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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93)화 (93/310)



〈 93화 〉테라포밍

말은 이렇게 했지만, 반군의 습격이 있으리라 예상했던 것만큼 어느 정도 계획은 준비해 놓았다.
내게는 사용할만한 패가 무척 많았기 때문이다.

“방법이 떠올랐어.”

“버,벌써?”


“음… 근데 설명하기 좀 어렵네.”

“뭐? 어째서?”

“네게 비밀이 있는 것처럼 내게도 비밀이 몇 가지 있는 거지.”


“너한테도? 게다가 몇 가지나? 도대체 무슨?…”

“하나 정도는 알려줄게. 너도 내게 비밀 한 개를 알려줬으니. 네가 아는 내 이능은 체력의 재생을 빠르게 해주는 거였지?”

“응. 상처뿐만이 아니라 기력까지도 재생해 준다고…”


위이잉.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는다.
동시에 디시빙(Deceiving)이 발동되었다.
가려진 손바닥이 치워진 내 얼굴에는 이강인의 얼굴이 존재하고 있었다.
성대의 구조 또한 변했다.
이대로 입을 열면 이강인 특유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나오리라.
그것을 이강인에게 증명한다.


“이능은 한 명이 2개 이상도 가질 수 있더라.”

- 위잉.


다시 내 손바닥이 얼굴을 가렸다 떨어지며 스킬이 해제되었다.
나의 얼굴은 내 본래의 잘생긴 외모를 되찾았다.
고작 2초 정도 만에 일어난 이변이었다.


“…미친.”


“푸하하. 뭘 당황하고 그래? 이능이란 것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잖아? 여러  가질 수도 있지 뭘.”

“그…그렇긴 하네. 쉘터 역사에도 전례 없던 일인  같아서 좀 놀랐어.”


“로또가  번 연속으로 터질 확률과 비슷할 테니까. 아마?”


어깨를 으쓱이며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지금은 이능을 설명하며 시간을 소모하면 언제 본론에 들어설지 모르게 되니까.
나는 이강인에게 계획의 일부를 설명했다.


“이 이능을 이용해 제라드의 얼굴을 복사한 다음, 11구역 전투직들에게 선전 포고를 하는 거지. 그럼 쉘터도 긴장한 채 전투 준비를 하지 않을까?”


“확실히… 그러면 우리가 놈들의 근거지에 쳐들어가야겠네.”

“아니, 그것보다 우리 앞마당에서 싸우는 것이 훨씬 좋지 않겠어? 놈들을 끌어들이자.”

“하지만 놈들은 우리가 있는 곳으로 올리가 없잖아. 반군이 정말로 선전포고한 것도 아니고.”


“음… 내게는 놈들을 확실하게 도발할 방법이 있어. 이건 믿어도 좋아. 하지만 아까 말했듯이, 이 ‘방법’은 말해주기 복잡해. 네가 이해해줘.”

“나도 모든 비밀을 말해 달라고 염치없이 굴지는 않을 거니까 상관은 없는데… 그럼 네가 너무 위험하지 않아? 반군을 도발하려면 네가 직접 근거지로 가야 할 텐데.”

“무사할 자신 있어.”


“…알고 있지? 지금 네게는 기다리는 연인이 있다?”


“알아. 죄를 두 번 지을 생각은 절대 없어.”

“두 번??”

“신경 쓰지 마.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내뱉었다.
계획대로만 흐른다면 위험한 것은 없다.
크리스에게 그런 슬픔을 두 번이나 겪게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내가 도와줄 건 있어?”

“네 도움은 전투가 시작되면 본격적으로 필요해 질 거야. 지금 당장 너의 역할은 놈들의 근거지를 알려준 것으로 끝났어.”

“…쓸모없다는 말을 상당히 상냥하게 돌려 말해주네.”

“오, 알아들었어?”


“큭큭.”

“그냥 나를 믿고 편안하게 지켜보기만 하면 돼.”

“좋아. 그럼 잘난 친구 덕 좀 볼게. 계획의 시작은 언제쯤으로 보고 있어?”

짧으면 짧을수록 좋았지만, 내게도 나름의 준비가 필요했다.
물리적인 준비는 필요 없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출발해도 전혀 상관없었다.


하지만 나는 홀몸이 아니다.
크리스를 설득해야 할 시간이 필요했다.

“사흘 뒤.”


사흘 안에 크리스를 설득해 보겠다.





*



띠링!


=
[기능]
이름: 아이템 정보 확인
레벨: 2
효과: 검열되어있던 정보 중 일부가 해금됩니다.
상세:
1. 정보 해금 - Lv2
2. 이제 건축물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3. 아이템 정보 상세 확인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재사용 대기시간 24:00:00)

가격: 50,000 카르마
[구매하기]
=

상점창에서 ‘아이템 정보 확인 2Lv’은 쉽게 발견  수 있었다.
다만 문제가…

“더럽게 비싸네…”

가격이 무려 50,000 카르마다.
 놀라운 것은 나는 이미 50,000 카르마를 가지고 있었다.
 기능은 언제든지 구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 당장 구입 하지는 않을 것이다.
카르마를 아껴야 하기 때문이다.

