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19) 테라포밍 *
- 터벅터벅.
크리스 베넷은 숲길을 걷고 있었다.
해는 이미 그 몸을 숨긴지 한참이나 되었고, 달과 별은 무성한 나뭇잎에 가려져 제 밝기를 내뿜지 못하고 있었다.
홀로 이 어둡고 음침한 길을 걸으라면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을 것이 분명한데도…
크리스 베넷은 숲길을 걸었다.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를 앞서 이끌어 주는 남자가 있었다.
맞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온기가,
가끔식 자신의 안부를 확인하듯 자신을 향해 살짝 뒤돌며 미소짓는 그의 표정이,
말없이 걷고 있으면 눈에 들어오는 넓고 단단한 그의 등이,
그녀에게 용기를 주었다.
‘흐읏…’
곧 자신이 겪게 될 경험을 상상하자,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녀에게도 ‘언젠가는…’이라는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최근 며칠간은 온통 남사스러운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으니까.
다만, 그날이 오늘은 아닐 거라며 방심하고 있었던 탓이다.
어제와 같은 오늘일 줄 알았다.
방금까지만 해도 어제와 같은 오늘이었다.
박찬영과 만나 키스를 하고, 앉은 채로 안기고, 귀를…
허나 오늘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크리스 베넷이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오싹한 쾌감에 몸이 풀려 늘어져 있을 때.
남자가 여자를 끌어안으며 작게 속삭였다.
그것은 상냥히 돌려 말한 권유였다.
그리고 크리스 베넷은 거절하지 않았다.
무서웠다.
자신이 그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이것이 마지막이기에.
조금 아끼고 싶었던 마음도 없지 않았다.
크리스 베넷에게 연애 경험은 없지만, 밀당이라는 유명한 개념은 알고 있었다.
밤중에 침대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시뮬레이션도 수십번 했다.
사이가 어색해지지 않게 거절하는 법을.
하지만…
권유받는 순간, 깨닫고 나니 크리스 베넷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첫날밤에 대한 두려움과 온갖 계산은 그녀 내면에 터져 나오는 감정을 막지 못했다.
조금 더 그와 가까워지고 싶었다.
무르지 못하는 도장을 찍듯 그의 여자가 되고 싶었다.
…그에게 안기고 싶었다.
그렇기에 한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는 늦은 밤 숲을 거닐고 있었다.
- 터벅터벅.
“자. 여기야. 이곳이면 소리를 좀 크게 내어도 숙소까지 안 들릴걸?”
“…”
도착한 곳은 좁았다.
박찬영이 미리 봐두었다는 곳은 수풀과 수풀 사이, 낮은 잔디가 조그맣게 깔린 곳이었다.
그야말로 남녀 두 명이 나란히 누우면 가득 찰 것만 같은 좁은 공간.
하지만 크리스 베넷은 그 아늑함이 마음에 쏙 들었다.
펄럭!
남자가 외투를 벗어 잔디 위에 깔았다.
크리스 베넷이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망설이고 있을 때, 남자가 그녀의 손을 이끌어 외투 위에 앉혔다.
남자 또한 그녀의 곁에 앉았다.
크리스 베넷은 너무나 부끄러워져서, 남자의 시선을 피해 모르는 척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작게 감탄했다.
‘와…’
주변에 수풀과 잔디밖에 없어서일까?
유독 이곳에서만 나뭇잎 사이로 뚫린 하늘이 훤하게 보였다.
달과 별이 빛나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밤하늘이.
“괜찮지?”
“응… 너무 예쁘다.”
크리스 베넷은 본인의 긴장이 살짝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을 위해 이런 곳을 찾은 것 또한 남자의 배려일까?
의문과 동시에 해답은 나왔다.
분명히 그럴 것이다.
크리스 베넷이 아는 이 남자는 그 무엇보다 자신을 우선시해 주었으니까.
수풀이 이 조그마한 공간을 둘러싸 마치 세상에 남자와 자신, 둘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제각기 밝기를 뽐내는 별들이 수 놓인 몽환적인 밤하늘의 풍경.
저 멀리서부터 귀를 울리는 듣기 좋은 찌르륵거리는 소리.
그리고 달빛에 비춰 밤눈이 어두운 크리스 베넷에게도 보이는,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의 아주 잘생긴 얼굴까지.
크리스 베넷은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 살짝 눈물이 나왔다.
*
나는 당황했다.
제대로 준비한 타이밍에, 제대로 준비한 말로, 제대로 준비한 장소까지 크리스를 이끌어 왔는데…
그녀가 울었다.
“괘…괜찮아?… 갑자기 왜 울어?”
- 스윽 슥.
나는 소매를 쥐어 크리스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이렇게 많은 준비를 했었는데도 역시 무서웠던 걸까?
아무리 매일 보는 사이라고 하더라도, 크리스의 입장에서 나는 만난 지 한 달이 조금 넘은 사람이다.
게다가 그녀는 첫 경험이기까지.
두려움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이상할 것 없었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예상은 틀렸다.
