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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48)화 (48/310)



〈 48화 〉테라포밍

띠링!

=
[아이템 정보 확인]
이름: 그린 얌
종류: 소모품
레벨: -
효과: 상처의 회복 속도를 약간 올려줌.
상세:
열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뿌리다.
마나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흔하게 찾을  있는 약초.
하나의 약초에서 약 4~5개의 그린 얌을 얻을 수 있다.
효과가 그리 좋지는 않지만, 상처의 회복을 약간 도와준다.
=

‘열매가 아니라 약초였구나.’


어쨌든 이 약초를 상점창에 추가한 것은 뜻밖의 이득이었다.


어째서 내가 애매한 성능을 가지고 있는 약초를 탐내냐고?
포션이라는 충분한 상위호환의 물건이 있기에  약초를 쓸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또 그렇지는 않다.
테라포밍 속 급박한 상황에서 내가 포션이 든 유리병을 꺼내는 것에 비해 이 약초를 꺼내는 것이 훨씬 납득이 가능했으니까.
물론 정말 목숨이 오락가락하면 그딴거 없이 포션을 써야겠지만…

“자. 돌려줄게. 이건 열매야?”

“열매가 아니라 약초의 뿌리라고 하더라고. 고구마 같은 덩이뿌리 식물? 이라고 하나 봐.”


“그래. 너무 무리하지 말고. 빨리 쾌유하길 빌게. 난 너무 피곤해서 좀 쉬어야겠다. 요 이주간 노숙만 했더니 훈련소 침대가 그리워지더라고.”

“하하하! 그런데 살이 빠진  보니 훈련 효과는 확실한가 보네. 왠지 모르게 키도 훌쩍 컸고. 어쨌든 내일 보자. 푹 쉬어!”


저벅저벅…

나와 이강인은  안부를 마지막으로 서로 엇갈려 가며 헤어졌다.


나는 그가 완전히 근처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상점 창을 열었다.
확인한 그린 얌의 가격은 고작 15 카르마였다.
하나의 약초에서 무더기로 발견된다고 하다 보니 가격이 낮은 건가?
게다가 약초 자체도 찾기 어렵지 않다고 하고.

“성능은 별로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겠네…”


가격이 싼 만큼  값을 할  같기에 너무 신뢰해서는 안될  같다.


*


오랜만에 제대로 인사를 나누게 된 블랑과 룸메이트들은 이강인과 비슷한 말을 했다.
처음보다 몰라볼 정도로 살이 빠졌다는 둥, 훈련의 효과가 확실하다는 둥…
수많은 이야기가 나와 그들 사이에 오갔다.
나도 내심 그들이 반가웠기에 우리는 새벽이 다 되어서야 잠들 수 있었다.



“훈련생님들! 일어나세요!”

“끄으으…”
“으아… 방금 눈 감았다 뜬  같은데…”
“톰? 혹시 5분만 있다가 다시 깨워 줄 수…”


“없습니다! 일어나세요! 저는 깨웠어요? 나중에 교관님한테 혼나도 모릅니다?”


“으윽… 젠장…”
“다들 일어나… 지난번에 아침 구보 늦은 애가 광년이한테 어떤  당했는지 기억하잖아…”


단잠에 빠져있던 우리를 새벽같이 깨운 것은 톰이라는 직원이었다.

반군이 습격한 날.
12구역의 전투직들에게 지원을 성공적으로 요청했다는 공을 세운 인물이자, 매일 아침 50명의 훈련생을 깨우는 가장 어린 직원이다.

우리는 비적비적 몸을 일으켜 공터로 향했다.

그 이후는 똑같았다.
잠깐 손과 발목을 풀고, 공터를 몇 바퀴 돌며 구보를 시작했다.
내가 없던 사이 다들 구보에 익숙해진 건지, 예전처럼 뒤처지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나도.


탁! 탁! 탁! 탁!

“후우. 후우. 브랙 교관님이랑은 오랜만에 훈련하네. 후우.”


“후우. 드디어 광년이의 지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가?.”


