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테라포밍
만약 이것이 소설이라면, 5명의 팀원 중 한 명 정도는 트롤링을 할 것이다.
자존감이 너무 없는 마다치 켄지와 자존심이 넘치는 리 샤오린.
가끔 실수하는 블랑과 절대 실수하지 않지만 나서서 조언해주지는 않는 이강인.
그리고 항상 이강인을 대신해서 남을 챙기기 바쁜 나까지.
…누가 보아도 큰 사고가 날 것 같지 않은가?
환상적인.
아니, 환장하는 팀이다.
각자의 개성이 참 흔치 않아서 보기만 해도 삐걱거릴 것 같다.
하지만…
단점은 그것밖에 없다.
‘개개인의 능력은 무척 뛰어나. 내가 가끔 나오는 실수만 바로잡아 주면…’
실패할 확률은 낮았다.
트롤링 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정면 전투는 이강인에게 맡긴다.
나는 그를 곁에서 보조하는 동시에 통솔에 신경을 기울일 것이다.
그것이 이 팀에서의 내가 맡은 역할이니까.
“블랑! 놈이 측면으로 빠지려 하잖아! 몸을 왼쪽으로 더 돌려!”
- 꾸에에엙!! 꿰엙!!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강인과 힘겨루기를 하던 놈이 왼쪽으로 몸을 튼다.
다행히 블랑은 늦지 않았다.
움직이던 오크의 상체를 향해 블랑의 칼이 찔러 들어갔다.
“젠장!”
- 꿔어얽!!
오크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민첩했다.
자신의 움직임이 예측 당했음에도 심장을 향해 날아드는 칼날을 팔로 보호했을 만큼.
칼은 오크의 팔에 깊숙이 박혀 들어갔다.
너무 깊숙이.
“이…이거 안 빠져… 어떻게… 찬영?”
“칼 놓아!!”
마나를 사용하는 것에 익숙지 않아 팔을 강화하는 방법을 떠올리지 못한 듯 했다.
나는 시간이 더 늦기 전에 재빠르게 판단을 내려 소리쳤다.
타악!
내 말에 블랑이 반사적으로 칼자루를 놓고 뒤로 물러났다.
그 위로 거대한 오크의 손바닥이 지나갔다.
조금만 더 느리게 몸을 뺐더라면 저 거대한 손바닥에 블랑이 잡혔으리라.
- 힐끗.
교관들이 있는 곳을 쳐다보니 블랑이 오크에게 잡히는 순간 달려들려고 했나보다.
브랙과 광년이가 자세를 낮추고 오크를 제압할 준비 태세를 하고 있었으니까.
‘젠장… 든든하네.’
목숨을 잃거나 불구가 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
이건 실전 같은 훈련이지 실전은 아니니까.
리 샤오린과 마다치 켄지도 오크가 왼쪽을 향해 이동하는 동안 넋 놓고만 있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오크의 배후에 칼날을 날리고 있었다.
퍼억!
- 꿰에에에에에에엙!!!
어설프게나마 마나가 깃든 신체가 둘의 몸을 강화한 덕일까?
두 개의 칼날은 오크의 두텁기 그지없는 등 근육을 뚫고 뼈가 있는 곳까지 침범했다.
고통에 몸서리치던 놈이 분노하며 뒤를 돌았지만, 이미 두 명은 칼을 회수하고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블랑의 칼은 아직까지 놈의 팔뚝에 덜렁덜렁 달려 있었다.
오크는 그 칼이 거슬렸는지, 칼날을 맨손으로 잡았다.
- 꾸에엙!
“…병신.”
“진짜 멍청하다…”
칼날이 놈의 손바닥을 깊숙이 파고든다.
생각 따위는 하지 않은 채 온 악력을 다해서 칼날을 움켜쥐었기에 발생한 어처구니없는 자해였다.
두꺼운 가죽으로 덮어진 놈의 손바닥은 깊게 베어진 채 뼈까지 드러내었다.
