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테라포밍 *
똑똑똑!
여타 다른 문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나는 이곳이 단순한 숙소가 아님을 알고 있다.
최근 들어서 브랙을 제외한 대부분의 훈련생이 한 번씩은 와본 회의실의 문이다.
잡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곧, 문의 안쪽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들어와라.”
나는 그 말을 듣고 조심히 문을 열어 몸을 안으로 들였다.
내게 입실 허가를 내준 인물은 제라드 호프만이었다.
북부 훈련소를 그가 혼자 담당하고 있는 이상.
그 외에 이 회의실을 사용하는 사람은 없다.
끼익… 쿵.
“음. 박찬영 훈련생인가. 프룸은 그제 준 것 같은데, 무슨 일로 왔지?”
“예전 제게 말씀해 주신 계획에 대한 일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나는 빠르게 본론을 꺼내었다.
목적은 당연히 제라드에게 바람을 불어 넣기 위해서다.
언제까지고 제라드가 나서서 말해주길 기다릴 수는 없다.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그런데 제라드는 계획의 실행 날짜를 말해줄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었다.
내게 남은 시간은 한 달 하고 조금밖에 없는 것이다.
나의 말을 들은 제라드의 표정은 아무렇지 않았다.
아니, 살짝 미간이 찌푸려져 있는 것 같았다.
“계획이라… 내가 때가 되면 알릴 테니 숨죽이고 있으라 하지 않았나?”
예상대로 제라드는 상당히 까칠하게 반응했다.
일인자에게 권력이 집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의 사상으로서는, 자신에게 간섭하려는 내가 고까울 수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감수해야 한다.
이 사람을 끌어모으는 재주만 있는 무능한 남자를 설득시켜야 한다.
“한가지 기안을 올리고자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그저 교관님께서는 제 생각을 들으신 후, 내칠지 아니면 수용할지 뜻대로 판단하시면 됩니다.”
“흐음…”
역시 이쪽에서 살짝 굽혀주니 불쾌함을 거두고 어디 한번 들어보자는 몸짓을 취했다.
이념에 대해서는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했지만, 기본적으로 사악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았기에 충분히 그의 행동을 예상할 수 있었다.
어찌 되었든 제라드는 쓰러지는 훈련생들을 향해 미안한 감정을 품고 있었으니까.
그의 무능함과는 별개로.
“혹시 혁명의 실행일은 아직 정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던가, 아니면 조금 멀리 내다보고 계시고 있으십니까?”
“…그렇다. 우선 우리의 뜻에 동참하는 이들을 늘리는 것을 우선적으로 하고 있지. 아무리 전부 전투직이라고 한들 100명의 인원으로 대업을 이루기엔 훨씬 모자라니.”
“으음… 혹시 교관님 말고도 다른 이들에게 이념을 전파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럴 리가 없다.
애초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인원수가 합류한 이유가 제라드의 특수한 능력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둘 있으리라 생각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여쭙잖게 어설픈 입담을 가진 자가 이념 전파를 시도했다가 중앙지휘소에 새어 들어가기라도 하면 지금까지 준비해온 모든 일이 헛수고로 돌아간다.
그 누구에게도 눈치 채이지 않고 100명의 동료를 모을 정도로 신중한 그가 그런 성급한 판단을 내릴 리가 없다.
“아니. 혁명의 불씨를 전달하는 역할은 내가 맡고 있다. 오직 나만이 가능한 일이지.”
- 끄덕.
“역시 그렇군요. 그렇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중앙 지휘소를 습격 해야 합니다.”
“…뭐라?”
제라드가 나를 의문 어린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내가 할 말을 이어 나가기로 했다.
“들은 후 판단을 내려주시길 기다리겠습니다. 우선 교관님 혼자서 사람을 포섭한다면, 저희들과 중앙 지휘소의 무력 격차는 절대로 좁혀지지 않습니다. 교관님이 포섭이 가능한 인원은 이 북부 훈련소에 오는 훈련생 뿐일테죠.”
“…”
“저희가 한 기수를 통째로 포섭할 때, 중앙 지휘소는 동부, 서부, 남부 훈련소까지 저희의 총 세배에 달하는 수치의 전투직을 배출해 냅니다. 날이 갈수록 격차는 벌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것도 북부 훈련생 전부를 포섭한다는 가정하에만 이루어질 수 있는 가장 긍정적인 경우의 수다.
제라드가 20명의 훈련생을 삼킬 때, 중앙 지휘소는 60명의 훈련생을 전투직으로 키워 낸다.
도저히 좁혀질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제라드를 무능하다고 평가한 이유가 다 있다.
이런 간단한 생각조차도 못했기 때문이다.
