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화 〉하얀 고래의 발자취
댄스 크루에 속한 사람들은 전부 외향적인 성격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단체 군무 영상을 너튜브에 업로드 하는 것이 팀의 가장 주된 활동이었으니 당연하다.
심지어 주기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버스킹까지 하니…
이들이 사교에 적극적일 것이란 이야기는 더이상 말할 필요도 없었다.
춤을 추는 사람답게 다들 외모에 관심이 있었다.
내가 정말 많은 주목을 받았다는 뜻이다.
어찌어찌 모두와 통성명을 하고, 연락처를 교환하고, 팀의 규칙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는 1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계신 분이 너튜브 채널 관리 및 홍보 담당. 덩치 크신 남자분이 팀장님. 총무님은 누군지 아실 테고, 저는 신입 부원 담당이에요. 앞으로 찬영씨는 저와 얼굴을 주로 볼거란 이야기죠.”
“…오?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요. 처음 한 달 수습 기간 동안은 회비를 안 내도 돼요. 매주 1회 주말에는 필 참, 그 이외 평일에 시간 되는 팀원끼리 연습 하는 건 자유. 간단하죠?”
“이해했습니다. 선배님.”
“서,선배님이라고 할 필요는 없는데… 다들 취미로 모인 동호회니까요.”
“그럼… 다연씨로 될까요?”
어떤 우연인지, 신입 부원 담당은 고다연이었다.
사실 여기 모인 인원 중 가장 사교성이 좋은 사람이라면 단연코 고다연을 꼽을 테니, 그녀가 신입의 적응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한들 그렇게 이상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운이 좋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내 생각보다 그녀와 친해질 날이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
“…네. 편하신 대로 부르세요. 단톡방에 초대 해 드릴게요.”
- 힐끗 힐끗.
나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많은 표정이다.
그러나 쉽게 나에 대해서 알려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가 궁금해 하고 있는 도중엔, 나라는 사람을 머릿속에 계속 담아 두고 있다는 뜻이니까.
솔직히 얼굴을 믿고 들이밀어도 성공할 확률이 높긴 하지만…
내 쪽에서 적극적으로 나가면 고다연이 의심을 할 확률이 있다.
대학에서 댄스 동아리를 하는 자신을 발견한 내가 그녀를 꼬시기 위해 모르는 척 크루에 입단을 했다고.
물론 대부분이 맞는 사실이다.
“감사합니다.”
이후로는 간단한 춤 실력 테스트가 있었다.
엄격한 분위기와는 정말 달랐다.
심각할 정도로 몸치만 아니라면, 방출되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테스트의 목적은 개인 파트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췄는지 체크하기 위함이었다.
고다연을 비롯한 남자 팀원이 선보이는 짧은 안무를 몇 번 따라 추었다.
간단한 손짓과 발짓으로 시작해서, 허리와 관절을 튕기듯 움직이는 큰 동작까지 나왔다.
다행히 엇박자를 가진 동작은 없었다.
단순히 초보자인지 아닌지만을 가리기 위한 테스트니 당연하다.
“와, 정말 괜찮은데요?”
“…으윽! 나,나보다 깔끔해…”
“얼굴 천재에 실력까지, 이야… 다음 버스킹이 기대됩니다.”
나를 지켜보는 수십 쌍의 눈동자 속에서 긴장 한 줌 하지 않은 채 모든 안무를 완벽히 소화해 내었다.
의외로 내가 예전에 상점창에서 구매한 스킬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
몸으로 체득한 십수 가지의 무술의 박자를 틀리는 것을 허용하게 두지 않았다.
“댄스와 관련된 외부 활동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절대 독학으로 쌓은 실력이 아닌 것 같은데…”
“아! 혹시 클럽 죽돌이라든지? 큭큭!”
“푸훗! 가능성 있다! 어때요 찬영씨, 진실은?”
“하하하! 전 살면서 클럽을 한 번도 안 가봤습니다!”
거짓말이다.
사실 꽤 많이 가봤다.
심할 땐 손목에 팔지를 5개까지 차보았다.
하지만 ‘박찬영’은 스무 살을 훌쩍 넘어서도 단 한 번을 가본 적이 없으니 틀린 말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무엇보다 고다연은 여자관계가 문란한 남자를 꺼릴 확률이 높으니,
즐겨 간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숨겨야 했다.
“오우… 의외네요?”
“봐봐. 저 얼굴이면 클럽 안 가도 되지.”
“아하… 납득 했어.”
“저,저 질문이요! 찬영씨는 여자 친구 있나요?”
