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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62)화 (62/310)



〈 62화 〉테라포밍

일단 달렸다.
놈이 정말로 나를 쫓고 있든, 그것이 아니든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였기에.

하지만 이강인의 말은 오해가 아니었다.
한쪽밖에 남지 않은 놈의 눈알은 정확히  등을 쫓고 있었다.
이강인이나 기절한 카야가 아니라.

‘씹… 도대체 어째서…?’


분명히 원작  빅터는 누가 방해하든 이강인만을 쫓았는데?
…애초에 놈은 정말로 원작 속 ‘빅터’가 맞는가?
원작 속에 있던 빅터는 애꾸눈 백원후가 아니었다.
그냥 늙고 영악한 백원후였지.


하지만 그렇다고 저 새끼가 빅터가 아니라고 하기에도 애매했다.

“으아악!! 하나도 모르겠네 진짜!”


내가 이렇게까지 감을 못 잡은 적은 처음이다.
도무지 전후 사정이 짐작이 가지를 않는다.
나름 잘 돌아간다고 자부하던 내 머리가 멈춰 선 것이 원망스럽다.

달렸다.
다리에 마나를 실어서 내가 달릴  있는 최고의 속도로 달렸다.
원래대로라면 진작에 따라잡혀야 정상이리라.
4M의 거구에, 나무를 탈 줄 알고, 마나까지 사용하는 녀석을 상대로는.
하지만 놈에게는 광년이가 매달려 있었다.

“이!! 개 씨발!! 뒤지라고오오!!!”

- 퍼억! 퍽! 퍼억!!

칼로 찌르는 것인데 살을 삽으로 퍼내는 것만 같은 효과음이 들려온다.
광년이가 놈의 오른 다리를 중심으로 난도질하고 있었다.
빅터의 이동을 막기 위해서다.
덕분에 이동 속도가 상당히 떨어져서 나는 따라잡히지 않고 도망칠 수 있었다.

- 퍼어억!


“꺼흑!”

데굴데굴…


계속 다리를 찔러대는 광년이가 너무나도 거슬렸는지, 빅터는 달리면서 나무 기둥에 자신의 오른 다리를 처박았다.
광년이가 매달려 있던 곳을.
덕분에 광년이는 놈의 다리에 튕겨 나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젠장! 교관님! 괜찮으십니까!”
“퉤엣-. 먼저 쫓아가! 나도 바로 뒤따라간다!”

벌떡!

다행히 치명상은 아니었나 보다.
뒤를 슬쩍 돌아보니 입에서 피 섞인 침을 뱉은 광년이가 다리를 절며 다시 우리를 쫓아오고 있었다.

- 끼이이익——!!

‘이런 씨발!’


콰앙-!

지금까지 나는 최대한 11구역 전투직 합숙소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광년이를 떨어뜨리고 속도를 미약하게 회복한 놈이 나를 방해하기 시작했다.
나를 따라잡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는 못 가게 할 생각인 듯했다.

‘똑똑한 새끼!’

나보다 아주 약간 빠른 놈에게 동선을 예측 당하면 잡힐 수도 있다.
지금처럼 일직선으로 달려선 안 되었다.
나는 어쩔  없이 방향을 꺾었다.
합숙소와 조금 떨어지는 쪽으로.

콰앙-!

이강인은 어쩔 수 없이 나와 멀어져갔다.
그의 등에는 상처의 경중을 정확히 봐야 하는 부상자가 있었다.
심지어 내가 향하는 곳은 합숙소와 멀어지는 방향이었으니 그로서도 어쩔  없었으리라.
이강인은 나를 향해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쾅—!!



슬슬 나도 조급해졌다.
원숭이 새끼의 의도대로 훈련소와 서서히 멀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는 이곳이 어딘지 몰랐다.
마할이 따라와 주고 있긴 하지만, 그는 애초에 광년이 보다 훨씬 달리기 속도가 느렸다.
아니… 광년이가 너무 빠른 것이겠지.
무려 7년이나 이곳에 있었으니!

‘젠장… 차라리 원작의 이강인처럼 내가… 아니, 그게 내가 원하는 대로 될 리가 없잖아!…’

원작에서 나와 똑같이 빅터에게 쫓기던 이강인은 기연을 마주한다.
그런데 그 정확한 위치를 예측할 수가 없다.
그냥 나처럼 어영부영 쫓기다 보니 도착한 것이라 내가 노리고 향할 수가 없다.
힌트는 산 중턱에 쌓인 바위 무더기 정도라는 것인데, 나무가 이렇게 울창한 산속에서 그런 걸 쉽게 찾을 리가 없…


“어? 저거 바위 언덕 아니야?”