한 무리의 수장이 되겠다는 자가 이 정도 코앞의 미래도 못 읽어서야…
좀…
그렇지 않나?
“어찌어찌 고생해 가며 중앙 지휘소와 동등한 세력을 일구었다고 치더라도… 둘이 완전한 총력전으로 부딪히는 순간, 어느 쪽이 이기든 빈사 상태가 됩니다. 이것조차 서로의 세력이 동등하다고 가정했을 때만이 가능하죠.”
“…계속해라.”
“그래서 제가 한가지 기책을 바치고자 합니다. 소수의 협력자 전투직들과 함께 중앙 지휘소를 급습한 다음, 쉘터장만을 사살한 뒤 쉘터 밖으로 탈출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호오. 쉘터 밖으로?”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전투직들에게는 100명에 가까운 인원이 대규모로 탈출하면서 빈자리가 크게 드러날 것입니다. 몬스터로 인해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스스로 무너지겠죠.”
전투직은 한두 명만 손이 비더라도 그 빈자리가 크게 눈에 띈다.
상황이 나름 안정화 되었던 7년 후에도 카야 한 명이 빠지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했는데, 지금 구역마다 10명가량씩 빠진다니?
…영향이 없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러면 일반 주민들의 피해가 있을 수도 있을 텐데. 이건 어디까지나 인간이 더 나은 삶을 얻기 위한 혁명. 민간인에게 피해가 나와서는 절대 안 된다.”
“협력자 100명이 모두 탈출하지 않으면 됩니다. 각각 구역마다 몇몇은 첩자로 남아서 내부의 정보를 전달해 준다면, 정말 위험한 곳은 저희가 지원을 하러 가면 됩니다. 포섭되지 않은 전투직들의 목적도 주민들을 지키는 것일 테니 최소한의 시간 끌기는 해주겠죠.”
“…흐음.”
“교관으로서 포섭해 놓은 전투직들과 접선하는 방법도 생각해 놨습니다. 예를 들어… 훈련생들을 이끌고 전투직들의 하는 일들을 직접 보여주기 위한 견학 또는 실습이라는 핑계를 대면 좋겠군요. 그렇게 전투직들이 있는 곳으로 가 교관님이 미리 포섭해둔 협력자들과 접선하여 바로 중앙 지휘소를 급습 하면…”
“우두머리를 잃고 혼란스러워진 쉘터는 단번에 사라진 전투직 100명의 공백을 정상적으로 메꾸지 못한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내가 생각해 낸 기책이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기책.
물론 맘 편히 성공하게 두지 않을 것이지만.
제라드가 갑자기 나를 위아래로 흩어보았다.
그가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나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시선에서 원인 모를 ‘의심’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박찬영 훈련생… 혹시 내게 숨기는 것 있나?”
무얼 의심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거리낄 것이 없었다.
내게 주어진 정보로 충분히 추론 가능한 이야기를 풀어내었을 뿐이니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나는 의심 받을 부분은 없었다.
제라드는 그 특유의 무게감 있고 중후한 목소리 톤으로 내게 물어보았다.
사실을 뱉어내라는 듯이.
그렇기에 나는 죄 없는 사람을 연기하기로 했다.
- 꿀꺽.
목이 타는 것처럼 침을 한번 삼켜주고,
불안에 잠긴 목소리로 음정을 살짝 떨어준다.
살짝 당황한 것처럼.
동공과 손끝 역시 오갈 곳을 잃어 어색하게 허공을 긁는다.
“네?… 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딱히 아무것도… 없는데요…?”
누군가는 이런 생체 반응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을 때 나타나는 반응인 줄 안다.
하지만 실제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거짓말이 들통나기 직전에야말로 가장, 그 어느 때보다 침착해진다.
아니면 언성을 높여가며 화내는 척을 하던가.
지금 내가 보인 몸짓은 죄 없이 의심받는 무고한 사람의 완벽한 표본이었다.
“…우연인가?”
“네?”
“…젠장! 우연이군! 흐하하하하하!!”
적어도 제라드는 내 몸짓을 보고,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멍청한 해석은 하지 않은 것 같다.
제라드에겐 미래를 읽는 눈은 없었지만 몇 년간 반란 계획을 들키지 않은 눈치는 있었다.
그걸 알기에 나도 당황한 사람을 연기한 것이다.
‘그래서… 왜 웃는 건데? 뭐가 우연이고? 같이 좀 웃자.’
나는 정말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제라드를 쳐다보았다.
그런 나의 표정을 이런 재밌는 일이 다 있다는 듯 쳐다본 제라드는 내게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큭큭큭! 재밌는 것을 보여주지.”
벌떡.
