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테라포밍
놀랍게도 우리 팀은 초반부 리 샤오린과의 문제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문제 없이 흘러갔다.
가장 의외였던 것은 마다치 켄지가 별다를 트롤링을 안 했다는 것이다.
초반에 그가 보여주었던 충격적인 찌질함을 생각해 보면 그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
- 께에에엨!!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당장 이렇게 근처에서 고블린이 소리를 지르고 있음에도 묵묵히 팀 훈련에 잘 따라와 주었다.
오히려 극 초반부에 우리와 불화를 빚은 리 샤오린이 더 문제아였다.
단, 팀 훈련에 잘 따라와 준다고 해도 자기주장이 강한 것은 확실히 아니였다.
그저 나머지 팀원 4명이 전부 찬성한 의견이 있으면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수긍하며 1인분만 하려고 노력했다.
그 모습이 마치 현실에 순응하고 반항하길 그만둔 중년 소시민의 사회인 같았다.
그에겐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실 그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우리 입장에서는 더 좋았다.
도무지 마다치 켄지가 주도적으로 나섰을 때 좋은 꼴을 볼 것 같지는 않았기에.
“더 빠르게 움직여! 발 멈춘 새끼 누구야! 내가 만만하냐?”
탁탁탁!
이강인과 블랑이 광년이의 정면을 상대하고 있었다.
이들 중 가장 광년이를 상대로 가장 오래 버틸 수 있는 이강인이 주가 되어서 광년이와 칼을 맞대었고, 블랑은 이강인을 보조하는 모양새였다.
그들을 오래도록 관찰하고 있을 틈은 없었다.
나를 포함한 나머지 세 명은 광년이의 뒤를 노렸어야 했으니까.
“흐읍!”
광년이는 내가 마나 각성을 한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마나를 안 쓸 이유는 없겠지.
혹시라도 정말 그녀가 칼에 맞을까 봐 칼에 담은 힘을 줄인다?
그 짓거리를 했다가 뒤지기 직전까지 맞은 이름 모를 훈련생만 네 명이다.
팔과 다리가 마나를 머금어 강화되었다.
광년이의 뒤를 노린 그 누구보다 빠르게 칼날이 날아든다.
- 카앙!
“뻔해!”
하지만 막혔다.
충분히 예상 가능했던 일이다.
일부로 광년이에게 가장 빠른 경로로 칼을 내질렀으니까.
속임수나 수 싸움 같은 것은 일절 없었다.
‘초짜가 어설프게 그런 걸 시도하면 오히려 역효과야. 지금은…’
휘이익!
“쳇…!”
타악!
이용할 수 있는 것을 이용해야 한다.
가령 회귀 전, 전투 경험이 많아 나보다 수 싸움에 밝은 이강인을 이용한다든지.
빠르게 다가온 나의 칼날을 막아서느라 이강인을 상대하던 광년이의 손이 비었다.
당연하지만 이강인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광년이의 빈틈을 정확하게 공격했고, 나를 뒤이어 리 샤오린과 마다치 켄지가 후방에서 공격해 왔기에 광년이는 발을 뺄 수밖에 없었다.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된 팀치고는 상당히 괜찮은 연계였다.
가볍게 몸을 놀려서 우리의 협공을 피해낸 광년이의 표정은 놀라워하고 있었다.
당연하다.
10개의 팀 중에서 그녀를 물러서게 만드는 성과를 내보인 팀은 우리가 유일했으니까.
‘뭐… 5명 중 두 명이나 마나 각성을 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점 덕이기는 했지만… 5명 전원 마나 각성을 했더라도 광년이의 발도 못 떼게 만들 정도로 협공이 조잡한 팀도 있었으니까.’
“…좀 치네.”
광년이는 의외라는 얼굴로 우리들을 바라보았다.
첫날과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의 협공을 보여주었으니 당연하다.
농담이 아니라 첫날에는 이강인 혼자서 광년이와 싸우는 것만도 못했었으니까.