피가 바닥으로 철철 흐른다.
어지간히 고통스러웠는지 사방팔방으로 비명을 질러대었다.
- 꾸에에엙!! 꿰에에엙!!
철그렁!
블랑의 칼이 바닥에 뒹군다.
놈은 스스로 자초한 고통에 더욱 흥분했다.
고통의 원인을 우리라고 단정 지었나 보다.
실핏줄이 터진 눈으로 우리를 노려보는 것을 보면.
“저놈, 딱 봐도 돌진할 것 같은데… 그냥 한번 피하자고.”
끄덕.
뒤쪽에는 훈련생들이 우리의 시험을 관전하고 있었지만, 오크의 어그로가 그들에게 튀는 순간 교관들이 저지할 것이다.
굳이 정면으로 저 거구의 돌진을 받아줄 필요는 없었다.
- 꿹!! 꾸륵! 꾸르륵!!
쿵쿵쿵쿵!!!
놈이 우리를 향해 무작정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 속도는 우리 다섯 명 모두를 웃돌 정도로 재빨랐지만…
그건 커브를 전혀 상정하지 않은 직선만을 바라본 전력 질주였기에 그러했다.
조금만 몸을 틀어도 간단히 피할 수 있었다.
- 꿰에엙?! 꿰에에엙!!
오크는 관절이 상하는 것 따윈 무시한 채 우리에게 억지로 몸을 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스스로의 몸무게에서 오는 관성은 무시하지 못했다.
결국 훈련생들과 오크가 가까워졌고…
그런 오크의 앞을 광년이가 막아섰다.
- 꿰에에에에에엙!!!
“야 이 새끼야. 교관을 이용하지 말라고.”
“들켰나요?”
“…한 번만 더 의도적으로 이러는 거라고 판단되면 너네 팀은 처음부터 다시 시킬 거다.”
“앞으로는 주의하겠습니다.”
오크를 교관에게 보내는 것은 나쁘지 않은 전략이었다.
교관이 흥분한 오크를 말로 설득하며 우리에게 돌려보낼 것 같은가?
당연히 두들겨 패서 우리한테 강제로 돌려보낼 것이다.
오크의 체력도 뺄 수 있고, 우리는 짧은 재정비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두 가지 이득을 얻을 수 있다.
…한 번밖에 사용하지 못했던 방법이지만.
- 파악!
광년이가 발을 뻗어 오크의 돌진을 발바닥으로 받아낸다.
그리고, 발을 밀어서 놈의 몸통 박치기를 튕겨내었다.
누가 보아도 마나를 담은 발길질이었다.
오크는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우리 쪽으로 날아왔다.
아주 성대하게 구르면서.
- 꿰에에에엙?!!
쿠당탕!! 쿵!
크게 구르면서 어디 한 곳이 부러지기를 기도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다.
오크는 자신을 밀쳐낸 광년이를 향해 달려들기보다는 당장 눈앞에 있는 우리들을 먼저 죽이기로 결심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리 두렵지는 않았다.
이제 슬슬 놈의 움직임이 익숙해지며 눈에 보였다.
나는 블랑이 나뒹구는 칼을 주워드는 것을 확인한 뒤, 칼을 다시 고쳐잡고 놈이 우리에게 달려들기를 기다렸다.
- 꾸에에에에엙!!
쿵쿵쿵쿵!
“흐읍!”
놈이 가속도가 붙기 전에 이강인이 앞으로 달려 나가 칼을 휘둘렀다.
이강인이 휘두른 첫 번째 칼까지는 타고난 민첩성으로 피한 오크였지만, 물 흐르듯 연계되며 놈의 어깨에 틀어박히는 내 칼을 피하지 못했다.
콰드득!
마나를 잔뜩 머금은 칼이 마치 둔기처럼 놈의 어깨뼈를 부숴버렸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나의 칼에 담긴 물리력으로 인해 놈의 자세는 크게 흐트러졌다.
