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테라포밍
팀별 훈련은 계속되었다.
훈련생들은 체력 단련보다 이 훈련을 더 힘들어했다.
적어도 체력 단련 때는 타박상을 당할 일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전혀 다르다.
‘브랙이랑 한 훈련에 비하면… 이건 천국이지 진짜…’
그 2주간은 정말 떠올리기 싫다.
만약 내가 이 소설 속에서 죽어서 시간을 돌려야 한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지옥 훈련이 끝난 날을 선택할 것이다.
아니면 아예 지옥 훈련을 하지 않게끔 과거를 바꾸던가.
- 께에에엨! 께엨!
고블린은 성대가 다치거나, 목이 쉬지 않는 건가?
어떻게 저렇게 하루 종일 소리를 지를 수 있지?
나라면 지쳐서 한 시간 만에 포기할 것 같은데.
여전히 고블린 제라드의 눈은 분노로 번뜩이고 있었다.
나무에 묶인 자신을 들고 가는 광년이를 향해서.
그래도 그녀가 고블린을 들고 다니는 보람은 확실하게 있었다.
훈련생들은 전부 고블린에게 익숙해졌다.
심지어 어떤 용감한 몇몇 훈련생은 고블린을 만져보기까지 했으니까.
“와…그걸 진짜 만져?”
“어때? 어때?”
“윽… 손에서 냄새나. 그리고 피부가 생각보다 거친데?”
“신기하다. 나도 만져볼까?”
- 께에엨!!
“만지다 손가락 잘리지만 마라. 얘 치악력 보기보다 엄청 강하니까.”
시험 삼아 보여주려는 건지 광년이가 멈춰서서 나뭇가지 한 개를 주워들었다.
웬만한 사람은 꺾기도 힘들만 한 텀블러 정도의 두께였다.
나뭇가지는 고블린의 입에 들어갔다.
- 끄에엨! 콰직! 부드드득!
고블린의 입에 물린 나뭇가지는 날카로운 이빨에 완전히 박살 났다.
손가락은 물론이고, 뼈가 얇은 사람의 팔쯤이야 순식간에 부숴버릴 수 있을 것 같은 치악력이다.
“꿀꺽…”
이제는 고블린의 얼굴 주변을 만지려는 무모한 훈련생은 없었다.
하지만 교관은 있었다.
바로 광년이다.
“근데 이게 또 스릴 있어서 재밌단 말이지. 안 그래 제라드? 우쭈쭈쭈.”
고블린의 뒤에 선 광년이가 녀석의 입속에 손가락을 넣었다.
그냥 무식하게 넣은 것이 아니라, 양손의 검지와 중지를 고블린의 입에 넣어 볼을 걸어 올린 것이다.
마치 강제로 웃음 짓게 만들려는 것처럼.
“웃어 제라드! 웃으면 복이 온대!”
쭈우욱!
아니, 처럼이 아니였다.
광년이는 실제로 고블린의 입을 끌어 올려 억지로 웃음 짓게 만들었다.
살다 살다 고블린이 웃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근데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은 한국 속담인데 쟤는 그걸 어떻게 알고 있대?
- 끼이잌!! 따악! 딱! 딱딱딱! 따악!
당연히 고블린은 발작을 하며 볼 안쪽에 들어온 손가락을 깨물려고 발광을 해대었다.
어떻게든 고개를 앞으로 빼서 광년이의 손가락을 깨물어 부수려 했다.
하지만 그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다.
손이 묶인 고블린은 절대 손가락을 깨물 수 없었다.
그에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인지 거품을 물며 소리를 질러대었다.
- 끼이이잌!! 낔!!! 끼잌!! 끼이이이잌!!
고블린의 입안에서 정말로 거품이 새어 나왔다.
손가락에 침이 묻는 것 정도는 신경 쓰지 않는 건지, 광년이는 밝게 웃으며 고블린도 밝게 웃게 만들었다.
“미친…년…”
“저거 또 지랄이네… 와…”
“볼 때마다 새롭다 진짜…”
‘아하… 이것도 연기란 말이지?’
확실히 광년이는 연기에 재능이 있기는 했다.
나도 저 모습을 보면서 저게 가짜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으니까.
그녀는 사람을 질리게 만드는 방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야! 마다치 켄지! 튀어나와!”
“네…넵!”
탁탁!
몇 분간 고블린을 가지고 논 광년이는 충분히 보여줬다고 판단했는지, 슬슬 고블린의 입속에서 손을 빼내었다.
그리고 불려간 것이 우리 팀의 마다치 켄지였다.
스윽… 스윽…
앞으로 불려 나온 마다치 켄지는 광년이의 손수건이 되었다.
광년이가 고블린의 침이 덕지덕지 묻은 손을 그의 옷에 닦아댄 것이다.
당연하지만 지은 죄가 있던 마다치 켄지는 아무 말 하지 못했다.
