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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92)화 (92/310)



〈 92화 〉테라포밍

띠링!

=
[아이템 정보 확인]
이름: 역천(逆天)의 구슬
종류: 소모품
레벨: -
효과: -
상세:
아이템 정보 확인의 레벨이 낮아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 세계관 귀속 아이템입니다. 상점창에 등록이 불가능합니다! 다른 세계로 가지고 가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

수천 개의 하얀 구슬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아이템 정보창을 열었다.


역천.
하늘(天)을 거스르는(逆) 구슬.
이건 아무리 봐도 회귀의 구슬 같았다.

“…”


손에 든 구슬을 내려놓고 다른 구슬을 들어 정보창을 열어봐도 마찬가지의 시스템 창이 보였다.
다른 하나도,  다른 하나도.
나는 인정했다.
 수천 개의 구슬은 회귀의 구슬일 확률이 아주 높았다.


“인벤토리에 전부 들어갈 것 같지도 않네…”

그냥 포기하고 전부 이곳에 보관하기로 했다.
어차피 신전의 2층은 이 펜던트가 없으면 들어오지도 못하니까.
게다가 어지간해서는 이 구슬을 사용할 생각은 없었다.

“몇  전으로 돌려 보내 주는지 모르니까.”

잘못 사용해서 지금까지 쌓아놓은 인간관계가 리셋 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현재 시간대 훈련소에서 3달, 과거 시간대 훈련소에서 2달, 마지막으로 전투직으로 1달까지.
나는 테라포밍에서만 반년을 보냈다.
내가 미쳤다고 이 짓을 다시   같나?


여타 회귀 소설의 주인공처럼 과거에  행동을 후회하고 있지도 않은데 돌아가면 괜히 피곤해지기만 하다.

“건들지도 말자…”

손에  역천의 구슬을 얌전히 내려놓았다.

지금 당장은 모르지만, 얼마의 시간을 회귀하는지 알 방법이 있다.
이강인이 테라포밍에 전이한 뒤, 죽음의 위기까지 걸린 시간이 곧 돌아가는 시간일 테니까.
아무리 넉넉히 잡아도 1년 이상일 것이라 예상된다.

하지만, 이강인에게  내용을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는 자신이 회귀자라는 것을 숨기길 원하니까.

그러나 이젠 본격적으로 이강인이 가지고 있는 정보가 필요할 때다.
내가 알고 있는 원작 속 정보는 전부 써버렸다.
그가 더이상 미래의 정보를 숨기게 두어서는  된다.
이렇게 매번 머리 써가면서 정보를 뜯어내는 것도 한계가 있지 않겠나?


“때가 되었지. 이강인의 비밀을 공유받을 때가.”


이강인은 나를 믿고 있다.
이제 와서 비밀이 알려진다고 한들 크게 경계를 사지는 않을 것이다.
그의 입장에서 나는 확실한 아군이니까.
나는 그와 터놓고 이야기하기로 결정했다.


볼일은 전부 끝마쳤다.
슬슬 신전의 2층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내려가는 방법은 간단하게  수 있었다.
내가 전이한 장소의 바닥에 펜던트 문양이 새겨져 있었으니까.
1층에서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 문양에 펜던트를 대면 이동하리라.


허리를 숙여 펜던트를 문양에 가져다 대려는 그때.

“…아니, 역시 하나 정도는 혹시 모르니 챙기는 것이 맞지 않을까?”

마음을 바꿔 역천의 구슬  개를 인벤토리에 넣었다.
계획의 A, B, C, D가 전부 무너지고, 최후의 최후  쓸만한 수가 될 수도 있었기에.
나는 이 구슬이 다시 인벤토리 밖에 나올만한 일이 없기를 빌었다.
그때가 바로 내 가장 큰 위기일 테니.

나는 허리를 숙여 펜던트를 문양에 대었다.
전신에 디시빙(Deceiving)을 사용하면서.

- !



*




“휴가는 잘 다녀왔어? 나는 왜 갑자기 부른 거야?”

