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테라포밍
잘생긴 눈매가 떨린다.
나와 달리 눈썹이 진하고 눈꼬리가 날카로웠기에 사나운 인상을 주었다.
그것이 저리 찌푸려지니 그 정도가 심해졌다.
아무리 잘생겼다고 한들, 저 표정을 유지하면 그에게 반한 여자조차 쉽게 말을 걸지 못하리라.
물론 나는 저놈에게 반한 여자 따위가 전혀 아니었기에 아무렇지 않게 다가가 말을 뱉을 것이다.
나는 알고 있다.
저 눈매에는 씻을 수 없는 기쁨이 바탕으로 깔려 있었다.
이강인은 지금 기뻐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우연이… 나비효과? 나비효과인가?”
“이강인? 뭘 그리 중얼거려.”
“아, 찬영. 좀 좋은 일이 있어서.”
“뭔데?”
“나도 너랑 같이 11구역에 배정받았잖아. 참 우연이다 싶어서.”
“그래? 다행이네. 앞으로 잘 부탁 해.”
“그래! 앞으로도 잘 부탁할게!”
내 말에 깊은 고민을 하던 표정이 풀린다.
이강인은 기쁨을 감추지 않고 밝게 웃고 있었다.
평소에도 저렇게 많이 웃지 않는 것이 다행이다.
그랬으면 11구역 비공식 외모 1위의 내 지위가 약간 위태로웠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 둘의 외모 잘생김 정도는 그 방향만 달랐지 어느 정도 비슷했지만, 1위의 영광은 만장일치로 내가 챙겨갔다.
나는 얘랑 달리 항상 잘 웃고 다니거든.
물론 의도적인 행동이다.
이강인은 내 덕에 11구역에 배정받은 것을 모르고 있었다.
내가 담당자님한테 비밀로 해달라고했기 때문이다.
그리 밝혀봐야 좋을 것도 없을 것 같다.
의심 많은 이강인이 괜히 의심할 수도 있고.
‘들키면 얼버무릴만한 변명은 몇 가지 있지만… 어차피 들키지 않을 것 같은데 알릴 필요가 없겠지.’
- 너는 몇 구역? 어디?
- 으아… 완전히 반대네…
- 다음에 꼭 다시 보자!
훈련생들은 다들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나 또한 훈련소에서 쌓은 인연들과가볍게 인사를 나누기로 했다.
저 멀리서 애매하게 못생긴 남자 한 명이 보인다.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블랑? 넌 어디 구역이야?”
“…난 6구역.”
구역은 총 12개,
시계의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가 있는 곳이 11구역이고 블랑이 6구역이라면…
“음… 자주는 못 보겠네. 내 구역과 많이 떨어져 있으니.”
“그렇지. 나중에 휴가받으면 한번 놀러 올게. 그때까지 다치지 말고.”
“그건 내가 할 말이지. 적어도 난 지금 훈련생 중에서 가장 강하다?”
“어련하시겠어.”
좋은 기억만 남아있는 블랑과는 깔끔한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었다.
마다치 켄지 역시도 첫인상과 달리 꽤나 1인분을 넉넉히 해주었기에 순조롭게 인사를 마쳤다.
그리고 남은 인원이…
“…뭘 봐.”
“허? 난 아직 아무 말 안 했는데?”
“그래서 뭘 보냐고 물어본 거잖아.”
“까칠하긴.”
“오늘부로 넌 내 상급자가 아니야. 내게 지긋지긋하게 말을 하던 준 전투직이 아니라고. 하!”
리 샤오린은 아주 당당한 얼굴로 내게 삿대질을 했다.
표정이 아주 밝다.
아마 내게 쌓인 것이 많았나 보다.
요 한 달간 내가 상급자라는 것을 가지고 어마어마하게 놀려대었기에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다.
나와 팀을 짠 이후로 도저히 기를 못 펴고 있던 리 샤오린의 눈매가 다시 날카롭게 살아난다.
어떻게 봐도 기뻐 보이는 얼굴이다.
이제 내 얼굴을 안 보는 것이 그렇게 기쁜가?
“됐고, 넌 어디 구역인데?”
“…12구역.”
“가깝네. 난 11구역이야.”
“칫. 알아. 넌 정해져 있었잖아.”
뭐…
이래저래 악연이 많았던 여자지만 마지막까지 눈살을 찌푸린 채 헤어질 필요는 없겠지.
왜냐하면 얘는 얼굴이 되니까.
여러 번 말하지만 난 예쁜 여자한테는 상냥하다.
“나중에 동창회 같은 것도 한다던데, 그때 보자고.”
“…”
“뭐냐. 넌 그런데도 안 나올 거야?”
“나, 나오긴 할 텐데… 그…”
“어?”
“우, 우리 팀원들 그래도 생각보다 잘 맞은 것 같은데… 계속 1등도 유지했고. 가,가끔 우리끼리 모여도 되지 않을까?”
