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화 〉테라포밍
엄청나게 못생겼던 사람이 갑자기 잘생기게 변했다.
그러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정답은 잘생긴 얼굴 앞에선 못생겼던 과거 따윈 까맣게 잊어버린다.
- 힐끗. 힐끗…
훈련장을 지나가는 나를 향하는 시선이 여러 개는 되었다.
그 대부분이 여성 훈련생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내가 밤사이에 죽었는지 아니면 멀쩡히 살아있는지 신경조차 쓰지 않던 사람들의 관심이 한 몸에 쏠렸다.
그것을 스스로도 알고는 있는지 내게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훈련생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11구역에 근무하고 있는 여성 전투직들이었다.
- 야야, 쟤 몇 번을 봐도 진짜 잘생겼다…
- 헉! 너 몰라? 쟤 교관님의 연인이야!
- 알긴 하는데… 에휴… 차라리 눈에 보이지나 말지… 으으… 계속 번뇌가…
- 못 참는 순간 웃으면서 못 넘긴다…?
저렇게 나를 향해 소근대는 전투직들은 얌전한 축에 속했다.
몇몇은 나보고 잠깐 이야기나 하자며 데이트 신청까지 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요즘 크리스는 신경이 조금 날카로워져 있었다.
‘후… 이강인이 어그로를 좀 나누어 받지 않았다면 피곤할 뻔했네.’
그의 첫 만남에서 묘사했듯이, 이강인은 무척이나 잘생겼다.
굳세고 단단한 남성미가 넘치는 동양인 남자의 대표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강인과 조금 다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큰 눈에 비해 주먹처럼 작은 얼굴.
무표정일 때보다는 웃을 때 훨씬 매력적인 상의 얼굴이었다.
즉, 대형견 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이미지를 가진 얼굴은 내가 의도해서 만든 것이다.
이강인과 같은 날카로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면 부담스러워서 다가오지 못하는 여자가 많다.
딱 보기에도 여자 경험이 무척 많아 보였고, 어느 정도 용기 없이는 친해지기조차 어려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큰 눈과 부드러운 눈매는 순박하다는 인상을 준다.
절대 남을 속이거나, 인성에 논란을 일으킬만한 일에는 전혀 관련이 없을 것만 같이 생겼다.
내게 큰 무기가 되어주는 것이다.
이처럼 후배나 연하 느낌을 주면서도 큰 키와 단단한 근육을 가진 남성적인 매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면 홀리지 않을 여자가 없다.
여자 경험이 많을 것 같지 않은 순수한 외모는 이강인과 달리 인기를 끌어모으기 딱 좋은 외모다.
내 모든 연애 경험을 걸고 장담할 수 있다.
“엇? 찬영?”
“아, 크리스 교관님.”
“그! 크흠. 크흠…! 그래. 음. 찬영.”
크리스는 자신에게 존댓말을 하는 내가 무척이나 어색하게 느껴지나 보다.
몇 번 말을 꺼내려다가 고쳐서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여전히 내게는 연기를 잘하지 못하는 그녀였다.
훈련생과 전투직들이 보는 앞에서는 이렇게 존댓말을 하기로 그녀와 약속 했다.
크리스를 배려해 내가 먼저 나서서 그녀에게 권유한 것이다.
잠깐 고민하다 나에게 미안하다며 거절하려 했던 그녀였지만, 내가 억지로 밀어붙여서 받아들이게끔 했다.
아무리 연인이라고 한들 훈련생과 교관이 서로 말을 놓고 격 없이 지내면 그녀가 고생해가며 쌓아 놓은 권위 또한 흔들릴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크리스가 내게 존댓말을 듣는 것을 어색해하는 것 또한 묘하다.
이런 말을 크리스에게 하면 울상을 지으며 내 옆구리를 마구 꼬집겠지만, 지금 그녀는 명백한 내 연상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두 살이 아니라 네다섯 살 이상 차이가 나는.
‘노화가 늦춰져서 나랑 비슷해 보인다고는 해도 일단 스물 일곱 살이니까.’
크리스는 꽤나 ‘도둑놈’이라고 들을만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저 담당자님에게 호출이 있어서… 이번에도 신전의 유물 관련해서 물어볼 것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또?”
