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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1화) (124) (124/310)



〈 124화 〉하얀 고래의 발자취

- 덜컹! 터벅터벅.

문을 열고 들어간 길드의 내부에는 사람이 많았다.
가죽 갑옷을 입고 허리춤에  칼을 보니 모두 용병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 가능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우리에게 일부 시선이 모였다.
50명가량의 인원은 소규모 용병단이 절대 아니었기 때문이다.
곧 큰 의뢰를 앞둔 지금.
어쩌면 등을 맡겨야 할지 모르는 용병단을 파악하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었으리라.

시선은 우리의 맨 앞에  인물에게 집중되었다.
보통 선두에 선 인물이 단장일 확률이 높다.
그것은 하얀 고래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넷은 당당한 걸음으로 우리들을 이끌고 있었다.

그녀를 알아본 용병들이 상대와 하던 잡담을 끊고 놀란 눈을 만들었다.
정적까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확실하게 길드 내부를 채우던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찬영님, 이거 저희를 알아보는 건가요?”


“신입인 우리라면 몰라도, 단장인 자넷은 얼굴이 많이 알려져 있겠지. 하얀 고래… 유명하잖아?”


“우와…  신기하네요.”


왕국의 일류 용병단 하면 다들 입을 모아 꼽는 곳은 세 군데 밖에 없다.
그 순위 또한 알음알음 알려져 있다.
물론 공식적인 것은 아니다.


그 첫 번째가 소수의 엘리트로 이루어진 하얀 고래.
하얀 고래는 의도적으로 몸집을 줄였다.
인원이 적지 않지만, 많지도 않다는 한계 때문에 3위라고 평가된다.
실제로 맞는 이야기다.
정면으로 1위, 2위 용병단을 상대한다면 패배할 확률이 높을 테니까.


2위는 영지전에서 우리와 만난 철사자 용병단이다.
인원수와 개인의 실력이 모범적인 균형을 유지하는 것으로 이름을 알렸다.
150명이면 대규모로 분류되기에 차고 넘치는 머릿수다.
그렇기에 용병단 내부의 인원을 1군, 2군 등으로 쪼개어 활동했다.

‘우리가 큼직한 의뢰를 거의 독식하는 이유지.’


영지전이나 토벌 같은 큼직한 임무가 아니라면 다 같이 모일 일이 거의 없는 것이다.
당연히 이렇게 쪼개어 운영하게 된다면, 다른 부대가 임무를 마치고 복귀할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이들이 큼직큼직한 의뢰만 먹지 못하는 이유다.
다들 모여서 보수가 큰 의뢰를 받으려 할 때는 이미 하얀 고래가 의뢰를 받아 가고 난 뒤였으니.

즉.
용병 개개인이 얻는 금전만을 두고 보면 이들은 절대 하얀 고래의 수입을 따라오지 못한다.
자넷은 ‘2위 혹은 1위 용병단의 단장’이라는 명예를 탐내기보다, 돈을 더 버는 것을 선택했다.
참 그녀다운 선택이다.

‘그리고 마지막 1위 용병단이…’


“참나. 난 아직도 이해가  돼. 모든 용병단이 사용해야 할 길드 건물을 용병단 한 개가 소유하고 있다니?”

“그 용병단의 단장이 곧 길드장이잖습니까… 게다가 정당하게 사비를 지급해서 건물을 사들였죠.”


“알아. 그냥 배 아파서 그러는 거야. 한낱 용병이 4층짜리 건물을 본거지로써?”

“저희야 팀을 나누지 않았으니 본거지 따위는 필요 없지만… ‘하늘 산맥’ 용병단은 그 수가 많지 않습니까? 당연히 필요하겠지요.”


- 째릿.

자넷은 자신에게 계속 말대꾸를 하는 부단장을 째려보았다.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우리의 부단장이 여자에게 인기가 많지 않을 것은 알 수 있었다.
자넷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나열하기보다는 그냥 자신의 푸념에 어울려 주기만을 바랐을 테니까.

물론 부단장은 혼나지 않았다.
정말로 그가 잘못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눈치가 없을 뿐이었다.
자넷은 기대한 자신이 잘못이라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단장님, 정말 이 건물이 용병단의 소유라고요?”

“…뭐야. 파계승 너는 몰랐어?”


“수도는 처음이니까요. 용병에 관심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었고요.”


“왕국 제일의 용병단이니까. 규모가  크지.”

“도대체 얼마나 사람이 많길래 이렇게 큰 건물이 필요한가요?”


“네 생각에 어느 정도 일 것 같아?”


“음… 철사자가 150명 정도였으니… 확실하게 1위를 가져가려면 250명 정도는 되어야 할  같습니다.”


- 씨익.

“그으래?”

“틀렸나요?”

“큭큭! 우리가 50명쯤 되려나?  우리의 10배! …정도 되겠네. 인원수만 따지자면.”


나는 그녀의 말에 크게 놀랐다는 얼굴을 만들어 내었다.
우리의  배라면 500명이라는 뜻이 되니까.
3위와 1위의 격차라기엔 인원수 차이가 너무 극심하게 난다.