그녀의 생각은 충분히 읽을 만 했다.
우리 다섯 명은 다들 각자의 개성이 독특했기에, 서로 합을 맞추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것으로 판단했겠지.
나와 이강인의 요구로 한 팀에 마나 각성자를 2명 넣어야 하는 이상, 각 팀의 벨런스를 맞추기 위해서 일부러 이런 식으로 팀을 짰으리라.
그것은 첫날 훈련에 확실하게 들어맞았고.
하지만 단 하루 만에 팀원 사이의 불화를 해결해 버릴 줄 몰랐던 모양이다.
우습게도 나머지 10개의 팀 중 우리 팀이 가장 합이 잘 맞았다.
단순한 무력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또 너냐? 아니, 너 맞지.”
“아니 제가 뭘 했다고요. 전 그냥 최선을 다 한 건데요?”
“후우… 잘못했다는 건 아닌데… 아… 이러면 씹… 골치 아파지는데…”
광년이가 나를 지목해 말을 걸었다.
아마도 팀에 있는 폭탄을 제거한 장본인을 나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 예상은 들어맞았고.
‘왜 이렇게 빠르게 문제를 해결했냐?’라면서 나를 갈굴 수는 없으니 머리가 아픈 모양새였다.
- 캉!
옆쪽에서도 칼과 칼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팀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은 우리뿐만이 아니였다.
다른 훈련생들 또한 우리와 같은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수가 소수를 공격하는, 일명 다구리는 전투직들이 가장 많이 겪는 전투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당연히 숙지해야 할 기본기라고 할 수 있겠다.
다들 다수가 소수를 상대로 압박하는 방법을 몸으로 배우고 있었다.
훈련생들은 이곳에 있는 세 명의 전투직들 중 가장 약한 카야를 상대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 카앙! 캉!
“흐읍! 저 이래 보여도 북부 훈련소 출신입니다? 기초는 단단하다고요! 아! 여러분들은 아직 모르시겠네요! 사실 이곳, 북부 훈련소 출신은 다른 훈련소 졸업생들보다 반 단계를 더 높게 쳐주는…”
여전히 카야는 말이 많았다.
시퍼렇게 살점을 노리고 날아드는 다섯 개의 칼날을 상대하면서도 충분히 여유로운지 카야의 입은 쉬지 않았다.
어찌나 시끄러운지 저기 묶여있는 고블린 제라드와 비견될 정도였다.
- 께에에에엨!!
- 조잘조잘…
“아 모르겠다! 야! 이번에는 내 쪽에서 덤벼들 거야. 최대한 버텨.”
광년이는 그리 말하면서 우리에게 15분간 회의할 시간을 주었다.
나는 광년이의 판단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벌써 1단계를 넘어간다고?’
움직이지 않는 교관을 협공으로 물러나게 만드는 것에 성공한 조는 그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바로 교관을 상대로 버티는 단계로.
보통의 조가 이 단계까지 오는 것에 대략 일주일의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리 우리가 1단계의 조건을 넘어섰다고 한들, 훈련 시작 이틀 만에 2단계로 넘어가는 과감한 판단을 하다니…
나는 적어도 3~4일까지는 1단계를 반복할 줄 알았다.
이강인도 상당히 놀란 눈치다.
“이봐. 회의 안 할 거야?”
“아. 그래. 해야지.”
리 샤오린이 내게 퉁명스레 말한다.
말투만 저리 친절하지 않을 뿐, 내게 시비를 걸자 하는 의도는 전혀 아니었다.
그렇기에 딱히 그 부분을 짚고 화내지는 않았다.
아무리 화해를 했다고 한들, 한번 싸운 사람에게 친하게 굴만한 성격은 나와 리 샤오린 둘다 아녔다.
그녀가 호의를 보냈다면 내 쪽에서 거부감이 들었을 것이다.
그녀랑 나는 이 정도 거리감이 딱 적당했다.
