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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7화 〉하얀 고래의 발자취

“다들 모인 것 같으니, 슬슬 시작하겠네.”

늙은 촌장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작은 마을의 모임치고는 꽤나 많은 사람이 그의  안에 모여있다.
평소에는 그렇게 불러도 바쁘다며 나오지 않았던 사람들도 오늘 이루어진 긴급회의에 얼굴을 비추었다.
다들 사건의 중대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촌장은 목소리를 한번 가다듬은 후, 회의의 서두를 열었다.


“요 앞 숲에서 며칠간 굉음이 울리고 있네. 잭? 자네가 숲에서 이 현상을 발견한 뒤로부터 얼마가 흘렀지?”


“10일, 10일입니다.”

- 웅성웅성…

사냥꾼 잭의 대답에 작게 소란이 일었다.
굉음이 울린다는 것은 알지만, 무려 10일이 넘게 울렸다는 사실은 대부분이 처음 알았기 때문이다.
마을의 근처에서 원인 모를 굉음이  한 번 울리는 것도 불안하기 그지없는 현상이다.
하지만…


“굉음이 울리는 주기는?”


“대략 5초에  번 정도로 반복해서 울렸습니다. 그리고… 제가 멀리서 확인한 바로는 밤낮없이 굉음이 이어졌습니다.”


“으음… 심상치 않군. 절대 자연적인 현상은 아니야.”


이 작은 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온 늙은 촌장으로서도 처음 보는 현상이었다.
무려 10일이 넘는 시간 동안, 밤낮없이 굉음이 울린다니?


며칠 전…
잭으로부터 마을 근처에서 굉음이 울린다는 소식을 접한 뒤, 사람들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몇몇 호기심 많은 사람이 숲에 가 확인한 결과 진실임을 알 수도 있었다.
본인들의 귀로 숲을 울리는 미약한 굉음을 잡아내었다.

3일이 지났을 때는 사람들이 생업에 집중하지 못할 만큼 두려워했고,
7일이 지났을 때는 마을을 떠나려는 자까지 생겼다.
더는 미루지 못한다.
이제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다행히 아직 피해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해결은 해야겠지. 어디 좋은 의견을 가진 자 없는가? 모두의 머리를 맞대기 위한 자리이니.”

시간은 흘러만 간다.
하지만 정규 교육은커녕, 글을 제대로 읽는 사람조차 거의 없는 작은 마을의 사람들이다.
마땅한 해결책은 나오지 못했다.
아니, 해결책 이전에 이들은 굉음의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영주님께 병사를 요청하면…”

“이미 요청은 드렸네. 허나 거절당하겠지… 피해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는데 사병을 보내주실 리가…”

“아! 그렇다면 한 명이 나서서 굉음의 원인을 직접 보고 오는  어떨까요? 흉측한 몬스터든, 미치광이 마법사이든 정확한 보고를 올리면 퇴치를 위한 병사가 올 겁니다!”


“그럼 위험을 무릅쓰고 굉음의 진상을 파악할 ‘한 명’은 누가 나설 것인가? 자네?”


“그,그건…”


촌장의 말에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전에 마을 사람들이  같이 숲으로 가 멀리서 들은 굉음은 절대 심상치 않았다.
그 원인을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간다면, 살아   있는 확률은 별로 높지 않으리라.


다들 곤란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긴 그때.
별로 똑똑해 보이지 않게 생긴 남자가 촌장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가,가족이 없는 사람 중 무작위로 한 명을 지정해서 보내면…”

의견을  남자의 말에 혼자 사는 독신 남성들이 몸을 움찔거렸다.
하나같이 겁을 집어먹은 표정들이다.


일단  말을 꺼낸 남자가 가족이 있으리란 건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언뜻 보면 괜찮은 생각처럼 보이지만…
늙은 촌장은 이 의견을 수용하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아니… 신뢰가 없는 사람을 보내서도 안 되네.”

“네? 어째서입니까?”

“혹시나 보낸 이가 겁을 집어먹어, 굉음의 정체를 확인하지 않고 허위로 말한다면… 병사가 원인을 확인했을 때 우리 마을이 거짓 보고를 올린 것이 돼. 그러면 죄다 처형이겠지.”


“허…허억…!”
“그,그러면 안 되겠네요…”

당연하지만, 거짓 보고 때문에 마을 인원을 전부 처형하는 것은 있을  없는 일이다.
허나 마을의 책임자인 촌장이 처형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리라.
그렇기에 촌장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을 했다.
촌장은 이미 늙었지만 생에 미련이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어찌 보면 촌장 하나의 목숨으로 굉음의 원인을 제거할 기회였지만…
촌장의 늙은 지혜를 꿰뚫는 사람은 없었다.
하나같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의 모임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저 한 수 앞을 읽은 것처럼 보이는 촌장의 현명함에 감탄하고 있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자진해서 나서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을 텐데… 물론 그 자원자를 위해 마을 전체가 돈을 모을 게야. 누구 없는가?”

스윽.

