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테라포밍 *
내가 한번 들어간 소설들은 반드시 완결시켜야 한다.
그것은 시스템을 받으며 천계와 약속한 하나의 계약이었다.
절대 소설 속 세상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그렇게 나는 천사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도대체 소설을 완결시키는 방법이 무엇이냐고.
그에 대한 천사의 대답은 항상 같았다.
- 언젠가 때가 되시면 저절로 알게 되실 겁니다!
천사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항상 고민에 잠기고는 했다.
어떻게 해야 소설을 완결시켜야 할까?
실제 웹소설들은 언제 완결이 되지?
다른 것은 모르겠고, 단 하나 알 수 있는 것은 있었다.
바로…
최소한 연중이 된 시점까지는 소설이 닿아야 완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상태창.”
띠링!
[소설, ‘테라포밍’이 연중 된 시점을 넘어섰습니다! 이제부터 ‘테라포밍’이 완결 가능해집니다!]
=
[TIP]
‘완결’은 소설이 연중 된 시점을 넘어선 시점부터 자유롭게 가능해집니다!
하지만 주의하세요.
한번 ‘완결’을 선택하시게 되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소설을 완결하시게 되면 보상을 받습니다.
그 보상의 값어치는 소설의 완결 시점의 ‘완성도’에 따라 달라집니다.
현재 ‘테라포밍’의 완결 완성도: 13% [열린 결말. 연재 중단과 다를 바 없음.]
*주의
완성도는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실시간으로 바뀝니다.
극단적인 경우, 당장의 완성도가 100%라도 다음날이 되면 70%로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한가지 ‘에피소드’가 끝난 직후면 완성도는 높아집니다.
하지만 그 이후 새로운 에피소드에 들어가게 되면 완성도는 떨어지죠.
즉, 완성도는 완결의 타이밍입니다.
소설을 완결하셔도 소설 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이상 해당 소설 속에서 죽어도 부활하지 않습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습니다.
또한 소설 속에서 나온 순간 시간이 멈추지 않습니다.
소설 속 시간은 지구와 1:1 비율로 흘러갑니다.
=
“…엄청나게 기네. 이건 좀 의외인걸? 내가 완결하고 싶을 때 완결할 수 있다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실제 웹소설들이 완결되는 시점이란?
그건 당연히 창작자가 완결하고 싶을 때 완결이 된다.
그 완결이 개판이든, 아니면 떡밥을 전부 회수하고 한 완벽한 완결이든, 완결하는 것 자체는 창작자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창작자를 잃은 소설들의 새로운 창작자나 마찬가지였다.
소설 속 세상은 실존하는 차원이지만…
그것이 여전히 ‘소설’이라면, 창작자가 내킬 때 완결시킬 수 있는 것은 당연했다.
“…오래전, 아기 천사가 뿌려놓은 떡밥이 이거였네.”
아기천사가 말하길, 나는 똑똑하니 정보가 주어지면 바로 눈치를 챌 것이라 했다.
그 녀석의 말대로 나는 때가 되니 바로 눈치를 채 버렸다.
내게 하급 포션을 줄 때.
아기 천사는 ‘소설을 완결지은 순간 그 소설에서 구할 수 있는 아이템이 상점창에 등장한다.’라는 정보가 스포일러라고 했다.
나는 미리 알아도 상관없는 정보라고 생각했으나, 아기 천사는 이것이 내게 큰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내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이유’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얘기해 주지 않았고.
이제야 그 말을 깨달았다.
“즉, 완성도 따윈 신경도 안 쓰고 그냥 소설을 완결시켜도… 상점창에 아이템은 뜬다는 건가… 확실히 스포일러긴 하네. 내가 이 정보를 몰랐으면 완성도를 올리는 것에만 집중 했을 테니까.”
지금 당장 소설을 완결시키면 소설 완결 보상은 형편없겠지만, 상점창에 새로운 스킬이 올라올 확률이 있다.
게다가 소설 진입 공간이 한 칸 비어서 새로운 소설로 들어갈 수도 있고.
“…아니. 급하게 완결하기보다는 역시 완성도를 올리는 것이 더 좋아.”
완결 후에는 죽어도 부활하지 않는다는 패널티 때문이 아니다.
완결의 보상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완결 보상이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직 한 번도 죽지 않았다.
완결 보상이 조금도 깎이지 않은 것이다.
다음 소설도, 다다음 소설도, 이렇게까지 잘 풀리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어쩌면… ‘테라포밍’이 내가 평생 받을 완결 보상 중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어.”
그런 기회를 허무하게 놓칠 생각은 없었다.
나의 다음 목표는, 완성도를 올리는 것으로 정했다.
나는 다시 눈을 상태창으로 돌렸다.
