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63)화 (63/310)



〈 63화 〉테라포밍 *

빛이 사그라들며 차올랐던 마나가 공중으로 흩어진다.
눈앞이 아직 보이기 전, 나는 광년이를 향해 크게 외쳤다.

“교관님! 죄송합니다! 제가 이 신전에 놓여있던 유물을 잘못 만져서…! 괜찮으십니까?”


“이쪽은 괜찮아! 너는?”


“저도 괜찮습니다!”


- 끼이익…


 신전의 밝기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나는 빅터가 쫄아있는 틈을 타서 광년이의 곁으로 합류했다.
그리고, 마할과 광년이가  얼굴을 발견했다.

“허억! 찬영씨? 어…얼굴이 바뀌었…”
“찬영?…”


“아, 네. 아까 유물을 잘못 만졌을  얼굴이 좀 간질간질하던 느낌이 있던데…”


“세상에… 하긴… 그런 어마어마한 마나라면  정도 기적은 쉽게 일으킬 것 같기도 하네요… 허어…”
“찬영?…”


“차라리 저 원숭이 놈이나 좀 치워줬으면 좋았겠지만요.”

“찬영씨는 모르나 본데, 지금 찬영씨 얼굴 어마어마하게 잘생겼어요. 여기서 살아만 간다면… 부러운걸요?”
“찬영?…”


내가 마할과 대화를 하는 와중에 옆에서 자꾸 광년이의 멍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그녀를 쳐다본 채 말했다.

“네. 접니다. 박찬영. …제 얼굴이 많이 이상합니까? 교관님?”
“찬영? 찬영이야? 정말? 찬영? 찬영이라고? 아니? 어라? 죽었… 죽지 않았… 어?”
“…네?”

덥썩!


광년이가 내 양 볼을 덥썩 잡는다.
그리고 더듬거리며 쓰다듬었다.
마치 정말로 존재하는 것인지 확인하려는 것처럼.


“살아 있었어?…”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그녀에게 무슨 말이든 대답하려는 그때.

- 끼이이이익———!!!


정신을 차린 빅터가 우리에게 날아들었다.


‘이런 젠장!’

광년이는 이유를 모르지만 지금 정신이 날아갔다.
마할 또한 빅터의 움직임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시발…
이왕이면 최대한 안 쓰고 넘어가고 싶었는데.
나는 손에 쥔 파란 구슬에 마나를 흘려보내었다.

‘제발!!… 제발 강력한 마법 같은 것이 저 자식을 죽여 줬으면!!…’


사실, 원작에서도 이강인은 이 파란 구슬을 사용한다.
노란 구슬을 쓰고 1년간 발전시킨 검술로도 놈을 이기지 못했으니 최후의 최후 수단으로 파란 구슬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파란 구슬의 효과를 모른다.
모르는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이 파란 구슬을 쓴 것을 마지막으로 ‘테라포밍’의 연재가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강력한 빛과 마나가 신전 안을 가득 채웠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

“여…여긴 어디?…”
“어어?”

웅성웅성.


나무에 둘러싸인 꽤 널찍한 공터.
그곳에  100명에 달하는 인원이 모여 떠들고 있다.
나는 그들과 조금 떨어진 외곽에 있었다.

너무나, 너무나 데자뷰인 광경이다.
마치 테라포밍에 처음 들어왔을 때처럼.

“…이거 씨발 설마…”

신전에 있던 3개의 구슬.
앞선 2개의 구슬은 시간과 관련이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외모를 바꾸기 위해 사용한 한개는 시간을 멈추었고,
이강인이 사용한 한개는 시간을 회귀하게 했으며,
방금 사용한 마지막 구슬은…

“과거로 몸을 돌려 보내주는 구슬이었던 건가?”



사람들은 미치도록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다행히 내가 있는 곳은 숲의 바로 옆.
나는 당장 나무 뒤로 들어가 가죽 갑옷과 손에 쥔 칼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순식간에 행동했기에 구석에 있던 나를 눈치챈 사람은 없는  같다.
애초에 내가 소환된 곳이 무리와 조금 떨어진 장소였기도 했고.


자.
생각을 정리해 보자.

“아니지?… 아니지?… 시발 설마 재입대라고?”

3개월의 훈련생 생활 중 가장 힘든 2개월을 끝냈더니, 첫날로 돌아온  같다.
내가 처음 소환되었을 때로.
…아직까지는 그런  알았다.

“하악…! 허억…! 허억…!”


어디선가 과격한 숨소리가 들려 왔다.
숨을 쉬는 것이 아닌, 폐에 공기를 밀어 넣는 것만 같은 절박한 숨소리가.


“흐억…! 흐악…! 허억…! 허억…!”


고개를 돌리니 근처의 금발을 가진 여성이 패닉이 오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명백한 과호흡 증상이었다.
저대로 두면 정말로 죽을 수도 있다.