이어진 크리스의 말이 나의 가슴을 꽤나 울렸기 때문이다.
“내 인생은… 행복이 20살에 전부 몰려 있었구나…”
“응?”
“스무 살 전까지는 너무… 너무 힘들었거든. 그런데… 요즘은 정말 행복하기만 한 것 같아서.”
“…”
습기가 찬 눈이 나를 바라보았다.
눈에는 숨길 수 없는 애정이 가득 차 있었다.
그 전부가 나만을 향하고 있었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훈련은 힘들고, 나중에 괴물과 싸워야 하는 것도 걱정되지만… 그래도… 너무 행복하다.”
“…”
“응. 너무… 흐윽…”
아무래도 장소 선택이 너무 큰 효과를 발휘한 것 같았다.
지금의 크리스는 상당히 감성적이게 되었다.
입으로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면서, 무언가 벅차올랐는지 눈물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나쁘지 않았다.
그녀의 내면에 있던 상처가 조금씩 아무는 것이 보였으니까.
하지만 크리스가 우는 모습을 보는 것은 가슴이 아팠다.
나에게도 순정은 있다.
“…우는 척해도 덮칠 건데?”
“푸흐흐흐… 찬영은 가끔 그렇게 짓궂은 말하더라. 이제는 알거든? 그거 전부 나 좋아해서 그러는 거지?”
“…큼.”
“알았어. 그만 울게. 우는 얼굴은 못생겼잖아.”
“안 못생겼어.”
“킥킥!”
풀썩!
눈물을 전부 닦은 크리스가 뒤로 누웠다.
편안하게 팔을 뻗고 누운 상태로, 별을 구경하는 것처럼 보였다.
…크리스는 아무 생각 없이 누운 것 같지만, 내 눈앞에서 이렇게 누워 있으면 내겐 엄청난 유혹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그녀는 알까?
“에잇.”
“엇?…”
그때,
갑자기 크리스가 내 팔을 잡아당겨 앉아있던 나를 눕혔다.
그것도 자신의 몸 위쪽으로.
생각지도 못한 그녀의 기습에 나는 크리스의 푹신한 가슴에 얼굴을 묻을 수밖에 없었다.
“…키스부터 해줘… 찬영.”
키스 ‘부터’라…
알고 보니 아무 생각 없이 내 앞에서 누운 것이 아니라, 정말로 나를 유혹하려고 했나 보다.
이 정도가 크리스가 낼 수 있는 최대의 용기인지 그녀가 뱉은 말은 무척이나 떨리고 있었다.
좀 더 얼굴로 이 부드러움을 만끽하고 싶지만, 얼굴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마주한다.
크리스는 눈을 감지 않았다.
멍하니 나의 눈을 쳐다보고 있었다.
스윽… 슥…
나는 그녀가 낸 용기를 칭찬하듯 크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천천히 얼굴을 내려 그녀에게 입을 맞추었다.
내가 아는 크리스의 입술이었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조그마한.
이제는 백번을 훨씬 넘게 맛본 내 소유의 입술이다.
“으음… 츕…”
차근차근 시간을 들이고자 바로 혀를 쓰지 않으려 했지만, 크리스 쪽에서 내 입안으로 혀를 넣어 왔다.
자신의 입으로 들어온 나의 혀를 호응해 준 적은 있었어도, 그녀 쪽에서 먼저 내 입안으로 혀를 넣은 적은 처음이다.
혀의 움직임은 어색했다.
내 혀를 바로 찾지 못하고 애꿎은 잇몸을 흩었으며, 내가 마중을 나가서야 간신히 내 혀를 발견했다.
하지만 사랑스러웠다.
나는 오른손을 들어 그녀의 성적 자극의 신호가 되어 주었던 오른 귀를 부드럽게 매만졌다.
이제는 매만지는 것만으로 부끄러운 상상이 들었는지, 열심히 움직이던 그녀의 혀가 굳었다.
“츄웁…”
입술을 떼자 둘 사이에 침이 길게 늘어진다.
몸이 굳었는지 크리스의 혀가 아직 그녀의 입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너무나 붉고 매혹적인 혀라서 나도 모르게 그 혀를 맛볼 뻔했지만, 겨우 참아내었다.
툭…
이마를 맞댄 채 서로 잠시동안 눈을 마주하다가, 나는 입술을 그녀의 귀에 가져다 대었다.
이 자세에서는 귀를 애무하기 불편하긴 하다.
하지만 크리스는 이미 귀에 대한 애무로 느끼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이 애무를 건너뛰어서는 절대 안 된다.
“아…”
내 숨결이 귓가에 느껴지자 크리스가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곧 다가올 쾌감을 눈치챈 몸이 미리 달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손으로 크리스의 볼을 잡아 살짝 고개를 튼 뒤, 혀가 그녀의 귀를 유린한다.
“흐아!… 앗!…”
이곳에 오기 전에도 귀 애무를 한번 했기에 손가락은 더럽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입안에 손가락을 넣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내 손가락을 쪽쪽 대며 빨아오는 크리스.
