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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50)화 (50/310)



〈 50화 〉테라포밍

끼익… 쿵.

내 허락을 받은 안젤리가 문을 열고 방에 들어온다.
안젤리가 내게 안마를 해주려는 이유는 마음의 빚 때문일 것이다.


나는 생각지 못한 행운에 크게 기뻐했다.
어떤 남자가 미인이 손수 안마를 해주겠다는데 거절을 할까?

“그으… 찬영은 자연치유가 있어서 근육이 뭉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안마를 받으면 시원하니까…”


“…아하.”

 사실을 알고 있었네…
나는 안젤리가 내게 자연치유가 있다는 것을 까먹고 있는 줄 알았다.
내게는 근육통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안마를 해주겠다는 말을 물릴까 봐 일부로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군.’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이런 것밖에 없네… 적어도 천계에서 생활금을 줄 때까지는 내가 매일 안마를 해줄게!”

“오늘 하루로 끝이 아니라?”


“응! 아…! 혹시… 싫어?…”


안젤리는 나를 조심스럽게 올려다보았다.
눈빛에 불안이 섞인 안젤리의 얼굴은 귀가 접힌 강아지를 떠오르게 했다.
그것도 내게 아주 호의적인 강아지를.


나는 심호흡을 한번 해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눈앞의  귀여운 여자를 덮쳐버릴 것 같았기에.
안 그래도 단둘이 방에 있는 상황 자체가 나의 이성을 빠르게 깎았는데, 이렇게 추가 공격까지 들어오니 버티기가 힘들었다.

“…당연히 나야 좋지! 그런데 괜찮겠어? 매일 하게 되면 힘들 텐데?”

“괜찮아! 중급 천사는 엄청 강하다고? 이 정도로는 절대 지치지 않아!”

가까스로 이성을 억누르는 것에 성공했다.
보통의 여자라면 참지 않고 덮쳤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안젤리다보니 망설여진다.

이상한 의미가 아니다.
보통 알 것 다 아는 여자라면 남자의 방에 안마해 주겠다고 찾아온  신호다.
OK라는 신호.
그렇기에 덮치더라도 싫은 척 넘어와 준다.

하지만 상대는 천사, 그것도 안젤리다.
정말로 삿된 의미 하나 없이, 순수한 호의만으로 내게 안마를 권유하러 온 것일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일단 상황의 흐름을 보고 결정해야겠네…’

우발적인 선택은 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안마는 오늘 하루로 끝이 아니니 내일도 기회가 있을 것이다.


스윽…


나의 손목을 안젤리의 손바닥이 감싼다.
안젤리가 나를 손으로 이끌어 침대에 뉘었고, 나는 그녀의 손길을 저항하지 않았다.
부드럽고 따스한 손이었다.
천사의 신체는 인간보다 체온이 높은 것 같았다.
그것은 안마가 시작되고 난 뒤에 더욱 실감했다.


엎드린 나의 몸을 안젤리가 더듬을 때면, 살이 맞닿은 곳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이 나를 나른하게 만들었다.
작은 손이지만 그 힘은 약하지 않았다.
적당히 강했고, 나를 배려하고자 하는 힘의 조절이 느껴져 왔다.


“아프지 않아?”

“아니…  좋아.”


엎드려있기에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왠지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작게 웃음 짓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오는 웃음을 참는 듯한 숨소리가 곁에서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유를 모르게 가슴이 설레어 왔다.

안젤리의 봉사는 계속되었다.
안마는 건전했지만 나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작은 손이 종아리를 거쳐 허벅지를 주무를 때면, 내게 애를 태우는 것만 같아 기분 좋은 조급함이 나를 괴롭혔다.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내게 야릇한 기분을 선사해 주었다.

방문과 창문은 닫혀 있다.
공기가 흐르지 않아서인지 안젤리가 가진 특유의 체향이 내 코를 간질였다.
천계에서 과일만 먹고 살아온 탓일까?
그녀는 딱히 향수를 쓰는 것 같지 않았지만,  향기는 무척이나 달콤했다.
풋풋하고 싱그러운 향기.
눈을 감고 이 향기를 즐기고 있으면 자연스레 드넓은 봄날의 초원이 떠오른다.
그녀와 동거하며 익숙해진 향기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맡으니 새롭게 다가왔다.


