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화 〉하얀 고래의 발자취
- 투웁 ! 툽—!
뒤에 있는 두 놈 역시 제각기 목을 비틀어가며 뼈를 쏘아 내었다.
노리는 것은 내가 아니었다.
뼛조각은 통로에 뭉쳐 후퇴가 어려운 용병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향했다.
- 챙! 투웅!
단원들은 진중한 얼굴로 칼날과 방패가 휘둘렀다.
쏘아진 뼛조각은 단원들의 살가죽에 닿지 못했다.
내가 던진 횃불 덕에 놈들의 움직임이 전부 보였기 때문이다.
‘일단 놈들이 가진 다른 무기는 없는지 지켜볼 생각인가?’
나는 내 뒤에 선 용병들을 곁눈질했다.
용병들은 성급하게 놈들을 향해 달려들지 않았다.
쏘아지고, 쳐내길 반복할 뿐이다.
처음 보는 몬스터.
상당히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외견을 하고 있다.
심지어 독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머리가 빈 사람이 아닌 한 신중하게 움직여야 옳은 선택이다.
아직까지 위험할 것은 없었다.
크리스는 물론이고 모든 단원이 어렵지 않게 막거나 쳐내었다.
전원 멜 이상의 실력자들이니 당연하다.
나는 놈들의 특별한 무기는 저 쏘아내는 뼛조각을 제외하곤 없다는 것을 안다.
원작과 변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근접전에 약한 놈들이다.
딱 보이는 대로 손톱과 이빨을 사용한 무식한 공격 밖에 할 줄 모른다.
‘그렇다고 괜히 나설 이유가 되진 않지. 얌전히 있으면 곧 처리될 놈들인데.’
원작의 모든 내용을 신뢰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용병과 함께 놈들의 움직임을 관찰한 이유다.
시간이 흘러도 놈들의 패턴이 달라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놈들은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공격 할 수 있는 지금이 마음에 든다는 듯, 거리를 좁히려 들지 않았다.
“단장님. 일단 한 놈 죽여 볼까요?”
“천장에 달라붙은 놈부터. 저놈은 키 작으면 칼도 안 닿겠네.”
“옙.”
머리카락이 없는 덩치 큰 사내가 자넷에게 말을 걸었다.
부단장이다.
앞으로 나선 그의 손에는 칼이 아닌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푸슉.
- 끽 ! 털썩…!!
쇠뇌의 고정틀에 물린 화살이 겨우 눈에 보일만 한 속도로 날아가 천장에 붙은 놈의 얼굴을 정확히 꿰뚫었다.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한 놈은 바닥에 뒹굴어 움직이지 못했다.
볼 것도 없는 즉사.
미간에 화살이 박힌 채 팔다리를 부르르 떨어대는 놈에게 시선을 떼 벽에 붙은 나머지 두 놈을 바라보았다.
네놈들의 동료가 죽었다.
어떻게 반응 할거지?
- 투웁 ! 챙!
“반응조차 안 하네요. 무리 생활하는 놈들치고는 동료애는 없나 봅니다.”
“일단 쇠뇌로 전부 처리하지. 이번엔 팔만 박살 내봐. 어떻게 대응하는지 보자고.”
자넷은 냉정하게 명령을 내렸다.
나는 내심 자넷의 판단은 상당히 정확한 판단이라 동의 했다.
유적의 탐사.
그리고 처음 보는 몬스터.
정보 수집이 최우선이다.
부단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용병에게 화살을 건네받았다.
- 끼이익!
쇠뇌가 비명을 지른다.
방금의 화살은 나조차 겨우 반응 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날아갔다.
분명 토악질 나오는 장력을 가졌으리라.
그럼에도 부단장은 쇠뇌를 손에 든 채로 어렵지 않게 화살을 메겼다.
묘기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힘.
근력 스텟은 거짓말하지 않았다.
- 투웅!
조준은 짧았다.
화살이 쇠뇌를 떠나며 공기를 작게 울렸다.
과연 내가 저 화살을 주먹으로 쳐낼 수 있을까?
가능할 것도 같지만, 목숨을 걸고 시도해 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화살촉은 순식간에 벽에 매달린 놈의 어깨에 닿았다.
별로 크지 않은 놈들의 덩치를 생각해 볼 때, 화살에 담긴 물리력을 감당할 수 있을 리 없다.
그 결과물은 저기 뒹굴고 있었다.
- 쿠당탕!
관통되었다고 하기보다는 박살이 났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어울리는 어깨.
붉은 피가 뿜어져 나오며 통로를 물들인다.
몇몇 핏방울은 바닥에 뒹구는 횃불까지 닿아 ‘치이익’거리는 소리를 내며 연기를 뿜어내었다.
놀라운 것은,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놈의 입에서 새된 비명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건… 성대가 박살 난 건가?”
“움직임을 보니 아닌 것 같습니다. 보세요. 죽어 가면서도 저희를 공격하려 하지 않습니까?”
