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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76)화 (76/310)



〈 76화 〉테라포밍 *

“으…아… 다리 아파… 제대로 못 걷겠어…”

“…업어줄까?”

“사…사람들이 보잖아! 절대 안 돼!”

자중하지 못했다.
한동안 그녀와 몸을 섞기 어렵다는 생각과 어제 크리스가 내게 보여준 그 행동으로 인해 너무 격렬하게 해버렸다.
마나를 각성한 크리스가 아침이 되어서도 다리를  정도로.


“하지만 내 탓이잖아. 어제 네 사정 봐주지 않고 해버려서…”

“그… 처음에는 깜짝 놀라긴 했어도… 조…조금 기분 좋았고… 가끔은 그래도 괘…괜찮을지도?”

크리스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어제의 밤을 되새겼는지 크리스의 얼굴이 빨개졌다.

젠장,
주변에 사람만 없었다면 눈이 돌아가서 다시 덮쳤을 정도로 강력한 위력의 귀여움이다.
진짜 어젯밤으로 회귀 마렵네.

우리는 11구역을 향해 걷고 있었다.
출발한 지 한참은 지났고, 거리가 그리 멀지 않으니 곧 도착하리라.
나는 크리스와 붙어 즐겁게 잡담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우습게도 유일하게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왕 자건의 팀도 우리와 함께 11구역으로 향했다.
7년 전의 북부 교관이 제라드   명인만큼, 그들을 따로 빼내어 지옥 훈련을 시킬 수는 없었다.
그러니 일단 11구역으로 간 다음 그쪽 전투직이 우리를 인솔할  훈련을 시킬 생각이리라.
왕 자건을 포함한 다섯 명의 훈련생의 얼굴은 벌레라도 씹은 듯 찌푸려져 있었다.


몇 분을 더 걸었을까.
곧, 익숙한 건물  채가 보이기 시작했다.
7년 후에도 한번 봤었던 11구역의 전투직 합숙소다.

“도착이다! 이제 방을 팀별로 배정받고…”


우리는 마중 나온 전투직과 제라드의 명령대로 짐을 풀었다.


*



이미 해는 져 있었다.
그리고 나는 제라드에게 훈련이 시작되기 전인 지금 자유시간을 사용하도록 명령받았다.
아무리 그래도 실습이 시작되는 내일부터는 시간을 내주기 어려울 테니 당연한 조치였다.
나는 그런 제라드에게 감사 인사를  뒤, 몸을 빠져나와 합숙소의 밖으로 향했다.
당연하지만 곁에 크리스는 없었다.
그녀와 몸을 섞는 것도 좋지만, 지금 내게는 더 중요한 볼일이 있다.

7년 전.
그리고 11구역.
이  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무엇인 것 같은가?

…당연히 이곳으로 오기 직전의 바위 언덕 틈에 있던 신전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번에는 빅터같은 놈에게 쫓기지 않고 느긋하게 그곳을 수색할 수 있어!’


합숙소와 조금 떨어진 곳이긴 했어도 그 장소는 명백한 인간의 영역 안쪽이었다.
그것은 7년 전, 정찰 구역이 넓어지기 전인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는 다리에 마나를 불어 넣어 빠르게 그 공간을 다시 찾았다.
내가 그곳을 찾는 이유는 별것 없었다.
이강인이 사용하기 전인 회귀의 구슬을 찾으려는 것도, 아니면 내가 미래에 사용한 2개의 구슬을 얻으려는 것도 아니다.
그냥 확인 할 수 있으니 확인하려  뿐이다.

‘이왕 7년 전으로 돌아왔는데, 그런 수상쩍기 그지없는 신전을  뒤지면 머저리지.’

신전을 막 찾았을 때는 빅터에게 쫓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바위 언덕의 위치는 대략 알았으나, 신전의 입구인 바위틈의 정확한 위치는 몰랐다.

하지만 괜찮다.
지금 시간이 달이 뜬 밤이기 때문이다.
선령일일 만요월월(仙令日日 灣謠月月)의 오감 증폭 효과가 2배가 되었다.
전보다 훨씬 쉽게  틈을 찾을 수 있으리라.


“저긴가?”

한참을 뛰어다니던 그때.
바위 언덕은 어렵지 않게 찾을  있었다.
이제 신전의 입구만 찾으면…

- 휘잉…

씨익.

그때와 마찬가지로 틈으로 통하는 곳에 바람 소리가 선명히 들려왔다.
들어가기 전, 나는 미행이 있는지 확인했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나를 감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제라드는 물론, 7년  강해진 브랙이나 크리스라고 해도 오감이 증폭된 지금의 내게 기척을 완전히 숨기기는 불가능하리라.


나는 망설임 없이 바람 소리가 나던 곳으로 몸을 날렸다.


- 투둑…

“…그대로 있네.”