과거, 그녀가 내게 안겼을 때가 떠오른다.
1초가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경험한 안젤리의 부드러움은…
아직도 내 뇌리에 박혀 잊히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내 몸을 애무하듯 간질이고 있다.

“앗, 찬영? 몸에 긴장 풀어줘.”

“아. 응.”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힘이 들어갔나 보다.
나는 다리에 힘을 풀어 한층 더 그녀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힘이 들어간 것은 어쩔 수 없다.
남자란 생물은 흥분하게 되면 몸에 힘이 들어가니까.
이런 상황에서 발기가 안 되는 남자는 고자나 다름없다.
나는 고자가 아니었을 뿐이다.

엎드린 자세라서 다행이었다.
만약 나의 생리현상을 안젤리가 봤더라면 우리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흘렀을 테니까.
어쩌면 내일도 안마해주겠다는 약속도 취소될 수 있다.
그래선  된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으면 몰라도, 이미 경험한 이상 나는 안젤리의 봉사에 단단히 빠져들었다.


스윽… 스윽…

고요한 방 안에 살과 살이 스치는 소리만이 울린다.
서로 간 대화는 많지 않았다.
안젤리는 나를 안마하는 것에만 집중했고, 나는 그녀의 손길을 즐기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렇기에 그녀의 숨소리 또한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어째서 소설에서 ‘귀를 간질이는 숨결’이라고 표현하는지 이해가 갔다.
살짝 거칠어진 안젤리의 숨소리가 내 귀에 닿을 때면, 작은 깃털이 내 귓구멍을 간질이는 것처럼 오싹한 기분을 들게 했기 때문이다.

“흐응… 몸에 근육이 의외로 많네?”

“열심히 했으니까.”


“…노력했구나.”


안젤리의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처음 그녀의 손이 내 머리에 닿았을 때는 살짝 놀랐지만, 생각 외로 거부감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속 무언가가 풀어지며 계속 이렇게 응석을 부리고 싶어졌다.
나는  감정에 당황했다.
나라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응석을 부리고 싶어 하는 감정이 든다고는 상상도  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홀로 자라와서 그런 걸까?
나는 누군가를 기대는 것보다는 누군가를 지탱해 주는 것이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자신은 그랬다.

마음이 갈팡질팡하는 내 속을 알기나 하는 건지, 안젤리는 계속해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말 없이 그 손길을 받아들였다.

“그럼… 계속할게?”

스윽…


“엇? 지금  하는…”

안젤리가 엎드린 내 등허리에 올라탔다.
나는 예상치 못한 그녀의 행동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며 앉으려 했으나, 안젤리가  어깨를 손으로 살포시 누르며 막아섰다.
그 힘은 절대 강하지 않았는데도 어째선지 전혀 저항할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내 등허리에 앉는 것에 성공했다.

“등이랑 허리도 안마해 줄게. 호…혹시 무겁지는 않지?”


“…살짝?”

- 꼬집!

“악! 농담이었어! 농담!”


전혀 무겁지 않았다.
가슴에 저런 흉악한 덩어리를 달고 있으면서 어떻게 이리 가벼운지 궁금할 정도로.
그녀에게 무겁다고 말한 것은 허리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에 어쩐지 부끄러워져 농담을 건낸 것이다.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찌릿한 고통에  발언을 후회했지만…

- 꾹 꾹!

안젤리의 엄지손가락이 내 코어 근육을 지압한다.
충분히 시원했지만, 내게는 그것을 신경 쓸 정신은 남아있지 않았다.
온 신경이 안젤리의 하체와 닿아있는 허리 밑에 쏠려 있었으니까.

손가락에 힘을 주기 위해 몸을 움직일 때마다 안젤리의 엉덩이가 들썩이며 흔들렸다.
내게 얹힌 몸이 살짝 떠올랐다가,
다시 부드럽게 짓누른다.