“쉿! 들리겠다.”

“허업!”

블랑이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깜짝 놀라 광년이의 눈치를 살폈다.
브랙의 곁에서 훈련생들을 이끌며 뛰고 있는 광년이는 방금의 말을 못 들은 건지, 아니면  들은 척을 하는 건지 이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탁! 탁! 탁!


“…큰일 날 뻔했네.”
“말조심해. 말.”
“후우. 후우. 그런데 방금 블랑이 교관님을 욕하니까 찬영이 막는 것 봤어?”
“큭큭큭… 이제 완전히 자기 여자라 이거지! 멋있는데?”
“?… 그게 뭔 개소리…”


“무슨 대화를 그렇게 재밌게 하세요??”


쑤욱

우리의 대화에 끼어든 것은 카야였다.
구보의 선두를 지키는 것이 광년이와 브랙이었으니 당연히 구보를 뒤에서 받쳐주는 역할은 카야가 맡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비교적 후위에 위치해 있었으니, 명백한 초인인 카야가 우리의 잡담을 대충 들을  있었던 것은 이상하지 않다.

아니, 그보다 난 저놈들의 잘못된 인식을 고쳐줘야  필요가 있는데?…
누가 누구의 여자라고?
…농담이겠지?

“카야?! 아하하! 아…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남자들끼리의 농담?”
“방금 ‘자기 여자’라는 단어를 들은 것 같은데요?! 연애 얘기 아니셨나요? 저도 껴주세요!”
“그으… 크흠…”
“저 연애 얘기 엄청 좋아해요! 누구? 누구의 이야기인가요?”


탁! 탁! 탁! 탁!

카야는 눈을 빛내며 우리에게 달라붙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방금까지 나누던 대화를 얘기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다행히 이놈들도 농담으로 했던 얘기인가…’

이 녀석들이 농담을 농담으로 그칠 줄 아는 친구들인 것이 다행이었다.
방금 한 말이 진심이었고, 또 카야에게 말을 꺼냈으면 상황이 생각보다 복잡해졌으리라.
우리의 망설임을 읽은 것인지 카야가 다시 한번 우리를 재촉하려는 그때.

“카야아—!”
“히익! 넵! 교관님!”
“일 해애—!”
“네엡!”


탁탁탁!

전방에서 들려오는 광년이의 목소리에 카야는 화들짝 놀라며 다시금 우리의 후방으로 돌아갔다.

…그러고 보니 방금 대화도 광년이에겐 전부 들렸겠네…
뭔가 알  없는 쪽팔림이 나를 덮쳤다.

“크흠…”

*

“주목! 오늘부로 훈련생들의 기초 체력 훈련은 끝났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전투 훈련이 시작된다!”

구보가 끝난 우리를 기다리던 것은 평소에 하던 체력단련이 아니었다.
드디어 팀별 훈련이 시작된 것이다.


“조는 교관들이 임의로 배정했다! 불만이 있으면 앞에 나와서 당당히 말하도록! …그럴 용기가 있다면.”

씨익.

어후…
광년이의 신들린 미친년 연기를 봐라.
저 광기가 가득 담긴 웃음이 연기라고?

조 배정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한 조당 5명씩, 총 10개의 조가 완성되었다.
훈련생 총원이 49명이었기에 한 조가 4명이 되었지만, 그것이  조는 아니었기에 상관없었다.


“…좀 익숙한 얼굴들이네.”
“찬영! 우연이네? 이렇게 같은 조로 배정받다니!”


저 뻔뻔한 얼굴로 웃으며 내게 말을 거는 이강인.

‘…네가 교관들에게 부탁해서 나를 조로 넣어달라고 했잖아…’


어찌 되었든 이강인이 나와 같은 팀이 될 것은 확정된 사실이었기에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얼굴들은  당황스러웠다.


“리 샤오린… 네가 왜 여깄냐?”
“…”


무시하네?
썅년.

“후… 이거 내가 말하기 뭐하지만, 우리 팀 많이 폐급조 아니야?”