“네. 한 두세 시간쯤 걸릴 것 같다네요.”
“…근데 찬영의 담당자 여자였지?”
“그, 그렇죠?”
나는 의외의 질문에 살짝 당황했다.
크리스의 눈을 보니 농담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내 담당자를 경계하고 있었다.
‘크리스가 이렇게 질투가 많았었나?’
분명 7년 전에도 똑같이 나를 노리는 여자 훈련생이 많았는데, 그녀는 그다지 견제를 하지 않았다.
아니, 그때는 능력이 안 돼서 못했을 뿐이고 이제는 할 수 있으니 하는 것인가?
어찌 보면 연인으로서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연인을 노리는 연적을 치우는 것은…
나 같아도 크리스를 진심으로 노리는 놈을 발견하면 눈이 돌아갈 것이 분명할 테니까.
‘음… 아니면 7년간 나와 강제로 헤어지는 경험을 하며, 나를 또다시 잃는 상황을 무서워하는 것일 수도 있고.’
크리스의 입장에서는 나와 재회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았다.
천천히 그녀의 곁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크리스의 질투가 줄어들 수도 있다.
- 스윽…
“앗?”
- 흠칫!
손을 뻗어 크리스의 손을 잡았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이쪽에 집중되어 있음에도.
내 행동에 대한 그녀의 반응은 깜짝 놀라며 주변을 흩어보는 것이었다.
나랑 한 약속을 떠올리며 당황한 것 같았다.
그것이 아니면 그저 연애 행각을 공개된 장소에서 하는 것이 부끄러웠던가.
“…자…잠깐…! 다들 보고 있는…”
“이정도야 괜찮지 않을까요?”
아무리 그래도 연인 관계인 성인 2명이 손을 맞잡는 것 가지고 뭐라고 할 사람은 없겠지.
그때,
크리스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이대로 가면 점점 더 붉어지다가 금세 크리스의 얼굴이 전부 새빨개지리라.
- 스윽.
“…알겠어요. 손 놓을게요.”
“어?… 으응…”
나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부끄러워하는 크리스의 모습은 오로지 나만 보고 싶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나만이 알던 크리스의 귀여운 모습을 공유하기 싫은 마음이 들었다.
이것이 독점욕일까?
방금의 크리스가 나의 담당자를 경계한 것과 같은?
나는 크리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했다.
*
- 터벅터벅.
나와 크리스는 둘이서 건물 뒤편을 걷고 있었다.
그냥 간단한 산책 겸 데이트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에 우리 둘은 서로 편하게 말을 나누고 있었다.
“브랙이 오면 널 보고 엄청 놀랄 텐데,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네. 킥킥!”
“아, 브랙 곧 오려나?”
“응. 이제 슬슬 올 때야.”
지금 브랙은 팀 훈련 시험에서 떨어진 팀들을 지옥 훈련 속에 밀어 넣고 있다.
날짜를 세어보니 정말로 며칠 남지 않았다.
곧 브랙이 이곳으로 올 것이다.
음…
무뚝뚝하던 그가 날 보곤 뭐라고 반응할까?
나도 이건 조금 궁금하긴 했다.
7년 전 나와 그의 사이는 꽤 좋은 축에 속했으니까.
“…내가 너희들 중 제일 강했는데, 이제는 제일 약하겠네.”
“글쎄… 빅터를 사냥할 때도 그렇고, 준 전투직을 수여받기 위해 실력을 증명 했을 때도 그렇고 찬영보고 약하다고 하는 사람은 절대 없을걸?”
“그런가?”
“찬영은 전투 센스도 엄청 좋으니 카야나 마할도 쉽게 이길 거야.”
마할은 모르겠지만 카야는 확실하게 이길 수 있다.
‘쉽게’는 아니겠지만 일대일의 결투라면 절대 지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오만이 아닌 냉정한 분석이었다.
마할의 전투력은 스텟상으로만 알고 있을 뿐, 그가 가진 센스는 전혀 모른다.
하지만 카야는 다르다.
팀 훈련을 하며 그녀의 움직임이 눈에 익은 것이다.