“…자. 끝! 이제 가도 돼.”
“…넵…”
마지막까지 철저하게 미친년을 연기하네…
속 사정을 알고 있는 나는 마다치 켄지를 위로하려 했으나, 생각보다 고블린의 침 냄새가 지독했기에 그냥 가까이 가지 않기로 했다.
악취가 몸에 배이긴 싫었다.
*
팀 훈련이 일주일째 되는 날.
슬슬 훈련생들에게 마나 각성을 하는 사람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크게 티가 안 나긴 했어도, 시스템 창으로 보면 마나 스텟이 개방되어 있는 것을 보면 확실했다.
아마 점점 더 마나가 쌓이다 보면 몸에 마나를 불어 넣는 방법도 자연스레 깨달을 것이다.
내가 그랬듯이.
덕분에 우리를 제외하고도 1단계 졸업자가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카야를 상대로 한 팀에게서만.
“카야! 우리랑 해줘!”
“아니! 이번에는 우리 팀이랑 하기로 했잖아!”
“으그극… 왠지 이렇게 불려가는 것이 기쁘지만은 않네요… 베넷 교관님이나 브랙 교관님보다야 제가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긴 하지만… 제 자존심이… 자존감이… 으으…”
카야는 복잡한 얼굴을 하며 훈련생의 공격을 버틸 준비를 했다.
그런 카야를 본 광년이가 짧게 내뱉었다.
“마나 쓰지 마라?”
“안 써요! 저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고요…”
아무리 초인이라고 한들 이곳에서 1년 좀 넘게 보낸 카야는 기술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5명이서 나름 합을 맞춰 덤벼들면 그리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닌것이다.
광년이나 브랙에게서 졸업한 팀은 아직까지 우리밖에 없었다.
그 두 명은 너무 강했으니까.
“…2단계 통과 조건이 너무 힘든 것 아닌가요?”
“그럼 고작 5분 10분 버텨야 할 줄 알았어? 아무리 빠르게 지원을 불렀어도 기본적으로 1시간은 버텨야 해. 지난번 제라드 새끼들 습격 때 직접 두 눈으로 봤잖아?”
2단계의 통과 조건은 무려 교관을 상대로 30분을 버티는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1시간은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고, 통과하려면 한 달도 부족할 것 같았기에 절반으로 줄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팀은 상당히 고전하고 있었다.
“준비됐습니다!”
다시 우리의 도전이 시작되고, 광년의 신체가 우리를 향해 화살처럼 쏘아진다.
- 캉! 까앙!
퍼억!
“끄흑!”
요 며칠간 그래도 성과는 있는지 다들 실력이 늘기는 늘어서 15분까지는 버텨 내었다.
하지만 그 이상 버티기는 힘들었다.
기상천외한 자세로 파고드는 광년이에게 빈틈을 내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어제와 같이 모두 쓰러져버리고 말았다.
“…좋은 생각 있으신 분?”
“있겠냐고… 있었으면 진작에…”
“…”
“각자 사방으로 흩어져서 도망치는 것도 안 돼, 그렇다고 뭉치는 것도 안 돼… 으아… 너무 답이 없는 거 아니야?”
실력을 단기간에 늘릴 수는 없으니 즉각적인 변화를 보이고 싶으면 역시 전술의 변경밖에 없었다.
어지간한 것들은 전부 시도해 보았다.
심지어 나와 이강인이 뒤쪽 숨어 마나를 담아 돌팔매로 견제까지 해봤지만 번번이 막혔다.
아직 시도하지 않은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
며칠 전만 해도 오히려 시도하는 순간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겠지만, 그래도 요 일주일간 다들 서로의 움직임에 훨씬 익숙해졌을 테니 시도해볼 법하다.
적어도 이대로 손 놓고 운이 따라주기만을 기도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냥 우리 쪽에서 달려들어 보면 어때?”
“응? 교관님에게 우리가? 우리는 버텨야 하는 것이 아니었어?”
“한국에는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다, 라는 말도 있거든.”
“…선즉제인(先則制人). 중국에는 비슷한 말이 있어.”
나의 말을 리 샤오린이 거들어 주었다.
이강인도 내 말에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왠지 모르지만 기뻐하는 것 같았다.
아무튼…
연계가 잘못 틀어지면 방금처럼 15분도 버티지 못하겠지만, 성공한다면 30분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다들 일단 한번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영 아니면 그만두면 되는 것이니까.
도전에 횟수 제한도 있는 것이 아닌데, 마음을 편하게 가지면 된다.
“교관님! 저희 준비 됐습니다!”
벌떡!
*
“으아아악! 아까워! 5분만 더 버텼으면…”
“네가 잘못해서 통과 못한 거잖아.”
“으으윽… 그건 맞지만…”
리 샤오린의 지적에 블랑이 고개를 숙인다.
