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1화) (105) (105/310)



〈 105화 〉지구

한참을 고민해 보았다.
대부분의 선택이 그러하듯 한번 정하면 쉽게 되돌릴 수 없으니까.
결국 결론은 바뀌지 않았다.

“대학교는 자퇴 하자.”


결정에는 여러 원인이 존재했다.
그 첫 번째가 아무리 생각해도 대학에서 시간을 보내 봐야 내가 얻어갈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강의를 들을 시간에 스킬을 수련하는 것이 훨씬 도움 되리라.

취업?

돈은 이미 통장에 꽤나 들어차 있다.
다른 차원을 구한 용사인  새끼의 아버지는 지구에서도 상당히 유능했기 때문이다.
기억에 의하면 나름 이름을 알린 펀드 매니저였다고 한다.
지금이야 가지고 있는 주식을 전부 처분했지만.

‘게다가  정도야 곧 시스템을 이용해서 벌 계획이고.’


두 번째 이유는 2달이나 사용한 끝에, 드디어 정보의 수집이 끝났기 때문이다.
바로 고다연의 정보 수집이.


‘젠장… 단톡방도 못 들어갔고, 소문을 물고  친구도 없어서 시간을 생각보다 많이 잡아먹었어.’


그녀의 성격과 성향은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자세한 정보는 기억에서 지워졌기에 완전히 처음부터 조사해야 했다.
뒤를 캐고 다닌다는 소문이 흐를까 봐 발품을 팔 수도 없었고, 오로지 초인의 청각에 의존  정보 수집이었다.

다행히 고다연은 지인과 친구가 많은 편에 속했다.
또한 얼굴이 많이 팔려있던 덕에 화제로 오르는 빈도가 높았다.
주도적으로 정보를 캐내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고작 2달 만에 정보 수집을 끝마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이자, 마지막 이유…
내 생각보다 대학 생활이 지루했기 때문이다.


전공이나 강의가 지루하단 뜻이 아니다.
나는 몸이 바뀌기 전에 가진 애매한 잘생김이 아닌, 완전한 모델급의 외모로 재탄생했다.
그렇다면 남자로서 당연히 기대하는 것이 있지 않겠는가?

‘…난 적어도 길을 걸어가기 피곤할 정도로 여자가 붙을 줄 알았지.’

그리고 그것을 내심 즐길 준비까지 끝내 놓았지만, 상황은 내 예상과 조금 다르게 흘러갔다.
얼굴이 잘생겨진 초기에야 내게 가까워지려는 여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내가 몇 번이고 칼같이 거절하자, 멀리서 관음하는 사람만 늘어나기 시작했다.
대쉬를 쳐낸 이유는 간단하다.


‘고다연을 노리고 있는 지금, 썸타는 사람이 생겼다가는 걔 성격에 절대 나를 만나려 하지 않을 거야…’


고다연과 사귀며 백하민을 골리려는 내게는 어쩔  없는 선택이었다.
덕분에 나는 우리 대학의 애타(애니 타임의 약자, 대학생들이 사용하는 커뮤니티 어플.)에 자주 언급이 되었다.
정말로 잘생긴 사람이  튀어나왔는데 그를 알고 있는 지인이 없는 것은 물론이요, 강의까지 버젓이 앉아 듣고 있으니 그럴  하다.

 누구도 출석 때 불리는 나의 ‘박찬영’이라는 이름에서  개월 전 사라진 뚱뚱한 박찬영을 떠올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단순한 추측 글만이 떠돌 뿐이었다.


복학생이다, 반수생이다, 다음 학기에 들어오는 신입생이다, 교수님 아들이다, 연예인이 졸업장 따려고 출석 일수 챙기는 거다, 여친이 있다, 아니다 없다, 철벽을 너무 강하게 친다 기타 등등 수많은 이야기가 떠돌았다.

심지어 동성애자라는 썰까지 종종 나왔다.
물론 나는 그런 글을 볼 때마다 머리끝까지 화가  글이 내려갈 때까지 신고를 반복해 때려 넣었다.


‘누가 동성애자라고? 진짜 선넘네.’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내가 기대했던 존잘남의 기분 좋은 피곤한 삶은 없었다.
그냥 피곤한 삶만이 존재했다.
이따금 나를 향한 도촬만이 간간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예민한 초인의 감각은 나를 향한 시선은 물론 작은 셔터음까지 잡아내었다.
지적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제는 귀찮아서 그냥 내버려 두고 있다.
자연치유의 덕이 아니었다면 스트레스가 꽤나 쌓였으리라.

나는 망설이지 않고 지도교수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면담을 신청한 뒤, 자퇴서를 제출하기 위해서.
하지만…

“허,헉…!”


“…”

별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과 마주쳤다.
나와 비슷한 수준으로 SNS와 애니 타임에 아직까지 화제가 되는 유명인,
백하민이다.


‘아마 나와 다른 의미로 도촬이 되고 있었지?’


