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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1화) (150) (150/310)



〈 150화 〉하얀 고래의 발자취

크리스가 가까이 왔음에도 나는 위험을 경고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자넷이 크리스를 말리려다 말았다.
내 언행을 보고 몬스터의 피에 닿아도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챈 듯하다.

“…이봐 파계승. 나도 가까이 간다?”

“오셔도 상관없습니다. 놈의 침이 피부에 닿지만 않으면.”


나는 발끝으로 실험체의 턱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솔직히 점막 접촉이 아닌 이상에야 독이 닿아도 절대 중독되지는 않겠지만,
이런 건 보통 말을 꺼낸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

우연찮게 체질이 특이해 피부 접촉만으로 독에 중독된 사람이 나온다면?
내가 눈총을 받는 것이다.
최대한 과장 해서 말하는 것이 좋다.


“으. 썅. 존나 징그럽게 생겼네…”


얼굴에 화살이 박힌 놈들은 하나같이 역겨운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용병답게 비위가 꽤 좋은 자넷조차 인상을 찌푸릴 만큼이나.

“독샘은 입에 있습니다.”


“피에는?”

“원래는 없지만, 함부로 만지시면 안 됩니다. 보시다시피 화살이 안면 전체를 부순 터라.”


잇몸에 있는 독샘 또한 멀쩡하진 않을 것이다.
피와 섞여 있을 확률이 너무나 높다.


“어떻게 할까요?”

“…일단 복귀한다. 이놈들의 시체를 가지고. 멜! 자루 가져와!”


자넷은 호기심 서린 얼굴로 우리를 구경하던 멜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자루는 무척이나 커다랬다.
고블린보다 약간 큰 실험체의 시체 세 구를 넉넉히 담을 수 있을 만큼.

자루가 바닥에 쓸리지 않게 끙끙대며 들고 오는 멜이 보인다.
나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어 자넷을 향해 한 가지 방법을 권유했다.


“단장님. 시체를 자루에 담는 것보다는 크리스의 아티팩트에 넣는 것이 어떨까요?”

“아니. 그건 숨겨 둬.”

“예?”

“네 연인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담을 수 있는 아티팩트 말이야.”

“으음…”

아티팩트의 존재를 숨겨두라는 것은  귀족인 기사에게서 숨기라는 뜻이겠지.
그렇다면 어째서 숨길만 한 이유가 있을까?
나는 자넷의 뜻을 유추하기 위해서 머리를 굴려보았다.


그러나 생각이 계속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자넷이 고민에 잠긴 내 표정을 보더니 곧바로 설명해주었기 때문이다.

“너는 세상 물정이 은근히 어두우니  모르겠지만, 너희가 가진 아티팩트는 절대 흔하게 볼 수 있는 놈이 아니야.”


“비싸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하려면 구할 수 있다는 것도요.”

지나가듯 흐른 용병 단원의 말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분명히 아공간 스킬과 비슷한 효과를 보이는 아티팩트를 마탑에서  적이 있다고 했다.

 대답을 들은 자넷은 살짝 눈을 좁혔다.
그리고는 자신의 뒤쪽을 흘겨보았다.
듣는 귀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중요한 이야기를 할 생각인가?’


우리는 시체를 가까이 보기 위해 다른 단원들과 떨어져 있었다.
어지간하면 들릴 걱정은 없었다.
평범한 목소리로 대화를 한다면 남들보다 조금 가까운 크리스와 벨의 귀까지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 둘의 입단속은 내가 확실하게 할 수 있으니 상관없었다.


그러나 거리가  것으로는 부족 하나 보다.
자넷의 입이 내 귀에 가까이 닿았다.
체온이 섞인 숨결과 함께, 작게 죽인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소근소근.

“…잘 들어. 단순히 공간을 늘린 배낭 수준이면 몰라. 그런데 네 연인이 쓰는  몸에 지닌 것만으로 자유롭게 빼거나 꺼내잖아? 그런 수준의 물건은 한낱 용병이 못 구해.”


“…그랬군요.”

“크리스가 아티팩트를 쓸 때마다… 내 코가 엄청 곤두선단 말이지? 내 감대로라면, 저건 존나게 돈이 돼.”


“으음… 죄송하지만,  아티팩트를 ‘본격적으로’ 사용해 돈을 벌 생각은 없습니다.”

“알고 있어. 딱 봐도 타인 앞에선 사용을 꺼렸잖아? 그래서 나도 굳이 이런 경고를 미리 해주지 않았던 것이고.”


자넷의 말은 일리 있었다.
이 세계관에 존재하는 아티팩트의 기준값을 모르니 가치 측정이 잘못되었다.
자넷의 눈에는 충분히 세상 물정 모르는 것으로 비추었으리라.

애초에 남들의 눈에 띌 정도로 사용할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나는 자넷에게 감사를 보내었다.


“기사의 앞에서 보여주면… 가치를 알아본 그가 탐낼 수도 있단 뜻이군요.”

