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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1화) (151) (151/310)



〈 151화 〉하얀 고래의 발자취

처음 보는 몬스터가 나왔지만, 용병들이 해야  것은 변하지 않았다.
유적 탐사는 계속 진행되었다.
해독약을 잔뜩 챙겨 든 채로.

애초에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희생을 무시하기 위해 고용된 용병이다.
겁을 먹고 의뢰를 포기하는 용병단은 없었다.
오히려 의뢰 도중 부상자가 생기는 일은 꽤나 흔했기 때문에, 담담하기까지 보였다.
다만…
기사는 상당히 신이  있었다.


“으음! 흠! 상당히 흥미롭군! 새로운 생명체라니!”

“겨,경하 드립니다! 헤헤…”

기사가 데려온 종자 한 명이 비위를 살랑거리며 맞춘다.
너무 과한 비굴함을 보였기에 약간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기사의 눈에는 들어 오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우리가 들고 온 실험체의 시체에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콧김을 씩씩 내뿜는 것이, 어지간히 몸이 달았나 보다.


항상 품행을 신경 쓰던 기사가 이토록 흥분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자넷의 말에 따르면, 처음 발견된 몬스터는 발견자에게 이름을 붙일 권리가 주어진다고 한다.
귀족 사회에서, 특히 기사들 사이에선 더없는 영광이겠지.


실험체의 공식적인  발견자는 눈앞의 이 기사다.
하얀 고래가 그에게 공적을 넘겨주었기 때문이다.
꽤나 쏠쏠한 대가를 받고.


‘…수도의 기사가 돈이 많다는 건 허언이 아니었나 보네.’

자넷은 한두 푼 수준이 아닌, 자루 단위의 골드를 넘겨받았다.
밥을 먹여 주지 않는 명예를 팔고 돈을 얻은 것이다.

사실 이 정도로 굵직한 실적이면 용병단의 위상을 올리는 것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하얀 고래에 속한 인원 대부분은 명예에 관심 없다.
돈, 이들이 보는 것은 오로지 돈이다.

단원 대부분이 ‘철사자’나 ‘하늘 산맥’ 용병단에 들어간다면 부단장은 우습게 해먹을 실력자들인데,
하얀 고래에 평단원으로 남아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있다.
이들은 단장인 자넷을 닮은 돈 귀신이란 것을.

그러한 이유로 실적을 넘긴 자넷에게 불만을 가진 이는 없었다.
오히려 돈 자루를 보고 눈을 빛낸 사람이 대다수다.
그건 어렸을  꽤나 굶으며 자란 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 순간부터 이 몬스터의 이름은… 나의 이름을  ‘데이비드슨’이다!”

“와아! 앞으로 데이비디슨님의 이름이 역사에 잊히는 일은 없겠군요!”

“옳다! 아주 명예로운 일이지!”

귀족의 관점을 잘 모르겠다.
과연 흉측한 외모를 가진 실험체에게 자신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명예로운 일일까?
가령 기사의 자식 입장에서 생각해 봐라.

자신의 아비가 ‘고블린’이나 ‘오우거’와 비슷한 종류의 혐오스러운 몬스터 이름이라면…
별로 달가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화기애애 하는  둘을 보니 약간 미안해지지만…
저 기사의 이름은 반백 년만 지나도 잊힐 것이다.
이 실험체는 인간이 베이스인 키메라의 일종이고,
성기가 제거되어 번식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실험체들은 유적 내부에서만 발견된다.
종족이라고 하기도 모호하지만…
이놈들은 얼마 안  멸종이 예정된 종족이다.

“멜. 너는 돈을 모아서 뭐 할 거야?”


나는 멜을 보고 물었다.
품 안을 만지작 거리고 있는 것을 보니, 지난번에 받은 금화가 들어 있는 돈주머니를 의식하고 있나 보다.

대답은 원작을 읽어 어렴풋이 알고 있다.
넓은 세상의 신기한 문물을 하나도 빠짐없이 겪고 싶어 하는 그녀다.
용병을 하기로 결심한 것도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이 많았기 때문이다.


1년 내내 쌓인 눈이 녹지 않는다는 북부.
마도학이 왕국과 비교도 할  없을 정도로 발달한 제국.
시야 가득 금빛 물결이 일렁이는 사막.
전부 호기심 많은 소녀의 모험심을 자극하기 좋은 소문들이었다.

“예? 그으… 예전에는 세상을 유람하거나, 저만의 용병단을 만들어 보는 것이 꿈이었는데…”

“어라? 설마 꿈이 바뀌었어?”

“바,바뀐 건 아니고요! 꿈이 많아졌다고 하는 것이…  맞을걸요?…”


원작에서는 그녀의 꿈이 변하는 일은 없었다.
적어도 연중 되기 전까지는.
벌써 그녀의 꿈이 바뀌었다면, 분명히 내게 영향을 받았으리라.