대인전에 좋지 않은 카야의 스킬 특성상 큰 변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돌아오고 나서 카야의 얼굴을 본 적이 없네.”
“카야?”
“응.”
나를 백원후 빅터의 공격에서 감싸주느라 기절까지 했는데 감사 인사도 못 전했다.
최근 그녀가 정말 바쁘게 일을 했기 때문이다.
크리스를 대신해서 훈련생들을 통솔하는 것에 더해, 11구역 합숙소에 찾아온 학자들 덕에 늘어난 일거리를 거들기까지 했다.
게다가 조교로서 그녀가 가진 본래의 업무까지…
‘하필 내가 한창 신전에서 겪은 일을 담당자님이랑 얘기할 때라, 카야와 전투직 실습도 한번을 못 했네.’
저렇게 바쁠 때는 찾아가서 시간을 빼앗는 것도 실례다.
언젠가 일이 좀 마무리가 되는 것 같으면 그녀를 찾아가도록 해야겠다.
아무리 카야가 다치지 않았다고 한들 은혜를 입은 것은 사실이다.
“크리스 넌 카야랑 조금 친하지 않았어?”
“카야라… 친하냐고 물어보면… 애매해. 사실, 난 걔가 조금 좀 껄끄럽거든.”
“껄끄럽다? 무슨 뜻이야?”
“이런 말 하면 뒷담화 같지만… 언뜻 보면 평범해 보이기도 하는데, 내가 카야를 가르칠 때 겪은 일화를 생각해보면…”
크리스는 말끝을 흐렸다.
표정을 보니 카야를 훈련시키던 중, 짚이는 사건 몇 가지가 있나 보다.
내게 그 일화를 말해주려는 듯 입을 뻐끔거리다가, 결국 한숨을 한번 내쉬곤 말을 삼켰다.
“…자세히 말하기엔 좀 그러네. 그래서야 완전한 뒷담화니까… 어쨌든 내가 평가 하기로는 카야에겐 약간 이기적인 측면이 있어서.”
“이기적이다라…”
“음… 그냥 나의 감일 뿐인데, 언젠가 사고를 한번 크게 칠 것 같은 느낌?”
“아하. 어쩐지 네가 카야와 정도 이상 친해지지 않게 벽을 치는 느낌이더라… 교관님이라고 부르도록 강요한 것도 그렇고.”
“뭐… 그렇다고 완전히 친분이 없는 건 아니야. 내가 찬영과 첫 만남에서 보여준 그 화염구는 카야의 이능이니까.”
역시 그 화염구는 카야의 스킬이었네.
하긴, 그렇지 않고서야 설명이 안 되긴 했다.
크리스는 무어라 설명하기 애매한 표정을 만들었다.
나는 크리스의 조언을 가슴에 새겼다.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초인의 감이란 것은 어찌 보면 꽤 신뢰할 만한 것이었으니.
“엇? 이쪽으로 누가 오는데?”
“누구?”
“…이건… 카야 같은데?”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크리스의 말대로 나에게도 카야의 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최근 그녀도 바쁜 것 같았고, 지금은 데이트 중이니 슬쩍 피할까?
아직 나와 크리스는 데이트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어엇? 찾았다!! 베넷 교관님!!”
- 탁탁탁탁!!
카야가 우리를 발견하고 이쪽으로 빠르게 뛰어왔다.
그녀의 목적이 우리를 찾는 것인 것 같았다.
어째서 우리를 찾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것 그녀에게 감사 인사나 해야겠다.
“카야. 지금까지 찾지 않아서 미안해요. 몸은 괜찮아요? 그때 저를 구해주셔서…”
“베넷 교과아안님!! 그리고 찬영씨!!!”
“네?”
“둘이, 둘이 사귀고 있다는 소문이 진실… 어라?! 차, 찬영씨 맞아요?… 얼굴이…”
“…저 박찬영 훈련생 맞습니다. 좀 특이한 경험을 해서.”
도대체 얼마나 바빴으면 한동안 훈련생들을 뜨겁게 달구었던 나의 외모 관련 화제를 처음 듣는 듯한 표정이지?