신전 안쪽에 인기척은 없었다.
7년 후에 그러했듯, 여전히 빈 신전이었다.
신전의 외견은 지구에서 보지 못한 특이한 양식을 띄고 있었지만, 나는 고고학자도 아니었기에 금세 흥미를 잃었다.
내가 관심 있는 것은 유물이다.

터벅터벅.

신전의 내부는 달빛 한 줌 들어오지 않아 시꺼멓게 어둠이 내려앉았다.
물론 내 두 눈에는 모든 사물이 선명하게 보였다.
알 수 없는 언어로 보이는 문양이 새겨진 기둥도,
천장에 색이 입혀진 채 각인 된 조잡한 태엽 장치로 보이는 무언가의 그림도.

원과 원이 겹쳐지고 맞물리고 입체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표현하는 듯했다.

“혼천의? 아니면 시계?”


가장 먼저 연상되는 것은 그것이었다.
시간과 관련되어 있던 유물이 있던 곳이니,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장치의 설계도가 적혀 있더라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무언가 마법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기에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그렇게 역사학자가 본다면 거품을 물고 기절할 행동을    한 뒤 내가 다다른 곳은…
그때 2개의 구슬이 놓여있던 재단의 앞이었다.


‘과연 구슬이 있을까? 있다면 역시 3개 전부 있으려나? 회귀의 구슬과, 몽환의 구슬, 정천의 구슬 전부?’

그때 확인한 구슬의 홈은 3개였다.
한자리는 비어있었고, 2개는  자리에 있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제단으로 다가가 홈을 확인했다.

“어?”


홈에 구슬이 있었다.
그런데,  예상을 벗어나 있었다.
3개의  중 들어찬 구슬은  한 개였다.
그것도…

“빨간색?…”


내가 모르는 색의 구슬이.
원작 프롤로그에 적혀 있어서 난 알고 있었다.
회귀의 구슬은 빨간색이 아니다.
하얀색이지.

그러나 이 구슬은 노란색의 정천의 구슬도, 파란색의 몽환의 구슬도, 하얀색의 회귀의 구슬도 아니었다.
 그대로 처음 보는 구슬인 것이다.

띠링!


=
[아이템 정보 확인]
이름: 예경(豫經)의 구슬
종류: 소모품
레벨: -
효과: -
상세:
* 아이템 정보 확인의 레벨이 낮아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세계관 귀속 아이템입니다. 상점창에 등록이 불가능합니다! 다른 세계로 가지고 가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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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조차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원래 이곳의 빈칸에 있던 것이 회귀의 구슬이 아니었던 건가?”

처음 이 제단을 보았을 때, 3칸 중 1칸이 비어있길래 나는 자동으로 회귀의 구슬을 연상시켰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빈자리의 주인을 회귀의 구슬이라고 확정했다.


그런데 생각을 해 보면, 여기 홈에 딱 맞춰 끼워져 있던 구슬이 바닥을 굴러다닐 만한 원인을 찾기 힘들다.
구슬이 저절로 굴러떨어질 만큼 제단이 경사지지도 않았고, 실내이기 때문에 바람도 몰아치지 않는다.
심지어 11구역과 이강인이 죽은 곳은 거리가 무척이나 멀다.


그 밖에 회귀의 구슬이  신전에 있던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 이유가 하나  있다.
 붉은 구슬이 들어차 있던 곳이…
미래에서 봤던 3 구멍  비어있던 곳에 들어차 있었기 때문이다.


“즉, 이 자리는 원래부터 노랑, 파랑, 빨강의 구슬을 보관하던 곳이란 건가…”


7년 뒤 미래에서 사용할 노랑 구슬과 파랑 구슬이 없는 이유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보통 이런 시간과 관련된 유물들은 타임 패러독스의 영향을 안 받지 않던가?
한번 사용한 이상 시간 축과 관계없이 이 차원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것일 수도 있다.

뭐…
이대로 미래로 돌아가지 않고, 7년 동안 여기서 노랑과 파란색 구슬이 없는 것을 ‘관찰’ 하며 7년 뒤 찾아올 나를 기다린 후.
어떻게 상황이 돌아가는지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도 없진 않지만…


‘그건 불가능하겠지.’


나는  있으면 원래의 시간대로 돌아갈 확률이 높으니까.
게다가 고작 호기심 하나를 해결하자고 7년을 소모할 마음도 없었다.
그 호기심 해결의 대가가 내게 불이익이 된다면 더더욱.


7년 뒤 이 구멍에 붉은색 구슬이 없다는 것은 내가 가져갔다는 뜻이리라.
나는 망설이지 않고 붉은색 구슬을 챙겼다.
효과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챙기지 않을 수는 없지 않은가?

주변을  바퀴 더 둘러보았다.
하지만 이 구슬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특이사항은 전혀 없어 보였다.
아이템 정보 확인창을 사방팔방을 향해 열어도 나오는 것은 없었고.
더이상 빼먹은 것이 없다고 확신했을 때, 나는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음… 1시간 정도 지났나? 지금 돌아가면 넉넉하게 도착하겠네.”

