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테라포밍 *
고작 20분이 흘렀을 뿐이지만 크리스에게는 그 몇배의 시간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숨은 무척이나 거칠었고, 다물지 못한 입에서는 침이 흘러나와 턱을 적셨다.
눈 또한 풀려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 얼굴을 정면에서 보지 못했다는 것이 정말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의 애무는 다른 자세에서는 하기가 너무나 불편했으니까.
‘오히려 내가 크리스의 얼굴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가 안심하고 쾌감을 열린 채 받아들인 것이겠지.’
누구든 자신이 쾌감을 느끼고 있는 얼굴을 보이기는 부끄럽다.
아무리 그 상대가 연인이라고 한들.
“흐아… 하아…”
“괜찮아?”
“하으으… 못됐어… 그만해달라니까 하나도 안 듣고…”
“손가락을 물고 있어서 발음이 뭉개졌길래…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나 봐. 미안해…”
나는 옷의 소매를 쥐어서 침 범벅인 그녀의 귀를 상냥히 닦아주며말했다.
이왕 닦아주는 김에 턱에 흘린 크리스의침까지 깨끗이 닦아주었다.
소매는 금세 축축해졌지만, 별로 개의치는 않았다.
나의 변명에 이은 상냥한 손길에 크리스는 나를 크게 나무라지 못했다.
“…그렇다면야 뭐…”
“어땠어? 반응이 생각보다 격렬하던데.”
“하으… 그…그건… 그… 으…”
“프흐흐… 너 진짜 귀엽다.”
“으아아…!”
- 와락!
도저히 내게 안겨있기 부끄러웠는지 일어서서 도망치려 하길래, 나는 그녀를 끌어안으며 도망치지 못하게 막았다.
품에 안은 크리스의 목덜미에 코를 묻으며 따뜻하게 말했다.
“오늘은 이제 안 할 테니까, 이대로 가만히 안겨 있어.”
“…오늘은? 그럼 내일은 한다는 거야?”
“정 싫으면 안 할 건데… 그렇게까지 싫었어?”
“그…그건 아닌데… 너무…”
“너무?”
“……모…몰라도 돼!”
차마 너무 기분이 좋고, 자극적이었다는 이야기는 꺼내지 못한 크리스는 말을 주워 삼켰다.
나는 입을 막지 못하면 웃음이 새어 나올 것 같았기에 크리스의 목덜미에 입을 대었다.
웃으면 그녀가 화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읏…”
누군가 본다면 크리스의 목덜미에 키스하는 것처럼 보일인지도 몰랐다.
크리스 또한 내가 자신의 목덜미에 키스하는 것으로 이해 했는지 약하게 부끄러워했다.
그런 그녀의 기대를 저버리기 뭐해서 가볍게 쪽 소리를 내며 목덜미에서 입술을 떼었다.
“흐으…”
내 키스에 기뻐하는 크리스를 보니 더 괴롭히고 싶어졌지만, 최대한 눌러 참았다.
그렇게 나는 10초가량 그녀를 말없이 안고만 있었다.
“…”
“그…”
“응? 왜 그래?”
“…”
“크리스?”
“…아…아니야…”
드디어 크리스가 깨달은 것 같다.
처음 내 위에 앉았을 때와 혀를 애무받을 때는 정신이 없어서 깨닫지 못했지만…
이렇게 조용하게 안겨 있으니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엉덩이를 찌르는 나의 단단히 선 물건을.
크리스의 머릿속은 내 물건에 대한 생각으로 차오를 것이 분명했다.
그것으로 멈출리가 없다.
이어서 자신과 내가 몸을 섞는 상상까지 떠오를 것이 분명하다.
그녀와 나는 연인 사이고, 방금까지 그녀가 겪은 성적 쾌감을 생각한다면…
떠올리지 못할 수가 없다.
“흣…”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갑자기 귓가가 붉어지며 고개를 푹 숙이는 크리스.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 중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앞으로 이런 애무를 몇 번만 더 하면 할 수 있겠네.’
크리스와 함께할 밤이 머지않은 것 같다.
“…어?”
그때.
생각이 돌고 돌다가 무언가에 다다른 듯 갑자기 크리스의 몸이 딱 하고 굳었다.
“…잠깐. 설마…”
- 흔들흔들
갑자기 크리스가 내 위에서 몸을 흔들었다.
주로 하체 부분을.
크리스는 내가 이 행동의 목적을 알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 분명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알고 있다.
저게 무얼 목적으로 한 행동인지.
- 흔들흔들… 뚝.
