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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1화) (111) (111/310)



〈 111화 〉하얀 고래의 발자취

숲에서 시간을 좀 때우다 마을에 복귀한 우리들은 촌장을 찾았다.
그가 이번 의뢰의 대표 의뢰주였으니까.


마을 사람들은 촌장의 집에서 촌장과 함께 우리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굉음에 대해 크게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자넷이 그들에게 결과를 보고했다.
물론 늙은 촌장을 향해서도 편하게 말을 놓았다.


- 크…큰일 날 뻔했군.
- 혹시 몬스터가 마을에 좀 더 가까이 왔다면…
- 천운, 천운이야… 용병단이 정말 알맞을   와주었어…


“저,정말로 마을 근처에 그만한 괴물이?…”


“의심이 가면 직접 그 흔적을 보면 되지.”


촌장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전투’가 일어난 장소에 가 봤다.
그리고 수많은 나무가 나뒹구는 공터를 목격했다.

“이,이게 무슨…”
“세상에…”


여기저기 흩뿌려진 핏자국과 부러진 나무들은 의뢰주의 의심을 완전히 걷어냈다.
몇몇 사람이 쓰러진 나무에 가까이 가 신기한 듯 살폈지만…
이것이 인간이 낸 흔적이란 것을 눈치채지는 못했다.

  번의 주먹질로 나무를 부쉈더라면 주먹의 자국이 진하게 남아 있겠지만, 나는 주먹질을 수십 번 반복해 나무를 꺾어내었다.
여러 번 같은 곳에 주먹이 적중했기에 주먹의 흔적은 알아볼 수 없게 뭉개져 있었다.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어도 인간이 만든 광경이란 것을 절대 알아채지 못하리라.

‘마지막에 크리스에게 보여주기 위해 단번에 부순 나무는 자국이 남아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백여 개 중 단 한그루만 그런데 의심을 하겠어?’


이상함을 발견한다고 한들, 우리가 떠나고 난 뒤가 될 것이다.
어차피 다시 올 일 없는 마을이다.
이들을 신경 써줘야 할 이유가 없다.

“결국 죽이지는 못했다고 하셨죠?… 혹시 놈이 앙심을 품고 마을을 다시 습격하지는 않을까요?…”


“아니, 내가 알고 있는 그 몬스터는 겁이 많고 영역에 집착이 없는 놈이야. 걱정  해도 될걸?”


“휴우… 다,다행이군요.”

촌장이 주변에 굴러다니는 나무들을 둘러본다.
어찌 보면 마을의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았다.
옮기는 것에 힘이 들겠지만, 이 정도 수의 나무면 용병단의 의뢰금으로 인한 손해는 어느 정도 메워질 테니.

그때,
주변을 둘러보던 촌장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그리고 무언가 의문이 생겼다는 듯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허어? 용병 중 동양인은 못 본 것 같은…”

설마 내가 용병단에 새로 합류한 것을 눈치챘나?
내가 미약하게 긴장을 했을 때, 자넷이 나서서 촌장의 말을 끊었다.


“그런데… 이 나무들이면 올겨울 걱정 안 해도 되겠네?”

“예?”

“우리가 놈을 놓쳐서 가죽이나  같은 부산물이 하나도 없거든. 몬스터를 상대한 것에 비해서 받은 현금이 부족하단 말이지?”

“하,하지만 그건 저희 탓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식량과 무기의 수리를 무료로 받으시기로 했으면서!…”

“그래서 말했잖아. 실지급액이 부족하다고.”

“…이 나무들은 마을 근처 숲의 나무입니다. 소유권은 저희 마을에…”

“아니. 이건 놈과 싸우다 발생한 부산물이라고 봐야 옳지. 뭐… 완전히 제값을 받겠다는 것은 아니야. 100그루가 좀 넘어 보이니 개당 5 쿠퍼, 깔끔하게 전부 다 해서 5 실버. 어때?”