그녀의 변화를 알아야 한다.
이런 작은 변수가 어떻게 돌아올지 모르기에.
나는 얌전히 멜을 바라보며 그녀가 새로 생긴 꿈을 말해주기를 기다렸다.

“…”


그러나 멜은 곧바로 꿈의 내용을 말해 주지 않았다.
내 얼굴을 보며 약간 머뭇거리더니,
어렵사리 입을 떼었다.


“듣고 싶으세요?…”


“응. 엄청 궁금해.”

“…그,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멜은 작게 숨을 삼켰다.
아무래도 용기가 필요한 행동인가보다.

“요즘 들어서는… 그… 모은 돈으로… 어디 조용한 마을에 정착해서…”

힐끔.


“좋은… 사람과 결혼식을 올리고… 남은 생을 평화롭게…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요…”

멜의 말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성량이 줄었다.
 끝에 가서는 청력이 어마어마한 나였기에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소리가 작아졌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목소리의 크기가 아닌,  안에 담긴 내용이었다.

본인이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알고는 있나보다.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까.


“음… 방금 그건 프로포즈야?”

“넷?! 프,프,프로포?! 아,아뇨! 아니에요! 어째서 그런 오해를!”


“멜 너는 엉뚱한 데서 저돌적이니, 혹시 너라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하으… 부,부정은 못하겠는데…”


아무리 멜이라도 연인이 된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프로포즈를 할 만큼 막 나가지는 않았나 보다.
나는 살짝 선 긴장을 내려놓았다.
다행이다.
그녀의 청혼을 거절하지 않아도 되어서.

감정과는 별개의 이야기다.
아직 누군가와 결혼을 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나도, 내 주변도.


“방금 건 단순히 저의 바람이었어요… 꿈이란 건 아직 닿지 않았기 때문에 꿈이라고 부르는 거잖아요?”

“큭큭.  바램  들었어.”


“으… 으으… 하으…”


그러나 멜이 나와 함께하는 미래를 그리고 있다는 것은 변치 않았다.
심지어 용기 있게 내게 그 사실을 고백까지 했다.
자신이 나를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지 알리기 위해서.


‘나름의 매력 어필이라는 것이네.’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나는 이런 멜에게 매력을 느끼고 있다.
다만, 멜이 노리려던 방향과는 아주 다른 방향에서.


사람을 향한 연애 감정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려 드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고 할지 모른다.
허나 그놈의 이론을 좋아하는 내 성격상, 누군가에게 반했다고 한다면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지는 못했다.
저절로 원인을 찾게 되는 것이다.

멜을 향한 마음을 깨달은 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연애 감정을 인정하면서도, 마음 한편에 ‘왜?’라는 생각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머리를 굴려보아도 그녀에게 반한 또렷한 이유를 찾지는 못했다.
여태까지는.


하지만 방금 일을 통해 어렴풋 감을 잡았다.
내가  동생같이 여기던 그녀에게 자꾸만 호감을 느끼는지.


평소엔 저절로 걱정 어린 시선이  정도로 어설프고 칠칠맞은 멜이다.
겁도 많고, 쉽게 당황하며, 홀로 놔두면 누군가에게 속아 넘어가 가진 돈을 전부 잃고 울먹이며 돌아올 것 같다.


허나 가끔은…
나조차 깜짝 놀랄 정도의 용기를 보이곤 한다.
내가 알던 멜이 맞는 건가 싶을 정도로.


겉보기엔 소심해 보이나, 정작 중요한 부분에서는 망설임이 없다.
외유내강이라는 말이 멜처럼 어울리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원작에서도 꽤나 독자들의 호평을 받은 성격의 주인공이었지…’


그녀의 성격이 이러한 것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허나 글자로 이루어진 서술을 읽으며 정보로서 받아들이는 것과,
살아 움직이는 사람을 곁에서 보며 함께 일상을 겪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

- 쭈우욱…


“으엡!…”

 사실을 깨닫고 멜을 보니 또 다르게 보인다.
어쩐지 속이 간지러워서, 그녀의 볼을 잡고 쭉 늘려 버렸다.

“차,차녕님? 이,이건 먼가요?”

“장난.”

“…녜에?”


- 툭.


손을 놓자 부드럽게 손가락에 잡힌 볼살이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멜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올려다본다.
방금 내가 한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그 얼빵한 얼굴을 좀 더 구경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다.

“자! 잔금을 마저 받았으니 우리도 슬슬 출발할까? 일어나! 일해야지!”


자넷이 농땡이를 피우던 단원들을 모았기 때문이다.
하얀 고래 역시 다른 용병단처럼 슬슬 유적 탐사를 다시 시작해야 하였다.
우리는 방금 돌아온 통로를 향해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


우리가 실험체의 시체를 들고 베이스캠프로 돌아오기 전.
탐사 도중에 그만둔 통로를 찾기 위해선 이 통로에서 출발했다는 흔적을 남겨야 했다.
유적에는 이런 통로만 수십 개가 있으니까.