촌장이 주변을 둘러보며 자원자를 찾았지만, 그와 눈을 맞추는 사람은 없었다.
목숨보다 돈이 급한 사람이 있기에는 너무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촌장의 집 내부에는 침묵만이 존재했다.

그렇게 소득 없는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가던 그때.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헐레벌떡 들어오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덜컹!!


“촌장님! 용병단이 마을에 찾아왔습니다!”

정말 타이밍이 좋게도, 그들의 앞에 ‘돈을 받고 굉음의 원인을 파악해 줄 사람들’이 나타났다.



*



나는 크리스를 설득해 그녀와 같이 ‘하얀 고래의 발자취’ 세계에 들어왔다.
이제 곧 주인공이 들어간 용병단이 이 마을에 들를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날짜 계산대로라면 오늘 도착 할 텐데… 원작대로라면 출발은 내일 하니 아직 여유 있겠지?’

나는 하늘에  해의 위치를 보고 지금이 정오쯤이라고 추측 할 수 있었다.

“이,이거 전부 찬영이 한 거야?”


크리스가 주변을 둘러보고는 감탄했다.
공터 주변에는 백이 넘는 굵다란 나무가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내가 이 세계에서 2주간 천권일각(千拳一脚)을 수련하며 생긴 흔적이었다.

“이래서 찬영이 갑작스럽게 강해진 것으로 보였구나…”

크리스는 땅에 뒹굴던 나무에 새겨진 내 주먹의 흔적을 보고는 말했다.
나무  개에 새겨진 내 주먹 자국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최소 수십번은 주먹에 맞은 흔적이 존재했다.


당연하다.
무식하게 마나를 때려 박아서 단번에 나무를 부수는 건 성장에 도움이 안 되는 멍청한 짓이었기 때문이다.
수련의 목적이 천권일각의 올바른 자세를 몸에 익히기 위한 것이었으니까.

내게는 무술을 펼치는 횟수가 중요했다.
그것은 상점창에서 추측 가능한 숙련도 증가 수치로 증명   있었다.
마나를 전부 써서 한번 펼치는 것과, 최소한으로 써서 펼치는 것의 숙련도 증가 수치가 동일 했기 때문이다.


‘마나를 담지 않고 사용할 수 있었다면 중간중간 지구에서 마나를 채워 오는 휴식도 필요 없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한번 펼치는 것에 최소한의 마나가 필요했다.
아마 지구의 무술과 달리 마나 사용을 기본으로 전제한 판타지적인 무술이기 때문이겠지.


“그,그런데 이곳이 정말 다른 차원인 거야?”

“별로 안 믿겨?”

“생각보다 엄청 멀쩡해서… 나무도 있고, 해도 떠 있고… 마치 쉘터와  멀리 떨어져 있는 숲 같아.”

“그 세계와 차이점은… 이곳에는 사람이 있어.”


“사,사람? 지구에서 전이한 사람 말고?”


“응. 이 세계 원주민들.”

“세상에… 다른 차원의 원주민이라니…”

원주민이라고 말하자 크리스는 피부가 초록색이거나, 눈이 세 개쯤 달린 괴물을 상상하는 표정을 했다.
나는 굳이 그 오해를 정정해 주지 않았다.
어차피 오늘내일 안에  원주민들을 직접 보게  테니까.

“나무의 흔적을 보고 알아챘겠지만, 내 주력 무기는 칼이 아니라 주먹이야.”

“…백원후 빅터를 죽일 때도 주먹을 사용했지?”

“기억하네?”


“그때 정신도 약간 몽롱했었고, 그 이후에 있었던 전투직 자격 증명에서 칼을 사용하기에 착각인 줄 알았지만… 제대로  것이었구나…”


“한번 보여줄게.”


- 터벅터벅.

나는 멀쩡히 서 있는 나무의 앞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앞으로 합을 맞출 일이 많을 텐데, 크리스가 내 무력의 정도를 알아둬야 편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내가 칼을 사용할 때의 무력밖에 알지 못했으니까.


오른 주먹을 강하게 쥔 채, 정확한 자세를 잡았다.
일정권(一正拳)은 자세가 정확히 유지될수록 위력이 늘어나는 기술이다.
이렇게 5초가량 차분히 자세를 잡으면, 적은 마나로도 상당한 위력을 내뿜을 수 있다.

쿠웅!!

천 번을 넘게 들어 귀에 익은 타격음이 숲을 크게 울렸다.
주먹을 맞은 나무가 격렬하게 휘청이며 나뭇잎을 우수수 뱉어내었다.


크리스를 돌아보자 눈이 약간 커져 있다.
주먹의 위력에 작게 감탄한 눈치였다.
하지만 일정권(一正拳)의 장점은 그 위력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걸 쉬지 않고 백오십번 정도 쓸 수 있어.”


“뭐? 잠깐. …며,몇번이라고?”


“대략 150번.”

크리스도 마나로 팔다리를 강화하면 방금의 위력을 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녀와의 첫 만남  그녀는 주먹으로 바위를 부쉈으니.
그렇기에 그녀가 주먹의 위력에 크게 놀라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마나를 신체를 강화하는 것은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
주먹을 내지를 때만 신체를 강화하는 신기에 가까운 컨트롤을 한다고 해도, 내 절반의 횟수도 내지르지 못하리라.
기본적인 신체 강화만 쓸  있는 그녀로서는 효율적인 측면에서 나를 넘볼 수 없는 것이다.