그녀가  타이밍에 내게 이런 경고를 해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무리 기사가 준 귀족이라지만 그들이 얼마나  부를 가지고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왕국은 가난하다.
조금만 수도의 외각으로 가면 굶어 죽는 사람을 헤아릴  없고,
도적은 들끓었으며,
어린아이의 실종은 소문 거리도 못 되는 흔한 일상이다.


그러니 충분히 비싼 값의 아티팩트 정도면 눈독을 들일 만했다.
사실은 아티팩트가 아닌 크리스가 가진 스킬이지만.


“응? 아니? 무슨 소리야? 걔들이 입고 다니는 마법이 떡칠 된 갑옷 값이면 그 아티팩트 수백 갠 살 텐데. 수도 기사 놈들은 진짜 말도 안 되게 부자야. 농민의 고혈을 기막히게 빨아 재끼거든.”


그러나 나의 예상은 틀렸다.
자넷은 담담한 말투로 내 해석을 부정했다.

“그럼 왜 아티팩트의 사용을 말리신겁니까? 어차피 저희 용병단의 단원들은 전부 알고 있지 않습니까? 다른 용병 앞에서 보이지만 않으면, 굳이 숨겨야 할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요…”

“봐봐. 당연히 기사 놈도 한낱 용병이 그런 귀한 아티팩트를 가졌으리라 생각  할  아니야?”


과거 영지전을 마치고 영주성에 초대받았을 때.
분명히 우린 배낭과 겉으로 보이는 무장만 회수당했다.
아티팩트를 연상시키는 액세서리가 있는지는 검사받지 않은 것이다.
무려 영주를 알현하는 자리에 가는 도중이었음에도.

즉,
용병이 크리스처럼 아공간을  수 있는 아티팩트를 가진 것은 절대로 평범하지 않은 일인 걸 유추  수 있다.


“쉽게 생각하지 못하겠네요. 영주성에 들어갈 때도 검사받지 않았고.”

“좋아. 역시 머리 좀 돌아가는 놈답게 사고가 빠르네.”

“그것까지는 이해했으나… 어째서 숨겨야 합니까?”

“흐흐. 역시  이쪽으로는 머리 굴리는 것이 느려. 아니, 내가 빠른 건가? 아무튼! 이 유적을 돌다 보물을 발견했을 때, 크리스의 아티팩트에 넣고 빼돌려야지!”


상상 이상의 대답에 입이 작게 벌어진다.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하다.
빼돌리기 전에 아티팩트가 있는 것을 들키면 계획이 물거품이 되니,
절대 기사 앞에서는 아티팩트를 들켜선  된다는 것이다.

 유적 탐사는 왕실에서 정당하게 대금을 지급 하고 용병을 고용한 것이다.
당연히 보물이 발견되었을 때는, 일정 이상의 지분을 왕실이 가진다.
자넷은 그것이 아까웠나 보다.
그냥 통으로 꿀꺽 삼킬 생각을 하는 것을 보니.

‘왕실을 상대로 사기를 친다라… 이건 간이 큰 건지 아니면 무모한 건지…’


당연히 이런 발상은 원작에서 나오지 않았다.
하얀 고래 용병단의 단원들  아공간 스킬을 가진 사람이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정말 돈에 관련해서는 자넷만큼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내게서 다른 차원의 금전이란 있으면 좋고, 없어도 마는 수준에 위치 해 있다.
별로 중요도가 높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그쪽으로 생각이 닿지 않은 듯했다.


“걔들은 분명히 배낭만 뒤지려고 할 거야. 아! 크리스가 가진 아티팩트, 혹시 배낭은 아니지? 그럼 나가린데.”

“아닙니다.”

“좋아! 흐흐흐… 돈 되는 놈이 발견되면 좋겠네.”


결국 우리는 빌린 가죽 장갑에 피를 묻히며 시체를 자루 안에 담아야 했다.
그리고 짊어지는 것 역시 내가 되었다.
실험체가 가진 독에 대해 가장 자세히 아는 사람이 나였기 때문이다.

“…단장님 덕에 온몸에 피비린내가 배겠네요.”


“너무 표정 썩어 하지 마. 이런 네 개인 능력을 유용히 써먹었던 일들은 전부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 돈으로 계산 할 테니까. 너도 좋아하잖아? 돈.”

“적게 주시면 파업 할 겁니다.”

“킥킥.”


*


“이렇게 끔찍하게 생긴 놈이 습격했다고? 우린 어두워서 정체도 확인 못 했는데…”


“나,나는 봤어! 맞아! 우리를 습격 한 놈은 이놈이었어!”


“젠장… 구역질 나는 생김새군.”

“하,하얀 고래는 허명이 아니었어… 부상자는 아예 없고, 사살 및 사체 수습까지 성공하다니…”


- 웅성웅성.