의심 하나 없는 깨끗한 눈동자가 나를 쳐다본다.
서로의 눈높이는 비슷했다.
어쩐지 오랜 기억이 떠오른다.
이강인을 한참이나 올려다봐야 했었던 때가.

하지만 나는 그때 이후로 완벽하게 변했다.
이제는 내가 이강인보다 약간 크기에 그를 내려다보는 것은 내가 되었다.
사실상 의미 없는 수준의  차이지만.


“휴가 좋더라. 너도 한번 나중에 나가 봐.”

“난 과도한 구애를 받는  별로 취향이 아니라서. 그나저나 정말 무슨 이야기 하려고?  이리 뜸을 들여? 궁금하게.”

주변에 인기척은 하나 없었다.
내가 일부러 이런 장소를 선택하여 이강인을 불러내었기 때문이다.
본론을 들어가기 전, 짧은 잡담이 끝났으니 진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고 했다.
나는 표정을 굳히며 이강인을 쳐다보았다.

“…”


짧은 순간에 불과한 정적이었지만 가벼운 분위기를 바꾸는 것에는 충분했다.
평소  웃고 다니던 내가 정색을 했으니까.
이강인 또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살짝 아리송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런 그를 보며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네가 모두에게 비밀로 하고 있는 것, 하나 있지?”


“…뭐?”


내 말을 들은 이강인의 표정이 급속도로 굳는다.
가벼운 농담을 할 만한 분위기는 절대 아니었다.
나의 표정과 말에 담긴 무게가 그렇게 만들었다.

일부러 망설이듯 짧은 시간 머뭇거린 후, 다시 대화를 이어 나갔다.

“사실 전부터 살짝 의심하고 있었던 건데… 어느 정도 확신이 들어서.”


“…무슨 소리야? 나는 아무것도 숨기는 것이…”

“음… 평범히 친구로서 해주는 조언이지만, 넌 연기에 별로 재능이 없는 것 같아.”

“…그래?”

“가끔 언행 보면 티가 나잖아? 스스로도 좀 찔리는 게 있지?”

후우…


이강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표정을 보니 짚이는 것이 한두 개가 아니란 표정이다.


‘좋아. 여기까진 속였나?’

사실, 이강인이 그리 티가 날 정도로 무언가를 내보인 적은 거의 없었다.
본인도 최선을 다해 숨기기 위해 신경을 써가며 행동했기에.

하지만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을 건넸다.
나의 미소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지?’라는 의미의 신체 언어다.
 표정을  이강인은 스스로 불안해하던 자신의 사소한 실수들을 기억해 내겠지.
내가 힌트를 얻었으리라 추측하는 자신의 이질적인 행동을 지레짐작 해버린 것이다.

이강인은, 한마디로 도둑이  발을 저렸다.

“…그래. 사실, 나도 슬슬 네게 말해주려고 했어. 눈치챘다니 오히려 다행이네.”


의심하나 없이 깔끔하게 속여 넘기는 것에 성공했다.

이강인의 굳은 표정이 어쩔 수 없다는 듯 풀어진다.
언뜻 보면  표정은 무거운 짐을 어깨에서 내려놓은 듯 나름 후련해 보였다.
오히려 내게 들킨 것이 호재라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그로서도 최대한 감춰야 하는 비밀을 타인에게 이야기해 주긴 무척이나 거부감이 들었겠지.
내게 말해주려다 주저했을 것이다.
아무리 강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내가 눈치가  빠르잖아? 다른 사람은 절대 눈치 못 챘을 거야. 눈치챈 것 같은 낌새도 전혀 없었고.”

“…네가 그런 말을 해주니 좀 신뢰가 가네. 그건 다행이다. 찬영, 네 말이 맞아. 사실 나는…”


“이강인. 넌 애매하게 미래를 알  있는 이능을 얻은 거지?”


“…미래에서 회… 잠깐, 뭐라고?”