나는 미간을 좁히는 자넷에게 대답했다.
놈은 바닥을 기면서도 어떻게든 고개를 치켜들었다.
입을 벌리며 목을 꿀렁대는 저 전조는…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는 놈의 공격 신호였다.
- 끄…륽… 툽—!
“마치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 같네요.”
- 팅!
나는 손등으로 날아든 뼛조각을 쳐내며 말했다.
과장을 좀 섞어 몸의 절반이 박살 났는데도 신음 하나 흘리지 않았다.
절대 정상적인 반응은 아니다.
역시 이놈들은 고통을 모른다.
원작에서 나온 대로.
시각, 후각, 청각은 물론이고 촉각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저렇게 커다란 입이 있음에도 미각을 느끼는지조차 의문이다.
놈들은 무엇으로 우리를 감지하고 있을까?
육감? 아니면 인간에게 없는 기관으로?
별로 궁금증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다른 특이사항은 없는 것 같네. 일단 정리하자.”
“나머지도 쇠뇌로 정리할까요?”
“독이 있다잖아. 굳이 다가갈 필요는 없지. 쏴.”
- 까앙!
자넷은 뽑아 든 칼로 뼛조각을 쳐내며 대답했다.
부단장은 쇠뇌에 화살을 메기고, 망설임 없이 발사했다.
별로 공들이지 않고 조준한 속사였다.
그럼에도 화살 두 개면 충분했다.
두 몬스터를 잠재우는 것에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고 해도… 대충 갈긴 두발 모두 정확히 미간에 틀어박히다니.’
근육이 가득 들어찬 부단장의 외모치고는 의외의 재능이다.
원작에는 깊게 다루어지지 않아서 몰랐다.
“파계승, 놈의 피에도 독이 있어?”
나는 자넷의 말에 앞으로 걸어가 바닥을 적신 피를 살펴보는 척을 했다.
물론 이미 상태창을 띄워 보고 있는 중이다.
그 내용은…
생각보다 충격적이었다.
-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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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템 정보 확인]
이름: 인간이었던 무언가의 피 - 아이템 정보 확인 Lv 2
종류: 기타
레벨: -
효과: -
상세:
알 수 없는 실험의 부작용으로 이지를 잃은 무언가의 피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이 피의 주인은 언젠가 인간이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 아이템 정보 확인 Lv 2 이상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
그렇게 끔찍한 모습을 했고, 뼈를 쏘아 댄 놈들의 정체가 인간이라고?
나는 불현듯 이 유적의 입구에 적힌 문구를 떠올리게 되었다.
‘허락받지 않은 침입자는 실험체가 된다고 했지…’
아무래도 단순한 저주나 겁을 주기 위한 말이 아니었나 보다.
실제로 침입자를 잡아 인체 실험을 한 흔적이 여기 남아 있다.
오랜 과거,
이 유적의 주인이 살아 있었을 때는.
“피에는 독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일단 제가 좀 더 살펴볼 테니, 다가오지 말고 기다려 주세요. 위험 할 수도 있습니다.”
“고생이 많네. 미안하게.”
“제 역할인데요. 그리고 고마움은 돈으로 받겠습니다. 그리 어물쩍 말로만 넘기려 하지 마시고.”
“…너 솔직히 말해. 네가 성직을 스스로 그만둔 것이 아니라, 진짜 파면 당한 거지! 돈 밝힌다고.”
“제가 자란 수도원에서는 스스로의 가치는 본인이 매겨야 한다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저는 유능 하지요.”
“그쪽 수도원은 이빨 터는 것만 가르치냐? 어?”
투덜대는 자넷을 뒤로하고 놈들의 시체를 향해 다가갔다.
신발에 놈들의 피가 진득하게 묻었지만, 전혀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피의 정보에 독이 있다는 내용은 없었다.
AI가 띄워준 시스템 창의 설명을 차분히 읽어보면 유추가 가능하다.
이 피 자체는 인간의 피와 무척이나 유사한 성질을 띠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피만을 보고 이놈들이 과거 인간이었다는 것을 알려줄 리가 없으니까.
실제 원작에서도 피를 뒤집어썼다고 독에 중독된 사람은 없었다.
아마 놈들의 독은 저 기괴하게 변한 입속에 원인이 있으리라.
- 질퍽. 질퍽.
내 피와 다를 바 없는 진하고 붉은색의 혈액.
허나 열람 자체가 Lv 2 이상부터 허락되었다.
분명 방금 본 정보 확인 창에 드러나지 않은 정보가 있으리라 확신했다.
내겐 ‘아이템 정보 확인’ 기능을 Lv 2로 올리며 얻은 ‘아이템 정보 상세 확인’ 기능이 있다.
24시간에 한 번만 사용 가능하다는 패널티는 있지만…
사용하게 되면 한 번에 한해 Lv 3에서 확인이 가능한 정보까지 해금이 되는 듯했다.
