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47)화 (47/310)



〈 47화 〉테라포밍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공식적으로 훈련소에서 같이 생활하게 된 나탈리야 카야라고 합니다! 카야라고 불러주세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꾸벅!


- 짝짝짝짝…

“와… 이쁘긴 하다…”
“역시 미녀의 나라 출신…”

자신을 우크라이나 출신이라고 소개한 전투직 여성이 훈련생들에게 인사했다.
훈련생 모두 슬슬 그녀의 얼굴이 익었기에 반갑게 환영했다.


카야는 오늘 처음  훈련소에 온 것이 아니다.
그녀가 훈련소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것은 반군의 습격 당일 이후부터였다.
12구역에서 한 명의 전투직으로 활동하던 그녀는 훈련소의 습격 소식을 듣고 달려와 준 지원군  한 명이었다.

‘게다가 그때 광년이에게 눈치가 없다면서 옆구리를 맞은 여자이기도 하고.’

지원을 온 열다섯 명의 전투직 중 10명은 이틀이 지나도 반군들의 추가 습격이 없자 돌아갔고,
나머지 5명도 더이상 자리를 비울 수 없었기에 회의를 했다고 한다.
 명이  훈련소에 상주하고 있기로.

‘이론상으로 훈련소 내에 있는 전투직이 2명에서 3명이  것은 전력이 50% 강해진 것이기 때문인가? 하지만 세 명은 너무 적은 것 같은데… 젠장, 이마저도 겨우겨우 카야의 빈자리를 메꾼 느낌이라  요청할 수도 없고…’

그래도 아예 아무도 남지 않는 것보다는 안전할 것이다.
게다가 반군들도 생각이 있다면, 한번 습격에 실패한 장소에 재차 습격하러 들지는 않겠지.
이렇게 카야는 공식적으로 훈련소에 함께 하기로 했다.

당연하지만 남자 훈련생들은 얼굴에 희색의 기운이 만연했다.
그녀가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확실히 예쁘긴 하네…’

카야는 갈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미인이었다.
눈이 커다랗기에 날카로운 이미지보다는 부드러운 이미지를 가졌다.
참 순박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 카야! 환영해!
- 앞으로도 잘 부탁 할게!


나는 모든 훈련생들의 관심이 그녀에게 쏠린 틈을 이용해서 작게 내뱉었다.
카야를 향해서.


“상태창.”


띠링!

=
[이름] 나탈리야 카야
[직업] 조교
[힘] 22 [민첩] 21
[체력] 22 [지능] 45
[기교] 19  [매력] 41
[마나] 114

[특성] -
=


‘생각보다 많이 약하네?…’

힘, 민첩, 체력 같은 기본적인 무력의 척도를 나타내는 스텟들이 많이 낮았다.
과장  보태서 브랙의 절반정도로.
아마 훈련소를 졸업한  얼마 안 된 전투직 같다.
이 세계에서 보낸 시간도 그리 길지 않은  같고.

하지만 눈에 띄게 높은 수치가 몇 가지 보였다.
바로 지능과 마나.


‘…딱 봐도 스킬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 마나면 몰라도, 지능이 저리 높다니…’


원작 소설에서는 카야가 전투를 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그녀에게 전투 상황 자체가 있었는지는 둘째치고, 시점이 주인공인 이강인에게 맞춰져 있었기에 알지 못했다.

다행히 상태창이 2 Lv로 올라가며 타인의 스킬창을 열어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녀의 스킬창을 열어봤다.

=
[스킬 이름] 파이어 볼
[레벨] 1 Lv
[속성] 마법
[타입] Active
[상세]
마나를 소모하여 농구공 크기만  불타는 구체를 소환합니다.
구체는 충격을 받으면 폭발합니다.
소모한 마나에 따라 구체의 지속시간, 파괴력이 달라집니다.
소량의 마나를 추가로 소모하여 소환한 구체를 이동시킬  있습니다.
[재사용 대기시간] 00:00:15
=

예상대로 그녀는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보유한 스킬의 이름이 아주 익숙하다.

‘파이어 볼!’


판타지 소설에서 빠지면 섭섭한 마법이다.
카야가 이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니, 낮은 스텟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다시 보게 된다.
대게 소설에서 그려지는 파이어 볼이란 마법은 꽤나 위력적이었으니까.


엇?
그러고 보니…
첫날 광년이가 훈련생들에게 이 세계가 지구가 아님을 설명할 때 불덩이를 보여준 적이 있었다.
딱 이 스킬 설명에 적힌 그대로의 불덩이를.
광년이가 보유한 스킬은 불덩이 소환이 아닌데,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 궁금했었는데…
해답이 여기 있었다.