“…뭐라고?”
“크흠! 그러니까…! 그냥 동창회 말고도 우리 팀원끼리도 간간이 만나자고!! 너랑 나랑은 가까우니까 쉽게 만날 수 있을 거 아니야?!”
- 째릿!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긴 하나 보다.
얼굴이 약간 붉어진 것을 보면.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서 오히려 화를 내는 행동이었다.
이건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네.
하지만…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런 미친.’
등골이 싸해진다.
저 말을 말 그대로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사람에게는 언어 말고도 수많은 신체 신호가 있으니까.
내가 낸 결론을 한번 의심한다.
방금 그녀의 말투, 표정, 몸짓, 기타 등등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하지만 결론은 바뀌지 않았다.
리 샤오린은… 지금 내게 호감이 있다.
그것도 이성이 이성을 보는 방향으로.
…아마도 방금의 약간 기뻐 보이던 얼굴이 나랑 헤어져서 기쁜 것이 아니라, 나와 가까운 구역에 배정받아서였던 모양이다.
‘돌겠네. 어쩐지 얼굴이 바뀌고 난 이후, 리 샤오린의 반응이 좀 변하더라.’
내가 놀릴 때 성격답지 않게 약하게 반응했었다.
원래의 다혈질인 그녀 성격이라면 눈 돌아가서 덤벼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나는 그것이 ‘상급자’라는 서열이 정해져 있기 때문인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연예인은 물론이고 전문 모델급의 외모와 비슷한 나의 얼굴 때문인가보다.
‘아니… 생각해 보니 내게 태도가 변한 건 그보다 좀 전인데?’
얼굴이 잘생겨지지는 않고, 단순히 키만 컸던 시절인 팀 훈련 때도 그녀가 내게 까칠하게 반응한 적은 없었다.
그건 그녀와 한 약속 때문인가?
리 샤오린의 자신이 쫄아 붙은 것이 아니란 것을 증명하기 위한, 팀 훈련에 최선을 다해 따라오겠다는 약속.
음…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가 내게 호감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나는 내 대답을 살짝 초조한 얼굴로 기다리던 리 샤오린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러자.”
“그래? 흐… 그럼 나는 가본다?”
“잠깐, 이곳에는 핸드폰도 없는데 어떻게 서로 만날 생각이야?”
“어… 너랑 나는 가까우니까 그냥 합숙소에 찾아가면 되잖아?”
“그럼 다른 팀원들은 어떻게 하고?”
“…”
“…뭐. 어떻게든 되려나?”
“그,그렇겠지. 난 진짜 가본다? 다음에 봐!”
- 휙!
리 샤오린의 등이 조금씩 멀어진다.
아무리 봐도 리 샤오린은 팀원과 만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나와 만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것이얼굴의 힘인가?
나는 내가 가진 힘에 약간 두려워지며 전율했다.
‘음… 적어도 테라포밍에서는 크리스 때문에 더 인연은 안 만들려고 했는데…’
일단 완전히 끊어내지 말고 간만 봐야겠다.
어장질이라고?
어장질 맞다.
나는 약간 멀어진 리 샤오린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이쪽을 보라는 것처럼 손을 높이 흔들며.
“아! 리샤오린!”
“어?”
“늦었지만, 그때 네가 쫄아붙었다고 오해한 것! 미안해! 사과할게!”
“…됐어. 이 머저리가.”
살짝 귀를 붉힌 리 샤오린이 사람의 틈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나는 티가 나지 않게 주변을 흩어보았다.
방금 그걸크리스는 못 봤겠지?…
다행히 크리스는 주변에 없었다.
*
강한 수컷에게 여성이 끌리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자신을 좀 더 확실하게 지켜줄 남자를 찾는 것은 유전자의 각인 된 어쩔 수 없는 본능이었다.
그것이 리 샤오린에겐 특히 더 중요하게 여겨졌을 뿐이다.
‘젠…장!… 어쩌자고, 어쩌자고 그런 말을 했지? 다음에 볼 때 무슨 말을 해야 하지?’
리 샤오린은 강한 남자를 좋아했다.
아니, 정확히는 무능력한 남자를 혐오한다고 해야 옳으리라.
그래서 그녀는 처음에 박찬영을 혐오했다.
박찬영의 첫 외견은 딱 봐도 무능해 보였으니까.
하지만 그가 브랙 교관과 함께 지옥 훈련을 시작한 이후로 박찬영이란 사람에 대한 인식은 뒤바뀌듯 변했다.
단순히 외견이 변했다는 것이 아니었다.
리 샤오린이 보기에 그는…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훈련소가 습격당했을 때… 걔 혼자만 냉정하게 모두를 이끌었지. 교관한테도 신뢰 받고 있는 것 같았고…’
리 샤오린의 색안경이 처음 벗겨진 날이었다.
그날을 기점으로 단순한 호기심 삼아 박찬영을 관찰하게 되었다.