우연일까?
운명일까?

흔하디흔한 바위 언덕이 저 멀리서 보였지만, 무언가 알 수 없는 강한 이끌림을 그곳에서 느꼈다.
내 무의식적인 희망에 매달리고자 뇌가 만들어낸 착각일지도 모른다.
저곳으로 향했다가 혹시 내가 발견하지 못한 막다른 길이었으면, 나는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발길은 이미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 끼이이이익———!!

바위 언덕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바위틈. 바위틈을 찾아야 한다.
인간은 들어갈 수 있지만… 저 커다란 원숭이 새끼는 들어가지 못할 만큼의 적당한 크기의 틈.
당연하지만 그런 틈은 수십 가지가 넘게 보였다.
하지만 내가 찾는 것은 단순한 꽉 막힌 틈이 아니었다.


“공간이 뒤쪽에 있는… 제발… 제발…!”


휘이이잉-

순간, 예민한 나의 청각이 바위 틈사이 바람이 휘몰아치는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내었다.
나는 고민할 새도 없이 그곳을 향해서 빠르게 몸을 틀었다.

- 끼이이익——!

쿠웅-!


놈의 손바닥이 아슬아슬하게  곁을 스친다.
하지만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내가 찾아낸 틈을 향해 몸을 날렸다.

휘익-!


“허억! 허억!”

- 끼이이이익——!!


쾅! 콰앙! 쾅-! 쾅!쾅!쾅!쾅! 콰앙-!!


빅터가 바위로 좁혀진 틈을 향해 주먹을 내지른다.
입구를 부숴 넓히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정면을 응시한 채 감동에 몸을 떨었다.

맞았다.
이곳이 맞았다.
내가 몸을 날린 바위틈 안쪽에는 거대한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공간 가운데에 거대한 신전이 보인다.
인간, 또는 그 외의 문명이 닿은 흔적이 보이는 커다란 신전이.

정말 이 말을 안  수가 없네.

“허억… 허억… 운이… 허억… 운이 좋군.”

나는 바위틈이 빅터에게 부서지기 전에 서둘러 신전의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눈을 사로잡는 휘황찬란한 조각상과 그림이 널려 있었지만, 묘사를 생략한  바쁘게 목표물을 찾았다.
얼마 안 가 발견할 수 있었다.
대놓고 건물 정 가운데에 제단이 존재했으니까.

“이게… 그 ‘구슬’인가…”

통짜 돌을 깎아 만든듯한 제단의 위에는 동그란 구멍이 파여있었다.
주먹만 한 구슬이 들어차면 딱 맞을만한 구멍이  가지.
그 구멍에는 2가지의 구슬은 있었지만, 한가지의 구슬은 없었다.


“이강인이 우연히 주워 사용한 게 원래는 이곳에 있던 구슬이란 것이겠지… 대충 이름 붙이자면 회귀의 구슬이려나?”


나는 남아 있는 구슬 두 가지를 주워 정보창을 열었다.


띠링!

=
[아이템 정보 확인]
이름: 정천의 구슬
종류: 소모품
레벨: -
효과: -
상세:
아이템 정보 확인의 레벨이 낮아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세계관 귀속 아이템입니다. 상점창에 등록이 불가능합니다! 다른 세계로 가지고 가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

=
[아이템 정보 확인]
이름: 몽환의 구슬
종류: 소모품
레벨: -
효과: -
상세:
* 아이템 정보 확인의 레벨이 낮아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 세계관 귀속 아이템입니다. 상점창에 등록이 불가능합니다! 다른 세계로 가지고 가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

“역시 정보 확인은 안 되나.”

상점창에 등록이 안 되는 것도 아쉬웠다.
원작대로의 성능이라면 다른 세계에서 쓸만한 상황이 나왔을지도 모르니까.
지금 당장에는 좀 구린 성능이긴 하다.

정보 확인은 불가능했지만, 정천의 구슬은 어떤 효과를 가지는지 알고 있었다.
원작에서 노란색 구슬을 제일 첫 번째로 사용을 했으니까.
정천의 구슬은 노란색이니 이것이 내가 유일하게 효과를 알고 있는 구슬이리라.


“어차피 이 세계에서밖에 못쓴다면… 그냥 쓸까? 솔직히 내겐 별로 유용하지도 않은 물건 같고…”


쾅-! 콰앙—!

우르르르릉—!!


- 끼이이이익——!!


쿵! 쿵! 쿵!


건물 밖에서 무언가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또한 빅터가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는 소리도.