“…으하아앗!! 잠깐! 찬영!! 팔 풀어줘! 잠깐 놔줘어엇!!”
- 버둥버둥!
벌떡!
몸을 흔들던 크리스가 갑자기 발버둥을 치며 내게서 일어나고자 했다.
나는 어째서 그녀가 저런 행동을 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말없이 팔을 풀어주었다.
자신을 안고 있던 팔이 풀어지자마자 벌떡 일어서는 크리스.
그 얼굴은 지금까지 본 어느 때보다 붉어져 있었다.
“으아! 차…찬영! 나 이제 가볼게!너무 오래 있었고… 다…다른 팀원들이 걱정할지도 모르니까! 응! 그럼! 갈게!”
“그래. 나는 좀 천천히 들어갈게. 먼저 가봐.”
“앗! 그…그럴래? 휴우…”
탁탁탁탁!!
같은 방에서 생활하고 있으니 나랑 같이 들어가야 한다는 간단한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당황한 크리스는 내 말에 안심한 듯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도망치듯 자리를 떠나갔다.
…정말 빠르게 사라졌다.
아마 다리에 마나까지 불어넣은 듯했다.
“큭큭큭…”
나는 드디어 참았던 웃음을 터뜨릴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크게 터뜨리면 아직 이곳에서 크게 멀어지지 않은 그녀에게 들릴 수도 있으니 조금 작게.
‘정말 순진하네. 크리스는.’
“프흐흐흐…”
보통 남자들은 흥분한 순간, 자신의 물건에 피가 쏠리는 것을 어렵지 않게 눈치를 챈다.
남자들의 흥분 정도의 지표인 성기는 명백한 신체 부위의 일부이니까.
하지만 여자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자신이 젖었고, 젖지 않았고를 잘 깨닫지 못한다.
애초에 흥분하지 않았을 때도 질 내부는 어느 정도 습기에 차 있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자신이 젖은 것을 알아채기 위해서 때는…
“방금처럼 하체를 흔들면서 팬티가 질척거리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수밖에… 크흐흡!”
아마 단단히 선 내 물건으로 망상을 하고 있다가, 설마 자신도 아래가 젖은 것은 아닌가 하는 곳까지 생각이 닿은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방금 허리를 흔들며 그 가설이 진실임을 깨닫게 되었고.
크리스는 자신의 자리로 가서 새로운 팬티를 팀원 몰래 챙긴 후, 목욕탕으로 뛰어갈 것이 뻔하게 보였다.
“그런 애무를 20분이나 받았는데 젖지 않은 것이 더 이상하지.”
그렇기에 크리스가 도망친 것을 모르는 척해주었다.
저런 민감한 부분을 물고 늘어지는 순간 반감만 크게 산다.
…하지만 저런 그녀가 귀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큭큭. 미치겠네.”
*
“오…오늘부터 귀 안돼!”
“만나자마자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무튼 안돼!”
어젯밤에 내가 숙소로 들어서자 크리스는 이미 이불을 덮고 자는 척을 하고 있었다.
내 얼굴을 보기 부끄러워서 그랬을 확률이 아주 높았다.
아침이 되자 조금은 괜찮아진 것으로 보였지만, 남들 몰래 키스할 때 움찔거리는 빈도수가 상당히 많아졌다.
그리고 밤이 된 지금.
크리스는 빨갛게 얼굴을 물들인 채, 귀를 양손으로 가리고 내게서 살짝 물러서고 있었다.
“…그때 말은 못 했지만, 사실 많이 불쾌했던 거야?…”
“그…그건 아닌데… 그래도 안 돼!”
안좋은 기억이 생긴 크리스는 절대로 허락해 줄 생각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말 못 할 끈적한 액체로 질척하게 젖은 팬티를 손빨래해야 하는 경험은 여러 번 겪기 싫겠지.
하지만…
“그럼 딱 5분만 하는 건 어때?”
“5…5분?…”
“응. 오래 하는 것이 싫었다면…딱 5분만.”
“…”
내 말에 완전한 거부 의사를 보내던 크리스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귀를 애무해주는 것은 기분 좋을 것이 분명했고, 한 번 더 경험해 보고 싶은 것이 그녀의 본심이리라.
그리고 5분 만에 젖을 가능성은 작았다.
어제는 무려 20분을 넘도록 했기에 그런 불상사가 발생한 것이다.
그렇기에 나 스스로가 나서서 5분이라는 시간제한을 걸며 그녀에게 제안하였다.
“…정말? 딱 5분만 할거지?…”
“응. 정확히 5분만.”