놈은 첫날에 봤던 안경을 쓰고 있었다.
이놈 성격에 일주일간 열심히 렌즈를 끼고 다녔으면 노력한 거다.
결국 귀찮음에 포기하고 안경을 쓴 것 같다.

“뭘 봐?”

“으,으으…”


살짝 겁에 질린 시선으로 나를 본다.
트라우마의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게 당한 폭력의 기억은 새겨진 눈치다.

두피의 기름에 엉겨 붙은 머리와 인중에  거뭇한 수염.
거북목에 굽은 등, 움츠러든 어깨의 조합은…
진심으로  육체가 내가 알던 과거의  신체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병신 같았다.


“내가 몸이 바뀌고 한 70kg쯤 뺀  같은데, 너는 어떻게 내가 살을 뺀 만큼  찐  같냐?”

“…”


그리고 화룡점정을 찍는 것은 불어난 살이다.
그나마 180cm를 약간 넘은 키 덕에 ‘돼지’라고만 불릴 수 있었다.
아마 키가 조금만 작았어도 ‘씹돼지’라고 불렸으리라.
지금도 저 새끼의 턱은 살에 파묻혀 있었으니까.

“큭큭… 군대 빼려고 일부러 찌우는 거면 아마 안될 거다? 1년 전에 신검받아서 1급 떴거든. 한번 1급 뜨면 5년 동안은 재검받아도 BMI 공익 못 가는 거 알지?”

“으…”


게다가 저렇게 단기간 안에 갑작스럽게  것이 들키면 무조건 현역 아니면 재판을 받는다.
병역기피로.

쟤가 만약에 현역을 안 간다?
어떻게든 여기저기 신고해서 반드시 현역 보내버릴 거다.
못해도 재판대 위에 세울 것이다.
이건 천계도 뭐라 하지 못한다.
정당한 한국의 법대로 한 거니까.


- 덜덜…

눈을 내리깐 백하민은 내 말에 반박도 못 한 채 이 순간이 어서 지나가길 기도하고 있었다.
저런 한심한 모습을 보니 더 놀리고 싶은 생각도  든다.
눈감고 귀 닫은  땅에 머리를 처박은 타조마냥 현실을 부정하는데 내가 아무리 욕해봐야 무슨 소용인가?


단순하게 말로 비꼬는 것이 아닌, 도저히 피할  없는 정신적인 충격을 안겨주고 싶었다.
가령  여친을 내게 빼앗긴다든지.

- 터벅터벅.

더 이상의 대화는 내 시간이 아까웠다.
나는 놈을 뒤로한 채 지도교수를 찾아 발을 움직였다.





*


고다연을 만나려면 대학에 있어야 하는데, 무슨 생각으로 자퇴를 했냐고?
그건 대학 밖에서도 고다연을 만날 방법을 찾았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대학 안에서 그녀와 친해지는 것보다 훨씬 좋은 방법이었다.
내가 일방적으로 다가가야 하는 대학과 달리  만남은 ‘우연’과 ‘자연스러움’이 반반씩 섞여 있었으니.

“어디보자… A.Light 크루. 활동 영상을 보면 이곳이 확실해.”


고다연은 여자 댄스 동아리의 부장을 맡고 있다.
그녀의 댄스 관련 활동은 교내에서 끝이 아니었다.
‘크루’라고 칭하는 아마추어 댄스팀의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즉, 나는 고다연이 활동하는 크루를 찾아내는 것에 성공했다.


‘나름 친한 친구들만 알고 있는 비밀 같던데…  좋게 알아냈지.’

별로 유명하지는 않은 댄스팀이었다.
너튜브 채널도 있었지만, 구독자가 세 자리를 넘지 못했으니까.
그냥 춤을 취미로써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보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나는 네○버 밴드 어플로 A.Light 크루 공식 계정으로 메세지를 보내었다.
나의 간단한 프로필과, 크루에 입단을 희망하고 있다고.
물론 이렇게 대충 보내지 않고 나름 정중함과 격식을 담아 보냈다.
메세지를 읽을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고,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더라도 이건 분명한 첫인상이었으니까.

춤은 단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내 몸의 유연성은 말할 것도 없이 최상이었고, 나의 반사신경이라면 간단한 춤 정도는 몇 번 보는 것만으로 즉시 따라  수 있었다.
대다수가 그렇듯 춤이란 일정한 박자를 가지게 되어 있으니까.


“오? 평일인데 빨리 읽네.”


답장이 왔다.
미사여구가 붙은  글을 요약해 보면 해석은 간단했다.
마침 지금 시간이 비는데 지금 볼 수 있냐는 말이다.
일정이 없는 내게 거절 할 이유가 없었다.


메세지를 조금 더 교환했다.
서로 위치를 조정하다 중간 지점에 있는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거리다.

내가 카페에 도착한 것은 정확히 15분이 지나서였다.
약속 시간까지 15분이 더 남았으니 미리 앉아서 기다렸다.
물론 장사를 하는 가게에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으니 카운터로 가 간단히 주문했다.