“음… 버티는 것은 역시 찬영 너랑 이강인이 중점으로…”
“광년이가 바보는 아닐 텐데. 당연히 리 샤오린이나 마다치 켄지, 블랑 너를 노리겠지.”
“그…그러겠네. 으으… 내가 노려지는 건가…”
블랑은 살짝 질색하는 얼굴로 침을 삼켰다.
사실 광년이가 작정하고 우리에게 달려든다면 도무지 막을 수 없다.
이강인을 제외하면 등을 맡길 만큼 믿음직스러운 사람은 없었기에.
‘천권일각을 사용한다면 막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나는 칼을 든 것보다 칼을 내려놓은 것이 강하다.
내게 있는 스킬이 나를 그렇게 만들어 주었다.
백하민을 실컷 두들겨 패며 내가 가진 스킬의 위력을 확실히 깨달았다.
천권일각은 철로 만든 무기에 전혀 뒤지지 않는 강력함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굳이 그걸 여기서 내보이고 싶지 않았다.
써봐야 의문스러운 시선만 받을 것이 분명했다.
실전도 아닌 연습일 뿐인데 미쳤다고 내 전부를 꺼내 보일 필요가 있겠는가?
‘평생 숨길 생각은 당연히 아니지만.”
15분의 짧은 회의 끝에 간단한 진형이 만들어졌다.
나랑 이강인이 각각 좌익과 우익의 끝을 맡은 상태로 일렬횡대를 만들어 낸 형태를 했다.
이렇게 포지션을 짤 경우 중간에 있는 블랑들을 노리려 한다면, 양옆에 있는 나와 이강인에게 포위되어 합공을 받게 된다.
최소한 약한 팀원부터 노려져 한 명씩 줄어드는 치고 빠지기 전술에 대비할 수는 있는 포지션이었다.
“킥킥… 생각이 다 읽혀서 귀엽네. 시작한다?”
“…”
휘익!
신호와 함께 광년이가 우리에게 날아들었다.
그녀가 노리는 첫 번째 목표물은…
…씨발 나였다.
- 까앙!
방어를 목적으로 휘두른 칼날이 간단하게 막혔다.
내 품 안으로 재빠르게 파고드는 광년이에게 대응하고자 어깨로 그녀를 밀치려 했으나…
파악!
“큭!”
텅그렁!
광년이가 묘기를 부리듯 내려앉은 상태에서 하체를 띄워 발을 올려 찼고, 내 손목에 직격했다.
나는 예상치 못한 손목의 충격에 손에 쥐고 있던 칼을 놓쳐버렸다.
칼이 날아가서 머나먼 곳에 뒹군다.
저 칼을 다시 되찾기는 포기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내 몸의 무게중심은 이미 광년이에게 쏠려있었다.
오른쪽 손목의 충격에 의해 방향은 좀 비틀려 있었지만, 그녀와 나 사이의 거리가 가까웠기에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이대로 가면 그녀는 내 어깨에 부딪혀서 튕겨 나가게 될 것이다.
“중력에 의존한 변수 없는 공격은 이용당하기 딱 좋아.”
우당탕!
“커헉!!”
“이렇게.”
광년이가 나를 메쳐 버렸다.
그녀는 나의 손목을 공격하기 위해 하체를 띄우고 있었다.
그 말은 곧 그녀의 손은 자신의 몸을 받쳐주기 위해 땅에 딛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를 메쳤을까?
그것을 나는 몇 미터를 날아가고 땅에 처박힌 후에야 깨달았다.
광년이는 다리로 나를 메쳐 버렸다.
‘시발! 이게 말이 돼?’
내가 직접 당하고도 믿기지 않는다.
몸무게 차이가 심하게 나는 상대에게 손으로도 사용하기 힘든 기술을, 그것도 다리를 휘감아서 사용하다니…
“미…친… 콜록!”
내가 날아가면서 팀원들의 우측이 무방비하게 비어버렸다.
이강인과 다른 팀원들이 그녀를 둘러싸 협공을 하려 했지만…
제대로 포지션이 짜이기 전에 광년이 손에 쓰러지는 것이 더 빨랐다.
