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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68)화 (68/310)



〈 68화 〉테라포밍 *

드디어 기초 체력 훈련이 전부 끝나고 팀 훈련이 시작되었다.
내 팀원은 이미 절반 이상 정해져 있었다.
변수는 없었다.
미리 정해놓은 대로 브랙과 크리스는 내 팀원이 되었다.

“우와!… 미…믿기지 않아… 찬영이랑 같은 팀이 되다니! 어떻게 이런 우연이!…”


“말 안 했었나? 내가 교관님한테 요청했어. 너랑 같은 팀으로 넣어 달라고. 교관님이 말하길 훈련소 수석의 특권이라나? 아, 이건 다른 사람한테는 비밀이야.”


“…그…그래?…”

내가 자신을 바라고 있음이 확실하게 느껴져서일까?
크리스의 얼굴은 조금 기뻐 보였다.

그녀는 곧잘 이랬다.
내가 크리스에게 호감을 보일 때면, 두려워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안심했다.
배신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기에…
끊임없이 나의 감정을 확인받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반겨왔다.

‘그걸 알기에 일부러 이러는 거지만.’

당장 며칠이라도 애정 표현을 그만두면 크리스는 내게 울면서 매달릴 것이 뻔했다.
내가 크리스를 향한 관심이 사그라지는 것은, 그녀에게는 참을 수 없는 거대한 두려움이 될 것이다.
애인이 되어 달라는 요구도.
잠자리를 함께하자는 요구도.
전부 망설이지 않고 수용하리라.


…하지만 그건 트라우마를 심각하게 악화시키는 길이다.
분명 내게 광적으로 집착할 것이고, 수동적인 인형이 되어 나에게 완벽히 의존할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녀는 나를 정도 이상으로 의존해서는 절대 안 된다.


‘만약… 2달 뒤, 내가 정말로 원래의 시간대로 돌아간다면… 남겨진 그녀가 버틸 리가 없어.’


내가 사라진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정신이 무너지리라.
그런 꼴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이미 그녀는 내 여자니까.


항상 곁에만 있어 줄 수 있다면 저런 식으로 내게 의존하게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언제나 크리스의 곁에 있을 것을 확신하지 못한다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선택이다.

“손. 잡을래?”

- …끄덕.


조그마한 손이  손바닥에 감긴다.
손에 땀이 날까 봐 신경 쓰이는지 자꾸 꼼지락 대면서 나의 손을 간지럽혔다.


우리를 보는 시선이 몇 개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미 우리는 어느 정도 공식적인 연인관계로 여겨지고 있다.
물론 나와 크리스는 이런 식의 스킨쉽을 할 때면 ‘친구끼리 할  있는 스킨쉽’이라는 핑계를 대고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아무리 봐도 연인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크흠! 그… 왠지 내가 이곳에 있으면  될 것 같군.”

“브랙이라고 했지? 앞으로 잘 부탁할게. 지금 이건 네가 익숙해지는 것이 빠를걸?”


흔들흔들.

나는 크리스의 손을 맞잡은 팔을 살짝 들어 흔들며 말했다.
이쪽을 향한 시선이 점점 더 많아진다.
그와 비례하듯 크리스의 얼굴이 빨개져 간다.

“꼭 그래야겠나?”

“사람의 감정을 감출 수는 없는 거잖아?”


“끄응…”


7년 전에도 한 팀당 인원은 5명이었다.
브랙과 크리스를 제외한 두 명과도 간단한 통성명을 마쳤다.
한 팀에 전체 1등인 나와 3등인 브랙이 같이 있는 것에 대한 밸런스 조절이라도 하듯, 그다지 특색있거나 뛰어난 사람들은 아니었다.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었다.




*




제라드는 별다른 능력을 보여주지 않았음에도 많은 훈련생이 그를 따랐다.
몇몇 훈련생은  달에 걸쳐 그를 향한 선망이 점차 맹목적으로 변해 갔는데, 그중에서도 왕 자건은 독보적으로 제라드를 따랐다.
그렇기에 나와  자건의 사이가 험악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왕 자건은 수석을 하며 제라드의 관심을 끌고 싶어 했지만, 나라는 벽에 막혀서  한 번도 수석의 자리에 닿아보지 못했으니까.
그렇다고 왕 자건이   있는 것은 없었다.
순수하게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서 차석을 한 것을 누구를 탓할까?

왕 자건은 나와 눈이 마주치더라도 아무것도  본 것 마냥 무시하고 지나갔고,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게는 굳이 그놈과 말을 섞을 이유가 없다.


가끔 제라드에게 불려가 독대를 하는 훈련생 몇몇이 나왔다.
 처음이 나였고, 그다음은 왕 자건이었다.
여기까지는 훈련소의 성적 순서대로였다.
하지만 세 번째는 브랙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군인이라는 경력이 있던 탓일까?
제라드는 브랙을 쉽게 설득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듯했다.
그를 건너뛰고 다른 훈련생부터 독대했으니까.