놈이 자랑하던 민첩성은 제 빛을 잃고 땅에 떨어져 버렸다.
“지금!”
나의 말에 호응하듯 오크를 향해 칼날이 날아든다.
치명적인 급소들을 목표로.
- 꿔어어얽!! 꿰으읅!!!…
계속해서 날아드는 칼날에 놈이 바닥에 쓰러졌다.
어깨가 부서지지 않은 쪽의 팔을 위아래로 휘저으며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나와 이강인이 놈의 양쪽 쇄골에 칼을 박아넣으며 상체를 들지 못하게끔 했다.
이대로 칼자루를 쥔 채 놈이 일어나지만 못하게 버티고 있으면 리 샤오린이나 블랑이 알아서 숨통을 끊어 줄 것이다.
그 말대로 나머지 세 명은 오크의 심장을 향해 난도질하듯이 칼을 내질렀다.
- 끍…! 꿔…억…!
“씹… 심장은 이미 수십 조각 났는데, 터프하기도 해라.”
“허억…허억…”
- 꿔…… 꾸…
휘적휘적.
오크는 몸에 더이상 남아있는 힘이 없다는 듯 다리만을 아주 느릿느릿하게 휘저을 뿐이었다.
그마저도 얼마 가지 않아 멈추었다.
퍼억-!
혹시 몰라 쇄골에 박혀있는 칼을 뽑아서 놈의 목에 박아 넣는다.
움직이지 않았다.
놈은 확실하게 죽었다.
“…좋아. 첫 번째 팀 통과다. 다들 봤지? 이렇게만 하면 통과할 수 있다.”
오크 시체가 광년이의 손길에 사라지고, 다시 멀쩡한 오크 한 마리가 나왔다.
…방금 전의 오크보다 20cm 정도나 큰 오크가.
“미친… 방금 놈이 완전히 자란 성체가 아니었다고?”
“…찬영. 고맙다. 네 말대로였네…”
“하여간 잔머리 하나는 진짜…”
블랑이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내게 말했다.
심지어 그 리 샤오린조차 내게 감사의 표시를 돌려 말할 정도로 안도하고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의 예상은 맞았다.
우리의 다음 팀도, 그리고 그 다음팀도…
우리를 제외한 모든 팀은 완전히 자란 성체 오크를 상대해야 했으니까.
고작 20cm의 키 차이지만, 가진 근력과 민첩성은 눈에 띌 정도로 차이를 보였다.
말 그대로 실수를 한 번이라도 하면 바로 무너질 정도의 난이도다.
“…이야. 죽어 나가는 거 봐라. 저기 오크랑 힘 싸움 하는 애 표정 예술이다.”
“마나 줄어드는 속도가 눈으로 보이는 것 같네.”
시험을 제일 먼저 통과하고 완벽히 관전 모드가 된 우리들은 마음 편하게 주저앉아 살기 위해 땅을 구르는 훈련생들을 구경했다.
역시 싸움 구경이 제일 재밌다.
*
띠링!
=
[아이템 정보 확인]
이름: 백원후(白猿猴) 가죽 갑옷
종류: 장비
레벨: -
효과: 도검 내성 30%
상세:
강력한 마수, 백원후(白猿猴)의 가죽으로 만든 갑옷입니다.
날이 서 있는 무기에 대한 저항력이 30% 증가합니다.
약간의 방한 효과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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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미친… 이 갑옷이 백원후(白猿猴)의 가죽이었어?…’
나는 본 적이 있는 이름에 살짝 놀랐다.
어떻게 이런 우연이 다 있을까?
만약 이 시스템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이 가죽 갑옷은 구하기가 엄청 까다로운 물건이다.
실제 옵션을 읽어보아도 단순한 설명에 불과했지만, 그 효과는 전혀 단순하지 않았다.