“…조금이라도 넘기면 두 번 다시는 안 되는거다?”
“약속할게.”
- 머뭇. 머뭇…
크리스가 내게 머뭇거리면서 다가왔다.
내 설득이 통했나 보다.
나는 그녀를 끌어안으면서 고개를 푹 숙여서 입을 그녀의 귀에 대었다.
- 포옥.
움찔!
설마 내가 서로 서 있는 상태로 바로 귀를 핥으려 들 줄은 몰랐는지 크리스의 몸이 깜짝 놀랐다.
하지만 내 목적은 귀를 핥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그녀보고 일부러 오해하라고 이런 행동은 한 것이 맞긴 하다.
잔뜩 긴장한 크리스를 구경하는 것은 재밌었기 때문이다.
나는 속삭이듯 그녀의 귓속에 목소리를 내었다.
“…그 전에 오늘분 키스부터 하고.”
“흐읏!… 아…알겠어…”
귓가에서 입을 떼고, 크리스와 입술을 맞추었다.
한참 서로 혀를 섞다가, 지칠 때쯤이 되어서는 어제와 같이 바닥에 앉았고,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 입을 가져다 댈 수 있었다.
“바…바로 하게?”
“응.”
나는 움츠러든 크리스의 귀를 애무하기 시작했고, 그에 맞춰 작은 신음 소리가 주변을 울리기 시작했다.
…
“…자. 5분 지났어.”
“하아… 하아…”
5분은 금방 흘러갔다.
크리스의 숨결은 뜨거웠다.
숨결뿐만이 아니라 그녀의 몸 전체가 달아올라 꼭 안고 있으면 부드럽고 따뜻해서 기분 좋았다.
“끄…끝났네…”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진하게 섞여 있었다.
하긴, 5분의 시간은 이제야 슬슬 몸이 달아오르고 즐길 준비가 되는 정도로 짧은 시간이다.
크리스는 키스에 빠르게 중독이 되었듯, 애무에도 금세 중독이 되었다.
“아쉬운 눈치인데?”
“아…아니야!”
“조금 쉬었다가 다시 하는 방법도 있어.”
“…”
크리스는 명백히 고민하고 있었다.
그녀의 내부에 존재하는 천사와 악마가 설득과 반박을 반복했다.
무엇 하나에 완벽히 쏠리지 않은 팽팽한 갈등이 조그맣고 예쁜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어차피 나는 네가 젖은 걸 절대 모르잖아? 네가 모르는 척 연기만 잘하면!’
나는 속마음으로 크리스를 향해 응원을 보내었다.
당연하지만 전해질 리가 없다.
전해지더라도 곤란하다.
내가 이 사실을 아는 낌새라도 보인 순간 며칠은 나를 피해 도망 다닐 것이 뻔했기에.
“어때?”
“…이번에도 5분만.”
“오. 그럼 조금 쉬었다가?”
“…”
“바로?”
- 끄덕.
아무래도 내 생각보다 많이 달아올랐나 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크리스는 애가 타고 있었다.
그녀는 앞에 놓인 마쉬멜로우를 참지 못하고 집어 들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위해 다시 얼굴을 앞으로 숙였다.
“그럼…”
- 스윽…
“잠깐만.”
“응?”
“그… 그게…”
크리스는 무언가 망설이고 있었다.
역시 자괴감이 들 미래의 자신을 위해 지금의 유혹을 참으려 하는 건가?
이미 유혹에 전부 넘어 온줄알았는데…
내면의 싸움에서 천사가 성대한 역전승을 거둔 걸까?
“편하게 말해.”
“…손가락.”
“손가락?”
“저…저번처럼 손가락… 입에…”
“넣어달라고?”
“…응.”
“음… 그러면 말이 뭉개질 텐데?”
“…5분… 약속했으니까… 지킬 거라고 믿고 있을게?”
“…물론이지.”
아무래도 그녀의 내면에서 악마가 승리를 쟁취한 것 같다.
그것도 더 큰 쾌감을 위해 약간의 부끄러움을 감수할 정도로 아주 크게.
어제처럼 손가락으로 혀를 애무해 주면 싫어할까 봐 오늘은 하지 않았는데,
크리스 스스로가 내게 요구를 해왔다.
나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검지와 중지를 한번 내 입에 넣어 침을 묻힌 후, 그녀의 입안에 넣었다.
크리스는 얌전히 입을 벌리고 내 손가락이 입안에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그 사실이 무척이나 나를 흥분케 했다.
‘후우… 요즘은 진짜 참기 힘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