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1화) (125) (125/310)



〈 125화 〉하얀 고래의 발자취

=
[이름] 로저
[직업] 용병 길드장
[힘] 39 [민첩] 37
[체력] 38  [지능] 12
[기교] 16  [매력] 11
[마나] 219

[특성] 『필사즉생』
=

의외로 백전노장같이 생긴 길드장의 외견치고는 스텟이 그리 높지는 않았다.
이 정도면 풀 버프를 받은 나와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지 않는 수준이다.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가진 스텟이 줄어든 걸까?


상태창이라는 정확한 지표를 보고 있음에도 길드장을 우습게 여길 수 없었다.
가진 무력이 곧 스텟이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텟 분배가…  이상한데?’

스텟의 한 곳, 이질적인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두 자릿수에 이르는 매력 수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는 과거 못생겼던 나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수준으로 혐오스러운 외모를 가졌다.
그럼에도 11의 매력 수치는 정상이라고 판단했다.

매력 스텟은 단순히 외모의 멋짐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테라포밍의 7년 전, 200이 넘는 매력 스텟을 가진 제라드가 나보다 잘생긴  절대 아니었지 않은가?

저 정도 흉악함이면 마이너스 스텟이라고 해도 이상치 않았으나, 흉터가 주는 ‘카리스마’도 일정 부분 이상 있다.
실제로 나의 옆에  멜은 길드장에게 약간 위압이  느낌이고.
아무런 장점 없이 뚱뚱하고 못생기기만 했던 나와는 경우가 달랐다.
내가 이질감을 느낀 스텟은 다른 스텟이다.

‘힘·민첩·체력의 평균에 비해 기교 스텟이 그 절반밖에 안 되잖아?’

16의 기교 스텟.
너무나 낮은 수치다.
크리스와 자넷은 물론이고, 내 기교 스텟보다 훨씬 낮은 수치였으니까.

기교는 검술이나 권각술 같은 무술을 수련하면 오른다.
설마 용병 길드장이나 되는 자가 무술 하나 익히지 않았을 리도 없고…
어떻게 해야 이런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는지 고민을 했다.
그런 나를 정답을 이끈 것은 상태창에 뒤이어 올라오는 특성 정보 창이었다.


띠링!

=
『필사즉생』
거리낌 없이 위험 부담을 안을수록 생존 확률이 높아집니다.
후천적으로만 얻을 수 있는 아주 희귀한 특성입니다.
단,
살기 위한 의지가 강해지면 특성이 영구적으로 사라집니다.

위기 상태일 때 위기를 벗어 날 확률 상승 (大)
=


나는 길드장의 자세한 삶은 모른다.
원작 소설은 멜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이 되어 있었기에.
 그저 멜이 미래에 알게  정보의 수준만 알고 있다.


그저 이 길드장이라는 남자가 꽤나 충격적인 외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흥미를 느꼈을 뿐이다.
게다가 ‘불사신’이라는 별명이 붙었다면 분명히 쓸만한 스킬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도 했고.
그것은 실제로 길드장의 얼굴을 본 뒤 더욱 기대하게 되었다.
아무리 봐도 남다른 수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 같이 생겼으니까.

‘예상이 틀렸나? 음… 특별한 무술 스킬이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특성의 정보를 읽는 것만으로 지난 길드장의 삶이 대략 그려졌다.
몸에 새겨진 수많은 상처와 그가 아직까지 살아 있는 이유를.

천성이 그러한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이 남자는 삶에 대한 미련이 크게 없을 것이다.
이 특성 자체가 지워지지 않고 존재한다는 것으로 그것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길드장이 싸울 때는 어떤 방식으로 싸울까?

“자넷 단장님. 혹시 길드장님이 싸우실 때… 뼈를 주고 뼈를 가져가려는 식으로 싸웁니까?”

“너… 그것도 소문으로 들은 거야? 그,그럴리 없는데? 아저씨는 직접 전선에 나서길 그만둔 지 몇 년이나 지났거든. 소문은 이미 진작에 잊힌…”

“길드장님은… 정말 상대하기 무서운 타입이네요. 누구도 적과 동귀어진 하기는 싫으니, 손해 보는 것을 감수하고 수를 물릴 테니까요.”


“…어떻게 알았어?”


씩.

나는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마치 정답을 맞추어 기쁘다는 것처럼.

길드장이 오른손을 들어 머리를 긁는다.
표정을 보니 묻힌 기억을 더듬는 것 같은 표정이다.


- 벅벅.


“너… 혹시 몇  전에 내가 있던 전장에서 만났냐?”

“박찬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서로 초면이죠. 알다시피 양측 모두 한번 보면 쉽게 잊을 수 없는 외모 아닙니까?”


나의 말을 들은 자넷과 길드장의 얼굴이 황당하게 변한다.
그와 내가 초면이라고 말한 것 때문이 아니다.
둘은 다른 이유로 이상한 얼굴을 만들었다.


