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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66)화 (66/310)



〈 66화 〉테라포밍 *

 입장이 되어보면 누구든 깨닫겠지만, 제라드는 죽거나 그에 준하는 심각한 부상을 당할 것이다.
일단 원작에 따르면 제라드는 높은 확률로 죽는다.
전에 한 번 스쳐 지나가듯 말했다.
원작에 ‘혁명의 주동자인 훈련소 교관은 사살되었다.’라고 적혀 있었다고.

하지만 이제와서는 원작의 내용을 완전히 신뢰하지 못한다.
나로 인해 미래가 바뀐 것도 있지만, 그것뿐만이 아니다.
나는 7년 전으로 돌아오면서  주동자인 교관의 이름이 ‘제라드’인 것을 확인해 버렸다.
하지만…

‘7년 후에도 반군의 리더는 여전히 제라드였어…’

제라드는 7년 후까지 살아 있었다.
이건 이강인이 아닌 내가 7년 전으로 돌아옴으로써 원작과 틀어진 미래의 일부분일까?


원작에서는 훈련소를 습격한 우두머리의 이름이 제라드라고 나오지 않았다.
시점이 이강인에게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습격의 날.
원작  이강인도 반군의 우두머리를 마주치지 않았다.
그의 부하 두 명만 마주쳤을 뿐.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제라드의 얼굴도 보지 못했다.

광년이가 고블린에게 ‘제라드’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일 또한 없었다.
원작에서는 실제로 반군에게 납치당한 훈련생들이 있다.
그렇기에 광년이가 고블린에게 제라드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비꼴 정도로 상황이 가볍지 않았다.
농담으로 넘기기에는 도무지 웃지 못할 심각한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적어도 원작 속 분위기는 내가 겪은 것처럼 밝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광년이와 브랙, 훈련생은 물론 이강인까지 모두 침중하고 진지한 분위기였으니까.
즉, 원작에서 ‘제라드’라는 이름은  번도 나오지 않았다.
내가 반군의 우두머리 이름이 ‘제라드’인 것을 처음  때는 광년이가 고블린에게 이름을 붙여주었을 때다.

‘제라드가 원작 속 ‘혁명의 주동자’가 아닐 확률? 그럴 확률은… 너무 낮아.’


주동자는 훈련소의 교관이라고 확실하게 명시되었다.
훈련소의 교관은 많지 않다.
동부 훈련소, 서부 훈련소, 남부 훈련소, 북부 훈련소까지 총  곳이다.
아무리 많아 봐야 교관은 10명을 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주동자가 되기 위해서는 특별한 조건이 필요하다.
선동당한 훈련생·전투직이 많은 만큼, 주동자에겐 남을 끌어들이는 능력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카리스마라던지.


“더!  움직여라! 남겨진 체력의 한계까지 끌어다 사용해!”
“허억…! 허억…! 네에에엡!!”


- 쿨록! 콜록!
- 우웁… 웨엑…

모든 훈련생은 가혹한 훈련에 억지로 따라 왔다.
광년이의 경우처럼 훈련생들의 단체 항의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제라드의 분위기가 그들을 휘어잡은 탓이다.
고작 제라드를 만난  2주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반발심은커녕, 맹목적인 몇몇은 오히려 제라드의 명령에 따라가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광신도’를 보는 듯했다.

‘시발… 저놈이 어떻게 주동자가 아니야?’


시간이 지날수록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혁명의 주동자에 가장 알맞은 인물은 바로 제라드라고.
그가 훈련생을 밀실에 단독으로 불러서 차근차근 자신의 이념을 설파한다면…
넘어가지 않을 훈련생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

과연 이렇게  들어맞는 인물이 10명이  되는 교관 중 2명이나 있을까?
‘교관’이라는 직책은 손에 꼽는 엘리트들만 맡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전혀 없는 확률은 아니지만…
극도로 희박한 확률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 털썩!

“허억… 허억…”
“교관님! 쓰러진 훈련생이 나왔습니다!”
“…잠깐 열외 시키도록. 나머지는 계속해서 훈련을 진행한다.”

크리스가 쓰러진 것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가진 재능이 뛰어난 그녀는 이곳에   일주일을  넘기자 마나 각성을 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보유한 마나 보유량은 적었지만…
마나 각성자들은 기본적인 체력 회복량이 소량 상승하기에 나름 잘 버티고 있었다.
매일 밤 먹는 그린 얌의 덕도 있고.

“잠깐 업겠습니다.”
“허억…! 허어억…! 허억…!”


- 스윽…


제라드에게 지목된 훈련생은 쓰러진 훈련생을 업어서 훈련장과 떨어진 곳에 눕혔다.
나는  모습을 보면서 끊어진 생각을 다시 이어나갔다.