=
[이름] 박찬영
[직업] -
[힘] 18 → 20 [민첩] 18 → 20
[체력] 17 → 20 [지능] 7 → 8
[기교] 16 → 19 [매력] -3 → 31
[마나] 120 → 151
[특성] 『자연치유』
선령일일 만요월월(仙令日日 灣謠月月)의 버프, 매력 제외 모든 스텟 +6 (00:00:02)
프룸의 버프, 힘·민첩·체력 스텟 성장률 증가 33% (00:51:23)
몽환(夢幻)의 구슬 사용 효과, ■■■ ■■까지 남은 시간 1,631시간 41분 32초. (1631:41:32)
현재 진입 중인 소설, ‘테라포밍’의 완성도 - 13% [열린 결말. 연재 중단과 다를 바 없음.]
보유 카르마: 3,275
=
=
『자연치유』
범용적인 능력을 갖추었습니다.
정신력 저항이 아닌, 정신력 재생을 얻을 수 있는 희귀한 특성입니다.
상처 재생 (小)
스태미나 재생 (小)
정신력 재생 (小)
마나 재생 (小)
정신 공격 저항 5%
물리 공격 저항 5%
마법 공격 저항 5%
=
방금 전 외모 편집에 카르마를 많이 쏟아부었기에 남아있는 카르마는 얼마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오! 있다! 그런데… 역시 가려져 있네.”
몽환(夢幻)의 구슬 사용 효과, ■■■ ■■까지 남은 시간 1,631시간 41분 32초.
상태창에서 이 부분을 보면 된다.
이렇게 글자가 가려진 채 있는 버프는 이미 한 번 본 적이 있다.
정천(停天)의 구슬로 시간을 멈추었을 때, 나는 외모를 변경하기 위해 상태창을 열었다.
그때 지금과 마찬가지로 효과가 가려진 버프를 한번 봤기 때문이다.
아마 아이템의 사용 효과를 [아이템 정보 확인]으로 확인하지 못했기에 밝혀지지 않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정천의 구슬 때는 효과가 가려져 있어도 원작을 읽었기에 효과를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1년 동안 시간이 멈추는 것이란 효과를.
하지만 이번에는 몽환(夢幻)의 구슬의 효과를 모른다.
나는 일단 남은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
“음… 대략 두 달이 조금 넘는 시간이네?”
단순히 몸을 7년 전으로 보내 주는 것이면 이렇게 지속 시간이 나올 리가 없다.
2달 뒤에 무슨 일이 생기니까 저렇게 보여주는 것이지.
“몽환… 몽환(夢幻)이라…”
하늘과 세상의 시간을 멈추기에 정천(停天).
그렇다면 몽환(夢幻)은 무얼 의미할까?
몽환은 꿈 또는 환상이라는 의미를 가졌다.
모든 것은 허황된 것이고, 덧없음을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몽환의 구슬… 환상의 구슬… 꿈의 구슬…”
음…
사실상 억측에 불과하지만, 한가지 가설이 떠오른다.
저 2달의 시간이 전부 지나가면, 7년 전으로 전이한 내 몸이 다시 원래의 시간대로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가설이.
‘꿈은 시간이 지나면 깨기 마련이니까.’
어쩔 수 없다.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면…
일단 이 가설을 상정한 상태로 움직여야겠다.
*
훈련은 과거와… 아니, 미래와 많이 달랐다.
아직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세워지지 않은 건지, 아니면 광년이와 브랙이 유능했던 것인지, 훈련의 강도는 가혹했다.
개인의 기량에 따라 세세히 조정되는 것이 아닌…
모든 훈련생들의 평균점을 기준으로 목표가 잡혔다.
…그 말은 전체 훈련생의 50%가량은 훈련에 제대로 따라오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끄흑… 허억… 콜록… 콜록콜록…”
“괜찮으십니까?”
끄덕끄덕.
“콜록… 허억…허억…”
크리스 베넷은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내 앞이라서 억지로 구역질을 참고 있는 듯했다.
특히 하위 10%에 대한 취급은 심각했다.
그들이 따라오지 못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일정대로 진행했다.
‘이런 시발… 그러고 보니 리 샤오린과 광년이가 ‘게임’을 한 날, 브랙과 광년이가 회의하던 중 ‘사상률’, ‘사망자’ 이야기가 나오던데… 그게 과거 이야기였어?’
훈련생들의 반항을 일부러 일으키기 위해 방치했던 날.
광년이와 브랙은 사상률, 사망자 등의 이야기를 꺼내며 훈련 강도를 조율하는 회의를 했었다.
7년 전인 지금은 정말로 훈련 도중 사망자가 나왔나 보다.
이곳, 북부 훈련소가 아니더라도 다른 훈련소에서.
그 둘은 이런 훈련을 직접 겪은 인물이니, 사망자를 신경 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농담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3달을 훈련시키면 기초 스텟이 낮은 크리스 베넷은 버티지 못한다.
훈련이 가혹한 것에는 본의 아니게 내게도 원인이 있었다.
내가 대부분의 훈련을 여유롭게 끝냈기에 이번 기수의 ‘평균’을 높여버린 것이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하위권 사람들을 챙겨주고 있었다.