“허허. 너도 좀, 그 머리가… 정상적인 놈은 아니구나. 지금 스스로를 잘생겼다고 돌려 말한 거냐?”


“아저씨, 저건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하는 놈이야.”


“…내가 스스로를 못생겼다고 생각하면?”

“꼴에 주제는 알고 있다고 하는 거.”

“개씹할!  같은 외모지상주의!”


- 푸훗. 끅끅…


자넷과 길드장의 대화에 긴장에 차 있던 멜이 웃음을 터뜨렸다.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입을 틀어막는 것이 대놓고 웃으면 실례란 건 아나보다.
다행히 멜은 이제 긴장이 풀린 눈치다.

그녀의 웃음이 문제가 되는 일은 없었다.
방금 나와 자넷의 언행은 멜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한 행동이었으니까.
길드장도 이런  꼬투리 잡을 정도로 꼴통은 아닌 것 같았다.


용병 길드의 4층에 도착한 이후.
크리스와 나는 별  없이 이 분위기에 섞여 들어갔지만…
멜은 그렇지 못했다.
자넷은 딱딱하게 굳은 멜이 마음에 걸렸다.
우리를 놀리겠다며 이곳으로 불러온 것은 자넷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눈치챘고, 곤란해하던 자넷을 거들어 준 것일 뿐이다.


슬쩍.


자넷과 나의 시선이 맞았다.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참는 멜을 눈짓했다.
그녀는 그제야 내가 자신을 도왔음을 알아챘다.
방금 나를 향해 황당해할 때보다 훨씬 더 눈이 커졌으니까.


어찌 되었든 목적 달성은 했다.
이제 나의 겸손한 이미지를 챙기고자 했지만…


“하하! 전 저의 검은 머리에 검은 동공을 말한 겁니다.”


“지랄. 너 표정이 스스로 잘생겼다는 것을 말하는 표정이었어.  돈귀신아, 얘 정말 수도승 맞냐?  막, 성직자는 다 인자하고 겸손하고 그러지 않아?”

이빨도 들어가지 않았다.
일부러 오해를 유도하기 위해 만든 자신만만한 표정이 좀 과하게 먹혔나 보다.


“바,방금 걸로 나도 잘 모르겠어… 분명 배운  많은 것 같은데, 막 정갈하고 신성하단 느낌은 없단 말이지? 오히려, 너무 눈치가 빠른 느낌?”

“눈치가 빠르다고?”


“응. …그것도 여자…를  아는… 말하자면 양아치 수도승?”

“양아치 수도승은 뭔 개소리야? 고추가 서는 언데드같은 거냐?”

“…아저씨는 제발 밖에서도 그 지랄 하고 다니지 마. 하늘 산맥 용병단 망신이니까.”

한 바퀴의 소란이 돈 뒤.
실내의 공기가 부드럽게 전환되며 화제가 바뀔 기미가 보였다.

이왕 이렇게 판이 깔린 것, 자연스럽게 넘어가려 했지만 길드장은 나를 그리 두지 않았다.
그는 내가 자신의 전투 방식을 아는 이유를 다시 한번 물어왔다.


‘뭐… 답하지 못할 것도 없지.’

핑계 댈 것은 많았다.
흉터가 많아도 너무 많은 것과, 그의 별명을 엮어 감으로 찍었다 해도 되고…
좀 있어 보이는 척을 하려면 눈빛을 보고 깨달았다거나, 상흔을 보고 전투 상황을 상상했다 하면 된다.

길드장은 나를 궁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거리낄 것 없이 방금 만들어 낸 핑계를 적당히 버무려 답했다.
내게는 의심스러운 부분이 없다는 듯, 유려하게.

멜을 포함한 사람들은 작게 감탄하며 납득하는 눈치였다.
재밌는 것은 크리스 또한 내 말에 납득하고 있었다.
나에게 상흔만을 보고 초면인 사람의 전투 스타일을 알아챌 만큼의 전투 경험이 없다는 것은 그녀가 가장 잘 알 텐데도.
아마 나를 향한 믿음과 콩깍지가 섞인  같다.


띠링!

‘역시… 길드장이 보유한 스킬은 따로 없어.’

그의 스킬창을 열어서 그가 가진 스킬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어째서 기교 수치가 높지 않은지까지 어렴풋이 이해했다.


무술이란 수 싸움에서 발전한 것이다.
상대가 노리는 곳을 막아서고, 손을 목표 외의 다른 곳에 쓰게 유도하며, 방어를 파헤치는 등 보이지 않는 수의 교환이 있어야 하는데…
길드장의 전투 방식은 뼈를 주고 뼈를 가져간다는 마음가짐으로 무작정 들이밀 것이다.
기교가 원활하게 늘 리가 없다.

“아, 그러고 보니 소개도 아직이었네. 순서대로 하얀 고래에 새로 들어 온 멜, 크리스 베넷, 그리고…”

“박찬영이라 했지? 저 말끔하게 생긴 놈.”


- 끄덕.