지금은 괜찮아졌지만 외견에서 폐급 티가 팍팍 났던 나.
첫날에 광년이와 싸우다 처맞고 뻗은 이강인.
광년이와 내기에서 패배하고 모든 훈련생 앞에서 펑펑 눈물을 흘린  샤오린.
광년이의 방에 섹스하자고 문을 두들겼다가 거꾸로 매달려 모두의 앞에서 굴욕을 당한 블랑 프랑수아.
심지어 첫날 광년이에게 제대로 찍힌 마다치 켄지까지…

“그래도 조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다.  안심했어.”
“블랑… 우리 조 아무리 봐도  이상하지 않냐?”
“그…그런가?”

5명 전원이 특이사항을 한 개 이상씩 가지고 있는 이상하기 그지없는 팀의 완성이다.


그런데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광년이가 얼마나 미친 짓을 하고 다녔는지 확실하게 티가 났다.
나를 제외한 전원이 광년이에게 한번 이상씩 당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아니.
생각해 보면 내가 지옥 훈련을 시작한 것도 모두 광년이 탓이 아니었던가?
우리 다섯 명 전원은 광년이의 피해자다.

‘시발. 뭔 미친년 피해자 모임 같은 거야?’

원작에서는 분명히 이렇게 팀이 짜이지 않았는데?
교관들이 주시해야 할 훈련생들을 일부러 모은 듯한 팀이다.
내가 팀에 들어감으로써 조금 변동사항이 생길 것은 예상했으나, 이 정도로 완전히 바뀔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오늘부터는 팀끼리 한방에서 잔다! 남녀 구분 같은 건 없으니 섞여 자! 어차피 침대는 따로 있잖아!”

- 웅성웅성.

광년이의 말에 작게 소란이 일었다.
동성의 룸메이트끼리 2주간 잘 지내다가 갑자기 남녀 구분 없이 방을 같이 쓰라니…
당황할만하다.
게다가 여자의 경우는 걱정도 좀 있을 테고.

“아. 참고로 말하겠는데, 혹시 이 중에 좆대가리 제대로 간수 못 하는 개새끼가 있다면 귀에 새겨들어라. 만약 훈련소 내에서 강간 같은 일이 발생한다면… 곱게는  끝날 줄 알아라. 진심으로 충고하는 거다. 하지 마.”

- 오싹!


소란스럽던 장내가 순식간에 고요해진다.
마나를 실어 말한 탓인지 광년이의 목소리가 귀에 박히듯 들어왔다.


훈련생들의 머릿속에는 피 묻은 단검을 흔들며 리 샤오린의 눈알을 파내려 다가가는 광년이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듯했다.
한때는 광년이에게 호감을 품었던 블랑조차 그녀를 보고 두려움에 잠긴 눈빛을 보냈으니까.
이 정도 경고면 아무리 짧아도 이번 주까지는 엄한 일이 터질 걱정은  해도 될 것 같았다.


“우선 네놈들 애인이나 나누어 주도록 할까?”


음…
미필은 이해할 수 없는 드립이다.
물론 전 세계 모든 인종이 무작위로 모인 이들 중 군필이 얼마나 있겠는가?
나와 이강인을 제외한 대부분이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다.

광년이는 저 말을 마지막으로 발을 움직여 자리를 떴다.
그녀가 향하는 장소는 알고 있다.
저쪽은 무기고의 방향이다.

훈련생들은 광년이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일단 그녀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르르르…


어리둥절하고 있는 훈련생을 위해 나선 것은 카야였다.
카야는 광년이의 말뜻을 풀어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헤헤! 군대에는 자신의 병기를 애인같이 소중히 다루라는 말이 있거든요. 그래서 애인을 나누어 준다고 한 거에요. 이해하기 어렵나요? 그러니까 무기가  애인…”


- 주절주절주절…


“…그러니 광년이 교관님은 이 속설을 엮어 위트 있게 표현…”

“아, 그만 설명해도 돼! 이해했어! 고마워 카야.”
“응! 설명 고마워 카야!”
“아하! 과연! 그랬구나!  알겠어!”