‘그러고 보니 카야는 광년이랑 좀 친해 보였지?’

“…아뇨아뇨! 저는 교관이 아니에요! 자격이 한참 모자라는걸요? 음… 엄밀히 따지자면 베넷씨의 조수? 조교? 비슷한 겁니다!”
“이 개 같은 년아! 광년이 교관님이라고 부르라고!”
“헙! 넵!”


- 퍼억!


“꺅!”


…아무튼 친해 보인다.

훈련소는 아름다운 미녀의 합류로 인해 한층 밝아진 느낌이 들었다.
그래 봐야 나는 겨우 점심시간에나 잠깐 구경이 가능한 정도였지만.

“…젠장…”


현실은 어떤가?
점심시간은 곧 끝나가고, 나를 향해 다가오는 브랙이 보였다.
브랙의 용건은 안 봐도 뻔했다.
다시 훈련 장소로 나를 끌고 가기 위해서겠지.


나는 남몰래 상점에서 구입한 프룸을 먹은 뒤, 씨앗을 인벤토리에 던져 넣었다.


띠링!


[‘프룸’를 섭취하셨습니다! 3시간 동안 힘, 민첩, 체력 스텟의 숙련도 33%를 추가로 얻습니다.]

“박찬영 훈련생! 시간이 되었다! 이제 슬슬 다시 훈련하러 가지!”

“…네.”


……



오늘도 테라포밍 속 세계에 밤이 찾아왔다.
지옥 같은 훈련 시간이 끝났다는 뜻이다.
놀라운 사실 하나를 알려 줄까?
 지옥 같은 훈련이 끝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자고로 빨리 왔으면 하는 날짜를 기다릴 때는 남은 날을 헤아리지 않는 것이 가장 시간을 빠르게 보내는 방법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나도 일부러 훈련이 끝나는 날을 의식하지 않고 브랙이 시키는 훈련에 따라갔다.
하지만 아무리 잊어보려고 하더라도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루를 사흘로 쓰는 나인 만큼 지옥 훈련의 종료 날은 너무나 느리게 다가왔다.
정말 애간장이  타버릴 정도로.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난다.
오늘 밤을 자고 나면 이틀.
이제 두 번만 더 훈련을 버텨내면 이 개 같은 훈련도 끝이다!


나는 환호성을 지르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아 억눌러내었다.

“엇!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것을 깨달았다.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나름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을.

“오! 레벨업 했었네?”

띠링!

=
[스킬 이름] 어설픈 몸놀림
[레벨] 0 Lv → 2 Lv
[속성] 행동
[타입] Passive
[상세]
운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초짜의 몸놀림입니다.
몸이 극소량 유연해집니다.
[재사용 대기시간]  -
=


 스킬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여러 가지 스킬 또한 레벨업을 했다.
다행히 카르마를 따로 소비하거나, 신경을 기울이지 않아도 숙련도가 쌓이면 저절로 레벨업을 하나 보다.
이걸로 남은 패시브들을 구매해야 할 필요가 더욱 늘어났다.

“스킬이 너무 많아서 자동 레벨업 가지고는 알림이 울리지 않은 건가…”

0레벨에서 2레벨로 오른 것을 보니 레벨업 자체는 한참 전에 했나 보다.
훈련에 정신이 팔려 잊고 있다가 오늘에서야 기억이  열어봤는데 기분 좋은 소식이 나를 반겨주었다.
하긴, 생각해 보면 패시브 스킬이 한두 개도 아니고 수십 개가 넘어가는데 저것 하나하나가 레벨업이  때마다 알람을 울려대면 그것이 더 골치 아프다.
액티브 스킬도 아니고 패시브 스킬이다 보니 레벨업을 한다고 해도 굳이 그 효과를 하나하나 외워둬야  필요도 없었고.

게다가 패시브 스킬의 효과는 이것뿐만이 아니였다.
‘공수도’나 ‘태권도’처럼 무술로 알려진 패시브의 경우는 스킬 구매와 동시에 약간의 기본 지식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레벨이 낮아서 그런지 배운 거나 안 배운 거나 거기서 거기의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내가 따로 태권도나 공수도를 수련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낮은 레벨이라 그런지 단순한 주먹질만으로 숙련도가 찔끔찔끔 차오르는 것을 확인할  있었다.
이대로 두면 언젠가는 레벨업을 해 내게 도움이 되리라.