- 드르르륵…
제라드는 곧 의자에서 일어나 커다란 수납장 맨 위 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쪽에서 무언가를 만지작거리더니, 수납장의 바닥이 열렸다.
‘이중 구조 수납장! 숨겨진 공간인 건가?’
아마 제라드의 손에 들려있는 저 서류는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주로 그가 일으킬 혁명과 관련된.
아니면 이렇게까지 저 서류를 숨길 이유가 없다.
“읽어 봐라.”
그 서류는 내게 건네졌다.
나는 조심스레 그 서류를 받아 들고선, 집중해 가며 읽기 시작했다.
챠락-
챠락-
한 장, 두 장, 서류가 빠르게 넘어간다.
그에 따라서 내 동공도 쉴새 없이 움직였다.
‘이건… 내가 방금 올린 기안과… 내용이 완전히 같아…!’
100명에 달하는 전투직의 대규모 탈주.
주민들의 피해를 대비한 방안.
중앙 지휘소의 습격.
게다가 팀별 훈련이 끝난 뒤, 전투 훈련소로 실습을 가서 포섭한 전투직과의 접선까지.
계획의 실행일 또한 코앞이다.
몇 주 뒤, 우리가 전투직 합숙소에 훈련을 나갈 때가 바로 적기라고 판단되어 있었다.
내가 제라드의 설득을 목표로 했던 모든 상황이 이 서류 안에 들어 있었다.
“이건…”
“똑같지?”
“…”
“크하하하! 이러니 웃지 않고 배길 수가 있나! 내가 몇 년간 수정하고 밤을 새워가며 짜낸 계획이 ‘혁명’을 가슴에 품은 지 몇 주 안된 병아리 입에서 나오다니!…”
“허… 이미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군요…”
“나는 처음에 자네가 이 서류를 발견한 줄 알았어. 뭐,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은 내가 제일 잘 알지만.”
- 크흐흐흐.
제라드는 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다.
자신의 계획이 내게 완전히 노출되었음에도.
“자네는… 무척 머리가 비상하군. 그 머리는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될 거야.”
“…과찬이십니다.”
“아니! 지금의 나는 냉정해. 아, 조금 유쾌할지도 모르겠군. 아무튼, 자네는 그 머리를 우리를 위해 써줘야겠어. 나는 자네를 유용하게 사용할 생각이네. 앞으로 계속.”
소름이 온몸을 더듬는다.
제라드는 탐욕 어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소름이 끼치는 이유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이런 시발… 무능한 것이 아니라 극도로 신중한 거였어?’
제라드는 적어도 무능하지 않았다.
그저 극도로 신중한 것이었다.
계획의 당일이 코앞까지 다가왔음에도 바로 곁에 있는 지지자에게 언질 하나 흘리지 않을 정도로.
“이 사실은 아직 자네만 알고 있도록. 원래라면 계획에 대해서는 절대 알려주지 않았겠지만, 이렇게 재밌는 상황에서 계속 숨기는 것도 멋없는 행동 아닌가?”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뭘. 자네 혼자 떠올린 생각들인데.”
나는 제라드와 대화를 마치고 문을 나와 회의실을 나섰다.
내가 목적으로 한 것은 성공했다.
이렇게 되면 분명히 발생할 것이다.
‘하드모드 퀘스트. 슬슬 나올 때가 됐지?’
지금까지 하드모드 퀘스트들의 보상으로 받은 것들이 잊히지가 않는다.
조금이라도 큰 에피소드가 벌어진다면, 나는 무조건 하드모드퀘스트 각을 볼 것이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의 행동으로 인해 피해 볼 사람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내가 신경을 왜 써. 내가 세상을 구할 용사도 아니고.’
이 시간대의 쉘터장은 7년 뒤의 쉘터장인 ‘닥터’가 아니었다.
전투직을 임명받을 때 만난 쉘터장의 얼굴은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이다.
7년 뒤 그가 이 사건으로 인해 죽든 무사히 대피하고 은퇴해서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든 내 알 바는 아니다.
대규모 탈주로 인해 한동안 사망률이 치솟을 것이 분명한 전투직은…
조금 관계있나?
크리스와 브랙 또한 전투직이 될 테니까.
아니, 오히려 그들은 안전할지도 모르겠다.
이번 기수에서 크리스와 브랙을 제외한 대다수는 제라드를 따라 반란을 일으킬 것이 분명하니까.
한 기수 통째로 반란이 일어났는데, 아무리 전투직의 일손이 급하다고 한들 그 예외적인 인물 두 명을 속 편히 외부로 돌릴 리가 없다.
분명 차근차근 사상 검증을 하려고 들겠지.
크리스와 브랙이 제라드의 첩자인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해서.
그 둘은 좀 시달리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죽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