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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86)화 (86/310)



〈 86화 〉테라포밍

- 터벅터벅.

11구역은 최근 들어 부쩍 소란스러워졌다.
그야 그럴 법 하다.
 세계에서 최초로 문명의 흔적이 발견되었으니까.


내가 시간의 신전이라 이름 붙인 그곳은 나에게 발견되었고, 크리스와 마할의 증언까지 더해져 완벽한 사실로 판명이 났다.
원래라면 백원후 빅터를 7년 만에 사냥 완료한 것도, 아무리  상처를 입었다고 한들 그 백원후를 훈련생의 신분을 가진 이가 죽였다는 것도 커다란 이슈가  법한 이야기지만…

‘아무리 그래도 신전을 발견한 것만큼 뜨거운 화제는 없지.’

나는 백원후 슬레이어나, 네임드 킬러 같은 멋들어진 별명보다는 신전의 최초 발견자로서 이름이 알려졌다.
사실 이런 오그라드는 별명이 안 붙은 것에 내심 안도하기도 했다.

11구역 전투직 합숙소에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몰려들었다.
그 대부분이 전투직이 아닌 학자로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신전에 베이스캠프를 짓고 먹고 자며 무언가를 조사하는 것 같았지만…
소득이 있는 눈치는 아니었다.
7년 전이라곤 해도 그 신전은 이미 내가 꼼꼼히 뒤졌으니까.

끼익…쿵.

“으엑… 진짜 적응  되네.”

방에 들어온 나를 보고 리 샤오린이 얼굴을 구겼다.
너무나 잘생겨진 나의 얼굴을 보고 한 반응이다.
정말로 내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게 가진 거부감 때문에 이러는 것이다.
아무리 봐도 내 외모는 도저히 호불호가 갈릴  없거든.
리 샤오린이 내게 저러는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기에 익숙하긴 했다.

“난 훈련생인 너랑 달리 준 전투직인데 내게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거야?”

“…”

“적어도 네가 훈련소 졸업할 때까지는 쪽이 상급자다?”


“…누가 모른대?”

“모르는 것 같길래.”

“…”

나는 살짝 웃으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샤오린은 떨떠름하게 내 눈을 피했다.
오늘도 가볍게 1승을 챙긴 나는 고개를 돌려 우리의 말다툼을 구경하던 나머지 세 명을 보았다.

“…너 바람피운다고 교관님한테 다 말한다?”

“야아!! 블랑 너 미쳤어?! 왜 나랑 얘랑 엮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숙소의안을 울렸다.
블랑의 말에 리 샤오린이 발작하며 반박한 탓이다.

내가 크리스와 만나는 것은 11구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가 되었다.
훈련소 내부의 남자들은 나를 존경하는 눈치였다.
교관인 크리스를 꾀어낸 때문이 아니라, 아주… 아주 독특한 성격의 그녀를 연인으로 받아들인 나의 넓은 스트라이크 존에 감탄했기 때문이다.

‘뭐… 아직까지 이따금 연기는 하고 있으니까.’

나와 사귀는 것과 별개로 크리스의 미친 사람 연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전처럼 자주는 아니고 일주일에  번 정도로 가끔.


그녀가 기행을 줄여가는 이유는 슬슬 훈련 진도가 막바지에 닿았기 때문이다.
크리스의 행동이 연기인 것이 들키면 조금 곤란해지겠지만, 그렇다고 훈련생들이 반발심을 가지고 항의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팀별 훈련이나 실습 훈련의 경우는 첫 달 기초 체력 훈련만큼 힘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달라진 점은 브랙이 말리던 그녀를 내가 말리게 되었다는 것 정도가 있겠다.


“두  만에 사람이 이렇게나 바뀌어도 되는 거야?”


“주먹으로 바위도 부수는 세상인데 뭘.”

“하긴, 이 세계에서 상식을 바라는 것도 좀 이상하긴 해.”

“그나저나… 지금  고민에 대해 네 의견도 좀 듣고 싶은데 시간 되냐?”

“내 의견?”


끄덕.


나는 이강인의 되물음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별로 심각한 고민은 아니라는 듯이.

네임드 백원후 빅터의시체는 수습되었다.
게다가 문명의 흔적을 발견했다는 성과까지 올렸다.
나는 그에 대한 보상을 중앙 지휘소로부터 몇 가지 받았다.

 번째로 쉘터 내부에서 사용할  있는 재화다.
그 재화는 처음 보는 지폐의 형태로 되어 있었다.
종이조차 쉽게 구할 수 없는 이곳에서는 위조조차 불가능하니 지폐를 화폐로 사용하는 것은 괜찮은 선택이었다.
나는 인벤토리 기능 덕에 어떠한 형태의 화폐든 보관이 쉬우니 상관없었지만.