그르륵… 그륵…

놈이 나를 발견했다.
신전의 벽에 막혀 더이상 도망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다시 한번 잇몸을 활짝 보이며 웃음 짓는 백원후.
그리고 놈이 바위틈을 부수는 동안 나를 따라잡은 광년이와 마할 또한 이어서 등장했다.


절뚝… 절뚝…

두리번.

“이 시발. 이 건물은 도대체 무슨… 아니! 그보다, 박찬영! 괜찮아?”

“네. 괜찮습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관객이 등장했다.
나는 광년이를 보자마자 정천의 구슬에 마나를 불어 넣어 활성화 시켰다.
당장이라도 빅터가 나를 향해 달려들 것 같았기에.


“흐읍!”


화아아아아악————!!

“끄흑…!”
“이게… 무슨…”


끼—?!

어마어마한 빛이 동공을 감싼다.
그러나 문제는 빛이 아니었다.


‘…씹… 생각보다 엄청…!’


이전에 내가 마나의 농도란 것을 구분할 방법이 없다고 했었나?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의 밀집된 마나 농도는 도무지 못 알아챌 수가 없었다.
공기 중에 마나가 떠다니는 것이 아닌, 마나라는 액체 속에 몸이 잠긴 것과 같은 부유감.
알 수 없는 저항감이 손과 발끝에 걸리며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했다.

광년이와 마할은 물론, 백원후 빅터조차 살짝 겁에 질린 눈초리였다.
…진짜 저 새끼는 몬스터가 아니라 인간 같아서 소름이 끼친다.

곧, 빛이 사그라들며 세계가 멈춘다.
잘못 말한 것이 아니다.
정천(停天), 정말로 시간이 멈추었다.

정천의 구슬의 사용 효과는 시간을 멈추는 것이다.
사용자가 언제든 그만둘 수 있지만, 최대 1년까지.
먹지 않아도 되고, 마시지 않아도 되고, 시간은 멈추었지만 숨은 쉴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구슬은 별로 쓸모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아낌없이 쓴 것이다.


“무엇을 상대로도 물리력을 행사할 수 없고, 1년 동안 마나를 한 톨도 신체에 쌓지 못하는데…”

심지어 체력을 단련하는 것도 효율이 1/10로 떨어졌다.
스텟의 성장률이 10%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볼  있는 최대의 이득은 마나 없이 사용 가능한 검술을 1년 동안 연습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강인은 그 미친 짓을 1년 동안 해내었고.
하지만 그것으로도 이강인은 빅터를 상대하지 못했다.
빅터와 이강인 사이의 스텟과 신장과 마나량의 차이는 고작 1년 연습한 검술로 좁히기엔 너무 거대했다.

나는 검술을 훈련할 생각 따윈 없다.
내겐 정천의 구슬의 완벽한 상위 호환인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효율 떨어지는 곳에서 1년 동안 수련할 바에야 다른 세계로 들어가서 마나도 쌓고, 스텟도 빠르게 올리면서 3개월 수련하는 것이 몇십 배나 더 이득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구슬을  곳이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이걸 썼느냐?


…바로 외모를 의심받지 않고 변경하기 위해서다.
이강인은 이곳에서 1년간 수련하며 머리카락이 어깨를 넘어서까지 자라고, 실내에서 햇빛을 받지 않은 채 1년간 지내다 보니 피부가 하얗게 변하며 이미지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장면을 본 사람들은 ‘이 정도 마나 농도를 채워 낼 유물이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지.’라면서 그의 외모 변화를 납득해 버리고.

그것을 이용하기 위해서다.
원작과 달리 지금 이곳에는 광년이와 마할밖에 없지만…
충분하다.
내가 갑자기 잘생겨지더라도 납득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지금의 나는 아무리 키가 크고 피부 트러블이 좀 가라앉았다고 한들 절대 잘생긴 얼굴은 아니다.
대학 동기들은 내 존재조차 잊고 있는 것 같으니 지금이야말로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목숨이 위험한 와중에 태평한 생각이라고 할  있겠지만… 난 실제로 죽지는 않잖아? 그리고  믿고 있는 구석도 있고.’

나는 도박을 하기로 했다.
 손에 들려있는 파란 구슬.
효과를 모르는 이놈을 한번 믿고 카르마를 스텟에 투자하지 않아보기로.


나는 시스템을 열어 모든 카르마를 쏟아부어 얼굴을 뒤엎기로 했다.
내가 지금 보유한 카르마는 12,000가량.
외모 편집을 얼굴에 한정한다면 충분하고도 남을 것이다.


“상태창!”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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