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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61)화 (61/310)



〈 61화 〉테라포밍

전투직 합숙소는 총 12개가 있다.
쉘터를 원으로 크게 둘러싸며, 일정한 거리마다 규칙적으로 세워져 있었다.

즉, 시계를 생각하면 간단했다.
쉘터를 기준으로 12시에 있는 합숙소는 12구역 합숙소.
6시에 있는 합숙소는 6구역 합숙소인 것이다.


그렇기에 제라드가 습격했을 때, 북부 훈련소인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인 12구역에서 지원이 와준 것이고.
우리가 11구역으로 실습을 하러 가는 것도 이것과 관련이 있다.
원래대로라면 12구역으로 실습을 나가는 것이 옳겠지만, 최근 12구역은 전투직이 십여 명이나 며칠간 빠졌기 때문에  공백을 메꾸느라 정신이 없었다.
훈련생들을 챙겨줄 손이 남지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두 번째로 가까운 11구역으로 실습을 하러 가는 중이다.
 개 같게도…

“카야는 그럼 12구역으로 실습을 나간 거야?”


“네! 저는 정말 운이 좋았죠. 한 달간 일을 배우면서 12구역 전투직 분들과 친해졌는데, 1/12 확률로 그곳에 당첨된 것이니까요!”


카야는 12구역 담당 전투직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예전에 북부 훈련소를 수료한 훈련생이었다.
훈련소 수료 후 담당 구역 배정은 랜덤으로 이루어지니 그녀에게는 12구역으로 배정받은 것이 행운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전투직은 무슨 일을 해? 역시 몬스터를 죽이는 것?”

“음… 너무 다양해서 뭐라 말씀드리기 뭐하네요. 군인만 해도 포병, 공병, 통신병 등등 수많은 보직이 있잖아요? 그처럼 전투직도 세세하게 각자 맡은 일이 있으니까요.”

“아하… 그럼 몬스터랑 안 싸울 수도 있는 거야?”

“그런 분들이 있기는 해요. 대표적으로 베넷 교관님… 아니, 광년이 교관님처럼 ‘교관’을 예로   있겠네요.”


“아! 그렇네. 그럼 교관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해?”


“적어도 살아있는 전투직들 중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유능해야죠… 신뢰도도 있어야 하고. 그래야 훈련생들을 가르칠 기본적인 자격이 되잖아요?”

“으…”

카야는 수다를 좋아하는 그녀답게 우리가 궁금해하던 것들을 자세히 대답해 주었다.
절반은 흥미롭고 유용한 이야기였지만, 나머지 절반은 영양가 없는 잡담이었다.
그럴 때면 훈련생들은 카야에게 다른 질문을 던지면서 화제를 돌렸다.

“…그러니 보통은 정찰을 가장 많이 하죠. 몬스터들에게 이곳이 ‘인간의 구역’이란 것을 알려야 하니까요.”


“강한 몬스터는 없어? 만나면 반드시 도망쳐야 하는 몬스터라던지.”

“선배들 말씀으로는 숲의 깊숙한 곳까지 가면 있다던데… 저는 실제로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어요.”


…진짜로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원작대로 흘러간다면…
 실제로 보게 된다…
시발…

“…”

앞장서서 걸어가고 있는 광년이는 어쩐지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 보였다.
아까부터 말도 별로 없었고, 묵묵히 걷기만 했다.
오랜만에 광년이한테 존재감이나  비추어 볼까?

“뭐 기분 안 좋은  있으십니까?”

“?… 뭐냐.”


“예전에 제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표정 관리 하라고. 엉덩이를 걷어차면서요.”


“…너 그걸 아직도 담아두고 있었냐? 쪼잔한 새끼.”

- 피식.

딱히 담아두고 한 말은 아니었다.
그저 기억에 남아있었던 사건이 지금과 적당히 엮을  했기에 꺼낸 이야기일 뿐.
광년이 역시 그걸 알고 있었기에 피식 웃으며 내 말에 대꾸한 것이다.


시종일 굳어있던 광년이의 얼굴이 내 너스레에 약간 풀어진다.
그럼 당겨줬으니, 다시 밀 차례다.


“그럼  다시 팀원들이랑 잡담이나 나누려 가겠습니다.”

“뭐야, 이야기는 이걸로 끝? 웃기는 놈이네.”

“이제 기분 풀리신 것 같으신데, 제 용건은 그게 전부였으니까요. 너무 달라붙으면 찝쩍대는 것 같잖아요? 그리고, 제가 뭐 교관님의 좋지 않은 과거사라도 캐물을 줄 아셨습니까?”

“…”

“저처럼 매너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명이나 있을까요?”

“지랄은. 꺼져.”


킥킥.


밀더라도 마지막은 호감을 당겨 주면서.

나는 광년이에게 슬쩍 고개 숙여 인사하며 나의 자리로 돌아갔다.
교과서로 실릴법한 깔끔한 밀당이었다.

