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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59)화 (59/310)



〈 59화 〉테라포밍

“너는 어쩌면 전투직에 정말 잘 어울리는 걸지도 모르겠네.”


가볍게 고블린의 팔 한 짝을 잘라내고 돌아온 이강인이 내게 말했다.
당연하지만 이강인은 고블린을 죽일 실력도, 담대함도 가지고 있었다.
그저 고생해가며 살아있는 고블린을 포획 하고 있는 전투직들의 일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자중한 것이다.
일종의 배려였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를 향한.


“그래?”


“응. 고블린을 베는 것이 처음일 텐데도 그렇게 망설임 없이 베었잖아.”


“그게 현대에서는 정상적인 사람은 아니지.”


“하지만 여기서는 그런 사람이 필요해.”


옳은 말이다.
쉘터는 고블린에게 공감해 주며 생명 존중을 외치는 사람보다, 망설임 없이 괴물을 베어내는 사람이 필요했다.
이강인을 마지막으로 우리 팀은 전부 고블린을 한 번씩 베어 보았다.
리 샤오린, 블랑, 마다치 켄지까지도.


“…젠장.”

리 샤오린의 얼굴은 구겨져 있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고블린을 죽이는  모습에 경쟁심을 느꼈는지 고블린을 깊게 베려다가 실패했다.
다른 훈련생들보다는 더 깊은 상처를 남겼지만, 완전히 숨을 끊지는 못했다.
그녀 또한 다른 훈련생들과 마찬가지로 무의식적인 거부감이  것이다.

‘저게 정상이겠지.’


나는 칼이 아닌 내 신체를 사용해 백하민을 죽인 경험과 자연치유의 덕에 망설임을 훨씬 덜  있었다.
그 작은 차이일 뿐이다.

“으… 오늘 저녁은 못 먹을 것 같아… 손에 감촉이 아직…”

“저…저도…”

하얗게 질린 블랑과 마다치 켄지가 말했다.

한 끼를 거르게 되면 근손실이 얼마나 생기는지 모르고 하는 말이다.
훈련이 모두 끝나고 저녁 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그들에게 식사를 권유했지만 여전히 속이 안 좋다며 거절했다.
결국 이강인과  샤오린 그리고 나까지 세 명이서 저녁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




아기천사는 일주일 전부터 우리 집에서  게 되었다.
나와 안젤리의 관계를 밝힐 타이밍을 잡지 못했기에 아직까지 아기천사는 모르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렇게 몰래 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더 스릴 있기도 했고.

“…손이 따뜻해.”


“체온은 천사가 더 높은데?”

“그래도.”


꼬옥.

마주 잡은 안젤리의 손에 힘이 들어온다.
아무리 그래도 다른 사람이 있는 집 안에서 안젤리와 동침은 하지 못했다.
그러나 안젤리는 이런 식으로 손만 잡고 있는 것도 충분히 마음에 들어 하는 듯했다.

“아… 후배가 이쪽으로 오고 있어.”


“그래? 그럼 어쩔  없네.”

“…응.”


스윽.

안젤리는 아쉬운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떠나간 내 손을 쳐다보았다.
그런 그녀가 귀여워 안젤리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춰주고는, 모르는 척을 했다.
마침 타이밍 좋게 거실의 문이 열렸다.

- 철컥.

“아 선배님, 찬영님. 차 마시고 있으셨어요?”


“어. 너도 줄까?”

“아뇨 괜찮아요. 오랜만에 휴가라 좀 뒹굴고 싶네요. 일주일 동안 뒹굴었는데 도무지 질리지가 않아서.”

“그래?”

“네… 엇? 선배님 얼굴이 좀 붉으시네요?”


아기천사가 내 옆의 안젤리를 보고 말했다.
천사의 말대로 안젤리는 약간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으앗? 그래? 아…아무 일 없는데?!”

후르릅!


“앗 뜨거!!”


급하게 차를 마시다가 약간 데인 안젤리.
일주일 동안 지내왔으니 이제 슬슬 익숙해질 법한데, 매번 이럴 때마다 놀라곤 했다.

이쯤 되니 궁금했다.
연기를 너무 못하는 안젤리와, 눈치가 더럽게 없는 아기천사.
둘 중 누가 승리할까?
…이건 너무 어렵다.
나는 예측 하는 것을 포기했다.

*


다시 시간은 흘렀다.
지금까지 테라포밍에서 보낸 시간 또한 한 달이 훌쩍 넘게.
지나간 훈련도 많았고, 사건도 몇몇 가지 있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다.


‘원작이 연중한 시점에  다다른다!’


얼마 남지 않았다.
맨 처음은 2주간의 기초 체력 훈련.
제라드들의 습격.
한  동안 팀별 훈련.
팀별 훈련 마지막 날에 하는 실전 형식으로 하는 팀별 전투.
그것이 끝난 다음, 한 사건이 발생하는데… 그때가 바로 연중이다.


이제 정말로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내일이면 팀별 훈련 마지막 날이니까.
미리 공지했던 팀별 전투를 하는 날인 것이다.