잘 이어지던 흐름에서 블랑이 실수를 해버렸기에 결국 실패했다.
의외로 계획은 성공적으로 들어맞았다.
한순간의 끊김 없이 연달아 날아드는 칼날에, 오히려 광년이가 버티는 흐름이 만들어졌다.
다만…
30분간 집중력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것도 5명 동시에.
‘적어도 운동회 때 5명이서 단체 줄넘기를 30분 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지…’
1년 넘게 같이 지낸 친구들과 단체 줄넘기를 해도 10번을 못 넘기는 것이 태반이다.
오히려 25분이나 집중을 유지한 것이 기적에 가까웠다.
우리가 얼굴을 튼 지는 고작 한 달이 넘었을 뿐이니까.
“그래도 이 정도면 성공할만한데요? 충분히 성과가 있습니다.”
“연습 몇 번 더 하면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아.”
“…다음에는 실수 안 하도록 잘해볼게…”
나는 풀죽은 블랑을 위로해 주고 숙소를 나왔다.
내가 가는 장소의 목적은 광년이의 방이었다.
‘지난번 프룸을 받고서 3일이 지났지?’
이미 나는 프룸을 입에 달고 살 정도로 많이 먹을 수 있지만, 꾸준히 광년이를 찾아갔다.
50 카르마라도 아끼기 위해서다.
아무도 보지 않는 것을 확인한 다음 2층으로 올라갔다.
괜히 누구에게 광년이의 방으로 향하는 것을 보이면 오해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똑똑똑!
“들어와.”
끼익… 쿵!
문밖에서 발걸음만으로 나인 것을 짐작한 듯 허락이 내려왔다.
이미 한번 경험했던 일이었기에 나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다.
‘이불… 바느질되어 있네. 심지어 자수까지 놓여 있고.’
광년이와 내가 동침을 한 날.
그녀는 쾌감에 정신이 팔려 힘 조절을 실수해 이불을 찢고 말았다.
찢어진 이불에는 꿰맨 자국을 감추려는 듯 풀잎 한줄기가 그려져 있었다.
그날 밤에 한 말대로 정말 바느질을 할 줄 아나보다.
그때 나는 아직 광년이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때문에 광년이가 바느질이 가능하다고 했을 때 의심을 했었다.
아무리 봐도 그녀의 성격과 자수는 도무지 매치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룸 받으러 왔어?”
“네.”
드르륵…
“자.”
내게 얌전히 프룸을 건내주는 광년이.
몇번을 봐도 얌전한 광년이는 익숙해 지지를 않는다.
나는 이왕 그녀와 독대를 한 김에 한가지 궁금한 점을 물어보기로 했다.
“2단계 수련 말인데요, 그거 원래 훈련생들이 먼저 공격하는 것이 올바른 해답인 건가요?”
그냥 버티기만 하는 것과 우리가 먼저 선수를 취하는 것의 차이가 너무 심하게 났다.
15분에서 25분이 되었으니, 2배 조금 안되는 수치가 된 것이다.
교관들은 일부러 이 방향으로 훈련생들이 버텨내길 유도한건가?
- 피식.
“…그 질문에 대답을 해주지 않는 것이 포인트인거다. 멍청아.”
광년이는 내게 대답을 해주었다.
내가 생각한 것이 맞다고.
‘즉, 우리끼리 회의를 해서 이 결론에 도달한 것 자체가 목적이라는 말인가…’
광년이는 기교가 뛰어났다.
그렇다면 그녀를 자유롭게 풀어주며 공격을 기다리는 것이 아닌, 손발을 묶는 것을 우선시 하는 것이 맞았다.
오늘의 경우처럼.
‘전투라는 건 생각보다 복잡하네…’
아무리 이성적으로 분석을 하는 것이 나의 특기라고 해도 전투의 경험은 현격히 적기에 다양한 사고가 불가능 했다.
하지만 스스로가 발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에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이강인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훈련의 정답이 따로 있다는 것을.
하지만 나는 원작을 읽었음에도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원작의 이강인은 다른 4명을 시간끌기용 버림패로 쓴 동시에 혼자 버티는 것에 치중했기 때문이다.
그런식으로 2단계를 3일만에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였다.
2단계를 5일이나 끌어가면서 교관이 제시한 문제를 정석적으로 풀려고 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나를 키우려는 건가?’
이강인은 오늘 내가 ‘정답’을 말했을 때 밝게 웃으며 내게 동의 해주었다.
안그래도 3일만에 끝낼 방법을 알고 있으면서 왜 이렇게 시간을 질질 끄나 궁금했는데…
‘나쁘지 않네. 적어도 미래에 계속 나를 써먹을 생각이란 거니까.’
키운다는 것은 나라는 인간에 대해 기대를 걸고 있다는 뜻이다.
나쁘지 않은 부담감이다.
나는 적당한 부담감이 있으면 성과를 더 내는 타입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