*

“반가워! 나는 이번 실습에서 너희들을 보조로 인솔할 11구역 전투직 마할이라고 해. 아, 베넷 교관님.  부탁드립니다.”

“나보다 기수 아래지? 편히  놓는다?”


“예. 당연하죠. 교관님들은 전부 부소장이랑 동급의 직위로 치지 않습니까?”


광년이는 마할의 겸손함에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했다.
마할은 전형적인 인도인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곳에서 터번을 쓰지는 않았지만, 그의 외견을 보면 인도인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침부터 이곳으로 오느라 수고 많았어! 지금부터 간단하게 11구역 합숙소를 안내해 줄게! 그리고 다른 전투직들의 소개도 해줄 거고!”


마할은 우리를 향해 밝게 웃으며 말했다.
정신없이 이동하며 합숙소의 지리를 익히고, 만나는 전투직들의 이름과 얼굴을 외우고,  합숙소 내의 간단한 규칙을 숙지하니 벌써 해가 저물어 왔다.
합숙소의 빈방은 많았다.
최전방으로써 무기와 자원이 넉넉히 보급되는 장소 특성상, 혹시 모를 비상사태를 위한 피난민의 대피소를 겸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식사 또한 훈련소의 퀄리티에 못지않게 맛있었다.
훈련생들의 전투직 합숙소에 대한 의견은,  정도면 나름 괜찮은 생활 수준을 유지하며 살 수 있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자! 오늘은 이만 자고,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전투직들이 하는 일을 함께 해볼 거야. 내일은 간단한 정찰부터 시작할 예정이니까 크게 걱정하지 마. 몬스터를 마주칠 확률은 없다고 봐도 좋으니까.”

마할의 말대로 내일은 마주치지 않는다.
다다음날 마주치지…
제기랄.


우리는 마할의 안내에 따라 방을 배정받고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잠들기 전, 다다음날 발생할 비상사태를 대비하고자 머리를 쥐어 짜봤지만…


‘젠장… 정보가 너무 부족해. 이번 시나리오에 관한 건 원작에 얼마 적혀 있지도 않아서…’

일단 내일 최대한 많은 전투직들과 안면을 트며 사용할 수 있는 패를 늘려봐야겠다.
그것이 지금 내가 가능한 가장 최선의 수다.













“아… 왜 전투직들도 아침 구보 하는 거야…”

“후후. 어디든 다 똑같다고요? 12구역도 마찬가지로 매일같이 구보했어요.”

아침은 장소만 바뀌었을 뿐 일정은 같았다.
아침 구보를 하고, 아침을 먹고, 공터에 모여서 마할의 안내를 받으며 출발했다.

우리는 드디어 전투직이 활동하는 숲에 들어섰다.
하지만 딱히 긴장하는 훈련생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곳은 몬스터가 나타나기에는 너무 전투직 합숙소와 가까웠으니까.
매일같이 정찰하는 그들이 몬스터를 놓칠 리가 없었다.


“오늘은 둘째 날이니 산책한다는 느낌으로 가볍게 숲을 돌아보고 오자고.”


어딜 보아도 나무와 나무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마할에게는 구분이 가능한 익숙한 장소였는지 거침없이 앞으로 전진했다.
나는 걸으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점검했다.


‘일단 점심시간을 노려서 이곳 전투직들에게 접근해 호감을 쌓고, 떡밥을  뿌린 뒤…’

사건은 내일 발생한다.
최대한 빨리 행동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쿠웅——!!


하지만 나의 예상은 빗나가 버렸다.
어째선지 내일이 아니었다.
놈이 찾아온 것은 오늘이었다.
원작과 달리.

“어?…”

훈련생들과 광년이, 카야, 그리고 마할의 앞에 거체가 큰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4M가 넘는 거체.
어디선가 익숙하게 보아온 은빛 털.
유인원 특유의 거대한 발사이즈로 인해 150cm는 가뿐히 넘겨 보일 정도의 발바닥 크기.
놈은  육중한 무게로 인해 나뭇가지를 타지는 못했지만, 압도적인 발바닥 사이즈로 나무 기둥을 감싸면서 우리의 앞에 떨어졌다.

“백원후(白猿猴)…?”


마할이 얼떨떨한 얼굴로 내뱉었다.


‘이 새끼가 왜 오늘?…’


한쪽 눈은 짓이겨져 있었다.
주름진 눈가에 세로로 찢어진 하나 남은 동공이 우리 사이를 흩는다.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놈이 찾고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 수 있었다.
웃는 건지, 위협하는 건지, 원숭이 특유의 웃음처럼 잇몸을 활짝 드러내며 거대한 소리를 내뿜었으니까.


- 끼이이이이—————!!

콰광-!

놈이 몸을 앞으로 튕겨가며 길쭉한 손을 뻗어온다.
예상 못 한 사태에 잠깐 몸이 굳었으나, 자연 치유 덕에 누구보다 빠르게 반응할 수 있었다.
원인을  수 없지만 백원후는 지금 이곳에 있다.
판단은 빨랐다.
나는 놈이 찾고 있는 목표를 알고 있다.