“끄헉!…”
빠악!
“아악!”
“흐이힉!”
아다치 켄지를 마지막으로 3명이 순식간에 드러누웠다.
내가 몸을 일으켜 다시 합류했을 때는 서 있는 사람은 고작 이강인밖에 없었다.
하필 내가 날아간 곳이 칼이 떨어진 곳과 정반대인 곳이라서 손에 든 무기도 없었다.
…생각해 보니 광년이가 의도적으로 칼과 떨어진 곳에 내 몸을 날렸나 보다.
“너무 전력으로 상대하시는 것 아닙니까?”
“내가 전력으로 상대했으면 너넨 이미 죽었어.”
마나도 안 쓴 신체가 저리 빠르고 강하면 어떻게 대응하라는 걸까…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훈련에 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끼며 광년이의 습격에 대비했다.
“그냥 누워있지 그랬어! 하하! 근성은 있네!”
광년이는 무기가 없는 나를 먼저 노리고 달려들었다.
젠장…
*
아삭아삭!
“으… 겁나 떫다… 이거 정말 몸에 좋은 거 맞아?”
“우웩… 이거 진액이 끈적끈적해… 식감 진짜 별로다…”
“…”
아삭!
우리가 먹고 있는 것은 그린 얌이었다.
회복을 도와준다는 약초의 뿌리.
겉보기에 열매나 과일과 비슷한 그것은 사실 뿌리였고, 맛은 떫디떫은 마와 같았다.
아삭아삭했고, 새하얀 액체가 끈적하게 흘러내리는…
리 샤오린조차 표정을 일그러뜨리고 그린 얌에게 불평했다.
블랑은 그런 리 샤오린에게 동조했고.
유일하게 이강인만이 불평 없이 이놈을 먹고 있었다.
이 맛에 익숙해져 있다는 건가?
“정말로 이거 먹으면 오늘 멍든 곳 치료가 될까?”
“피멍 정도는 자고 일어나면 치료가 된다던데?”
“그럼 슬슬 모두 자자. 내일도 고생해야 하잖아?”
이강인의 말에 동의한 모두는 불을 끄고 잠을 자기로 했다.
광년이와 한 훈련이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았던 만큼 모두들 지쳐있었던 탓이다.
정말 광년이는 지독하게도 우리들을 괴롭혔다.
왠지는 모르지만 리 샤오린을 좀 더 세게 때리는 것 같았고.
‘…자야지.’
나도 침대에 누워 잠에 들기로 했지만, 옆자리 인물의 기행에 잠에 들 수 없었다.
- 중얼중얼중얼…
리 샤오린이 침대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두 손을 모으고 무어라 중얼거리는 것이 아닌가?
마치 신에게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다.
“…나는 자고 일어나면 둘째 날로 회귀한다… 나는 자고 일어나면… 회귀한다… 과거로 돌아가서…”
듣고 있으니 회귀가 어쩌고 하는 내용이었다.
회귀?
…원작에서 리 샤오린과 회귀랑 전혀 관련이 없었는데?
나는 그런 리 샤오린을 보며 블랑에게 물어봤다.
“…쟤 뭐 하고 있냐?”
“아. 쟤 가끔 기도한다잖아. 신한테.”
“신?”
“어. 차원 이동을 시켜줬으면 과거 역행도 시켜줄 수 있는 것 아니냐면서. 이곳에 온 지 둘째 날로 돌려보내 달라고 하던데?”
둘째 날?
하필 왜 둘째 날이지?
차라리 지구도 돌려 보내 달라는 소원이라면 몰라도.
그런 나의 얼굴을 본 블랑이 설명을 해주었다.
“둘째 날이 그날이잖아. 그때 광년이의 목을 단검으로 찔렀어야 한다고…”
“아…”
“제발… 제발… 둘째 날로… 회귀… 기회를 한 번만… 더… 이번에는 찌를 수 있습니다. 정말로 가능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