두 번째는 임시 전투직 승격이었다.
그 기한은 무려 훈련소를 졸업할 때까지.
빅터를 잡기는 했지만, 내 무력을 한 번 더 검증받은 후에야 인정을 받고 준 전투직으로 임명받을 수 있었다.
물론  달이 지나면 완전한 전투직이 되기에 의미가 없어지는 보상이다.
허나 방금처럼 내게 맞서는 리 샤오린을 권력으로 찍어 누를 때면 꽤 즐거웠기에 불만은 없었다.


마지막 보상은 내가 직접 중앙 지휘소에 구체적인 요구를 했다.
그것이 바로…


“훈련소를 전부 수료하면, 어디 구역으로 전입 가는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해?”

“…그게  의견을 듣고 싶었던 고민?”


정식으로 전투직이 되었을 때, 내가 갈 구역을 선택할 수 있는선택권을 달라는 것이었다.
중앙 지휘소와의 협상 끝에 이 선택권 2개를 받아내었다.
기존의 전투직 배분 방식은 나름 균형을 맞춘다고 하긴 하지만,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는 것은 꿈도  꾼다.
내겐 반드시 이 선택권을 받아내야 할 이유가 있었다.

“응.  12개의 구역이 있다더라. 이곳 11구역을 제외하고는 정보를 하나도 모르니 어딜 골라도 사실상 복불복이잖아?”


“그러네.”

“그래서 그냥 가볍게 네 의견을 물어 보는 거지.”

나는 깊은 생각 따위는 담기지 않았다는 것처럼 가벼운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이강인이 의심하지 않게끔.

“으음…”


내 질문을 들은 이강인이 살짝 굳은 얼굴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가볍게 물어본 질문의 대답에 필요한 시간치고는 약간  시간이 흘러갔다.
곧, 이강인의 입이 열렸다.

“…역시 11구역이 좋겠지? 한 달간 지내면서 안면을 틀 것 같으니.”

“그래? 그럼 그러지 뭐. 이강인 너도 11구역으로 배정받으면 좋겠네.”

“응? 아… 음… 그러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확률은 낮겠지…”


“1/12이니까 이 정도면 기대해 봐도 좋지 않을까?”

“하하. 정말 그러면 좋겠네.”

이강인은 살짝 분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방금 이강인의 말을 정리해 보면 이런 뜻이 된다.


‘즉… 회귀자의 정보에 의하면 다음 ‘에피소드’가 벌어지는 장소가 11구역이라는 건가?’

이강인은 ‘친구니까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아!’라며 쓸모가 많은 나를 사건에서 떨어뜨릴 만한 성격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억지로라도 끌어들이며 최대한 유능한 사람의 손을 빌리려 할 것이다.
그도   죽기는 싫을 테니.

‘11구역이라… 이대로라면 이강인은 그곳에 배정받지 않겠네.’

원작 속에 회귀하기 전 이강인이 배정받은 구역은 어디인지 적혀 있지 않았다.
하지만 11구역만은 절대 아니었다.
회귀의 구슬을 주운 곳과 시간의 신전은 멀리 떨어져 있었다고 적혀있었으니.
즉, 방금의 이강인이 분한 얼굴을 한 이유는 11구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자신이 개입하지 못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그가 11구역으로 배정받을 확률은 아주 낮을 것이다.


내가 받아낸 선택권 2개가 아니었다면.

‘실습 훈련 기간 동안 사건이  하나 벌어질 수도 있겠지만… 그건 적당히 이강인의 언행을 보며 짐작할 수밖에 없나.’


이강인의 언행은 의외로 읽기 쉬운 부분이 있으니 사건이 생기기 전에 미리 알아챌  있을 것이다.
나는 생각의 정리를 모두 마치고 이강인에게 말을 했다.

“음… 나는 잠깐 가볼 곳이 있어서.”


“네 연인?”

“하하, 그럴지도? 약간 늦을 수도 있어.”

“…너무 뜨겁네.”


“연애 초기가 다 그렇잖아? 그럼 가볼게.”


터벅터벅. 끼이익… 쿵!


나는 11구역 전투직 합숙소에 머물고 있는 나의 담당자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강인과 내가 배정받을 구역을 확정 짓기 위해서.




*


따뜻하고 조그마한 손에 내 손바닥 위에서 꼬물거린다.
그 손의 주인은 바로  옆에 있었다.


나는 담당자에게 찾아간 이후 숙소로 돌아가지 않았다.
크리스를 만나기 위해 그녀의 방을 찾았다.
물어볼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질문을 받은 크리스는 열심히 내게 설명을 해주며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
7년 전 내가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지에 대해서.


“그럼 나는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다고?”

“응. 그래도 7년 전 일이다 보니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찬영에게 엄청나게 고마워하는 사람도 거의 없을걸? 사실상 기록으로만 남겨져 있는 정도야.”

“그들에게 보답받자고 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상관없어.”