그가 보기보다 훨씬 성실하다는 것을 알게 된 리 샤오린은 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지웠다.
오히려 약간 쓸만한 사람을 보는 호의적인 시선으로 보게 되었다.
리 샤오린이 그와 같은 팀이 된 것은 정말로 우연이었다.
그때의 그녀는 별로 기뻐하지 않았다.
특별한 감흥이 없었다.
그냥 박찬영과 한번 마찰한 기억이 있었기에, 친근하게 대하기도 뭐해서 의도적으로 퉁명스럽게 대했을 뿐이었다.
‘…그랬더니 불려 나갔지.’
꽤나 욱했다.
괜찮게 보던 사람에게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오해를 당하는 것은.
리 샤오린과 박찬영은 어린애 같은 약속을 했다.
그 약속 내용은 내심 그녀가 바라던 것이었다.
그녀 또한 팀 훈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었으나, 단순한 자존심 때문에 그러지 못했을 뿐이니.
리 샤오린은 약속을 지켰다.
박찬영 역시 약속을 지켰다.
방금 헤어지며 그에게 사과받았을 때, 어쩐지 무척이나 그녀의 가슴을 들뜨게 했다.
리 샤오린이 인정한 그에게, 그녀 또한 인정받은 것만 같았다.
아직까지도 리 샤오린의 심장은 두근거리며 뛰고 있었다.
팀으로 함께 할수록, 시간이 갈수록 박찬영은 빛이 났다.
그의 판단은 틀린 적이 드물었으며, 다른 누구보다 독보적으로 팀을 이끌어 나갔다.
그런 그를 리 샤오린은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박찬영의 팀원이었으니까.
박찬영은 리 샤오린이 만난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했고, 능력 있었으며, 성격까지 좋았다.
게다가 무척현명하고 똑똑하기까지 했다.
전투직도 사냥을 힘들어하는 괴물을 잡았다.
쉘터 내부 역사서에 혁명을 일으킬만한 발견을 했다.
남다른 무력을 모두의 앞에서 선보이며 인정받았다.
…물론 얼굴까지 무척 잘생기게 변한 것도 톡톡한 역할을 했다.
사실상 그것이 그녀의 마음에 쐐기를 박아버렸으니.
그리고 그와 팀으로 함께한 두 달이 지났을 때,
눈치를 채보니, 리 샤오린은 박찬영에게 커다란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
‘진짜… 연인 있는 남자한테 꼬리치는 년이 그렇게 역겨웠는데… 뭐 하는 짓일까? 나는.’
매달리는 여자를 볼 때면 ‘저 여자는 자존심도 없는 걸까?’라고 생각하던 그녀였다.
하지만 그런 리 샤오린도 그런 여성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했다.
그를 더이상 매일 볼 수 없다는 것에 고통을 느꼈다.
박찬영과 가까이 배정받았단 것에서 커다란 안심을 느꼈다.
리 샤오린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기에.
그래서 눈 딱 감고 질러버렸다.
진의를 숨긴 권유에 가까운 한마디였기에 리 샤오린으로써는 자신의 속내가 박찬영에게 들켰을 것이라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전부 들켜버렸지만.
리 샤오린은 일단 그와 자주 만나면서 교관으로부터 박찬영을 빼앗아 볼 생각이었다.
처음 찾아온 이런 인연을 쉽게 포기하기에는 그녀의 성질이 도저히 허락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 스스로가 생각하는 크리스 교관을 이기는 자신의 장점은 여럿 있었다.
‘외모는… 으… 모,모르겠고… 나는 그 미친년보다 훨씬 어려! 게다가 성격도 좋아!’
북부 훈련소에서 리 샤오린보다 더 사나운 성격은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을 때, 상당히 오해가 가득한 말이었다.
크리스 베넷의 연기 때문이리라.
게다가 크리스 베넷은 그녀가 보유한 수많은 마나로 인해 노화가 상당히 늦어져 겉보기에도 리 샤오린과 그리 나이 차이가 나 보이지 않았다.
역으로 모르는 사람에게 리샤오린쪽이 연상이라고 하면 ‘아하.’ 정도로 납득이 가능할 정도이니.
즉, 리 샤오린은 지금 첫사랑에 눈이 가려져 판단력이 상당히 흐트러져 있었다.
자신감이 줄어드는 쪽이 아니라 과도하게 많아지는 쪽으로.
‘시간과 나의노력만 있으면… 불가능할 것도 없을 것 같은데?’
단순히 가끔 만나자고 하는 요구도 벌벌 떨면서 했던 리 샤오린은, 그 기억을 까맣게 잊은 채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녀는 박찬영의 손아귀에 장난감 마냥 가지고 놀림당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가진 연애 경험의 차이가 까마득했으니까.
자신이 조종당하고 있다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한 채, 박찬영의 앞에서 그를 기쁘게 하기 위해 춤추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