‘때가 오기 전에 크리스에게 미리 경고를 해둬야겠네.’


그러고 보면 크리스는 제라드를 별로 신뢰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믿으려 하지 않는 그녀의 트라우마로 인한 거부감 탓도 있었으며,
특성 『자애』의 효과인 ‘정신 공격 저항 35%’도 영향을 주는 것 같았다.
매력의 영향이든 특성의 영향이든 제라드의 그것은 일종의 정신 공격에 가까웠다.


한번 겪은 훈련을 반복하며 보내는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보통 훈련생은 팀원들끼리 어울렸다.
그건 나와 크리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무난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브랙과 우리는 쉽게 친해졌다.
이렇게 친구를 사귀는 것 또한 크리스의 트라우마 호전에 상당한 효과를 보일 것이 분명했다.





매일 밤 크리스와의 밀회 또한 빼먹지 않고 했다.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밀회를 마치기 전, 포옹과 함께 가벼운 키스를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 그녀와 키스를 했을 때는 1초 남짓한 가벼운 입맞춤이었다.
하지만 날이 가면 갈수록 서로의 입이 맞닿고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져 갔다.


지금 와서는 크리스의 입술 감촉을 즐길  있을 정도까지 왔다.

“…우움…”

스윽…

눈을 감고 있으면 크리스의 부드러운 입술을 더욱 선명하게 느낄  있었다.
키스가 길어지며 서로 가만히 입을 맞추고만 있지는 않았다.
어디까지나 ‘친구끼리  수 있는 스킨쉽’이었기에 혀는 쓰지 못했지만…
입술은 움직여도 되었다.


나는 입술로 그녀의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놓는 등의 가벼운 애무를 했다.
스치듯 비비기도 했으며, 꾹 누르며 저돌적으로 크리스의 입술을 탐하기도 했다.
며칠 전까지는 나의 애무를 말없이 받아들이던 그녀였지만, 이제와서는 내가 그녀에게 해준 것처럼 나에게도 간간이 가벼운 애무를 해주곤 했다.

…하지만 그녀는 나만큼 키스에 능숙하지 못했다.
크리스가 내 입술을 자신의 입술로 물었다 놓을 때면, 그녀의 타액이 나의 입술을 적셨기 때문이다.
오히려 살짝 흥분되었다.
부드럽고 건조하던 입맞춤 사이에 끈적한 액체가 섞여가며 야릇한 소리를 내었기에.

- 츄읍… 츕…


“…하움…”

혀만 오가지 않았을  서로의 타액이 입술을 통해 교환된다.
분위기가 점점 달아오른다.
이대로 은근슬쩍 혀를 섞어도 받아들일 것 같다.
그렇게 판단한 나의 혀가 그녀의 입술을 침범하려는 그때.

“프하… 하아… 하아… 잠깐… 미안…   막혀서…”


“키스하는 중에 숨 쉬어도 되는데.”


“그…그치만… 타이밍을 잘 모르겠는걸…”

결국  단계 더 밟지는 못했다.
지금까지는 키스는 하루에 한  뿐이었다.
서로의 입술이 떨어진 것을 신호로 우리의 밀회는 항상 막을 내려왔다.

꼬옥!


“…있잖아…”

하지만 오늘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돌아갈 준비를 하는 내게 크리스가 내게 안겨 왔다.

“한 번 더… 할래?”

“키스?”


“…응.”

“나야 좋지.”


“…키스는 엄청 기분 좋더라.”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네.”

“그럼… 여…연인끼리 하는 키스는  기분 좋으려나?”


“…”


크리스는 붉어진 얼굴로 도무지 내게 시선을 맞추지 못했다.
의문형으로 말을 맺었지만 의미하는 것은 하나였다.
그녀는 내게 연인의 키스를 해주길 요구했다.


‘하… 귀엽네 진짜.’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그녀의 입안을 흩고 싶었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연인들이 하는 키스는… 친구끼리 하는 것이 아닌데?”


“…그…그럼…”


“그럼?”

“여…연인이 되면… 해도 되지… 않을… 까…?”


드디어 내가 원하는 대답이 크리스의 입에서 나왔다.
나는 만족스레 웃으며  안에 있는 그녀의 턱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짚고 들었다.
저항은 없었다.
하지만 마주 보게 된 크리스의 커다란 눈망울 속 동공은 내 눈을 쳐다보지 못하고 땅 밑을 보고 있었다.
입술은 우물쭈물하며 약간 벌어졌다 닫히기를 반복했다.
허전한 무언가를 갈구하듯이.

