 달려갔다.
뒤에 무방비하게 쓰러진 내가 있기 때문이겠지.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려 내가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내가 하려는 행동은 약간 도박에 가까웠지만, 이 이상의 방법이 없다.
포션의 힘과 『자연치유』를 믿을 수밖에.


스윽!

아공간에 담아 둔 단검 한개와, 인벤토리에 있는 하급 포션을 있는 대로 꺼내었다.
한 손으로는 빠르게 포션을 마시며 다른 손으로는 부상을 입은 오른쪽 다리를 끌어당겼다.
통각을 없앴기에 고통은 없다.
나의 손은 재빠르고 냉정하게 움직였다.

- 서걱. 주르르륵…


시꺼멓게 물든 살가죽에 단검이 구멍을 내자 고인 피가 쏟아져 나왔다.
다행히 내출혈 자체는 멈추었나 보다.
혈관이 곤죽이 된 것 치고는 뿜어져 나오는 피가 적었다.

종아리에 난 구멍 안에 포션을 연거푸 때려 박는다.
 와중에도 포션을 마시는 것을 절대 멈추지 않았다.
상처에 붓는 포션의 절반 이상이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이럴  쓰려고 모아둔 카르마와 포션이니까.


“하아아앗!!”


- 까앙! 깡!! 쿵쿵쿵…!!


조금이라도 회복에 도움이 되라고 ‘그린 얌’까지 상점에서 구입 해 씹어 먹었다.
그렇게  사용한 포션이 대략 스무 개를 넘어갔을 때쯤.
나는 재빠르게 시스템을 조작해 지구로 귀환했다.


- 후욱.





지구에서의 내 몸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크리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서 그녀를 데려오지는 않았다.
아마 그녀는 내가 지구에 귀환했는지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쪽은 지금 시간이 멈춰 있을 테니까.

귀환을 한 이유는 필요한 물건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향한 곳은 대형 철물점이었다.


시간에 쫓기지 않으니 신중하게 내가 찾는 물건을 고를 수 있었다.
구입한 것은 골프채 수준의 두께를 가진 합금 막대 일곱 개였다.
길이는 모두 일정하게 팔뚝 수준이었고, 어느 정도 단단한 동시에 가벼웠다.
그 이외에 가스 토치, 절연 테이프, 청테이프 정도의 자잘한 것들을 추가로 구매해 아공간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마나가 전부 찬 것을 확인하곤,
안젤리에게 ‘구름나무 차’까지 얻어 마시며 집중력 버프를 받은 뒤 소설에 진입했다.


- 쿠당탕!!


“끄아압!!”

- 콰드득!…


멜이 뒤로 날아가며 책장을 박살 낸다.
순간 잘못된 줄 알고 섬뜩했으나, 다행히 벌떡 일어나 다시 골렘을 향해 덤벼들었다.
물론 멀쩡해 보이지는 않았다.
멜의 하얀 머리카락이 새빨갛게 물들었으니.

그녀는 오른손잡이다.
허나 어째선지 그녀의 칼이 오른손에서 왼쪽으로 가 있었다.
 이유는 곧바로 알게 되었다.
그녀의 오른팔이 힘없이 흐느적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손가락까지 몇 개 뒤로 꺾여 있다.

‘젠장… 오른팔이 부러진 건가…’

상당히 고통스러울 것이다.
익숙지 않은 왼손으로 칼을 옮겨 쥐어야  만큼.
상황은 좋지 않았다.
멜은 이미 빈사 상태에 가까웠고, 골렘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해 보였다.

- 탁탁탁!!

그러나 고통에 벌벌 떨면서도 발을 내딛는다.
이는 악다문 채 골렘을 노려보고 있었고, 동공에 존재하는 전의는 전혀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아직 놈을 이겨낼 생각이었다.

“흐아아아악!!”

멜은 처절함에 가까운 기압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뒤에 있는 내게 놈의 주의가 돌아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녀는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니 나 역시 서둘러 내가 할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
멜이 너무나 걱정되지만, 그녀에게 향하는 시선을 의식적으로 되돌렸다.


“…일단 준비는 했는데… 과연 싸울 수 있을까?”

 자리에 있는 것이 내가 아닌 이공계에 빠삭한 사람이었다면,
골렘이 금속인 것을 이용하기 위해 기발한 수를 떠올리려고 머리를 싸맬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런 방식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난 저놈이 어떤 금속인지도 몰라.’


녹는 점도 모르고, 부식시킬 수 있는 물질도 알지 못한다.
게다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딴 시도 자체가 어리석은 짓이란 생각을 떨쳐내질 못하겠다.

금속은 급가열했다가 급냉각시키면 쉽게 부수어진다고?
시도하기 우스울 정도로 어려울뿐더러, 소용이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지구의 물리 법칙이 다른 차원의 금속에게 통할 것이라 어떻게 장담하는가.
경도나 연성 같은 금속의 중요 조건에 전혀 구애받지 않아 보이는 저 액체 금속 골렘에게.