“혹시나 제라드랑 맞붙게 될 때, 내 무력이 부족하면 스텟에 투자해야 하니…”


상세 설명을 읽어보니 지금 당장 급하게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상태창을 닫고 발걸음을 옮겼다.
나를 기다리는 크리스를 향해서.

- 터벅터벅.


전투직이 좋은 것은 이것이다.
훈련생 때와 달리 각방을 배정받았으니까.
좀 더 자유롭게 연인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그런 목적으로 크리스에게 향하는 것은 아니지만.

- 똑똑!

“응!”

- 끼이익…

문이 열리며 주황색 머리가 빼꼼 고개를 내민다.
나는 그 머리를 살짝 쓸어주며  안으로 들어갔다.
크리스 또한 반갑게 나의 방문을 맞이해 주었다.


다른 커플들은 서로 연인 관계인 것을 가장 실감할 때가 언제일까?
나는 방금처럼 연인의  안에 자연스럽게 들어가고, 또 상대 역시 그걸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일 때 실감 하고는 한다.
이런 사소한 것이 좋았다.

“그러고 보니 넌  앞에서 욕 안 하더라.”

“일부러 신경 쓰는 거야. 입에 붙어서 진짜 고생이라니까?”

“하긴, 몇 년간 입에 달고 살았을 테니…”

“왜? 서,설마 찬영은 욕하는 여자한테 흥분을 느낀다든지? …다음에 할  해줘?”


“그럴 리 없잖아.”

크리스의 농담을 나도 마주 웃으며 받았다.
본론을 들어가기 전에 분위기를 푸는 것은 중요했다.
그래야 크리스가 받아들이기도 좀 더 수월해질 테니.

“후우! 그래도 더는 그런 연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만족해!”

“있잖아 크리스. 내가 위험한 일을 한다고 하면 어쩔 거야?”

“…위험한 일?”

“응.”


“…얼마나?”

“계획대로 된다면 전혀. 하지만 계획이 틀어지면 조금?”

“…7년 전에도 계획대로 된다면 전혀 위험하지 않았지? 그리고 계획이 틀어진 거고?”


“…”

나는 대답하지 않는 것으로 그녀의 말을 인정했다.
크리스의 눈빛이 싸늘하게 바뀌었다.

역시, 그녀는 내가 다치는 것에 커다란 거부감을 품고 있었다.
그녀와 함께 11구역 순찰을 나갈 때면, 나를 최대한 전투에서 멀리 떨어뜨리고 지키려 들었기에 어렵지 않게 짐작했다.
크리스의 허락을 얻는 것이 순탄치 않을 것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그녀에게 계획의 일부를 이야기해  것이다.

어째서 이야기해 주는지 의문을 느낄 수도 있으리라.
그냥 말없이 일을 벌인 뒤, 돌아와 보고하면  텐데.


‘…그러면 뒷감당이 안 돼.’

7년 전, 의도치 않게 한번 그녀를 속인 것은 용서받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두 번은 없을 것 같다.
허락보다 용서가 쉽다?
그것도 첫 번째만 그러는 것이다.


아무리 두꺼운 인연으로 묶인 연인 사이라고 해도, 오히려 연인 사이기에 더더욱 신뢰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특히 지금처럼 내가 위험에 빠질 확률이 있는 일은 반드시.
만일  일을 숨겼다가 크리스가 진실을 듣게 된다면…
나를 향한 그녀의 무조건적인 신뢰에 금이 가리라.

‘사실… 완벽히 숨길  있었으면 이야기  하지.’

쓰레기 같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소설속을 다니며 위기를 겪을만한 경우가 한두 번도 아닐 텐데, 그때마다 크리스에게 보고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지금 이야기하는 이유는 숨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얌전히 허락을 구하는 것이 옳다.
먼 미래를 내다본다면 이것이 좋은 판단이리라.

“정확히 무슨 일인데? 우선 들어볼게.”

“그래.”

살짝 불안한 얼굴로 내 얼굴을 보던 크리스가 눈을 질끈 감고 내게 말했다.
나는 천천히 그녀에게 계획을 설명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디시빙(Deceiving)을 크리스의 앞에서 선보여야 했다.

위이잉!

“이,이능? 이능이 두 개야?!”

“이건 이능이 아니야.”


“…뭐? 그럼 도대체 뭔데?…”

“예전에 내가 말해주기로 한 것 있지? 네 금이  다리가 갑작스럽게 나은 것. 그거랑 조금 관련 있어.”


“…”

- 위이잉!


설명은 이어졌다.
이강인이 미래를 알고 있다는 정보는 제외했지만, 크리스에겐 그 공백에서 오는 이질감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나 보다.
 말을 끊지 않고 계속 들어주는 것을 보면.
결국 나는 계획의 전반적인 부분을 전부 이야기  수 있었다.