“이…이건 너무…”

“좋아. 그럼 이 나무들을 마을까지 옮겨주는 것까지 해서 8 실버.  이상은 없어. 거래를  받으면  나무들 전부 불에 태워 버릴 거다?”

“…”


결국 촌장은 힘없이 거래를 수락했다.
나무를 옮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용병단 전원  이상의 스텟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별로 멀지 않은 거리를 두 번만 왕복하면 되었기에 불평을 하는 이는 없었다.
곧 입안으로 들어 올 술과 고기라는 보상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대금은… 여기… 있습니다…”


“하나, 둘, 셋… 좋아. 이걸로 의뢰는 전부 끝났어. 그리고 죽상 좀 풀어. 8 실버에 100그루면 충분히 이득 볼 텐데 왜 앓는 척해?”


“…크흠. 전부 아시는군요.”

촌장이 떨떠름하게 찌푸려진 인상을 풀었다.
그렇게 자넷에게 의뢰 완수금과 나무의 값을 지급한 촌장이 떠나간 후.
그녀가 내게 동전 몇 개를 던졌다.

- 짤랑! 턱.


동전은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었다.
은빛을 띠는 동전은 총 3개.
나는 그제야 약간 존재하던 반발심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자넷이 팔아치운 나무의 주인은 나였기에.


“파계승. 네 몫이야. 절반 이상이니까 만족하라고.”

“절반 이상? 8 실버의 절반은 4 실버인데, 왜  손에 있는 실버는 3 실버입니까?”

“어디서 개수작이야? 8 실버 중 3실버는 용병단이 나무를 옮겨준 값이니 빼야지.”

“…돈 계산이 나름 정확하시네요. 마진으로 절반이나 드시는 건 너무 비싸지만요.”

“킥킥. 네가 직접 촌장에게 나무를 팔았으면 5 실버 전부 네가 먹었어. 난 충분히 기다려 줬다? 시간이 지나도 도저히 나무를 팔 낌새를 안보이길래 내가 나선 거고.”

“그 값이 절반인가요?”

“어.”


이렇게 보니 그렇게 나쁘지 않은 수준의 마진인  같다.
실제로 나는 나무가 돈이 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팔려고 하지는 않았으니까.

나무 한 그루가 팔리는 값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기본적인 가지치기나 다듬기가 되어 있지 않은 생목의 값은 더더욱 알 리가 없다.
그렇기에 3 실버 정도면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괜히 더 뜯어 먹을 것 없나 말꼬리를 잡아 봤지만, 자넷에겐 이빨도 들어가지 않았다.


- 툭툭.

“…찬영. 나 왜  여자가 마음에 안 들지?”

낄낄거리며 웃는 자넷을 향해 크리스가 작게 속삭였다.
크리스의 용병 단장에 대한 인상은 내게 농담삼아 추파를 던졌을  박살 났다.
 이후로 종종 크리스는 자넷을 말없이 노려보고는 했다.

물론 나는 자넷에 대한 인상이 나쁘지 않았다.
호탕한 성격도, 깔끔한 금전 거래도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미인이었으니까.

당연하지만 여자에 익숙한 남자라면, 크리스에게 ‘단장이 왜?  괜찮던데.’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럴 때 절대로, 절대로 진실을 말해선 안 된다.
진실을 입에 담는 순간이 바로 지옥을 보게 되는 순간이다.

나는 최대한 목소리를 죽여 크리스에게 말했다.


“…사실 나도 별로야.”


“그,그렇지? 후…”

- 문질문질…


“얼굴 펴. 예쁜 얼굴 망가진다.”

“…으응. 헤헤…”

나는 엄지손가락으로 크리스의 좁혀진 미간을 부드럽게 문질러주며 말했다.
이건 선의의 거짓말이다.
거짓말은 큰 효과가 있었다.
바로 크리스의 얼굴이 편안하게 풀어졌으니.
여자는 이렇게 다루면 된다.