당연하지만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다.
원작에 톡톡히 적힌 내용이었으니.
그냥 자넷 기분 좋아지라고 놀란 척을 해준 것이다.
실제로  얼굴을 본 자넷의 얼굴이 살짝 신이 난 것 같았다.

“푸하핫! 안 그래도 큰 눈이 훨씬 커진 거 봐라! 그렇게 놀라워?”

용병단이 정말 발전한 왕국의 제일가는 용병단의 인원수가 500명.
귀로만 듣는다면 적어 보인다고  수 있다.
실제로는 절대로 적은 수가 아니다.
오히려 상류층의 손안에 들어오지 않은 무력 집단치고는 말도 안 되는 규모다.

심지어 이들은 용병이다.
제대로 된 실전은 일 년에 한번 치를까 말까 하는 왕국의 병사가 아닌,
칼질을 생업으로 먹고사는 용병은 가진 무력의 크기가 무척 달랐다.
명문 기사 가문의 기사단조차 완전히 전면전으로 맞붙는 것을 꺼릴 만큼이나.

“너무 놀라지 마. 우리랑 달리 ‘하늘 산맥’은 입단 조건이 없거든. 들어오는 것도 자유고, 나가는 것도 자유야.”

“예? 그렇다면…”

“맞아. 어중이 떠중이가 포함된 허수가 있다는 말이지. 물론 1군이나 2군 팀으로 간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명성 때문에 덩치가 불어나는 것도 빠르겠네요. 그리고… 빠져나가는 무리도 많겠고요.”

“오. 정확해. 역시 머리가 돌아가는 게 빠르네?”

이 세상에는 용병패의 구분이 없다.
용병 등급도, 급수도 없는 것이다.
오직 자신을 증명 할  있는 것은 경력과 실력, 그리고 소속된 용병단이 전부다.


그러나 ‘하늘 산맥’ 용병단에 들어온 이들은 자신을 제대로 증명하지 못한다.
누구에게나 문이 열려있는 만큼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분명 들어오는 사람이 많은 만큼 빠져나가는 사람 역시 많겠지.


원작에는 나오지 않은 이야기지만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신입의 실력을 가리지 않고 몸집을 불리는 것에 집중하는,
하얀 고래와는 완벽히 상반된 경영 방침에는 필연적으로 베테랑이 생기지 않는다는 단점이 따라올 테니까.

“그럼 길드장을 보는 것도 처음이겠네?”

“그렇죠. 크리스와 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 씨익.


자넷이 나를 향해 장난기가 섞인 미소를 만들었다.
나는 어째서 자넷이 미소 짓는지 알고 있었다.
하늘 산맥의 단장이자, 용병 길드장인 남자는…
처음 보게  사람이라면 공통된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지? 만나게  줄게! 암묵적으로 단장과 부단장만 면담하기로 되어있지만… 그냥 너네 세 명은  따라 올라와.”

“아… 단장님  시작이다…”
“큭큭! 너도 반년 전에 당했지?”
“난 알고도 놀랐다고. 용병이라면 다 알잖아?”
“하긴, 나도 알고 있었는데 놀랐지.”


“쓰흡! 조용히  하냐?”

속내가 뻔하게 보였다.
나를 조금이라도 더 놀라게 하고 싶었던 자넷은 단원들의 스포일러를 막았다.


나도 길드장과 한번 만나 보고 싶었으니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제안을 수락한 나를 보고 한 번 더 의미심장하게 웃은 자넷은, 1층의 접수원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자넷의 말에 귀 기울이던 접수원은 곧장 사람을 시켜 4층에 있는 누군가에게 보고하도록 했다.

잠깐의 기다림.


우리는 곧 올라와도 된다는 허락을 받을  있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자넷의 뒤를 나와 멜, 크리스 역시 따랐다.

- 터벅터벅.

우리가 발을 멈춘 것은 4층의 있는 문 앞이었다.
망설임 없이 두어  문을 노크한 자넷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문을 열었다.


- 똑똑! 끼익.

“이런 씹, 노크했으면 대답을 듣고 들어와야…”


“뭘 그리 비밀스럽고 숨기고픈 일이 많길래 그래?”

중년 남성의 투덜거리는 목소리를 자넷의 목소리가 끊는다.
우리들은 열린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고, 곧 길드장의 얼굴을  수 있었다.


“허…”

“엄마야!…”


“무,뭔…”

나는 다시 한번 눈이 동그랗게 변하고 말았다.
아까 1층에서 의도적으로 얼굴을 만든 것과는 달랐다.
이번에는 진짜로 놀라고 말았다.
그것은 멜과 크리스 역시 다르지 않았다.

용병들의 얼굴은 평균적으로 험하다.
1층, 용병이 모여 있던 곳에서 나처럼 미형의 남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그러니 길드장의 얼굴이 험악할 것은 멜과 크리스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늘 산맥 용병단 단장의 얼굴은…
험악한 것을 차원 단위로 뛰어넘어, 정말 혐오스러웠다.