“끄응… 없습니다…”
아까 통성명을 나누었기에 이름을 외워 둔 여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사실 별로 기억에 남지는 않았다.
나름 관리 된 몸매에 얼굴 또한 이쁘장 하기는 했지만, 고다연 옆에 있으니 단점이 속속히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여자의 덕에 자연스럽게 여자친구가 없다는 것을 알릴 수 있었다.
나는 살짝 아픈 곳을 찔린 듯한 표정을 만들며, 연인이 없다는 것을 어필했다.
- 스윽.
짧은 시간.
여자팀원들 사이에서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
왼손 약지에 커플링을 낀 여자 또한 그것은 변하지 않았다.
‘185cm의 모델급 외모를 가진 훈남은 못 참지.’
정적을 깨고 입을 연 인물은 내게 여친이 있냐고 물었던 여자였다.
진담을 농담 속에 깊숙이 파묻어, 간을 보는 듯한 견제구가 내게 날아왔다.
“…그럼 저랑 사귀실래요? 마침 저도 솔로거든요! 찬영씨 정도면… 제 남자친구 감으로 아슬아슬하게 합격?”
“하하하! 그럴까요?”
- 움찔!
“어,어라? 정말요?”
“그리 놀라시면 좀 상처받아요?… 방금 한 말은 농담이었어요… 제게도 눈치는 있어서, 농담과 진담 정도는 구별할 줄 압니다.”
나는 자연스럽게 여자의 말을 농담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눈치 빠른 여성진들은 말에 뼈가 담겨 있음을 전부 알고 있는 알아챈 듯했다.
내가 만든 기회를 놓치지 않은 여성 그룹원들이 말을 꺼낸 여자를 향해 웃으며 재잘거렸다.
재미있는 농담을 들었다는 것처럼.
“푸하핫! 역시 우리 크루의 센스 담당!”
“아하! 신입 긴장 풀어주려고?”
“찬영씨도 센스 있게 받아줬다!”
“아…하하, 그,그렇지?…”
방금의 의미심장한 말이 타의에 의해 100% 순수한 농담이 되어버린 여자는 어색하게 웃으며 긍정했다.
이곳에서 내가 연기할 컨셉은 정해졌다.
남이 보기에 어마어마하게 답답한, 둔감한 남자를 연기할 생각이었다.
심지어 본인 스스로는 ‘나는 눈치가 꽤 있어’라고 생각하는…
한층 더 답도 없는 사람으로.
고다연을 제외한 여성 팀원들이 내 철벽을 뚫으려면 꽤나 고생을 해야 할 것이다.
*
왕궁이 있는 수도는 멀었다.
해가 떠 있을 동안에는 쉬지 않고 부지런히 다리를 움직여야 했다.
여기서 ‘쉬지 않고’는 과장이 아닌 말 그대로의 ‘쉬지 않고’다.
점심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휴식은 없었다.
물론 별로 지쳐 하는 인물은 없었다.
이 중에서 가장 스텟이 낮은 멜을 제외하고는.
“헤엑… 헥…”
멜의 표정이 늘어졌다.
한참을 걸으며 체력이 떨어졌는데, 하필 언덕을 올라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고 있으면 정말 물에 젖은 새끼 고양이를 보는 것 같다.
많이 안쓰러웠다는 뜻이다.
“후우… 짐 줘봐.”
“예?… 아앗!”
- 터억.
멜의 등에 있는 가방을 빼앗아 어깨에 들쳐 매었다.
나의 귀신같은 손놀림에 멜의 팔과 어깨에서 가방끈이 저절로 풀려나왔다.
그녀는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멜이 나의 행동을 예상하지도 못했고, 지쳐 있었기에 가능한 것도 있었지만…
우리 사이에 꽤나 큰 실력의 차이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묘기였다.
“차,찬영님? 어째서?…”
“…”
“찬영님?…”
“…네가 너무 힘들어 보여서?”
멜의 질문에 마땅한 대답을 찾을 수 없어 의문형으로 말이 맺어졌다.
생각해 보아도 그녀를 도와주며 얻는 확실한 이득이 없었기 때문이다
방금 내가 한 행동은 약간 이상했다.
대가 없이 남을 돕는 스스로가 어색해졌다.
내가 착하게 행동하는 이유는 성직자라는 롤 플레잉(Role-Playing, 캐릭터에 몰입하며 즐기는 연기)에 너무 심취했던 탓일까?
…그건 아니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이러한 감정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상하게 멜을 향해서만 동정심이 솟구쳐 올라왔다.