이후에 용병단은  함께 마을에 하나 있는 식당으로 갔다.
이미 그곳에는 고기와 술이 준비되어 있었다.

‘의외로 용병단이 엄청 환대 받고 있네?’


촌장이 생각 외의 지출에 아파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마을에게 성대한 환영을 받았다.
일주일을 넘게 마을을 괴롭히던 굉음을 처리해 주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술에 물을 탔으리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리라.

“자, 다들 사상자 없이 완료한 몬스터 퇴치를 축하하며! 건배!”


- 크하하! 건배!!


자넷의 건배사를 시작으로 성공적인 몬스터 퇴치를 가장한 나와 크리스의 환영회가 열렸다.
추가로 멜도 포함이 되어서.

일류라고 해도 용병은 용병이다.
신입이 들어올 때마다 매번 환영하기 위한 술자리가 열리는 경우는 드물었다.


‘환영은 기대도 안 하고, 꼬장이나 없으면 다행이지.’

다행히 나를 보는 눈초리를 보니 서열 정리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단장인 자넷이 직접 챙겨주기도 했고, 감정사라는 확실한 이득을 용병단에 안겨주었으며, 무엇보다 내가 가진 무력이 본인들의 밑이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용병 단원에게 주로 질문을 받은 것은 크리스와의 일이었다.
여자 용병과 남자 용병이 만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지만, 나와 크리스가 매우 뛰어난 외모를 가졌기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물론 대충대충 넘겼다.
그들 또한 별생각 없이 매분 새로운 화제를 찾아다녔다.
술자리에서 하는 깊이 있는 대화만큼 흥을 깨는 짓은 없었기 때문이다.


“동양인은 다들 그렇게 잘생겼어? 키도 크고?”
“확실히 처음 보는 종류의 느낌이야. 이게 바로 그 동양의 신비인가 하는 건가?”
“난 동양인 처음 봐.”
“아니, 내가 지난번에 본 동양인은 이렇게 키가 크지 않았는데…”


이 시대 기준으로 185cm는 무척이나 커다란 키였다.
덩치와 칼로 먹고사는 용병단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내게 화제가 될만한 이야깃거리가 많았던 덕에 크리스와 멜은 그다지 시달리지 않았다.

“…”

나는 멀리서 나를 걱정스레 쳐다보는 크리스를 향해 작게 눈짓을 했다.
너무 걱정하지는 말라고.
다행히 크리스에게 관심이 있는 용병은 거의 없었다.
나라는 연인이 있는 여자 용병이다 보니, 같은 여자인 자넷이 직접 챙겨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넷, 진짜 센스 있네.’


단장인 그녀가 혹시 모를 술 취한 용병의 주정을 완벽히 차단하고 있었다.
자넷을 향한 호감이 올랐다.

“동양인은 눈이 작다고 하지 않았어?”
“푸하핫! 이 파계승… 아! 미안. 박찬영이 눈이 작은 거면 말을 꺼낸 네가 동양인인 수준이잖아!”
“고향이 어디야?”

“이곳, 왕국 태생입니다.”

다들 신기하게 쳐다보기는 했지만,
검은 머리와 검은 눈에 대한 차별은 없었다.
이들이 벽을 세울 정도로 내 외모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부 매력적인 외모의 덕이었다.


- 왁자지껄!


시간이 흘러 다들 술에 취해 정확하게 발음이 되지 않을 때 쯔음.
내 곁에는 어느샌가 크리스가  앉아 있었다.
올라온 술기운과 대화에 집중해 눈치를 채지 못했나 보다.

“휴우… 드디어 질문 세례가 끝난 모양이네. 찬영, 수고했어.”

“크리스 넌 얼굴이 멀쩡해 보이네?”

“난 술에 강하잖아? …그 여자 덕에 거의 마시지 않았기도 했고.”