우리가 가져온 놈들의 시체를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둘러쌌다.
놈들을 죽인 용병단은 하얀 고래를 제외 하곤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실험체의 모습을 확인한 용병단도 드물었다.
뼛조각의 사정거리가 랜턴에서 나오는 빛이 닿는 범위보다 까마득히 멀었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습격.
처음 보는 몬스터.
게다가 기습으로 인한 부상자 발생.

복도로 진입한 대부분의 용병단에게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당연히 그들이 선택한 것은 전투가 아닌 후퇴 및 재정비였다.
부상자들의 상태가 딱 봐도 오래 버틸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얼굴이 시꺼멓게 죽은 채, 손과 발끝을 세차게 떨어 대었으니까.

‘늪지 왕도마뱀의 독이네.’

나는 부상자들이 모인 곳으로 재빠르게 다가가 머리에 담아 둔 해독약을 주위에 알렸다.
다행히 왕실의 보급품  해독약의 재료가 존재했다.
늪지에서 나는 약초긴 했지만, 흔하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직접 약을 달이거나 부상자를 돌보지는 않았다.
단  명뿐이지만, 치료사가 존재하긴 했다.
내 역할은 독의 종류를 빠르게 알려 준 것과, 해독약을 짚어 준 것으로 충분하다.
다른 이들은 이미 내게 충분히 고마워 하고 있다.


“수고했어. 찬영.”

크리스가 이리저리 돌아다닌 내게 수건을 건네주며 말했다.
『자연치유』의 덕에 땀이 맺히진 않았다.
그러나 이 배려가 고마웠다.


나는 그녀의 손에서 수건을 건네 받았고,
약간 놀랐다.
수건이 방금 냉장고에서 꺼낸 것처럼 차가웠기 때문이다.


“…아공간?”

“응. 몇 개  있어. 줄까?”

크리스 기본적으로 아공간 스킬을 타인의 눈에서 잘 사용하려 들지 않았다.
오래전 했던 나의 경고 때문이다.
이 수건 역시 눈을 피해 몰래 꺼낸 것이리라.


오늘 자넷의 조언을 들으니 아공간의 사용을 좀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내 생각을 크리스에게 전달했다.

“아하! 아까 자넷과 대화하던  그거였어?”


“맞아.”


“그랬구나!”

크리스는 후련한 듯 밝게 웃었다.
여태까지 궁금하던 것이 한 번에 해결된 시원한 표정이다.


자넷과 내가 소리를 죽여 대화할 때,
우리의 거리가 꽤나 가까웠다.
거의 볼을 맞닿은 것으로 보일 만큼이나.
오가는 대화 내용을 듣지 못한 크리스로서는 궁금증이 일만 했다.
아직 내게 약간 집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크리스도 자신에게 집착증이 있단 것을 어렴풋이 깨달은 모양이니…’

이런 사소한 대화 하나까지도 물어보기 망설였을 것이다.
그래서야 과하게 집착하는 것으로 보일 테니까.
예전에 자넷이 했던 ‘집착을 하면 남자 쪽에서 질린다’라는 말을 명백히 신경 쓰고 있었다.


솔직히 눈치를 채고는 있었다.
크리스가 내심 안절부절못했지만, 최선을 다해 평온함을 연기하는 것을.
허나 더이상 크리스의 연기는 나를 속이지 못한다.
그러기엔 내가 그녀를 너무  알고 있다.


바로  사실을 알려주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내겐 크리스의 집착을 약간 낮출 필요가 있었다.
그녀 스스로도 노력하는 것 같았기에, 대답을 약간 미루었다.

“그러니까 좀 더 조심히 쓰자고.”

“어차피 최근에는 찬영과의 대련에 마나를 다 쓰고 있어서 본격적으론 쓰지도 못하는 걸?”

생각해 보니 크리스의 말이 맞았다.
나는 요즘 들어 그녀의 마나가 회복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오죽하면 크리스의 마나가 어느 정도 찼는지 대략 알 수 있을 정도다.

나도 어쩔 수 없다.
갑작스럽게 빈 공간에서 기습을 하는 그녀의 이능과 전투 스타일은…
육감을 수련하기 너무나 알맞은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마나가 전부 회복되었음을 눈치채고 수련을 보챌 때면,
크리스는 피곤한 얼굴로 어쩔 수 없이 어울려 주곤 했다.

“나 요즘 맨날 마나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거 알아?… 덕분에 점점 이능을 사용하는 것에는 익숙해 지고는 있지만…”

“위험할 때가 되면 마나 회복은 언제든 할 수 있으니까. 지구로 돌아가서.”

“…찬영의 능력은 너무 사기적이야.  이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너도  수혜를 톡톡히 누리고 있으면서 뭘.”


“그건 애인을 잘 둔  덕이지!”

장난스러운 웃음과 함께 대답이 돌아온다.
그러나 그녀의 말에는 다른 의미로 동의하지 못하겠다.
애인을 잘 둔 것은 크리스가 아닌 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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