빠르게 그 여자에게 다가가서 어깨를 잡고 나와 마주 보게 했다.
내가 흥분하면 절대 안 된다.
나의 침착함이 이 여자에게 전해져야 한다.
목소리의 묵직함을 담아 천천히 말을 내뱉었다.

“괜찮습니다. 저를 보세요. 숨을 들이쉬고, 다시 내쉬죠. 자. 다시. 들이쉬고,”


“헉! 허억!… 흐읍… 후우… 하아… 흐읍… 가… 감사…”

“아직 안 끝났습니다. 집중하세요. 들이쉬고, 내쉬고. 하세요.”


“네…네… 흐읍… 후우…”


여자는 명백히 겁먹고 있었다.
시끄러운 주변 환경, 갑자기 밖으로 몸이 이동된 이상 현상, 자신의 어깨에 올려진 내 손, 심지어 내 눈을 마주 보는 것까지도.
심각한 대인 기피증에서  수 있는 증상이다.
나는 그녀가 진정된 것을 확인한 뒤, 어깨에서 손을 떼었다.


…그녀를 보고 있으니 이질감이 든다.
특별한 장신구는 없지만, 얼굴에는 화장이 되어 있다.
대인 기피증을 가진 사람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화장을 했다?
목걸이, 귀걸이, 하다못해 그 흔한 반지 없이 오로지 화장만?
조금…
아니, 많이 이상했다.


“박찬영입니다. 반가워요.”

“아…아…네… 감사… 저…저는…”


“심호흡. 심호흡.”

“후…하… 하아… 네… 저는 크…크리스 베넷입니다.”

뭐?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다.
남들은 잘 모를지 몰라도, 나는 이 이름을 알고 있다.
시스템창에서 확인한 광년이의 본명이 크리스 베넷이었기 때문이다.


우연인가?

우연이겠지.
내가 아는 크리스 베넷… 광년이는 금발이 아니다.
노을을 닮은 주홍빛 머리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래.
머리카락은 탈색했다고 치자.
하지만 광년이의 얼굴은 이렇게 깨끗하지 않고 미약한 주근깨가… 젠장! 화장! 그래서인가!


“…상태창.”
“예?…”

내 입에서 나온 말에 어리둥절한 얼굴로 금발을 가진 여성이 말을 걸었지만, 나는 그런 것을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진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띠링!


=
[이름] 크리스 베넷
[직업] -
[힘] 5  [민첩] 6
[체력] 5   [지능] 7
[기교] 3 [매력] 42


[특성] 『자애』
=


=
『자애』
사람을 쉽게 믿습니다.
가끔은 더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소를 희생하고는 합니다.
이득만이 존재하는 특성은 아닙니다.


정신 공격 저항 35%
믿음을 쉽게 건네줌.
=


처참할 정도로 낮은 능력치.
하지만 그런 것에 눈길을 빼앗기지 않았다.
내게는 오로지 특성의 『자애』만이 눈에 들어왔다.

‘하하… 이런 시발… 2개월 전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었네…’

나는 7년 전으로 돌아온 것 같다.
그리고…
충격이 내 뇌리를 뒤흔들었다.

“아!…”

이제 이해가 간다.
지금까지 풀리지 않았던 의문이 풀려간다.

테라포밍에 온 첫날.
내가 아무런 변수를 일으키지 않았음에도 원작과 다르게 상황이 흘러간 이유를.
광년이가 이강인 보고 ‘전남친 닮았네.’라고 하지 않은 이유를.
그 둘이 원작 소설과 달리 서로 마찰이 일어난 이유를.


당연하다.
원작에서는 이강인이 파란 구슬을 사용해서 7년 전으로 이동 했을 테니까.
원작 속 광년이가 첫날에 이강인을 바로 알아보지 못한 이유도 있었다.
노란 구슬을 사용하며 1년 동안 이미지가 뒤바뀐 이강인은 다른 사람처럼 뒤바뀌었다고 서술되어 있었다.
게다가 이강인의 본신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성격대로라면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가명을 썼을 확률도 있고.

하지만 지금은?
내가 이강인을 대신하여 이곳에 와버렸다.
광년이가 초면에 나를 알아보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나는 테라포밍 기준 2달 전과 지금은 완벽히 다른 사람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변했으니까.
오히려 이름이 같다고 알아보는 것이 이상한 것이다.

‘…그래서 내 이름가지고 그렇게 뭐라고 한 거였어?’


아마…
확신하지는 못하겠지만, 백원후(白猿猴) 빅터가 이강인이 아닌 나를 노린 이유도 지금 이 사건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직감이 크게 들었다.


“…혹시 찬영씨는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알고 계시나요?… 너…너무 침착해 보이셔서…”


절레절레.

“아니요. 저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곧 알게  것 같군요. 이쪽으로 오고 있는 무리들이 보입니다.”