“엇. 그런가요? 아직 이해 못 한 사람이 있을 수도…”


“아니야! 아니야! 다 이해했어. 그치?”
“응!”
“완벽한 설명이었어!”

“그…그런가요? 헤헤.”


카야의 친절한 설명은 고마웠다.
딱 5분까지는.
5분이 넘어 7분이 되고, 다시 10분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더는 버티지 못했다.
아무리 아름다운 사람이 말을 한다고 한들 똑같은 말을 3번 4번 연속해서 듣는 것은 고문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스테이터스의 지능 포인트가 높다고 똑똑한 건 절대 아닌가 보네…’

아무리 봐도 카야의 모습은 현명하거나, 눈치가 재빠른 사람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녀가 보유한 스텟 중 남다른 두각을 보이는 지능 스텟에 비교해서.

지능 스텟이란 말 그대로의 지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스킬과 마법에 영향을 주는 능력치를 의미하는 것 같았다.
지능 1,000포인트를 찍는다고 하더라도 아인슈타인을 뛰어넘는 천재는 못 된다는 뜻이겠지.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확인한 스텟의 설명이 적힌 가이드 북에서도 확인했지?’


=
[지능]
마법, 마나 관련 스킬이 크게 영향받습니다.
 외, 정신력과 습득력에 추가 효과가 붙습니다.
=


어딜 보아도 실제 지능에 영향을 준다는 문구는 없었다.
카야에겐 안타까운 사실이다.


*


교관들이 우리에게 나누어 준 것은 창이 아니라 칼이었다.
초인이 아닐 때는 창이 훨씬 유리한 무기가 맞지만, 초인의 강력한 힘과 속도를 한계까지 이용할 수 있는 칼이 더 좋다는 이유였다.


그럼 창고에 창은 왜 있는 것이냐고 물어봤더니, 현장을  모르는 위쪽에서 온 보급품에 껴있었다고 한다.
당연히 창을 지급받은 이후로 쓴 적은 거의 없었고.
지난번 반군들이 습격했을 때 썼던 창들이 왜 하나같이 새것같나 했더니, 이런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모든 게 중요하지 않았다.
눈앞의 상황이 상당히 당혹스러웠으니까.


“자, 안녕! 모두에게 인사해 제라드!”


께에에엨! 께엨!!


“안녀영! 반가워!”


흔들흔들.

녹색의 피부를 가진 어린아이만 한 괴물의 입에서 침이 후두둑 떨어진다.
광년이는 밝게 웃으면서 사지가 결박된 고블린의 팔목을 잡고 손을 대신 흔들어 주었다.
그 모습이 마치 꼭두각시 인형 놀이를 하는 어린아이 같았다.

방금 전, 광년이는 우리의 앞에 꽁꽁 묶인 고블린을 하나 데려왔다.
앞으로 우리는 이 고블린과 함께 훈련하고 생활할 것이란다.
고블린이라는 괴물에게 겁을 먹지 않고, 익숙해지기 위한 훈련의 일종이라고 했다.


당장 훈련생들은 꽁꽁 묶인 채 발작하는 고블린을 겁먹은 눈으로 보고 있었지만, 원작대로라면 단 하루만 지나도 모두들 고블린이란 생명에 익숙해져 거부감이 훨씬 덜어질 것이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니까.


“우쭈쭈쭈… 우리 제라드 배고팠어? 맘마 줄까? 맘마?”

찰싹! 찰싹!


- 끄에에엨!! 께엨! 께에에에엨!!


광년이가 고블린의 뺨을 놀리듯 찰싹찰싹 때리자, 고블린이 눈을 뒤집어 가며 발작했다.
말 그대로 분노에 눈이 돌아간 모습이다.


그런데 왜 고블린이 이름이 제라드냐고?
광년이가 직접 붙여줬다고 한다.
자신들을 습격한 반란군 수장의 이름인 제라드를.

“씨발 제라드. 개 같은 제라드.”

찰싹! 찰싹!

- 께에에에에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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