‘하… 이건 유혹하는 게 맞지 않나?’


고개를 약간 돌리면 새하얀 그녀의 종아리가 보인다.
손에 쥐면 한 손에 감싸일 만큼 작은 발도, 작고 오밀조밀 모여있는 발가락까지도.
모두 선정적으로 다가왔다.
이미 침대에 가려진 내 하물은 단단하게 피가 쏠렸다.


안마까지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이런 자세를 누군가 본다면 안젤리와 나는 연인으로밖에 비쳐지지 않는다.
물론 내 방에 들어올 사람은 아무도 없긴 했어도, 상황 자체만 놓고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안젤리도 분명 그것을 알고 있을 텐데?
설마 그 정도도 모른다고?

“저… 안젤리?”


“…응? 왜?”

나는 고개를 돌려 안젤리를 쳐다보았다.
서로의 시선이 마주친다.
내가 의도 하지는 않았지만, 둘 사이에 오묘한 분위기가 깔렸다.
친구 사이와 남녀의 사이 그 중간에 존재하는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
그것이 느껴졌다.

“그…”

내가 그녀에게 진실을 물어보려는 그때.
고요하던 방에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시발.

and I↗ will always love you↗↗


“으허헉… 드디어 인수인계가 끝났어요… 저도 이제 찬영…님?! 선배님?! 지금 뭐 하시는…”

“보면 몰라? 안젤리한테 안마받고 있잖아.”

달아오른 분위기가 아기천사의 등장으로 완벽히 식었다.
자연스레 나도 까칠해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 아기천사에게 뭔 잘못이 있겠냐마는…
그래도 인간의 감정이란 것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예? 안마요? 선배님이 왜?”
“응? 그건 천계에서 안젤리에게 생활비를…”

“앗! 후배야! 잠깐만…!!”


갑자기 안젤리가 당황해하며 내 등허리에서 내려왔다.
후배의 앞에서도 이런 자세로 있기는 부끄러웠던 걸까?
하긴…
방금의 그 상황은 보는 눈이 없었기에 발생할 수 있었던 선타기였다.

“찬영! 나 잠시만 후배랑 이야기 좀 하고 올게! 처…천계의 업무 관련된 일이니까! 찬영은 들어도 잘 모를 거야!”

딱 봐도 당황스러워하는 것이 상당히 수상쩍었다.
내게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같았다.

하지만 울상으로 일그러진 아름다운 안젤리의 얼굴을 보아 캐묻는 것을 하지 않기로 했다.
안마의 보답 삼아서.

‘게다가 내게 걸린 기억의 금제인지 뭔지랑 관련이 있을 수도 있고.’


안젤리가 내게 곤란해하며 말하지 못할 건은 그 정도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끼익… 쿵!

안젤리와 아기 천사는 방문을 닫고 거리로 나갔다.


*


“저… 선배님? 갑자기 무슨 일이세요?”

아기천사는 명백하게 당황한 얼굴의 자신의 선배를 보며 말했다.
하지만 안젤리에게는 아기천사의 물음에 답할 정신이 없었다.
하마터면 그녀의 계획에 큰 차질이 일어날 뻔했기 때문이다.

‘으아! 큰일  뻔했잖아!…’

신화에 나온 발키리들은 그 대부분이 인간과 사랑에 빠지곤 했다.
발키리와 인간의 사랑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고 또 애절해서 무릇 소녀의 마음을 흔들고는 했다.
발키리를 동경하는 안젤리가 그런 전설에 로망을 가지는 것은 별로 이상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안젤리는 자신 또한 언젠가는 그런 사랑을 하지 않을까 막연한 상상에 설레여 하고는 했다.

하지만 안젤리가 인간과 관계되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발키리도 아닌 고작 중급 천사가 다른 차원에 관여하는 중책을 맡을 확률은 터무니없이 낮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안젤리에게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있잖아, 찬영은 엄청 노력가이지 않아? 성실하고.”