저벅저벅.

저 멀리서부터 십수 명의 발걸음이 들려 온다.
아마…
7년 전의 교관일 것이다.


“주목!! 지금부터 이 인원들은 내 통제에 따른다!”

목소리가 귀에 박히듯 들어왔다.
마나가 담긴 것은 똑같았지만, 첫날 우리를 부르던 브랙과 느낌이 상당이 달랐다.

위압감이 나를 짓누른다.
반드시 저 목소리 주인의 말에 집중해야 할 것 같은 묵직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우리를 부른 것으로 보이는 남자의 상태창을 열었다.


띠링!


=
[이름] 제라드 호프만
[직업] 혁명가
[힘] 37   [민첩] 35
[체력] 36   [지능] 22
[기교] 31 [매력] 162
[마나] 127


[특성] 『중언』
=


=
『중언』
말에 무게가 실리며 사람들의 이목을 주목시킵니다.
매력 수치가 높을수록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매력 스텟 + 50
=

“이런 미…친…”

지금까지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매력 스텟.
나는 그 위력을 절절하게 체감하고 있었다.
브랙이 이들을 통솔했을 때, 따르는 사람보다 항의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몇 가지 질문을 할 것이다! 솔직하게 답하도록! 피해가 가지 않음을 미리 말해두겠다!”

지금은 어떤가?
저 남자가 시키는 대로 반항 없이 따르고 있었다.
모두들 신상을 캐내는 질문에도 거리낌 없이 얌전히 대답해 주고 있었다.
이건…
마법의 영역이었다.
당장 나만 해도 정신을 치유해 주는 자연 치유가 없었더라면 아무 생각 없이 저 남자의 말을 따랐을 것 같다.


게다가…


‘제라드…!’

잊을 수 없는 이름이다.
우리들은 직접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광년이가 고블린에게 ‘제라드’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기에.
그에 쐐기를 박는 것이 바로 저 남자가 가진 직업이다.
브랙과 광년이 처럼 교관이 아니었다.
‘혁명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저놈이… 7년 뒤 반군의 수장이 된다라…’

나는 유심히 놈의 얼굴을 보았다.

*

결국 나는 다시 한번 전투직을 선택했다.
이제 기초적인 스텟도 올라갔기에 체력 훈련쯤은 어렵지 않게 할  있었기 때문이다.

그다음은 전과 똑같았다.
중앙 지휘소로 가서 전투직을 승인받고, 훈련소로 이동했다.
어떤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7년 후 미래와 같이 북부 훈련소로 배정받게 되었다.


다만, 조금 틀린 점이 있다면 훈련생의 숫자가 좀 적다는 것?
7년 후 50명인 것에 비해서 지금의 훈련생은 고작 20명밖에 되지 않았다.
까마득히 오래전, 이강인에게 내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했던 대화가 기억난다.
아직까지 전투직은 급하게 필요하지 않나 보다.
농사와 같은 1차 생산에 필요한 인력이 더 급한 듯했다.

특이사항은 없었다.
훈련소에 도착하고, 간단히  세계에 대한 설명을 듣고, 방을 배정받고 잠을 잤다.








“허억… 허억…”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첫날부터 훈련은 고되었다.
하지만…
불평은 터뜨릴지언정, 뭉쳐서 반항하는 사람은 없었다.


‘광년이와 브랙은 그런 연기까지  가면서 겨우 잡은 군기인데…’

제라드는 자신이 가진 능력을 톡톡히 이용하였다.
매력에 담긴 카리스마가 허락해 주는 한계까지 훈련생들을 몰아붙였다.
당연하지만 난 두각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숨도 흐트러지지 않아서 지친 척하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운동을 하다 왔나?”

“예. 지구력 관련된 운동을 하다 왔습니다. 교관님.”


“…좋군.”

나는 단체 훈련 중간에 체력 부족으로 지쳐 떨어져 나가는 크리스 베넷을 약간씩 신경  주었다.
어째서 수고까지 해 가며 내가 그러는지는 그녀를 직접 보면 알 것이다.
지금의 크리스 베넷은… 너무 연약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보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아서 자꾸만 눈에 밟혔다.
7년 뒤라고 하긴 해도 인연이 닿기도 했고.

제라드는 훈련생들의 반항을 억누르기에는 타고난 능력을 지녔지만, 교관에는 재능이 없었다.
브랙과 광년이처럼 개개인의 능력을 분석하기는 커녕, 틀에 맞춘 군사를 키우는 것처럼 일정 기준을 통과할 때까지 몰아세웠다.
그렇기에 항상 기준에 미달이 되는 크리스 베넷은 서 있는 시간보다 바닥에 쓰러진 시간이 더 길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고생하고 있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나는 설마 이대로 7년 동안 과거를 흘려보내야 하는 건가 싶었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건 상태창을 열어본 뒤였다.

“상태창.”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