‘혹시 놈이 마나가 섞이지 않은 공격은 절대 통하지 않는 성질이라면?’

모든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리라.


물론 차근차근 놈에게 통하는 것을 실험해 보다 보면 약점을 찾을 수도 있다.
허나 많은 것을 시도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로운 상황은 못 된다.
지금 우리가 하는 것은 공략이 아닌, 필사적인 발버둥이니까.

주어진 기회 자체가 극도로 적었고, 그마저도 실시간으로 사라지고 있다.
그러니 내가 선택 하게 된 방법은 가장 간단하면서도, 가장 강력한 수가 되었다.
바로…
내 두 주먹으로 놈을 때려 부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지구에서 사  재료들이고.’

부러진 종아리?
부목을 대어 억지로 몸을 일으키면 된다.
이 일곱 개의 합금 막대기로.


너무나 무식한 짓거리란 것을 알고 있지만, 이 이상의 방법이 없다.
또한 순순히 포기해 주기에는 내 성미가 허락하지 못한다.
놈에게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발악할 것이다.

우선 종아리의 겉을 만지며 끊어진 뼈를 대강 맞추어 갔다.
박살이  조각조각 난 것이 아닌, 뚝 끊기듯 토막 난 뼈라서 가능한 억지다.
고통을 느끼지 않았기에 손속은 빨랐다.
뒤틀렸던 종아리는 금세 평범한 모양을 찾게 되었다.
피부가 시꺼멓게 멍들고 피와 포션으로 얼룩진 것을 빼면.


- 찌익. 척.


먼저 단검으로 낸 구멍을 청테이프로 막았다.
최소한의 지혈을 위해.
이후 종아리에 합금 막대 일곱 개를 둘러쌌다.
 위를 검은색의 절연 테이프로 칭칭 감자…
어느 정도 부목의 틀이 완성되었다.

‘이걸로는 부족해. 싸우다 보면 접착력이 떨어질 거야.’

가스 토치에 불을  뒤, 칭칭 감은 절연 테이프를 전체적으로 불질했다.
열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허나 꼬릿한 냄새를 풍기며 고무가 섞인 절연 테이프가 눌어붙기 시작했다.

찌이익. 찍.


마지막으로 이 위를 접착력이 강한 청테이프로 칭칭 감으면 된다.
나는  온 테이프를 전부 써가며 합금 막대기를 고정했다.
혈액순환 따위는 생각하지 않은 미친 듯이 강한 조임으로.

- 깡!

부목이 완성되었다.
앉은 자세로 천천히 다리를 딛자, 합금 막대의 끝자락이 바닥과 부딪히며 소리를 내었다.
발목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기에 부목의 길이를 발바닥까지 닿게 해야 했다.

‘이 만행의 뒤탈은… 포션이랑 자연재생을 믿는 수밖에.’

후유증은 생각에 두지 않기로 했다.
당장은 발이 움직여 주는 것에 만족할 것이다.
나는 긴장 된 마음으로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 까앙!

“됐다…!”

두 다리는 나의 몸을 지탱하고 있다.
정말 다행히도, 부목은 내 종아리뼈를 대체 하는 것에 성공했다.


- 깡! 까앙! 깡!


독특한 발걸음 소리를 내며 멜의 곁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녀는 큰 소리를 내며 다가가고 있음에도 나를 눈치채지 못했다.
멜이 보유한 특성인 『집중』 덕분인지, 골렘의 일거수일투족에 모든 신경이 쏠려 있는 듯했다.


“허억. 헉.”

“멜.”


“흐앗?! 차,찬영님? 저 아직 더 싸울 수 있… 그런데 어떻게 일어섰나요?… 다,다리에 그건?…”


“이거 받아.”

나는 눈을 커다랗게 치켜뜬 멜에게 작은 자루를 넘겨주었다.
안에는 대여섯 개의 포션이 들어 있다.

“마시고 체력부터 회복 시켜. 다친 오른팔에는 좀 바르고.”

가까이서 팔을 보니 부러진 것은 아니었다.
다행히 금이 간 수준에 그친 것 같다.

멜은 내가 건넨 자루를 보곤 입을 작게 벌렸다.

“이,이건 설마… 그 비싸다는… 포,포션…”


깡!

“좋아. 생각보다 컨디션이 나쁘지 않아.”


구름나무 차 때문인지 골렘의 미세한 움직임까지도 너무나 선명하게 보인다.
전의와 자신감이 점점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어쩌면 정말로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멜. 버티느라 수고했어.”


다리 한쪽은 병신이 되었다.
게다가 발목까지 원활하게 움직이지 않아 사념각(邪念脚)은 못 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노력이 담긴 양손은 멀쩡하다.


“이제부터는 내가 상대할게.”


목소리에 무거움을 담는다.
그녀가 나를 신뢰할 수 있게끔.


꽈악!


금강수(金剛手)가 활성화되며, 말아 쥔 두 주먹이 강철과 같은 강도를 머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