…내게도 콩깍지가 쓰였나 보다.
크리스의 이런 모습 전부가 매력적으로 보였다.


“크리스.”


- 흠칫!


“…으…응?”


“인생 첫 연인이 생긴 걸 축하해.”


“…흐아아…”

나는 고개를 내려 녹아내리는 듯한 숨결을 내뱉던 크리스에게 입을 맞추었다.
입을 맞추자마자 바로 혀를 넣지는 않았다.
전과 마찬가지로 슬쩍슬쩍 입술을 애무하다가…
천천히, 부드럽게 밀려오는 파도가  영역을 넓히듯.
나의 혀가 그녀의 입술을 간지럽히며 핥았다.

“…후움…!”


- 움찔!

입술과 확연히 다른 뜨거운 살덩이에 크리스는 살짝 놀라며 몸을 떨었다.
입안에 넣은 것도 아니고, 고작 입술을 핥고 다시  입속으로 들어갔을 뿐인데.

“움… 츄우… 하움…”


이번에는 흐름을 깨기 싫었기에 슬쩍슬쩍 입술의 사이 공간을 살짝 떼어주며 크리스가 숨을 들이쉴  있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키스.
방금의 배려로 인해 이제 혀를 넣더라도 크리스가 크게 당황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이번에야말로 나의 혀는 그녀의 입안을 침범했다.


“!…”


지금껏 그 누구도 침범하지 못한 그녀의  안쪽은 무척이나 따뜻했다.
그러고 보면 신기했다.
한쪽이 따뜻하다고 느낀다면, 분명 다른 한쪽은 차갑다고 느껴야  텐데…
이렇게 혀를 섞을 때면 양쪽 모두 서로의 혀가 무척 따뜻하다고 느낀다.

크리스의 혀가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굳어져서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혀를 얽어서 간지럽혔다.

- 움찔! 움찔!


“흡…! 츄릅…!”


크리스가 느끼기에 그것만으로 상당한 자극이 되었나 보다.
혀와 혀를 섞고 있는 지금, 그녀가 내는 들릴락 말락 하는 신음 소리가 확실히 울려왔으니까.

스윽…


내 목에 크리스의 손이 감기는 것이 느껴진다.
크리스는 몸을 완전히 내게 돌리며 나의 키스를 활짝 열린 채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녀의 호응이 기뻐서 나는 좀 더 열정적으로 그녀와 혀를 섞었다.

질척대는 소리가 훈련소 뒤편에 가득 울린다.
내 혀가 유혹하듯 끌어들인 크리스의 혀를 살살 입술로 애무해 보기도 했고,
혀끝을 세워 그녀의 혓바닥을 자극하기도 했다.


그렇게 몇 분의 시간이 흘렀을까.
서로의 입술이 떨어졌을 때는  주변이 침이 범벅이 되었다.
크리스가 키스의 초보인 티를 팍팍 냈기 때문이다.


나는 격렬한 키스에 흐트러진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정리해 주며 말했다.


“어땠어?”

“으…으아… 뭔가… 둥실거리고… 따뜻하고… 부드럽고… 혀가 정말 내 머릿속을 휘젓는 느낌…”

“그냥 키스보다 숨쉬기 힘들었지?”


“응… 그래서 볼이  범벅이네… 킥킥.”

나는 나의 소매를 쥐어 그녀의 입가를 가볍게 닦아주었다.
조금 없어 보이긴 했지만, 들고 다니는 손수건이 없으니 어쩔  없다.
아예 닦아주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고.

“고…고마워.”

“내 연인한테 해주는 건데 뭘.”

“흐읏…! 그…그렇네. 응. 우리 이제 연인이네… 후후!”


“의외로 괜찮아 보이네?”

“새…생각보다 엄청 괜찮아. 이럴 거면 진작에 미루지 말걸 그랬나 봐…”


“여태껏 마음의 준비를 했기에 지금 괜찮을 걸 수도 있지. 조급해하지 않아도 돼. 내게는 네가 우선이니까.”


“…응. 고마워.”


꼬옥!

크리스가 팔을  허리에 두르며 꼭 안겨 왔다.
 압박감이 느껴질 정도로 강하게.
 말이 적잖게 가슴을 울린 것처럼 보였다.

때로는 낯간지러운 말이 필요하다.
남자들 중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제대로  타이밍에 한 번 사용하면 정말  성과를 얻어낼 수 있다.

“어떡하지… 나 점점 더 찬영이 좋아진다…”


“좋은 거 아니야?”

“…좋은 거네.”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말을 했기에 크리스의 발음은 약간 뭉개져 있었다.
하지만 저 말에 담긴 진심은 확실하게 와닿았다.

스윽… 스윽…


나는 내게 안긴 크리스의 뒷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었다.
그렇게 몇 분 더 서로의 온기를 나누다가, 다시 훈련소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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