하지만 내가 이곳까지 오는 것이 빠르듯 약속 상대도 이곳에 도착하는 것이 빨랐다.
시킨 커피가 나오기 전에 나를 찾은 남자가 있었다.
미리 이야기해  나의 인상착의를 보고 발견한 것이 분명하다.


“혹시 박찬영씨…?”

“아, 네. 맞습니다. A.Light 팀 맞으시죠?”

“네. 와… 초면에 실례지만 엄청나게 잘생기셨네요?… 혹시 전문적인 댄스팀을 찾고 계시나요? 그렇다면 죄송하지만 저희는 단순한 아마추어 모임이라서…”

나의 얼굴을 보고 아이돌이나 연예인 지망생이라 착각한 남자는 살짝 당황한 얼굴로 사과했다.
아마 내가 연습생으로 들어가기 전, 경력을 쌓기 위해 댄스팀을 찾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나는 살짝 웃으며 그의 오해를 풀어주었다.


“하하, 딱 제가 찾던 모임이네요. 저도 취미로만 즐길 거라서요.”


“…아하. 그러시면 딱 좋네요.”


- 위잉!


그때, 책상 위에 올려진 진동벨이 울렸다.
주문한 음료가 나왔다는 뜻이다.
나는 남자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잠깐 자리를 비우겠다는 양해를 구한 뒤, 카운터로 가 미리 시킨 음료 두 잔을 들고 왔다.


“무얼 드실지 몰라서 제가 마음대로 시켰는데, 혹시 카페라떼랑 아메리카노 중 어떤 게 마음에 드시나요?”

“헉! 제,제거까지 시키셨나요?”


“하하. 저 혼자 먹을 수는 없잖아요. 아, 혹시 카페인이 들어간 음료는 안 드세요?”

“아뇨아뇨. 아메리카노로 좋습니다. 감사히 잘 먹을게요.”


남자는 살짝 밝아진 얼굴로 내게서 컵을 받았다.
아주 공손히 두 손으로.
기본 개념은 잡혀 있는 사람 같다.

“으으음… 원래 제가 사드려야 하는 건데…”

“제가 팀원이 된다면 앞으로 얻어먹을 기회야 자주 있지 않겠습니까?”

“이거 참, 들어오시게 된다면 선배 역할은 톡톡히 하겠습니다.”


“하하, 농담이에요.”

나를 향한 호의가 늘어난 것이 눈에 보였다.
3,500원으로 첫인상에  호감을 얻을 수 있다면 그만큼 이득인 일도 없다.
신입 면접을 직접 볼만한 사람이라면 댄스팀 내에 나름 영향력이 있을 테니 더더욱.


“그러고 보니 제대로 통성명도  했네요. A.Light팀 가입을 희망하는 박찬영이라고 합니다.”


“아, 반갑습니다. 저는 임준혁이라고 합니다. 부팀장  총무를 맡고 있습니다.”

“총무님이라니, 이거 방금 농담삼아 말씀하셨던 ‘선배 역할’은 기대해도 되는 건가요?”

“하하하! 당연하죠. 그럼 잠깐 질문 몇 가지만 해도 될까요?”


“앗, 죄송합니다. 제가 자꾸 말을 끊었죠? 이후에 스케줄이 있으실지도 모르는데… 어서 본론으로 들어가시죠.”


“저도 재미있었는데요. 뭘. 혹시… 찬영씨는 춤 관련 경력은 있으시나요?”

“아뇨. 완전히 초짜입니다. 개인적으로  안에서 영상을 보며 안무를 따라 해본 정도? 하지만 운동을 했던지라 몸의 유연성과 센스는 나름 좋다고 자부합니다.”

“큭큭! 자신감 넘치시네요?”

나는 웃음기를 섞어 농담삼아 말을 건넸다.
이미 내게 호감이 쌓여있던 임준혁은 나의 별것 아닌 농담에도 간단히 웃어주었다.

 만남은 가볍게 인상을 나누는 것으로 충분했다.
임준혁은 내게 다음 주에 A.Light팀이 전부 모이는 연습실의 장소를 알려주었다.
그때 나의 기본기를 체크하고, 크루의 자세한 규칙  팀원 소개를 해준다고 했다.

“실력 체크는 말 그대로 메인 안무를 맡길 수준인지, 서브를 맡길 수준인지 확인하기 위한 거에요. 완전한 생초짜라고 해도 방출한다거나 그런 건 없으니 부담 가지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우리는 번호를 교환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헤어졌다.
정말로 춤을 추기 위해서 팀에 들어간 것도 아니고, 시간을 내서 춤을 연습하진 않을 것이다.
 목적은 어디까지나 고다연이니까.


임준혁이 내게 말해준 시간은 토요일.
며칠 뒤면 박찬영으로서 고다연을 처음 만나게 된다.

‘계획은 길게 잡아야겠어. 걔는 경계심이 좀 있으니까.’


고다연은 친해지기 위해서 무언갈 해야 하는 타입이 아닌, 친해진 후 무언가를 시작해야 하는 타입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그녀의 성격은 그러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