“이강인!! 도망가!!”

나는 몸을 날리면서 백원후가 노리는 목표물에게 경고를 날렸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카야와 광년이, 마할이 놈에게 달려든다.
훈련생들의 무리에게 놈이 닿지 못하도록.

‘젠장!! 전투직 3명은 부족한데…!!’

마나를 완벽히 통제할 줄 아는 초인 3명.
그것으로도 놈에게 부족했다.


놈이 다가오기까지 일체의 소음은 없었다.
이런 거체가 나무 기둥을 박차면서 오는데 초인들이 알아채지 못할 만큼 소음이 나지 않았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하나다.
이 새끼는 마나를 사용할 줄 안다.

- 끼이이이————!!!


“씨발 도대체 뭐야!! 훈련생!! 빨리 합숙소로 돌아가서 지원 요청해!!”
“일단 저희 세명이서 최대한 시간을 끄는 수밖에…”


그러나 상황은 예측 밖으로 흘러갔다.
백원후는 너무 영악한 몬스터다.
놈은 생각할 줄 알기에 견제가 통했다.
무식하게 달려들면 크게 손해를 본다는 것을 알 정도로 똑똑한 놈들인 것이다.
그걸 확실히 알고 있던 전투직 세 명들은 놈을 견제하려고 시도했고…

그들의 예상 밖으로 백원후는 교관들의 칼날을 무시하고 훈련생들에게 달려들었다.


“뭣?”

스거억!!

백원후는 자신의 몸에 날아오는 칼날에 신경하나 쓰지 않았기에 찰나의 시간 동안 십수 번의 난도질을 당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기세는 죽지 않았다.


“이…이 새끼! 목표는 훈련생인가? 어째서?”


“…교관님! 이놈, 그놈입니다! ‘빅터’! 한쪽 눈이 멀어있어요!!”


원작 속 하루 늦게 찾아오는 그 백원후가 이놈이 맞다면, 놈에게는 붙여진 이름이 있다.
빅터라는 이름이.
흔히 말하는 네임드다.
 년째 죽이는 것에 실패하고, 놈에게 당한 희생자가 많이 생길 때만 붙이는 이름…
그것이 이 백원후에게는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은 원작의 흐름 그대로다.
잠깐, 그렇다면 빅터에게 원한이 있는 광년이가 저 이름을 듣게 되면…


“…그놈? 그놈이라고? 빅터? 빅터? 빅터…?”

…발작하는데?

“이 씨이발!!”


- 스걱!!


“새끼야!!”


끼이이이익————!!!

광년이가 백원후 빅터의 뒤쪽으로 스킬을 써서 이동한 뒤, 그대로 칼을 내질렀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악착같이 놈의 등에 매달려서 칼로 등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개! 같은!! 새끼!! 뒤져어어!!”

- 퍼억! 퍽! 퍼억-! 퍽!!

- 끼익! 끼이이이익———!!


전투직들을 무시하고 달리려던 놈도 이건 참지 못할 만큼 커다란 고통이었는지, 바닥을 구르며 광년이를 등에서 떼어내려고 애썼다.
나는 거기까지만 보고 앞으로 고개를 돌려 달리는 것에 집중했다.
그런 내 눈에 다리를 멈춰 선 이강인이 보였다.


이런 멍청한 새끼가!
너는 모르겠지만,  새끼의 목표는 너라고!

이강인이 놈의 목표가  이유는 모른다.
원인이 나오기 전에 소설이 연중해 버렸으니까.
하지만 원작 속 빅터는 걸신이라도 들린 것처럼 이강인만을 눈에 담으며 죽이려 들었다.

“박찬영!”

“뭐해! 멈추지 마!! 놈의 목표는 아마도 너야!! 이런 씨발, 왜 이쪽으로 달려오는데?”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행동이다.
어째서 내 쪽으로 뛰는 거지?


“너!”

“뒤로 돌아서 도망치라고! 왜 내 쪽으로 오는… 커헉!”
“피해요!”

나는 누군가에게 밀쳐서 옆으로 굴렀다.
나를 밀친 상대는…
카야?
어째서 나를…


끼이이이이익—————!!


퍼억!

내가 밀쳐진 곳에 대신하여 서 있던 카야는 빅터의 거대한 손바닥에 맞아 날아갔다.


“박찬영 이 병신아! 노려지는 건 내가 아니라 너라고!!”

“꺄으악…!”

“흐읍!”

다행히 날아가는 카야를 이강인이 성공적으로 붙잡았다.
재빠르게 카야의 맥을 확인한 이강인은 그녀가 기절한 것이란 걸 깨닫고 둘러업었다.


아니, 그보다 뭐라고?
빅터의 목표가 이강인이 아닌 나라고?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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