“으아… 정말 우리가 괴물이랑 싸워야 하는 거야?”

“묶여있던 고블린은 잘만 쳐 죽여놓고 왜 엄살이야?”

“아니… 리 샤오린, 나는 너처럼 그렇게 심지가 굳세지 않다니까?”


“네가 겁쟁이인 것이겠지. 블랑.”


퉁명스럽게 말하는  샤오린이었지만, 심지가 굳세다는 블랑의 말에 그리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는 듯했다.
정말 우습지만…  샤오린은 칭찬에 목말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원래 리더가 체질에 맞는 사람이다.
나서길 좋아하고, 남들보다 뛰어난 스스로를 보고 만족하는 인간.
하지만  팀에는 그녀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이 두 명이나 있다.
나와 이강인.
그렇기에 활약이 가려질 수밖에 없는 그녀는 나와 이강인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노력을 했다.


‘기특하다고 못할 것도 없지.’


그녀의 성장한다는 것은  팀이 강해진다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그녀로서는 오히려 이 팀에 들어왔기 때문에 원작보다 빠르게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샤오린이 행복한지는 둘째 치더라도…

블랑과 마다치 켄지 또한 눈에 띄는 실수는 거의 하지 않았다.
내일 실전에서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여태까지는 초반을 제외하고는 크게 문제 삼을 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인분을 해준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훈련한 것처럼만 하면 어렵지 않을 거야. 다들 일찍 자서 조금이라도 내일을 위한 체력을 비축해 놓자.”

여전히 바른말만 하는 이강인.
참 저럴 때 마다 느끼는 건데,  녀석은 너무 주인공 같다.
저리 오글거리는 말투도 잘생긴 얼굴로 하면 그럴듯하게 들리거든.


“으으… 긴장돼서 잠이 안  것 같아…”


“내가 재워줄까? 영원히?”


“…거절할게.”

“그럼 입 다물고 자.”

리 샤오린은 블랑에게 시비를 한번  뒤 후련한 표정으로 침대에 누웠다.
불쌍한 블랑은 리 샤오린의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사용된  버려졌다.
풀이 죽어있는 블랑을 잠깐 위로해  뒤, 나도 침대에 누워 잠을 잤다.






언제나처럼 훈련소의 막내 직원 톰이 우리를 깨워주었다.
구보를 하고, 아침까지 먹었지만, 훈련생들 사이에서는 알  없는 긴장감이 흘렀다.
그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오늘이 바로 몬스터를 상대하는 날인 것을.

‘뭐… 확실히 상대는 강하긴 하지만, 다섯 명이면 실수만 안 하면 여유로울 것 같은데?’


카야가 훈련생들에게 귀띔을 주길 고블린은 아니라고 했다.
적어도 훈련생들의 평균 능력치보다 강한 몬스터를 상대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야 여러명이서 강한  명을 저지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지금까지의 훈련을 정확히 평가할 수 있다면서.

물론 위험할 때야 당연히 교관이 개입을 해주겠지만…
통과 못 하는 조는 지옥을 맛봐야  것이다.
정확히는 내가 브랙과 2주간 같이 한 지옥 훈련의 일부를.

‘그걸 한 번  하라고? 진짜 무슨 일이 있어도 통과한다!’

나는 각오를 다졌다.
당연하지만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몬스터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원작에 정확하게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오크. 오크였지.’


요즘 들어서는 대부분의 창작물에서 오크는 잡몹으로 그려진다.
주인공의 칼질 한 번에 열 마리씩 죽어 나가는 최단기 퇴물로.
하지만 상식적으로 2M를 약간 웃도는 신장에 200kg은 가볍게 넘기는 몸무게를 가진 근육질 거한이 약할 리가 없지 않은가?
검기를 휘두르는 소드마스터면 몰라도, 우리 같은 애매한 초인들을 상대로는.


나는 전부터 상의해 두었던 계획을 팀원들과 다시 점검하며 훈련의 때를 기다렸다.

*

“자! 너희가 상대할 놈은… 바로 이놈이다! 오크라는 놈이지. 이놈을 죽이면 시험은 통과다.”

- 꾸워어어얽!! 꿰엨!!

고블린과 비교도 안 되는 두께의 밧줄로 묶인 오크.
심지어 그조차 불안했는지 브랙이 나서서 오크의 반항을 힘으로 억누르고 있었다.
브랙의 힘은 강력했다.
 거대한 덩치의 오크가 브랙에 손길에 전혀 반항하지도 못했으니까.

소설 속 묘사에 나온 대로 오크는 거대했다.
팔과 다리에는 근육이 가득 들어찼고, 저 커다란 손에 잡힌다면 인간의 팔다리쯤은 손쉽게 분리될 것만 같은 위압감이 느껴졌다.

“자… 첫 번째로 이놈을 상대할 사람? …역시 자진해서 나올 리가 없나. 그럼 우리가 지목해서…”


“저희 팀이 먼저 나서겠습니다.”


“응?”