단순히 내가 놀려서 곤란해 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그녀가 진심으로 곤란해 하자 자꾸만 신경에 거슬렸다.
“저 아직 힘 남았어요! 제가 들 수 있습니다!”
“…난 너의 비밀을 아니까 가방을 열어 보지 않을게. 안심해.”
“하으!… 그,그런 이유로 달라고 한 것이 아닌데…!”
멜의 얼굴이 울상으로 일그러진다.
그렇다고 해도 등에 멘 가방을 돌려주지는 않았다.
어찌 되었든 이로 인해 멜은 조금 편해질 테니까.
계속 시선을 빼앗기는데도 억지로 무시하는 것은 고집이다.
그냥 내가 마음 편해지고자 멜의 짐을 빼앗아 들기로 했다.
무엇보다 그녀를 도울 이유를 하나 찾아내었다.
원작 주인공의 호감을 쌓는다는 핑계를.
“너 혼자 지쳐 있으면 다들 널 신경 써야 하잖아. 나에게만 민폐 끼칠래, 아니면 용병단 전체에 민폐 끼칠래?”
“으읏… 그건…”
“난 고작 짐 하나 더 들었다고 지치지 않으니까, 걱정 하지 마.”
“그,그럴리가 없잖아요!”
“너 나보다 강해?”
“…아니요오…”
“그럼 내 말을 믿어.”
누가 듣는다면 멜이 걱정할까 봐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느낄 것이다.
그것은 멜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를 상당히 미안함이 섞인 눈으로 올려다보았으니까.
하지만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지치기는커녕, 숨결조차 흐트러지지 않았다.
체력이 닳는 속도보다 자연 치유로 회복되는 속도가 훨씬 빨랐기 때문이다.
그것은 짐 하나를 더 멘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다.
이대로 멜이 지쳐 가는 것을 보는 건,
마치 냇가에 방치 해 놓은 어린아이를 보는 기분이다.
…어린아이?
어린아이라…
‘이건… 동정심… 비슷한 건가?’
어린아이라고 하기에 멜은 성인이다.
젖살인지 볼살인지 차이를 밝혀내기 애매한 얼굴형,
160cm를 넘는지 안 넘는지 구분이 잘 안 가는 작은 키,
행동도 어리바리하고 술에도 익숙지 않아 자신의 주량조차 제대로 모른다고 하더라도…
원작의 서술대로라면 멜은 명확한 성인인 것이다.
음…
사실 나도 멜의 정확한 나이는 모른다.
‘하얀 고래의 발자취’ 세계에서 성인으로 인정해 주는 나이가 몇 살부터인지도 모르고.
그래도 이 세상은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세상이다.
성인으로 여겨지는 나이까지 중세 시대 고증에 맞게 설정을 짜는 판타지 소설은 거의 없으니,
높은 확률로 멜은 지구에서도 성인으로 취급될 것이다.
그것과 별개로 멜의 외견과 행동은 어쩐지 성숙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구석이 있지만.
나는 내가 멜을 챙겨주는 이유를 이것이라고 생각했다.
완전히 철이 들지 않은 여동생을 신경 써주는 마음이라고.
- 터벅터벅.
나의 뒷모습을 향해 우물쭈물하는 멜을 놔두고 크리스에게 향했다.
크리스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찬영은 착해.”
“갈수록 오해만 쌓이는 것 같네. 나 별로 안착하다니까?”
“글쎄, 내 눈에는 찬영이 어떻게 비칠 것 같아?”
“으음…”
크리스가 겪어 본 나를 되새겨 보았다.
…반박하지 못하겠다.
테라포밍의 세계에 처음 오며 힘들어하던 크리스를 챙겨주었고,
수많은 여자들의 유혹에도 한눈팔지 않고 그녀에게 일편단심으로 연인이 되어주었으며,
목숨을 걸어가며 반란을 막아선 것으로 알고 있는 크리스에게는…
이미 나에 대한 인상이 뿌리 깊게 박혀 들어갔을 것이다.
예전에는 내가 오해라고 반복하며 말할 때마다 ‘그런가?’ 하면서 설득을 당할 뻔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과거형일 뿐…
방금 멜의 짐을 들어 준 것처럼 그녀의 눈에 착해 보이는 행동을 할 때마다 크리스의 오해는 깊어져 갔다.
“그냥 동생 같아서 챙겨준 거야.”
“그래. 그게 착한 거라니까? 만난 지 얼마 안 된 남인데, 동생 같다면서 챙겨준 것.”
“…그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