“…역시 찬영은 너무 착해.”

“아닐걸?”


- 씨익.

나는 크리스에게 웃어주었다.
쉘터에게 보상을 받지는 못하겠지만, 난 이미 시스템에게 많은 보상을 받았다.
기록으로만 남겨져 있다면 그들이 내게 느끼는 감정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커봐야 위인전에 적혀져 있는 위인에 대한 감사 정도겠지.

그렇다면 내가 굳이 시간 여행을 만천하에 공개할 필요는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쉘터에게  뜯어낼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귀한 몬스터의 가죽 갑옷이나 칼일 텐데…
내겐 이미 백원후의 가죽 갑옷이 있었고, 주먹을 주로 쓰는 내게 칼은 큰 의미가 없었다.

‘안 그래도 얼굴이 변한 것 때문에 학자들한테 잡혀서 조사니, 뭐니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데…’


여기서 더 그들에게 시달리기는 질색이었다.
단순한 유물에 의한 외적인 변화 정도로 이렇게 질문 공세에 휩싸였는데, 직접적인 시간 여행을 했다고 한다면?

‘끔찍하다. 끔찍해…’


차라리 그 시간에 훈련에 매진하여 스텟을 하나라도 더 올리겠다.
아니면 이렇게 크리스와 손을 잡고 둘만의 시간을 보내던가.

만지작만지작…


“근데 있잖아… 찬영의 손이 원래 이렇게 컸나?”

“응?”


“7년 전에는 손바닥이 조금 작았던 것 같았는데… 음… 내 착각인가? 신경 쓰지 마!”


“싱겁긴.”

- 피식.

나는 크리스의 질문에 살짝 놀랐다.
당연하지만 얼굴은 한참 전에 완벽하게 고쳤다.
피부 결, 눈의 크기, 콧대, 광대뼈, 턱뼈, 피부의 톤, 눈썹의 진하기의 정도, 이마의 넓이와 귀의 모양까지.
겉으로 보이는 대부분의 것들을 전부 뜯어고치는 대수술을 한 것이다.

하지만 내 몸에는 얼굴과 키를 제외한 문제가 아직 몇 가지 남아 있었다.
여자들에게 설렘을 주기엔 많이 부족한 단풍 손, 고르지 못한 치열, 일그러진 발의 모양새가 그러했다.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쌓이는 카르마를 소모해 세세한 부분의 하나하나를 전부 고쳐나갔다.

지금  손가락은 가늘고 기다랗게 변해 섬섬옥수라는 말이 어울렸고,
치열 또한 가지런히 균형을 맞춰 흰색의 빛을 띠고 있었다.
어딘가 짓눌린 것만 같은 발의 모양 역시 페디큐어 모델로 나갈  있을 만큼 아름답게 변했다.

 예전 육체인 ‘백하민’의 전성기 시절 몸은 진작에 추월하고도 남았다.
아마 지금도 명동의 거리를 거닐면 모델 권유 명함쯤은 7장 넘게 받을 수 있으리라.

‘이제 옷에 가려진 피부도 얼굴의 피부처럼 윤기를 넣어주기만 하면 완성인가? 아! 피부 톤도  백색 빛을 띠게 만들고, 키도 185cm까지만 키우자.’


그 이상은 고쳐봐야 ‘취향’의 영역이다.
날카로운 표범상의 미남을 좋아하는 여자와 순박한 대형개의 상을 좋아하는 여자가 있듯이 취향이 갈릴 뿐이다.
즉, 나는 곧 대한민국에서 세 손가락에 꼽히는 완벽한 육체를 얻게 되는 것이다.

“…너는 복 받은  알아야 해. 크리스.”

“어?”

“너 예쁘다고.”


“엣? 아… 응… 고,고마워…”

- 꼼지락꼼지락.

손에 쥔 내 손을 만지작거리며 작게 기뻐하는 크리스.
 숙인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붉게 물들어 있을 거란 것은 쉽게 짐작 가능했다..


훈련생들 앞에서는 그리 태연하게 연기를 하는 주제에 내 앞에서는 숨김 하나 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었다.
웃고 싶을 때는 웃었고, 부끄러워할 때는 부끄러워했다.
이런 솔직한 모습인 그녀를 나만 볼 수 있다는 것에서 충족감이 차올랐다.

“그런데 교관이 된 이유가 나랑 관련 있었지? 그건 언제 말해줄 거야?”


“그…그건 나중에…!! 나아중에!!”

“저번에도  말 하더니.”

“…”

“알겠어. 나중에 말해줘.”

- 꼬옥.

결국 오늘도 크리스의 비밀을 듣는 것에 실패했다.
나도 그녀에게 말하지 않은 것들이 있었기에 나만 캐묻기 뭐 했다.
크리스를 품에 살짝 끌어안아 주는 것을 마지막으로 나의 방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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