소리가 나온 곳으로 광년이의 고개가 돌아간다.
그녀의 시선 끝에는 우리 팀이 있었다.
사전에 팀원들과 말을 끝내놓은 대로 우리가 가장 첫 번째로 나온 것이었다.


누군가는 이런 판단에 의문을 가질 것이다.
나를 제외한 4명의 팀원 또한 그리 생각했다.
몬스터와 싸우는 것은 늦게 하면 늦게 할 수록 좋은 것이 아니겠냐고.


나와 이강인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어떤 몬스터가 상대인지도 몰랐다.
때문에 앞선 팀들이 먼저 상대하는 것을 잘 보고, 그 상대법을 계획하면 되리라 생각했다.
또한 처음 보는 몬스터의 외견과 패턴을 익혀가며 겁먹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점도 있고…
상대의 힘과 속도까지 미리 파악할 수 있다.
오로지 이득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를 제외한 모든 훈련생이 똑같이 생각했겠지.’

그 누구도 먼저 몬스터를 상대하기 꺼릴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우리 팀을 설득했다.
우리가  번째로 나서자고.
아주아주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가면서.
당연히 나는 성공적으로 설득했다.

나는 지난 대화를 다시 되새겨 보았다.

……



“우리가 먼저 싸우자고? 그건… 너무…”
“…아무리 생각해도 불이익밖에 없는데?”


“아니, 우리가 먼저 나서야 해. 그게 훨씬 쉬울 거야.”


“이해가 안 되는데?”
“찬영이 생각이 있나 보네. 한번 들어 보자고. 이 중에서 제일 머리가 잘 굴러가잖아?”
“…잔머리만 많지.”


리 샤오린에 투정을 피식 웃으며 넘긴다.
나는 팀원을 쳐다보며 설득을 시작했다.


“고블린을 칼질하는 훈련을 시작했을 때. 가장 처음 칼질한 훈련생은 너무 얕게 베었지. 그런데도 교관들은 잘했다며 칭찬을 했어. 하지만 그 이후에 얕게  훈련생이 나오면 어떻게 반응했지?”


“…존나게 혼냈지.”


“그래. 그건 교관들도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야. 첫발을 딛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것을.”


“아하…! 그래서 그랬구나.”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거야. 그들은 뛰어난 교관이니, 이런 순서에 따른 불평등을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어 그렇다면…”


“…가장 첫 번째로 나오는 놈이 뒤에 나올 놈보다 훨씬 약하겠네!”

“그렇지. 설령 그것이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무언가의 어드벤티지가 있을 거야.”


원작 속에는 이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이건 순수한 나의 판단이다.
지금까지 내가 한 달 동안 지켜본 브랙과 광년이의 교관으로서의 능력을 믿은 나의 판단.
나는  판단이 옳다고 확신했다.


“단  가지 주의할 점은… 나오는 몬스터가 우리가 예상치 못한 패턴을 가지고 있을 확률인데…”

나는 이 계획의 단점을 미리 말해주었다.

나와 이강인은 상대가 오크란 것을 알기에 특이한 패턴따윈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녀석은 단순히 힘만을 믿고 밀어붙이는 전형적인 변수 없는 상대다.
하지만 이들이 그런 걸 알 리가 없다.

“엇, 그렇네. 그렇다면 차라리 정보를 미리 얻는 것이 더욱 도움  수도 있잖아. 아무리 더 강한 적을 상대해야 한다고 한들, 변수를 미리 파악하는 것이  우선인 것 같은데?”

“아니, 그럴 확률은 현격히 낮아. 교관들은 훈련생을 교육 시키는 것이 한두 해가 아니야. 이미 그들에겐 정형화된 커리큘럼이 있어. 우리들은 기본 유형의 문제도 풀어보지 않았는데, 교관들이 한번 꼰 기출 문제를 내놓을 리 없잖아?”

적어도 교육에 있어서 광년이와 브랙은 프로였다.
그런 확신은 나뿐만이 가진 것이 아니었다.
그들을 향한 신뢰감은 다른 훈련생들에게도 있었기에 다들 어렵지 않게 납득했다.


“확실히… 꾀병 부리는 것과 진짜 부상 당해서 쓰러진 것을 귀신같이 구분하시곤 했지…”

옆의 마다치 켄지가 움찔거린다.
교관들의 능력을 몸소 증명해 주신 첫 번째 훈련생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팀들은 다른 팀들보다 확실히 기본기가 좋아. 실수만 없다면, 다른 팀 중 가장 시험을 통과할 확률이 높겠지.”


끄덕.

다른 팀원들은 내 말에 동의해 주었다.
우리 팀의 성적은 단연코 1등이었고, 2등과도 꽤 먼 격차가 있었다.

“적은 높은 확률로 변수가 없는 상대. 게다가 우리는 어드벤티지를 받을 확률까지 상당히 높지. 그렇다면 기본기가 단단한 우리 팀은 손쉽게 이겨낼 수 있어.”


“…맞네.”
“와… 교관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구나…”

4명의 팀원들은 나를 향해 놀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만장일치로 내 의견에 동의했다.
이렇게 우리는 가장 먼저 나서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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