그 말 그대로 내 얼굴을 보는 카야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왜인지 카야의 볼이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 처억!
“크흐흠!! 맞아! 찬영은 지금 내 애인이야.”
나와 카야의 사이를 가로막는 여인이 있었다.
당연히 카야의 불온한 눈빛을 감지한 크리스였다.
카야는 크리스의 얼굴을 보고 정신을 되찾았다.
그나저나 어째서 카야는 우리를 찾은 것이지?
“아, 앗! 그렇군요! 축하드려요!! 와아… 그,그런데 엄청 잘생겨지셨네요?”
“감사합니다.”
“두 분, 두 분 어떻게 만나게 된 건가요?! 누가 고백했어요?! 으으…! 이거 물어보고 싶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더라고요!”
“…그거 물어보시려고 저희를 찾아 뛰어 온 겁니까?”
“네!!”
연애 이야기를 무척 좋아한다는 스스로의 말답게 카야는 흥미진진한 눈으로 우리 둘을 쳐다보았다.
크리스는 뜻밖의 질문에 살짝 당황한 얼굴이었다.
나와의 연애 관련 이야기라면 도무지 연기에 성공하지 못하는 그녀였다.
“고백은 제가 교관님에게 했어요. 교관님은 며칠 지내보자고 하시다가, 결국 수락하셨고요.”
“꺄아아악!! 요,용기 있어요!! 그렇다면, 그렇다면…!! …서로 진도는 어디까지…?”
“야!! 카야! 일 안 해? 슬슬 가야 하지 않을까?”
“힉! 아,알겠어요… 그러면 다음 기회에…”
“다음 기회가 어디 있어! 빨리 일이나 하러 가!”
결국 카야는 크리스에게 쫓겨나고 말았다.
시무룩한 얼굴로 다시 일을 하러 가는 카야.
그녀에게 한번 도움을 받아서일까?
나는 카야의 쓸쓸한 등이 안쓰러워 보였다.
“너도 다리 다 나았으면서.”
“그래서 요즘은 일하고 있잖아? 지금은 그저 쉬는 시간일 뿐이고.”
“…그러네. 다시 생각해 보니 카야가 잘못한 것이 맞다.”
“그치?”
가재는 게편이다.
나는 카야보다는 크리스의 편을 들어주기로 했다.
*
“으음… 어떠려나?”
카르마로 나의 키를 늘리려고 시스템창의 외모 편집을 켰을 때이다.
갑작스럽게 조금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시스템의 외모 편집으로 나의 키나 몸무게를 변경시킬 수 있지 않던가?
혹시나 나의 키를 5M 이상 늘리려고 하면 어떻게 될까?
거인이 되거나 반대로 소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된다면 추후에 써먹을 만한 패가 될지도 모른다.
실제로 늘릴 생각은 없었다.
그저 시도해보고, 변경을 수락하겠냐는 창에서 취소를 누르면 된다.
나는 RPG 게임의 커스터마이징 창처럼 3D 화면으로 둥둥 떠 있는 나의 키를 쭉쭉 늘려보기 시작했다.
190cm, 200cm, 205cm…
그리고,
띠링!
=
[알림]
외모 편집은 인간의 형태만이 가능합니다!
=
‘가장 최대로 늘릴 수 있는 키는 210cm가 한계인가?’
이번 하드모드 퀘스트를 클리어하며 얻은 스킬, 디시빙(Deceiving)에서 그렇듯 외모 편집 역시 인간의 형태로만 변경이 가능한 것 같았다.
아마 키 크는 약도 이것과 비슷하게 거인이 되는 것을 막아 놓았으리라.
나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원래의 목적대로 얌전히 내 키를 늘리기 시작했다.
띠링!
150cm와 155cm가 거기서 거기인 작은 키듯이, 180cm와 185cm도 별 차이 없이 커다란 키다.
예민한 사람이 아니고선 잘 눈치채지 못한다.
항상 나를 보아오는 크리스는 눈치챌 수 있겠지만, 그녀는 내 말을 쉽게 믿어주니 화제를 돌리기도 쉬울 것이다.
남자는 20대 초반에서도 키가 큰다는 말도 있고.
그렇게 내 키는 185cm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