유난히 힘들어하는 크리스 베넷을 위주로.
“괘…괜찮으신가요?”
“아…네… 감사…”
나 이외에도 지쳐 있는 사람을 챙기는 이들이 몇몇 보였다.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갖춘 내가 하위권 사람을 챙기자, 체력이 남은 상위권 사람 몇몇이 슬쩍슬쩍 하위권 사람을 챙기기 시작했다.
내 덕에 이런 분위기가 훈련소 안에 퍼진 것이다.
내가 위선을 부린다고 생각하며 고깝지 않게 보는 눈도 몇몇은 있었지만,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이 나의 선의를 있는 그대로로 받아 들였다.
왜냐고?
얼굴이 잘생겼으니까.
온라인상이 아닌 현실에서 잘생긴 사람을 대면하면, 그 남자의 행동 대부분을 호의적으로 해석하게 된다.
사람들은 당장 눈앞에서 잘생긴 남배우가 쓰레기 같은 짓을 하더라도 ‘내가 모르는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라고 한 번 더 고민해 버리는 것이다.
그에 대한 증명으로 백하민을 들 수 있다.
백하민이 쓰레기 같은 짓을 한 것은 첫날부터인데, 친구들이 전부 떠나가기까지 한 달도 넘게 걸리지 않았던가?
외모가 잘생겼기에 남들보다 많은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못생긴 놈이 그런 짓을 했으면 진실 여부가 밝혀지기도 전에 절반은 떨어져 나갔겠지.’
외모는 상상 이상의 무기다.
그리고 내 손에는 그 무기가 쥐어져 있으며,
나는 이 무기를 활용하는 방법을 아주 잘 안다.
*
기초체력 훈련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나자 훈련소 안의 서열이 확실히 정해졌다.
1위는 당연히 압도적인 체력을 보유한 나다.
2위는 왕 자건이라는 처음 보는 중국인이다.
그리고 3위는…
띠링!
=
[이름] 브랙
[직업] -
[힘] 12 [민첩] 10
[체력] 14 [지능] 7
[기교] 11 [매력] 26
[특성] -
=
나보다 훨씬 열심히 훈련생을 챙겨주고 있는 브랙이다.
크리스 베넷과 브랙이 같은 기수였나?
어쩐지 둘이 좀 많이 친해 보이긴 했다.
브랙이 손가락에 꼽히는 최상위권이 되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예전에 말했다시피 그는 지구에서 외인부대에 속했던 군경력이 있었으니까.
심지어 헬스장을 운영하며 하루도 운동을 빼먹지 않았으니 보유한 체력이 높은 것은 당연했다.
“괜찮으세요?”
“네…네에… 매번 고마워요. 찬영씨…”
크리스 베넷은 내 말에 작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내게 민폐를 끼치는 것이 부끄러운 것 같았다.
이런 소심한 사람이 나중에 그런 천박한 말을 뱉는 광년이가 된다니…
두 눈으로 보면서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크리스 베넷을 챙기던 그때.
“위선자 새끼…”
- 퉷.
나를 향해 작게 한마디를 한 뒤, 구겨진 얼굴로 침을 바닥에 뱉으며 돌아가는 한 명의 남자가 있었다.
저놈의 이름은 왕 자건.
이 훈련소 서열의 2위이자 내 바로 밑에 위치한 놈이다.
왕 자건은 가끔 내가 남들을 돕는 것을 보고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을 했었다.
전에 말한 나를 ‘위선자’로 보는 속이 뒤틀린 놈 중 한 명이다.
그런데…
지금 저놈 설마 내게 시비를 걸어도 넓은 마음으로 넘어가 줄줄 안 건가?
그렇다면 착각한 것이다.
리 샤오린때도 그랬지만, 나는 먼저 걸어오는 시비를 넘어가 줄 만큼 착한 놈이 못 된다.
그리고 될 생각도 없다.
“이봐. 버러지.”
터벅터벅… 탁!
“…지금 나보고 한 말인가?”
“왜 모르는 척하려 그래? 너 스스로가 버러지인 건 네가 제일 잘 알 텐데.”
“뚫린 입이라고! 고작 소국(小國) 출신 주제에!!”
“지금 네 꼬락서니가… 너희가 입으로만 말하는 대국(大國)의 국민 수준과는 정 반대인 좆같이 좁은 속내(小心) 아니냐? 아… 그래서 중국(中國)인 거야? 그럼 인정이지.”
“이런 개새끼가!!!”
탁탁탁!
도발의 효과는 확실했다.
왕 자건의 얼굴이 많이 못생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주먹을 틀어쥐고 내게 달려온다.
내가 바라던 대로.
- 흐읍!
퍼억-!
“꺼…억…!!”
시발놈아.
리 샤오린은 ‘예쁜’ 여자였기에 안 때린 거다.
네가 고추 달린 새끼인데 내가 참아야 할 이유가 있어?
나는 달려오던 왕 자건의 배에 일정권(一正拳)을 깔끔하게 먹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