나에게 방금 자넷의 행동이 좋게 보였듯이,
크리스에게도 꽤나 호감이 있게 다가왔나 보다.
전과 달리 ‘그 여자’를 말할 때 담겨 있던 날카로움이 크게 줄어들었으니까.
좋은 신호다.


“그럼… 아직 인사 못 한 한 명에게 인사나 하러 갈까?”


나는 잔을 양손에 쥐고 홀짝이는 멜에게 턱짓을 했다.
멜 또한 많은 술잔의 권유를 받았기에 제대로 인사를 하지 못했던 탓이다.
크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의견에 동의했다.

- 터벅터벅.


나는 크리스와 함께 떨어져 앉아있는 멜을 향해 다가갔다.
우리는 곧 멍하니 있는 그의 옆에 도착했지만,
우리가 근처에 온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기에 테이블을 노크했다.


- 똑똑.


“멜씨가 여태까지 하얀 고래 용병단의 막내였죠?”

“반가워요! 멜이라고 합니다!  부탁드려요! 다들 착각하지만 남자가 맞습니다! 하얀 머리는 어렸을 적 약초를 잘못 먹은 탓이고요, 제가 어렸을 적 마을에 쳐들어온 몬스터 때문에 부모를 잃고 약초꾼에게…”


우수수!

굳어있던 멜에게 말을 걸자 마치 준비된 매크로 답변 같은 반응이 나를 덮쳤다.
아무래도 정식으로 열린 환영회의 주인공 중  명이 되자 많이 긴장한 모양이다.
나는 눈을 깜빡이며 멜의 말이 끝나기를 얌전히 기다렸다.

- 허억… 허억…


“…중간에 숨도 쉬지 않고 용케 그 긴말을 다 하네…”


크리스가 숨을 몰아쉬는 멜을 보고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나는 멜의 앞에 가 앉으며 부드럽게 그를 진정시켰다.

“단순히 새로운 막내로써 인사를 하러 온 겁니다.”

“마,막내?”

“멜씨가 저보다 먼저 용병단에 들어 왔으니까요.”


“아… 그렇네요.”

“그런데… 멜씨는 머리가 꽤나 기시네요? 남자치고는.”

“아,하하… 역시 그러나요? 잘라야 하는…”


“아니요.  어울려요.”


가까이서 본 멜의 속눈썹은 길었다.
서양인 남성 대부분이 속눈썹이 길었지만, 멜은 특히나 더.

그야 자주 여자로 오해될 법 하다.
크리스와 약간 비슷할 정도로 긴 단발도 그렇고.
너무나 중성적인 모습이었다.

사실…
멜은 여자 같은 남자가 아닌, 그냥 여자가 맞았다.

‘머리의 길이를 보니… 역시 남장을 하고는 있지만 완전히 남자가 되기에는 거부감이 드나 보네.’


대단한 사정이 있어서 남장한 것이 아니라, 그냥 거친 용병들 사이에서 여자로 살아가기가 무서웠기에 선택한 남장이니 그럴 법했다.
멜의 남장이 들키지 않은 이유는 그녀가 앳되어 보였기 때문이다.
키도 작고, 눈도 순박했으며, 볼살은 차 있었다.
변성기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은 것처럼 보였기에 얇은 목소리로도 의심받지 않았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 선배님이라 부르시는 게 편할까요?”

“서,선배라뇨! 당치도 않아요! 게다가… 그, 그그,”

“박찬영입니다.”

“죄,죄송합니다…! 박찬영씨한테 선배님이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춘 것도 아닌데요…! 너무 부담스러워요!”


“그럼 방금처럼 간단하게 멜씨라고 부르겠습니다.”

“네,네에. 편하실 대로…”

나는 원작을 읽어 멜이 여자인 것을 알고 있지만, 굳이 아는 척하지는 않기로 했다.
작은 동물을 연상케 하는 멜을 곤란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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