‘다시 본론으로… 제라드는 죽지 않을 확률이 상당히 높아. 하지만, 적어도 큰 부상을 당하겠지.’

그가 큰 부상을 당할 확률은 아주 높았다.
7년 전인 지금도 제라드는 교관급의 무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7년 후까지 살아 있다니?
아마… 지금과 비교할 수 없는 무력을 손에 넣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내가 겪었던 미래는 그렇지 않았다.


‘제라드가 정상적으로 7년간 신체 능력을 올렸다면, 그가 습격했을 때 광년이가 버텼을 리가 없지.’

순식간에 광년이가 패배했어야 정상이리라.
그렇지 않은 이유는 하나다.
제라드는 어떠한 원인으로 7년간 성장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나는 그 원인을 커다란 부상으로 예상했고.


즉,  중 하나다.
제라드는 혁명을 일으킨 즉시 죽거나, 아니면 회복하는  7년이나 걸리는 심각한 부상을 입거나.
내가  처음에 확정하듯 이  가지 가능성을 말한 이유는 이러했다.

‘젠장… 그가 혁명을 일으킬 타이밍을 모르는 것이 문제네. 내가 이곳에 있으리라 추정되는  달 내에 하려나?’


괜찮다.
제라드는 그가 가르친 역대 기수들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훈련생을 영입하려 들 것이다.
그리고 훈련생 중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나는 영입대상 1순위가 분명하고.
그의 말에 설득된 척을 하면서, 타이밍을 가늠하면 된다.

‘아니면 제라드에게 바람을 불어 넣어서  타이밍을 내가 직접 조정해도 되고.’


내가 먼저 제라드에게 다가갈 순 없었다.
조금이라도 의심을 살 행동을 해선  된다.
나는 조급함을 가지지 않고 얌전히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


“잠깐 이야기 좀 하지.”

사흘 전과 마찬가지로 제라드에게 프룸을 받으러 갔을 때.
그에게 인사를 건네고 회의실을 나서려는 순간, 제라드가 내게 말을 걸었다.

‘드디어 접촉을 시도하는 건가?’


나는 밖으로 나가려던 몸을 돌려 제라드를 마주 보았다.
제라드는 나를 진지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가 책상 앞 빈 의자를 손으로 가리킨다.

“예. 교관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가리킨 의자로 가 앉았다.
제라드는 책상을 사이에  채 나를 마주 보며 앉았다.

“…”

그는 바로 대화를 시작하기보다는 살짝 뜸을 들이기 시작했다.
주변의 공기가 바뀌었다.
살짝 어깨에 무게가 실린 느낌이 들며, 긴장감을 형성하는 분위기가 회의실 안에 깔렸다.
저건 의도된 행동이다.

‘내 주의를 자신의  말에 주목시키기 위함이겠지.’


뻔하게 제라드의 생각이 읽혔지만, 모르는 척하며 긴장된 얼굴로 침을 한번 삼켜주었다.

- 꿀꺽.

나의 반응을 확인한 제라드가 입을 열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묵직한 목소리가 주변을 울리기 시작한다.


“…지금 인간이 처한 상황은 심각하다. 괴물들은 우리의 살결을 맛보기 위해 호시탐탐 인간의 영역을 노리고 있고, 자원은 턱없이 부족하며, 먹여야 하는 입은 끊임 없이 늘고 있지.”


“…위기…네요.”

“그렇지. 하지만 더욱 심각한 점은 위협은 외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이곳에는… 이기적인 사람이 너무 많아.”

“이기적?…”

“그래! 다 같이 이 세상에 떨어진 이상, 우리들은 생사의 기로에 한 몸으로 묶였다! 모두가 협력해도 살아남을지 장담하지 못해.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자신의 이득만을 챙기려 하는 쓰레기들이 있다.”


“…”


“그들은 규칙도, 규제도 없던 이 새로운 세상에서 본인들의 배를 불리기 위한 제 멋대로인 규칙을 만들고, 합법적으로 하위 계층을 갈취하고 있지.”

“…’그들’이라면?…”


제라드는 말없이 손을 들어 한 방향을 짚었다.
남쪽.
 방향대로 쭉 간다면, 중앙 지휘소가 있는 곳이다.

“이렇게는 안 돼. 이런 식으로 개인만을 우선해서는… 우리는 한 몸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 그렇다면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나는 슬쩍 고민하는 척을 했다.
혁명을 일으키려는 그가 원하는 대답은 무엇일까?
 정답은 어렵지 않게 나왔다.

“…멋대로 세워진 규칙부터 바꿔야겠네요.”


- 끄덕!

“그래! 정확하다! 우리에겐 새로운 규칙이 필요해!! 전투직 에게도, 우리들이 지켜야  쉘터의 주민들에게도, 심지어 지도자조차도 예외 없이! 철저하고! 공평하고! 강력한!!”