당연히 자넷은 가장 쉽고 빠른 수단을 택하려고 했다.
바로 통로 입구의 벽에 칼집을 내 표식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안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말리기 전에 자넷은 칼을 휘둘러 벽을 때렸다.

‘어마어마하게 아파했지… 어휴.’


그 결과 손을 잡고 고통을 견디기 위해 쭈그려 앉은 자넷을 구경할 수 있었다.
 유적을 이루는 ‘연금석’이란 물건이 평범한 강도를 지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손바닥이 꽤나 찢어진 것을 봤을 때, 거대한 반탄력을 되돌려받은 것 같다.
땅에 떨어진 칼이 몇십 초나 웅웅거리면서 울기도 했고.
단원들 앞이라고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신음 하나 흘리지 않은 것 하나는 대견했다.
고통을 죽인 자넷이 멀쩡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을 때, 나는 그녀의 눈가에 맺힌 습기를 보았지만 모르는 척 해주기로 했다.


단원에게 의견이라도 물었으면 내가 말렸겠지만, 그녀는 떠올린 생각을 바로 행동으로 옮겨 버렸다.
내가 그녀의 행동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이상할 것 없다.
원작  자넷은 실험체에게 크게 당했기 때문이다.
다른 단원들 역시 표식을 남길 새도 없이 급하게 후퇴를 해야 했다.


하필 손바닥이 크게 다쳐 칼을 쥐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전력 적으로 꽤나 도움이 되니 회복을 도울 필요는 있었다.
포션을 주기엔 아까웠고, 상처 회복에 도움이 되는 그린 얌을  세게 주었다.
우리 수도원에서 주로 먹는 약초라고 하면서.

“단장님. 그거 빚에 하나 달아 두세요.”

“…뭐? 이,이거 공짜 아니었어?”

“그거 수도원 밖에서는 이젠  구하는 건데… 저도 얼마 없습니다.”

“야! 파계승!  먹고 말하는  어디 있어!”


“세상에. 그럼 설마 단장님은 그게 공짜라고 생각하고 드셨던 겁니까?”


“…그건…”

자넷이 땀을 살짝 흘리며  눈을 피했다.
아마 절반은 기대 했나 보다.

“그래도 효과는 꽤 있지요?”

내 말대로 자넷의 손바닥에 흐르던 피는 금방 멈추었다.
크게 찢긴 것치고는 회복이 빠른 것이다.
아직 칼을 손에 쥐지는 못하겠지만, 내일이 되면 약간 아픔을 감수하고 칼을 휘두를 수준은 될 것이다.

“…효능이 눈에 보이니 봐주는 것인  알아.”

“말씀이 좀 이상하네요. 단장님께 도움을 드린 건 전데, 왜 제가 앓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에라이. 알았어! 고맙습니다! 두 손 모아 감사드립니다! …됐냐?”


“그리고 고마움은 돈으로 부탁드립니다.”

“개자식. 넌 피도 눈물도 없지?”

자넷은 손이 쓰라린지 붕대 감긴 손을 매만지며 약간 울상인 얼굴로 말하지만…
뻔하게 읽혔다.
저건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연기다.

‘어떻게든 내게 진 빚을 줄이겠다는 생각이네. 이 구두쇠가.’


이미 그녀가 내게 진 빚이 많으니, 슬슬 쌓이고 쌓여 덩치가 좀 커지기는 했다.
한꺼번에 지급하자니 부담이 될 만큼이나.
물론 저런 얕은수가 내게 먹히지는 않을 것이다.

돈 계산은 확실하게.
자넷 그녀에게 배운 것이다.


“안 통합니다.”


“어후. 독한 놈.”


내 단호한 표정을  자넷이 혀를 내둘렀다.
연기가 먹힐 기미조차 보이지 않자 바로 표정 연기를 그만 둔 것이다.
자넷에겐 미안하지만, 그녀의 연기 실력은 부족했다.
나는 물론이고 크리스와 고다연보다 더.


그렇게 잠깐 전투 능력을 상실한 자넷은 우리의 후방에 서게 되었다.
정말 의도치 않은 우연으로…
오늘 하루는 원작과 비슷한 조건이 완성되었다.
부상을 입은 자넷 대신에 부단장이 선두에 서는.


‘잘만 이용하면… 원래 계획보다 자연스럽게 기연을 얻을 수 있겠는데?’

기존 계획은 원작과 틀어지는 것을 감수하고, 억지로라도 기연을 얻어낼 생각이었다.
첫 기습으로 날아온 뼛조각이 위험할 정도로 자넷의 목숨을 위태롭게 했기 때문이다.
즉사까지 한 티끌 차이였기에 막을 필요가 있었다.


행동을 정하며 원작대로 흘러가는 것은 포기했지만…
자넷이 후방으로 물러서며 상황이 갖추어졌다.
이걸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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