“예?… 뭐… 그렇긴 하죠. 하루하루가 다르게 바뀌시는 것을 보면 어마어마하게 노력하고 있으실걸요?”

“그치? 게다가 엄청 똑똑하고, 또 착하니까!”


“찬영님이 똑똑하단 것은 인정하겠는데, 도무지 착하단 말에는 동의 못 하겠어요!”

안젤리는 도리어 후배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의 눈에는 박찬영이란 인간은 매우 착하고 친절한 인간으로 비췄기 때문이다.

시간을 돌리기 전.
날벼락을 맞아 분노에 눈이 뒤집힌 박찬영은 안젤리에게 만큼은 친절했다.
그것은 첫 만남이 몇 번이나 반복되어도 바뀌지 않았다.


또한 불평 하나 없이 자신에게 방을 내어주고, 또 자신의 입맛에 맞춘 음식을 만들어 주었다.
남을 향한 배려가 몸에 익은 선한 사람의 표본이 바로 안젤리가 생각하는 박찬영이었다.


안젤리 그녀가 평소에 상상해 왔던 완벽한 이상형이었다.
외견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천사는 외견을 절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고작 겉모습에 현혹되기에는 안젤리가 보는 찬영의 가치가 너무나 높았으니까.


착하고, 현명하며, 굳세고, 자신에게 친절한 인간.
인간과의 사랑에 동경을 품은 안젤리가 박찬영을 이성으로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안젤리는 이 기적 같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중급 천사임에도 유능함을 인정받아 인간과 접촉을 허가받게 될 확률.
또 그렇게 만난 인간의 성심이 자신의 완벽한 이상형에 들어맞을 확률.
게다가 서로 상성까지 완벽히 좋아 급속도로 친해질 확률.
그 인간이 자신을 지목하며 악마로부터 곁에서 지켜달라고 말해 줄 확률.
이런 어려운 요구가 천계에서 허가되어 둘이 동거를 하게 될 확률.

이 모든 것이 안젤리에게는 운명처럼 느껴졌다.
…안젤리가 찬영의 단점인 ‘바람둥이 기질’을 모르고 있기에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 후배야? 부탁할 것이 있는데…”
“부탁이요?”
“응… 우리 아직 천계에 찬영에게 지급 할 생활비 결산 요청하지 않았잖아?”
“아 그렇네요. 제가 지금 신청하러 갈까요? 찬영님께 지급할 생활비는 나오는 것이 당연하니까요.”
“아니! 우리 그거 아직 신청하지 말자…”


안젤리는 눈앞에 나타난 운명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한가지 꾀를 내었다.
박찬영과 스킨십을 하며 그에게 자신을 이성적으로 어필하기 위한 꾀 하나를.
그것이 바로 빚을 진 척을 하며 그걸 갚겠다는 핑계로 매일 밤 신체 접촉을 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물이 오늘 밤의 안마였다.

하지만 이런 안젤리의 계획도 아기 천사가 오며 깨어질 뻔했다.


‘찬영은 천계에 신청한 생활비 요청이 반려당한  알고 있어… 내가 그리 말했으니까.’


아기천사가 박찬영에게 ‘진실’을 말하며, 사실은 안젤리가 생활비 요청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단 것을 알게 된다면?
똑똑한 박찬영은 금세 안젤리의 속마음과 계획을 눈치채 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안젤리는 부끄러워서 죽어버리리라.
그녀로서는 절대로 막아야 하는 미래인 것이다.

“어차피 지금 당장 신청 안 해도 나아중에 신청하면 한 번에 나오잖아? 그때 지금까지의 생활비를 한 번에 찬영에게 주면 되지!”

“예…? 굳이 그럴 필요 있나요?…”

“아무튼! 그리고  사실은 찬영에게 비밀로 해줘! 내가 부탁 할게…”

“아 네. 상관없겠죠. 그럼 찬영님께는 뭐라고?…”

“그냥 천계에서 생활금 신청이 반려 당했다고 해줘.”

“알겠습니다… 잘 모르겠지만 선배님의 부탁이니까요.”

이렇게 한 천사 소녀의 자존심은 지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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