그러나 고작 피에 사용하기에는 아까웠다.
‘피에 드러난 정보는 한계가 있어. 놈의 시체를 봐야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야.’
나는 최대한 멀쩡해 보이는 시체의 근처까지 다가갔다.
쓸데없이 좋은 내 눈은 놈과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모공에 난 솜털까지 선명히 보이도록 만들었다.
가까이 오니 눈에 밟히는 것이 있다.
녹아내린 살덩이 같던 실험체들의 전신.
허나 지금껏 가려져 보이지 않던 부위 한 곳은 유일하게 살색의 빛을 하지 않고 있었다.
실험체의 손바닥과 발바닥은 명백하게 검은색이었다.
저 손이 놈들을 벽에 붙을 수 있게 해준 원인인 걸까?
정확한 것은 시스템 창을 확인해 보면 알 수 있으리라.
그렇게 피에 절여진 시체가 내 발 앞까지 닿았을 때.
- 띠링!
아이템 정보 상세 확인을 사용했다.
=
[아이템 정보 확인] - [아이템 정보 상세 확인]
이름: 실험체의 시체
종류: 기타
레벨: -
효과: -
상세:
알 수 없는 실험에 희생당한 실험체의 시체.
그 원본은 인간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부작용으로 오감을 모두 잃었습니다.
부작용으로 이지를 상실했습니다.
* 추가 정보
불로(不老)에 대한 실험에 희생된 실험체입니다.
실험자가 보유한 연금 실력은 역사를 통틀어 손에 꼽힐 수준입니다.
실험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실험체는 외부에서 열량을 섭취하지 않아도 영구적인 유기 활동이 가능합니다.
실험체는 노화에 완전한 면역을 지녔습니다.
실험체는 수면에게서 자유롭습니다.
이후 신체를 개조당해 기초적인 전투 능력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레펫’의 내장 기관을 이식받아 경구를 통해 뼛조각을 쏘아낼 수 있습니다.
‘늪지 왕도마뱀’의 독샘을 이식받아 잇몸에서 맹독이 흘러나옵니다.
‘구름 코끼리’의 감각 기관을 이식받아 주변의 마나를 느낄 수 있습니다.
‘아라고그 거미’의 손 가죽을 이식받아 벽에 달라붙을 수 있습니다.
[경고!]
‘열쇠’를 지니지 않은 자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합니다.
=
- 띠링!
이어서 ‘늪지 왕도마뱀’이라는 몬스터의 맹독 효과와 그 해독약의 담긴 시스템 창이 나왔다.
우선순위가 낮은 내용이기에 머리에만 담아 둔 채 창을 닫았다.
지금 당장은 다른 내용이 더 중요하다.
‘연금 실력이… 역사를 통틀어 손에 꼽힌다?’
이제는 확신할 수 있다.
이 유적의 주인은 분명히 연금술사일 것이다.
그것도 엄청난 능력을 갖춘 인물이 틀림없다.
거대한 장소 전체를 이루는 ‘연금석’이란 물건.
불로(不老)의 실험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
이렇게 큼지막한 증거가 두 개나 있다.
‘인체 실험이나 키메라 제조 같은 건 흑마법사나 할 것 같은 일인데…’
대충 추측할 뿐이지만, 성격이 그리 좋은 인물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아직까지 살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이 유적에서 하던 것은 수명을 거스르기 위한 연구였으며,
시스템 창이 몇 번이나 띄워 줄 만한 실력을 가진 연금술사니까.
허나 정말로 살아 있는지는 당장 확인이 불가능하다.
원작에는 티끌의 실마리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유적이 연금술사와 관련이 있는 것 자체도 오늘 새로 얻은 정보다.
그냥 작가가 설정해 놓은 메인 스토리와 관련 없는 배경 설정인지,
아니면 이후에 풀어낼 설정이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이 소설도 ‘테라포밍’과 마찬가지로 연중 해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확신 하는 정보는 단 하나.
이 유적 안에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저 실험체들을 사람이라고 치지 않았을 때 한정으로.
“찬영!! 괜찮아?”
- 질퍽! 질퍽!
내가 가만히 시체를 보고 생각에 잠겨 있자, 나를 걱정 한 크리스가 뒤에서 불렀다.
이미 그녀는 나를 향해 약간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독을 가진 몬스터의 피를 밟는 것쯤은 전혀 두렵지 않다는 듯.
아마 내가 독에 중독되어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는 가능성을 염려 한 듯하다.
어찌 보면 위험하다고 질책당할만한 행동이지만,
나는 절대 크리스를 타박하지 못했다.
입장이 반대였어도 나 역시 크리스에게 다가갔을 것이다.
내가 못 하는 것을 크리스에게 강요하지는 않겠다.
“응. 괜찮아. 잠깐 생각에 잠겨 있었어.”
나는 크리스를 향해 돌아보며 안심하라는 듯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제야 다가오다 말고 멈추어 서서 안도하는 그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