이제 제라드에게 요구한 ‘개인 시간’의 목적은 달성했다.
하지만 시간은 조금 남았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2시간가량이니까.
아마 30분 정도의 여유 시간이 있지만…

크리스를 불러내어 사랑을 나누지는 않을 것이다.
도저히 30분이 지나도 자중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성욕에 눈이 돌아가서 지각해 곤란한 일을 겪기보다는, 한  더 참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리라.
나는 유혹을 내리누른 채 11구역 전투직 합숙소를 향해 발을 옮겼다.




*


“…그래서. 교관님과 독대는 잘 넘겼고?”

“응… 일단 찬영의 말대로 설득당한 척은 했어. 나 의외로 연기 잘하는 편이라서 속았을걸? 차…찬영은 못 믿겠지만…”


크리스가 연기에 재능이 있다는 것은 안다.
지금의 순수한 눈망울로 나를 쳐다보는 크리스는 내 앞에서 도저히 무언가를 숨기지 못하지만, 7년 후에는 ‘광년이’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쓴 채 50명가량의 훈련생을 몇 번이나 속이니까.
도무지 연기에 재능이 있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아니야. 오히려  크리스는 연기를 엄청 잘할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그래? 히히…”

크리스는 내 칭찬에 작게 기뻐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 쓰담쓰담.


내가 예전부터 그녀에게 경고해두었던 제라드와의 독대도 크리스에게 권유되었다.
지금에서야 마나 각성도 빨리해서 스텟도 많이 늘고, 나의 팀으로써 팀 훈련 1위를 한 그녀였지만, 초반에 너무 훈련에 따라오지 못했기에 설득의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린 듯했다.
제라드는 이 전투직 합숙소에 도착하고서야 그녀를 불렀으니까.

그녀가 설득되리란 걱정은 크게 없었다.
원작에서도 크리스는 쉘터를 배신하지 않았으니까.
권유 자체를 받지 않은 브랙과 달리, 특수한 특성을 가진 제라드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음에도.


‘아마 『자애』의 정신 공격 저항 35% 덕이겠지… 그러한 설득의 종류도 정신 공격이라고 치나 보네.’

하지만 그녀에게 경고를   수는 없었다.
저런 계산적인 것들과는 별개로, 나는 크리스를 연인으로서 걱정하고 있었다.


계획서를 봤을 때.
혁명의 때는 머지않았다.
아마 이곳에서 가장 멀리 있는 5구역까지 제라드의 명령이 전해졌을 무렵…
그들은 전부 11구역으로 집합함과 동시에 혁명이 시작될 것이다.


‘나온다면 슬슬이다. 나오지 않으면 어쩔 수 없지만… 꼭 나와줬으면 좋겠네.’


나는 시스템에게 기도했다.
그리고 그런 나의 속마음을 읽듯이, 기다란 창 하나가 나의 눈앞에 튀어나왔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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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D MODE*
[퀘스트]
내용: 반란군 주동자 살해
상세:
며칠 뒤, 제라드와 그의 동조자들이 쉘터를 배신하고 혁명을 일으키려고 합니다!
그들의 계획이 전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수많은 전사자가 발생할 것입니다.
수많은 아사자가 발생할 것입니다.

그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반란을 준비해 왔기 때문에 완전히 저지하기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그 리더를 살해한다면 반군의 성장을 확실히 저지할 수 있을 겁니다!

그들의 리더이자 주동자인 ‘제라드 호프만[혁명가]’을 살해하세요!

보상: 마나 각성, 디시빙(Deceiving) Lv1 [Active] [마법]
제한 시간: 없음.
실패 조건: ‘제라드 호프만[혁명가]’이 쉘터 밖으로 완전히 탈출.
실패 패널티: 다음으로 클리어하는 일반 퀘스트 보상 10번이 0 카르마가 됨.
포기 패널티: 다음으로 클리어하는 일반 퀘스트 보상 5번이 0 카르마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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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p
[마나 각성]
힘·민첩·체력·지능·기교 숙련도 획득량 50% 증가.
아주 느린 속도로 주변의 마나를 받아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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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군 주동자 살해’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어…?”


“응? 찬영? 왜 그래?”


자신의 머리에서 느껴지는 나의 손길을 눈을 감고 만끽하던 크리스가 나를 올려다본다.
 손이 덜컥 굳어지며 멈추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내게 덮친 당황에 크리스에게 대답해 주지 못하였다.

‘아니… 그러고 보니 그런 알림창은 없긴 했는데… 설마…’


하드모드 퀘스트가 뜬 것은 쉽게 예측했었다.
그러라고 제라드의 혁명을 앞당기려  것이니까.


하드모드 퀘스트 내용 또한 대충 예상했기에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이것 말고 나올만한 조건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여태껏 모든 하드모드 퀘스트 보상이 그러했듯, 이번에도 보상이 나의 눈을 사로잡았다.
조금 다른 의미로.

‘나 설마 아직도 마나 각성을 안 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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