훈련소에서 주는 양산형 가죽 갑옷은 도검 내성이 10%에 불과했으니까.
무려 성능이 3배나 차이 나는 것이다.
“어때 찬영, 나 이거 입으니 좀 괜찮게 생기지 않았어?”
“제발… 넌 입 좀 닫고 있으면 안 되겠니?”
이 가죽 갑옷을 받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팀 다섯 명 전원이 이 가죽 갑옷을 포상으로 받았다.
한 달간의 팀별 훈련 및 시험의 점수를 전부 합산해 1등인 팀이 우리라고 한다.
그리고 그 1등 팀을 위해 교관들이 준비한 깜짝 선물이 바로 이 갑옷이고.
‘이걸 받는 건 알고 있었는데, 훈련소에서 주는 거길래 이렇게 귀한 물건인 줄은 몰랐는데?’
원작을 읽었으니 나와 이강인은 이 팀별 훈련의 보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전투직으로서 받는 것도 아니고 고작 훈련의 보상으로 받는 것이길래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허나 성능이 상상 이상이다.
나는 만족스럽게 가죽 갑옷의 하얀 털 부분을 쓰다듬었다.
털이 있으면 관리하기가 어렵긴 해도, 일단 입고 있으면 꽤나 멋들어졌다.
가죽 갑옷을 만든 사람도 현대인이다 보니 스타일을 신경 썼나 보다.
‘만족스럽네.’
이걸 입고 있으니 우리를 보는 시선 또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주변과 확연히 다른 옷차림은 주의를 끌 수밖에 없었다.
좋은 의미로.
그것은 리 샤오린의 허영심을 채워주는 것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당장 갑옷을 받은 것보다 자신을 향한 시선이 달라진 것에 더 기뻐하는 듯 보였으니까.
“오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3개 팀은 나와 함께 단기간 급속 성장 훈련을 실시한다! 일주일간의 짧은 훈련이지만, 이전과 이후가 확실하게 변해있을 거라 보장하지!”
브랙이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옥 훈련이 일주일이라…
그래도 나 때보다는 할만할 것이다.
일대일 맞춤형 훈련이 아닌, 열다섯 명에서 실시하는 단체 훈련이었기 때문에.
물론 그렇다고 한들 지옥같이 힘든 것은 변함이 없으리라.
의외로 시험을 통과한 팀들은 많았다.
무려 7개의 팀이나 통과했으니까.
하지만 그리 의문이 들만한 일은 아니었다.
이제 이 훈련생 중 마나 각성을 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다섯 명의 팀원 전부가 조금이나마 자신의 신체를 마나로 강화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어렵게 어렵게 오크를 죽이는 것에 성공했다.
우르르…
열다섯 명이 브랙의 뒤를 따라 사라졌다.
우리들은 남아있는 카야와 광년이를 쳐다보았다.
저들이 지옥 훈련을 할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을 내포한 시선이었다.
광년이는 입을 열어 말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우리는 실습을 한다.”
“실습…이요?”
“그래. 한 달은 기초 체력 훈련, 다른 한 달은 기본기 다지기, 그리고 마지막 한 달이 바로 실습이다.”
젠장…
드디어 원작의 마지막 챕터가 다가왔다.
제발 11구역만은 아니기를…
이제는 원작과 상당히 틀어졌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실습을 실행하는 구역이 달라질 수도 있으리라.
사실 많이 낮은 확률이지만, 나는 그 행운이 내게 찾아오길 기도했다.
11구역만 피해라…
11구역만 말고…
다른 곳으로…!
“우리는 11구역의 전투직 합숙소로 간다.”
운이 없군.
“거기서 현직 전투직들과 함께 생활하며 작업을 익힌다. 쉽게 말해… 인턴이란 거지.”
‘젠장…’
이렇게 된 이상 잘 풀리기만을 기도할 수밖에 없다.
이 사건의 끝이 어떻게 맺어질지는 나조차 모르고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