“…해서 놈들을 끌어들일 생각…”


“안돼.”

마지막에 와서야 인내심이  떨어진 크리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끊었다.
아직까지도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안돼. 절대 안 돼.”

“크리스…”


당연히 거부당했다.
크리스의 눈꺼풀이 들리며 눈이 나를 향한다.
그 동공은 그녀의 목소리만큼이나 세차게 떨리고 있었다.

“찬영은…  항상 이렇게 상냥해?”

“난 상냥하지 않아.”


“그럼! 그럼… 왜 수많은 사람을 위해 희생 하려 그래?”

그때는 하드모드 퀘스트 때문이었고,
지금은 테라포밍의 완성도 때문이다.
난 명확한 이득이 있어야 위험을 감수한다.
하지만 이걸 설명해 줄 수는 없었다.
담담히 그녀에게 오해라고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희생이 아니야. 희생은 내가 잃는 것이 있어야 하잖아?”

“목숨을 잃을 수도 있잖아! 그걸 찬영이 모를 리 없는데,  그렇게 말하는 거야…”

궤변은 간단하게 막혔다.
어차피 나는 여태까지처럼 말빨로 그녀를 설득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사흘이라는 시간을 목표로 잡았단 것이고.

“무엇보다 계획이 구멍투성이야! 네가 제라드에게서 도망칠 수 있을 리 없잖아!”


“충분히 할 수 있어.”

“…이 고집쟁이…”


벌떡!

크리스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내 담담한 표정을 보고 마음을 굳혔다고 생각하는  같았다.
다행히 크리스는 내가 유도한 대로 움직여주었다.
이제 약간만 더 자극하면  것 같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제라드, 나, 브랙과 찬영의 사이에는 7년이란 격차가 있어. 아무리 그때 찬영이 우리 중 제일 강했다고 한들… 지금은 아니라고!”


“그렇겠지. 그러더라도 잡히지는 않아.”


“찬영, 스스로도 지금 이성적이지 않다는 걸 알지?”

“이건 고집부리는 것이 아니야.”


- 후우…


“…찬영은 머리가 식을 때까지 내게 잡혀 있을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미안해… 찬영이 평소대로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해지면 풀어줄게.”


- 화악!


가냘픈 몸이 내게 달려든다.
크리스가 마나를 써가면서까지 나를 제압하려 들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사념각(邪念脚)으로 간단히 피했다.


“어?…”

“안 잡힌다니까?”

“바,방금…”

크리스가 그녀의 옆에 선 나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속도가 빠르게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내가 앉아있던 자세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크리스의 손을 흐르듯 피했기에 놀란 것이다.


이제 나를 제압하기 위해 전력으로 달려드는 크리스를 몇 번이고 피해 주면 된다.
그녀가 내가 무사할 수 있다는 것을 납득 할 때까지…
몇 번이고 며칠이고 반복할 생각이었다.


“다시 해봐.”


“…”


- 화아악!!

크리스는 조금 전보다  빠르게 내게 다가왔다.
하지만 역시 피할 수 있었다.

그녀보다 훨씬 빠른 백원후의 움직임조차 간파한 사념각(邪念脚)이다.
게다가 민첩을 제외한 내 스텟은 크리스와 비슷해져 있다.
물론 버프까지 포함한 스텟을 기준으로.
크리스가 이보다 훨씬 빨라지더라도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있으리라.

“이,이건 뭐야? 찬영은 대체…”

“얼마 뒤 전부 얘기해 줄게.  비밀들. 하지만 지금은 이것에 집중하자. 크리스 네가 납득할 때까지 피해  생각이야.”


“…분명 제라드는 나보다 속도가 느려. 그렇지만 놈들은 다수라고! 한 명이 아니야! 포위하면 어쩔 건데!”


“그러니까 말했잖아. 크리스 네가 납득 할 때까지 할 거라고.”


“…찬영은 진짜…”

“고집쟁이라고? 사랑해.”


“…나쁜 놈. 사랑해.”


크리스가 이를 꽉 다문 채 내게 달려들었다.
어떻게든 나를 제압 하겠다는 마음가짐이 보였다.

- 휘익!

하지만 방금보다 속도는 줄어들었다.
크리스의 속셈은 쉽게 꿰뚫수 있었다.
지구력으로 승부를 볼 생각이다.
 보유 마나량이 많지 않으리라 생각한 것이 분명했다.

‘분명 단순한 신체 강화보다 사념각(邪念脚)을 쓰는 것이 더 마나가 많이 들지만…’

나는 마음만 먹으면 마나를 무한대로 쓸 수 있다.
마나가 떨어진 순간 지구에서 마나를 채우고 오면 되니까.
아무리 최악의 상황을 그려도 내가 잡힐만한 가능성은 없었다.
제라드에게도, 크리스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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