단순히 못생겼다거나, 화상이나 피부병처럼 피부에 발진이 일어났다는 의미와는 달랐다.
원본은 분명히 평범했을 얼굴의 절반 이상을 끔찍한 흉터가 뒤덮고 있었다.


단순히 칼로 째진 흉터가 아니었다.
뼈를 칼날이 긁고 지나갔을 것이 분명한 심각한 흉터가 무려 십수 개.
그 수준이 심각하여 본능적인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미친… 원작 소설의 ‘흉터가 얼굴의 반을 차지했다’라는 서술이 소설적 과장이 아니었다고?’


냉정하게 흉터의 면적을 재어본다면?…
분명히 얼굴의 비중을 50% 이상은 넉넉히 차지할 것이다.
저 흉터에 비한다면 크리스의 목에  상처 따위는 귀여울 뿐이다.


나는 분명 길드장에게 흉터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대비했음에도 놀라버리고 말았다.
이건 마치 그것과 같았다.
사진과 글로만 읽은 고래의 거대함을, 실제로 바다에서 우연히 마주쳐  크기를 실감한 것과 같은…
평균적인 심미안을 가진 사람이라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와락.

나와 크리스, 멜의 공통된 반응을 본 길드장의 얼굴이 구겨졌다.
 흉터를 달고 얼굴을 구기니 그것만으로 사람을 위축되게 만들었다.
나와 크리스는 특성의 덕에 살짝 긴장했을 뿐이지만, 멜은 약간 겁까지 집어먹은 눈치다.


“푸하하핫!!”


“…에라이. 너 이 돈귀신년아. 내가 이거 더이상 하지 말라고 했지?”


“어차피 언젠가는 얼굴  텐데, 미루면 그날이 안 와?”


“퉷. 썅년…”


우리 셋의 반응을 보고 깔깔대던 자넷은 길드장의 말을 반박했다.
그로서는 자신의 얼굴을 보고 놀라는 하얀 고래의 신입을 보는 것이 썩 유쾌하지 않으리라.
앞선 자넷의 언행을 보면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었던 것 같고.

그것과 별개로 나는 그의 흉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원작대로라면 크리스의 목에 남은 상처처럼 특수한 일로 인해 새겨진 것이 아니다.
 상흔 모두 실전 전투 도중에 생긴 놈들이다.

‘도대체 옷 안에는 얼마나 많은 흉터가 있는 거지?…’


얼굴이 급소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많으면 많았지 적을  같지는 않았다.


“돈귀신아.    용병단의 신입?”


끄덕.


“오. 꽤나 한꺼번에 들어왔잖아? 근데… 저 잘생긴 놈은 용병이야? 용병치고 너무 멀쩡하게 생겼는데?”


“뭐… 지금은 용병이야. 전에는 성직자라고 스스로 밝혔고.”


“성직자? 설마 내가 아는  성직자라고?”


“수도승… 이라는데 나도 잘 몰라. 아저씨는?”


“수도승은 나도 잘 몰라. 근데 그런 놈이 용병질을 왜 해? 교회 밥이나 먹지.”


“뭘 그리 캐물어? 과거는 내 알 바 아니고, 지금은 우리 귀여운 신입들인데.”


“허,  곱상하게 생겼다고 싸고돌다니… 이래서 여자들이란… 쯧쯧.”

“얘가 잘생긴 건 둘째치고, 아저씨가 너무 못생긴 거지.”


“…내 전 아내는 내가 잘생겼다 했다고. 흉터만 없었으면 나도 저 정도는…”


“지랄은.”


둘은 친분이 있어 보였다.
꽤나 나이 차이가 크게 남에도 불구하고 자넷은 길드장에게 말을 놓았다.
지난번에 철사자 용병단의 단장과도 그랬듯이, 큰 용병단의 수장끼리는 마주칠 일이 많으니 저절로 안면을 익히게 되나 보다.
나는 길드장에게 말을 걸었다.

“…정말 불사신… 이시네요. 도대체 어떻게 살아 계시는 겁니까?”


“뭐야 파계승. 너  아재의 별명 알고 있었어?”

“지금 보고 나니 떠올랐습니다. 그분에게 그런 이름이 있었다는 걸…”


사망 플래그를 연상시키는 ‘불사신’ 같은 별명이 붙은 채로 몇 년을 더 살아 있다면,
그건 정말 불사신이 아닐까?


“허… 초면에 넌 왜 살아있냐고?  당돌한 놈이네. 큭큭.”

“허위나 비꼼 없이 말 그대로의 뜻입니다. 이리 오해를 하시면…”


“…농담이 안 통하는 부류인가? 역시 성직자는 재미가 없구먼. 뭐… 대답해 주자면 나도 이유를 모르겠어.”


그러리라 예상은 했다.
그의 입에서 대답을 듣지 못했지만 내겐 상관없다.
나는 그의 상태창을 읽을 수 있으니까.
 스스로도 모르는 이유를 곧 알게  것이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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