나는 길드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 했다.
그의 말끔하게 생겼다는 말은 정말로 순수한 칭찬일까?


아무튼 우리의 이름을 들은 길드장이 자신을 소개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너네 단장한테 들었겠지만… 난 용병 길드장이자 ‘하늘 산맥’ 용병단을 이끌고 있는, 로저다. 뭐… 사실상 은퇴나 다름없지만 말이지.”


“잘 부탁드립니다.”


“음. 하얀 고래 놈들은 잘 안뒤지니까 얼굴 볼 날이 길단 말이야?”

기대했던 새로운 스킬을 본다는 소득은 없었지만, 그와의 만남이 완전히 헛된 것은 아니었다.
길드장 로저는 나름대로 용병 업계의 1위니까.
안면을 터두면 언젠가 도움이  수도 있다.


“입은 더러워도 아저씨 나름의 덕담이야. 뭐해? 소개 끝났으면 어서 나가. 난 아재랑 일 얘기 해야 해.”

- 휙! 휙!

“예?… 저,저희요?”

우리를 향해 손을 내젓는 자넷을  멜이 당황한다.
분명 의뢰 관련 내용을 들을 수도 있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1위 용병단의 단장과 3위 용병단의 단장이 하는 큼직한 이야기는 궁금할 만 했다.
어차피 그 내용을 다 알고 있는 내게는 들을 필요 없는 내용이었지만.


나는 자넷의 말대로 따르기로 했다.
이미 원작을 통해 대화 내용까지는 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크리스가 신경 쓰였다.
여태까지 말없이 조용한 크리스를 보니 길드장과의 만남이 그리 재미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하긴.
크리스는 나처럼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할  있으리란 기대도, 멜처럼 길드장을 직접 본다는 사실 자체에 흥미를 느낀 것도 아니다.
나는 멜과 크리스를 향해 나가자고 눈짓했다.

“슬슬 자리를 비켜주자. 멜.”


“어… 이게 끝인가요?”

“복잡한 이야기 우리가 들어서 뭐 해? 단장이 알아서 잘하겠지.”

“으… 어쩔 수 없죠.”

“그럼 단장님, 길드장님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 터벅터벅… 끼익.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들어온 문을 열었다.
우리가 문밖을 걸어 나가기 직전.
뒤에서 자넷의 말이 들려왔다.


“아, 맞아. 너네  다 수도 처음이랬지? 그럼 1층에서 좀 기다려. 내가 수도 명물에 데려가 줄게. 별건 아니고 그냥 식당.”


“알겠습니다. 그럼, 일 수고하세요.”


“어. 그리고 파계… 큼. 수도승 넌 아까 고,고마웠고.”


자넷을 향해 살짝 웃어준 것을 대답으로 방의 문을 닫았다.
우리는 1층에서 그녀를 기다릴 생각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끼익. 끼이익.

계단이 몸의 무게에 의해 눌릴 때마다 끼익 거리는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돌로 지어진 1, 2층과 달리, 증축된 3층과 4층은 나무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계단 역시 마찬가지였다.

“크리스? 혹시 지루했어?”

“응? 후후. 걱정해 주는거야? 괜찮아. 우리 재밌자고 길드장을 만난 건 아니었잖아?”


“뭐… 명목상 일로서 만난 것이긴 하지. 자넷도 우리들 안면 터주려고 한 것 같았고.”

“그럴 것 같았어. 걔 은근 생각이 있어 보이는… …아니, 지난번 한 행동을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장단점이 뚜렷한 거지.”

“킥킥킥.”


1층으로 향하며 크리스와의 대화를 나누는 중.
뒤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 시선의 주인은 멜이었다.

고작 몇 초를 쳐다본다고 ‘왜 나를 볼까?’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자의식 과잉이다.
그러나 계단을 내려가기 위해 코너를 꺾는 도중에도 시선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그건 의식적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멜을 향해 돌아보며 질문했다.


“그러고 보니 중간에 긴장  건 풀렸어?”


“예? 앗, 네? 차,찬영님 설마 눈치채셨어요?”


“…너 빼고  눈치챘을 거다.”


- 끄덕끄덕.


나의 옆에  크리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에 동의해 주었다.
딱히 나의 뛰어난 오감이 없었더라도 멜은 딱 봐도 긴장에  있어 보였다.

“어… 중간에 확! 하고 풀렸어요. 길드장님이랑 단장님의 대화가 웃겨서…”

“그래? 그럼 자넷에게 감사 인사해. 일부러 자넷이 그런 분위기 만들어 준 거니까. 너 긴장 풀라고.”


“네에?… 저,정말인가요?”

“맞아.”


내가 주도 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 입으로 말을 해야 너무 싼 티가 나고…
딱히 멜에게 무언가를 원하고 한 행동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미 내게 마음의 짐을  개나 빚졌다.


방금의 행동은 자넷에게 호감 점수나 따자고  짓이다.
실제로 자넷에게 꽤 좋은 인상을  것 같으니, 이것이면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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