나의 말에 제라드는 흥분하여 침을 튀겼다.
내가 자신의 이념을 이해해주는 것처럼 보였기에 보인 반응이다.
물론 나는 그가 원하는 것처럼 보이는 말을 뱉었을 뿐이다.
효과는 확실했다.
나를 향한 제라드의 호감이 큰 폭으로 상승한  같으니.

“이곳은 지구가 아니야! 지구와 달리 우리의 적은 명확하다! 목숨이 위태로운 지금, 지구와 다른 규칙이 필요해! 그뿐만이 아니다. 그 규칙을 본인부터 칼같이 지켜나가야 할 리더가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기꺼이 그 역할을 맡을 준비가 되어 있지.”

“그 말씀은…!”


역시.
나의 예상대로 주동자는 제라드가 맞았다.
이제는 확정할 수 있었다.

“이미 나의 숭고한 이념에 함께 하기로 한 인원은 백이 넘는다. 모두들 각자의 능력이 뛰어난… 현직 전투직들이지.”


 명!
이런 시발, 생각보다 인원이 많다.
몬스터와의 전선을 유지하던 백 명의 전투직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도 두려운 일인데, 심지어 적으로 돌아선다니?…
내 등이 살짝 섬뜩해 지는 것과는 별개로 제라드는 계속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주절주절…


자신이 새로 세울 목표와, 규칙과 그 방향성을.
그것은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내용이었다.
제라드는 최대한 좋게 포장을 했지만, 나는 그 내용의 핵심을 꿰뚫었다.

‘이거… 사회주의 이념이잖아?… 일인자에게 집중된 절대적인 권위. 규율을 거스를 경우 혹독하고 잔혹한 탄압. 개인의 이득보다는 단체의 이득을 우선. 항시 전투 태세를 유지하는 철권통치…’

그것도 사회주의 중에서도 가장 이미지가  좋은 ‘스탈린주의’에 가까운 것처럼 보였다.


모든 권력을 틀어쥔 일인자가 마음만 먹으면, 대한민국 북쪽에 있는 핵을 가진 돼지가 그러는 것처럼 심각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 위험한 이념이다.


‘아니… 이딴 개소리에 동조한 인원이 무려 100명이나 된다고?’

나도 사회주의에 대해서 아는 것은 많이 없다.
그저 세계사 공부를 하며, 수능을 보는 고등학생이 알고 있는 정도의 수준밖에 모른다.
하지만 저것이 어마어마한 부작용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은 안다.
지구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던가?
어째서 사람들은 그걸 깨닫지 못했지?


‘아… 시발… 그러고 보니 전투직들은 전부 무식했지?…’

좀 배운, 공부를 한 사람들이라면 제라드의 사상이 무얼 뜻하는지 알았을 테지만…
전투직은 학력이 있는 사람들을 전부 가려내고 기술도, 학위도 없는 사람들의 모임인 것이다.
그렇기에 저 개소리의 진실된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그의 추종자들의 제라드를 향한 맹목적인 믿음 또한 거대한 영향을 끼쳤으리라.


“…그렇기에 자네가 우리와 뜻을 함께하기를 바라네. 부디 거절하지 말아줬으면 좋겠군. 우리에겐 자네가 필요해.”


눈앞의 반동분자 빨갱이가 내게 말을 건넸다.
그는 내가 자신과 함께하리란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시종일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의도적으로 지은 표정이다.
‘당신의 말을 경청하고 있습니다.’라는 신호를 전달하기 위해서.

나는 제라드의 말을 듣고 표정을 바꾸었다.
치아가 보이지 않을 정도만 입을 벌리고, 눈보다는 눈썹을 들어 올리며, 상체를 살짝 앞으로 기울인다.
바로 사람들이 깊은 감격을 겪을 때하곤 하는 몸짓이다.


“제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꼭, 교관님의 큰 뜻에 함께하고 싶습니다.”

“흠! 좋아!”

- 덥썩!


제라드는 내게 악수를 청하듯 손을 내밀었고, 나는 감동한 얼굴로 그 손을 두 손으로 맞잡았다.
몇 마디의 대화가 더 오갔다.
제라드는 혹시나 내가 거짓으로 함께 하겠다고 말했는지 시험하는 것처럼 질문을 던졌다.
나는 그럴 때마다 그가 원하는 대답을 가려운 곳 긁듯이 대답해 주었다.
내게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얼마  가 제라드는 내가 그의 이념에 물든 것을 확신한 듯했다.

“…그래. 그러면 오늘은 늦었으니 쉬도록 하지. 수고했네.”

“아닙니다. 제게 말씀해 주신 것, 후회하지 않게끔 하겠습니다.”

“훈련생들을 대상으로 섣부르게 움직이지 말도록. 때가 되면 내가 그들을 불러 독대하겠다. 오늘처럼.”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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