“…응? 아니야? 네 행동을 보면 맞는 것 같던데? 미래를 아는 것.”

“…?”

이강인의 표정이 어리둥절해진다.
나 또한 일부러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내어 그를 마주 보았다.


다행히 ‘회귀’라는 키워드가 나오기 전에 말을 끊는 것에 성공했다.
어째서 일부러 오해를 한 척을 했냐고?
내가 이강인이 회귀했다는 사실을 짐작하는  보다, 무척이나 귀중한 이능인 미래 예지를 얻은 것이라 예상하는 것이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이강인이 아는 나의 입장에서는, 구슬이나 시간에 관한 정보가 조금도 없으니 ‘회귀’라는 발상까지 닿는 것이 이질스럽다.
차라리 훈련생들도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인 ‘마나 각성에 의한 이능’이라는 키워드로 미래 예지 발상을 떠올리는 것이  배나 더 자연스럽겠지.

지금은 이강인이 혼란스러워하기에 눈치채고 있지 못하는 것 같지만,
만약 그가 나중에 차분히 생각을 정리한다면 분명 의심할 것이 당연했다.

‘어째서 미래 예지가 아닌 회귀라고 확신한 거지? 라고.’


그것을 막기 위한 행동이다.
 모두 이강인의 입에서 미래를 듣는다는 결과는 변하지 않으니, 최대한 의심을 덜 사는 길을 선택했다.

 말을 들은 이강인의 반응도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그도 회귀의 구슬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으니, 이능이라고 나를 속이는 것이 훨씬 편할 것이다.

내가 ‘무슨 방법으로 회귀 한 거야?’라고 물어도 ‘사실 나도  모르겠어.’라며 대답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내 의혹 어린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다.
회귀하기 직전인 곳에 가 전말을 파악하지 않는 이상, 그로서는 쉽사리 의혹을 벗을 수 없을 테고.
게다가 이미 내가 진상을 파헤치고 흔적을 지워버렸기도 했다.

이강인의 입장에서는 랜덤으로 발동하는 미래 예지를 각성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욱더 편했다.
설명하기 편했고, 의심 살 것도 없이 딱딱 들어맞았으니까.

나중에 가서 이강인이 모르는 미래가 찾아오면 그가 내게 해야  행동은 간단하다.
‘이능이 발동을 안 해! 어쩌면 능력을 잃었을 수도…’라고 말해버리면 된다.
그렇게 되면 나는 이능을 잃은 이강인을 위로해 줘야 할 것이다.
 입장에서는 도저히 능력을 잃고 상심한 이강인에게 쓴소리를 못 하겠지.

“으음… 네 표정을 보니  다른 것 같은데?”


“아니! 아니야! 애매하게 미래를 아는 것, 맞아! 와,  깜짝 놀랐어. 진짜 정확히 맞췄네.”

“…맞나?”

“맞다니까?”

“으음… 맞나보네.”

‘이강인의 연기를 잘 파악하는 나’는 살짝 의심하는 척을 해주었다.
결국은 납득한 척을 해야만 했다.
계속 그를 의심을 해봐야 나만 손해니까.

“완전히 미래를 아는 것은 아닌 걸 보니 랜덤으로 발동하냐?”

“그,그렇지!”

“미래를 아는 이능이라니… 확실히 남들에게 숨길만 하다.”

“그래서 네게 숨긴 거야!”

“그럴 거라고 예상은 했어.”


헛다리 짚은 나에게 신나서 동조해 주는 이강인.
나는 모르는  상황이 흘러가게 내버려 두었다.


이제 합법적으로 이강인의 입에서 미래를 들을 수 있었다.
위태로운 입털기의 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표정을 굳히고 그에게 물어보았다.

“우리에게 찾아올 위기 같은 건… 혹시 보였어?”

“…한가지.”


“보였다는 거네. 알고 있는  좀 공유해 줘.”

“지난번에 북부 훈련소를 습격한 놈들이 기억나?”

“반군?”


“맞아. 놈들과 전면전이 벌어질 거야.”