“아, 마나를 좀 더 써서 위력을 강화하면 사용할 수 있는 횟수는 줄어들고.”


콰아앙—!!


방금처럼 5초에 걸쳐 신중하게 자세를 잡은 것이 아닌, 단숨에 강한 일격을 때려 박았다.
이번에는 꽤나 큼지막하게 마나가 소모되었다.
아까와 차원이 다른 크기의 소리가 숲을 울렸다.

- 우직!! 쿠우웅!…


큰 소리와 함께 흙먼지를 작게 일으켰다.
굳세게  있던 나무가 단번에 꺾여 나뒹굴었기 때문이다.

“…마나를 더 넣어서 위력을 조절할 수 있어?”

“맨 처음의 주먹 정도로 백원후를 잡기는 힘들잖아? 그때도 주먹을 좀 더 강화 한 거야.”


단순한 신체 강화는 마나를 더 쓴다고 위력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정된 값의 마나를 소모하고, 고정된 값의 강화 효과를 보인다.
마나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냥 유지 시간만 늘어날 뿐…
다른 이득은 없다.
그러니 눈에 띄게 마나가 많던 카야도, 기본 스텟이 낮았기에 강자의 축에 들지 못했던 것이다.

“도대체 그런 기술은 어디서 배운 거야?”

“음… 그냥 때가 되면 이능이 각성하듯 자연스럽게 배워.”

“…사기꾼. 나도 알려줘.”


“내가 누군가에게 알려줄 정도로 이 무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은 아직까지 없는데…”

고작 스킬 레벨 1에서 얻을 수 있는 이론적인 지식은 무척 적었다.
하물며 그 일부만 해금된 이론도 정말 복잡했다.
누군가에게 알려주기는커녕 나도 완전히 내 것으로 하기에 벅찰 정도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거나 스킬 레벨이 오르면 알려줄 수 있게 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으으… 부럽다.”

“네 이능도 말도 안 될 정도로 유용한 능력이잖아.”


“그건 그렇지만…”


“한두 번으로는 감을  잡겠지? 조금 더 보여줄게.”


나는 아직 멀쩡히 서 있는 옆쪽의 나무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내 무력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을 때까지 나무를 때리며 보여 줄 생각이었다.


- 쿵! 쿠웅!


천천히 쉬기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30분가량 시간을 보내던 그때.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인물들이 있었다.

“찬영?”


“…누군가 다가오네? 꽤나 여럿이잖아?”


“찬영도 느꼈어?”

- 끄덕.

저 멀리서 기척이 느껴졌다.
누군지는 모르겠다.
내가 원작소설을 알고 있다고 한들, 소설에 나오지도 않은 엑스트라들의 행동은 알지 못하니까.


나와 크리스는 기척이 향하는 곳을 바라보았다.
곧, 나무 사이에서 무장을 한 사람 여럿이 튀어나왔다.


‘잠깐, 무장을 했다고?’


“뭐야. 사람이잖아?”

여성의 목소리였다.
밀을 꺼낸 자는 무리의 가장 선두의 선 사람이었다.
곧 모든 인원이 내가 만든 공터에 몸을 드러내었다.


“이건…”
“허. 마치 폭풍이 지나간 것만 같은 흔적이군…”
“마법… 인가?”
“아니, 봐봐. 주먹 자국이야.”
“세상에… 이걸 전부?”


여자의 뒤에 선 수십 명의 사람들이 놀라운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성 또한 주변에 널브러진 백여 개의 나무를 보더니 ‘휘익!’하는 휘파람 소리를 내었다.


“이게 그 늙은이가 말하던 굉음의 정체? 이거 다 너희 두 명이 만든 거야?”


“…”

“이거 참… 생각보다 위험한 의뢰였나. 아니면 정반대로 꽁으로 먹는 의뢰일 수도 있겠네.”

“의뢰?”


“일단 소개부터 하자면, 요 앞의 마을에서 굉음의 정체를 밝혀 달라는 의뢰를 받아서 왔어. 소리의 주인은 너희들이지? 가능하면 대화로 풀고 싶은데… 어때, 우리와 싸울 생각이야?”

여성이 허리에 맨 칼자루를 살짝 매만지며 말했다.
뒤에 선 수십 명의 용병들의 시선이 날카롭게 변했다.
우리와 용병단 사이에 미약한 긴장감이 흘렀다.


‘굉음의 정체’라…
이들이 이곳으로  이유는 그것이었나.
나름 마을과 떨어진다고 떨어졌지만, 주인공이 마을에 왔을 때 빠르게 갈 수 있는 거리는 유지해야 했다.
전후 사정은 대충 파악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확인하자.
나는 입을  이곳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여성을 향해 질문했다.


“용병단의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우리? 하얀 고래 용병단.”


갈색의 머리칼을 가진 여인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그리 말했다.
이들은 내가 찾는 자들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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