이렇게 손가락의 감촉을 느끼고 있으면 저절로 등골이 저릿해 지면서 내 물건이 단단하게 선다.
“우움… 하움…! 쭙…!”
볼을 잡고 있던 손을 다시 회수한다.
이제 크리스는 이 행위에 무척이나 익숙해져 있어 얼굴을 도망치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더 가져다 대면 가져다 대었지.
한 손으로 요령 좋게 크리스의 상의에 있던 단추를 풀어 헤친다.
크리스는 눈치채지 못한 듯 했다.
청각과 촉각, 미각이 미친 듯이 자극당하고 있으니 당연했다.
열 개도 안되는 단추를 전부 풀기에는 몇 초 걸리지 않았다.
나는 슬쩍 그녀의 허리를 들어가며 외투를 벗겼다.
아무리 그래도 이쯤이 되자 그녀도 눈치를 챈 듯했지만, 나를 막아서지는 않았다.
나는 크리스의 귀에서 입을 떼어냈다.
“햐아… 햐으… 쭙!…”
애무는 멈추었지만, 크리스는 손가락을 빨기를 멈추지는 않았다.
기분 좋았기에 조금 그녀의 봉사를 계속 받을까 싶었지만, 방금의 애무로 젖게 만든 것이 마르게 두긴 아쉬웠기에 손가락을 빼내었다.
내 손가락이 그녀의 입에서 빠져나가면서 뽁! 하는 소리를 내었다.
우선 나의 옷을 벗었다.
내 쪽이 먼저 옷을 벗는 것이 크리스에게 부담이 덜 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제 와서는 남들에게 자신감 넘치게 보여줄 수 있을 정도로 괜찮은 몸이기도 했고.
스윽…
상의가 먼저 벗겨지며 예술적인 근육의 자태가 드러난다.
예상외로 이 몸은 골격이 나쁘지 않았다.
자연치유의 덕인지 근육도 잘 붙는 축에 속해 흔히 말해 ‘근수저’인 신체였다.
모든 기간을 다 합치면 반년에 가까워질 정도로 훈련에 매진했기에 내 몸은 몸이 바뀌기 이전보다 훨씬 더 건장한 몸이 되었다.
과하지 않은 아주 이상적인 남자의 몸이었다.
“…꿀꺽.”
“푸핫! 침은 왜 삼켜?”
“그! 으아! 아니! 나…남자의 몸은 처음 봐서! 으아아!…”
자신이 침을 삼킨 것이 들킨 게 부끄러운지 고개를 푹 숙이는 크리스.
나는 그런 크리스의 손을 잡아 내 몸에 손바닥을 닿게끔 했다.
“만지고 싶으면 만져봐.”
“아…”
“나도 곧 네 몸을 실컷 만질 거니까.”
“흐읏!… 그… 그러네…”
내 근육을 꾹꾹 눌러보기도 하고, 살짝 쓸어보기도 하며 즐기고 있는 틈에 나는 알몸이 되었다.
크리스가 누워 있었던 탓에 내 몸의 아랫부분까지 전부 보이지는 않겠지만.
크리스의 옷 역시 천천히 벗기기 시작했다.
역시 스스로 벗기에는 부끄러웠는지 얌전히 내게 몸을 맡겼다.
“…”
아니, 얌전히 있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지금 크리스는 힘이 단단히 들어간 내 물건에 시선을 전부 빼앗기고 있었다.
어쩐지 얼굴이 그녀의 원래 머리색과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주홍빛으로 물들었다 했다.
“…만지고 싶으면 만지라니까? 괜찮아.”
“그…그래?… 으…으으… 그럼… 조…조금만…”
- 꿀꺽.
스윽…
조그마한 손이 내 아들에 닿았다.
너무 조심조심 만졌기에 기분 좋기보다는 간지러운 것에 가까웠다.
그러든 말든 크리스의 옷을 벗기는 것에 집중한 나는 곧 그녀를 나와 같은 알몸으로 만들 수 있었다.
특히 마지막 가서 크리스의 팬티를 벗길 때는…
“조금 젖었네?”
“어…어쩔 수 없잖아…!”
팬티와 그녀의 음부 사이에 끈적한 실이 늘어졌다.
크리스의 알몸은 아름다웠다.
부끄러운 듯 자신의 음부와 유두를 숨기는 그 얇은 팔도, 도무지 내게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있는 얼굴도.
달빛에 비춰지며 전부 두 눈에 들어왔다.
팔로 가린 부분들을 망가지기 쉬운 물건의 포장지를 벗기듯 조심스레 치웠다.
서양인의 유전자임을 주장하려는 듯 풍만하게 부푼 가슴, 그리고 그 끝에 달린 핑크색 유두가 나의 손길에 조금씩 흔들리며 유혹했다.
손으로 막지 못하자 다리를 꼬아가며 최대한 가리려고 애를 쓰는 크리스의 음부는 자신의 시선을 빼앗는 마법적인 무언가가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