역시 제라드와 그 수하들인가…
 정도는 어렵지 않게 예측했었다.
반란군이 아니면 백원후같은 몬스터의 집단 습격이라고 생각했기에.


이제 내가 가장 걱정했던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전쟁까지 남은 시간은?”


“4년.”

표면으로 드러난 내 얼굴은 흔들리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4년이란 시간은 기다리기엔 너무나 길다.

‘젠장, 역시 이럴 줄 알았어.’


11구역 훈련소에서 이강인의 표정이 너무 평화롭다 했다.
그 표정은 다음 ‘에피소드’가 한참이나 후에 벌어져야 나올  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이런 확률 높은 도박에 가까운 짓을 해가며 그의 비밀을 알아챈 척했던 것이고.
언제 올지 모르는 에피소드를 기다리며 몇 년이나 시간을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반군과 전면전을 벌이기 전, 4년 동안 평화로울 것이란 맹신은 절대 할  없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새로운 변수가 등장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것도 나의 목숨을 위협할 정도의 커다란 변수는 더더욱.


여태껏 이강인이 알던 미래가 변한 이유에는 명확한 원인이 있었다.
나는 과거에 다녀오며 그 원인을 전부 두 눈으로 확인했다.
그렇다면 이강인이 아는 미래에 더 이상의 거대한 변수는 없으리라 생각 하는 것이 맞으리라.
내가 과거로 가며 발생한 변화들은 그 여파가 어느 정도 진압되었기에.

4년, 혹은 그리 많지 않을 오차 내외의 시간 동안 평화는 지켜질 것이라 가정하고 움직여야 한다.


허송세월을 보내야 하는 시간이 4년으로 확정됐다.
당연하지만, 나는 4년간 가만히 기다려 줄 생각은 없었다.

“뭐? 4년? 허… 생각보다 많이 남았네?”


“방심하면 안 돼. 놈들은 단단히 준비하고 올 테니까. 내가 본 것은… 놈들은 양동작전을 썼어. 11구역뿐만이 아니라 다른 구역까지 습격했지.”

 양동작전에 당해서 11구역과 거의 반대인 6구역에 있던 네가 죽은 거고?
퍼즐이 착착 끼워 맞춰지기 시작한다.

고작 6개월의 시간을 보낸 것도 이리 피곤했는데, 그 여덟 배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니…
역시 4년이나 기다릴 수는 없다.


“앞당기자.”

“뭐?”

“전면전을 앞당기자고. 쉘터가 먼저 놈들을 치도록 유도하자.”

“…미쳤어?”

“진심이야. 적어도 놈들이 완전히 전투 준비를 끝마쳤을 때를 기다리는 것보단 나을 것 같은데? 그 전에, 양동작전의 습격 장소와 시간 특정이 가능해?”


“전부 알고 있어.”

“좋은 소식이긴 한데… 혹시 네가 아는 미래는 절대 변하지 않는 확정 된 미래야? 지금까지 네가 본 미래 중 변한 것은 하나도 없었어?”


“그건…”

“아니지?”

“…응.”


“즉… 놈들이 4년 후가 아니라, 우리가 대비하기 전인 3년 후나 2년 후에 습격한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겠네.”


“그렇게나 시간의 오차가 크게 발생 할 리가… …없다고 말하고는 싶지만, 확신은 못 하겠네.”

“그렇겠지. 이게 가장 중요한데, 넌 반군의 근거지를 알고 있어?”


“…어떻게 알았어?”


“여러 가지 있는데, 일단 네가 나를 11구역으로 끌어들인 것과 관련이 있다고만 해둘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허… 좋아. 자세한 계획은?”


“…난 방금 이 소식을 들은 거다? 당연히 지금부터 세워야지.”


이강인이 나를 살짝 어이없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억울했다.
어이없다는 눈을 만들어야 할 사람은 나다.
얘는 나를 5초만 기다리면 기막힌 계책을 내놓는 만능 주머니로 알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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