“끄으응…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이런 일정에 익숙해진 것이 믿기질 않네…”


슬슬 과격한 운동을 하는 것도 신체가 적응했는지 처음만큼 힘들지 않았다.
게다가 단기적인 다이어트가 아닌, 규칙적인 운동을 이용한 체중 감소라서 그런지 살이 빠지는 속도에 탄력이 붙었다.
쭉쭉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지구에서 허리띠 없이는 도저히 바지를 입을 수 없었다.
허리의 둘레가 줄어들어 바지가 전부 흘러내린다는 실질적인 체감까지 겪었다.


“으음… 몸속의 탁기가 빠져나간 덕인가? 요즘 피부 트러블도  가라앉은 것 같고…”

분명 생활 패턴을 억지로 맞추어 생활한 것도 도움이 되었으리라.

하얀 고래의 발자취 세계에서는 낮 밤 가리지 않고 연습에 매진했다.
덕분에 지구에서 잠을 보충해야 했기에 남들이 보기에는 하루종일 누워 자는 게으른 인간으로 보였을 것이지만…
사실 나는 누구보다 성실한 하루를 보내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피부 트러블이 호전된 것은 상당히 기뻤다.
피부과에 다니면서 피부를 케어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지, 돈이 많이 드는지 아는 만큼 카르마로 고치려 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써야 할 카르마도 줄었네.”

게다가 처음 키 크는 약을 먹은 지 한 달이 지난 만큼 이제 키는 170cm를 넘어섰다.
이제야 스스로가 좀 사람같이 보이기 시작했다.
구제할  없는 돼지가 아니라, 성인병이 약간 걱정되는 ‘사람’으로.
어마어마한 변화다.


스스로 말하기도 뭐 했지만, 정말 눈물겨운 분투였다.
아무래도  정도까지 변하자 대학에서 나를 향한 말이 몇 마디 흘러나왔지만, 그리 신경을 쓸만한 것들은 아니었다.
대부분이 ‘수술했나? 살 빠진 것 같은데?’ 라거나, ‘깔창 꼈나 보네. 도대체 몇 개나 낀 거야?’등의 이야기였으니까.
그마저도 백하민의 가십거리에 쉽게 묻혔다.
나와는 반대로 그 녀석은 하루하루 망가져 갔으니까.


“이제 와서 안경을 벗으면  하냐.  일주일 사이에 5kg 정도나  것 같던데…”


최소한 1일 1닭은 한  같다.
T존(얼굴 중 피지선이 특히 많은 부위)에 여드름이 드글드글 올라온 것을 보니.
모아둔 돈도 별로 없을 텐데 도대체 어쩌려고 저리 돈을 쓰는 거지?


아무튼 저 녀석이 어그로를 분담해 줘서 다행이다.
덕분에 학교를 휴학할 일은 사라졌다.


*


해가 져버린 늦은 밤.
잘생긴 얼굴이 나를 보고 깜짝 놀란다.
오랜만에 보니까 진짜 적응 안 되게 잘생겨서 나까지 깜짝 놀랄 뻔했네.


“와…와아… 못 본사이에 몰라볼 정도로 변했잖아? 정말 내가 알던 박찬영이 맞아?”

“내가 나지 뭘. 너는 다친 곳은 전부 나았나 보네?”


“다행히 걱정했던 허벅지는 금만 갔더라고. 이제 뼈는 완전히 붙었다네. 너야말로  개인 훈련은 끝난 거야?”

“흐흐흐… 그래! 드디어!!”

영원히 흘러갈  같지 않던 이틀이 지나가고, 드디어 내게 자유가 찾아왔다.
훈련의 마지막 날인 오늘.
오전 오후 훈련을 전부 마치고, 평소처럼 노숙이 아닌 숙소에서 잠을 자기 위해 훈련소로 이동했다.


‘젠장… 그냥 지구에서 쉬다가 구보할걸.’

개 같은 브랙이 점심시간처럼 시간에 쫓기는 것이 아니라며 평소처럼 나를 들어서 데려다주지 않았다.
최후의 최후 훈련이라 생각하라면서 훈련소까지 향하는 길을 구보를 시키지 않던가?
나도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결국 한 번의 휴식도 없이 오기로 구보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지옥 같았기에 한마디의 불평 없이 넘어가긴 싫었다.

“나는 훈련소에 방금 도착했다고 치고, 이강인 너는 왜 밖에 나와 있는 거야?”


“아. 나는 오늘까지 훈련에 참여를 못 했거든. 아직 다리가 불안하잖아? 그래서 재활 훈련  걷고 있었지. 아, 내일부터는 정상적으로 훈련에 참여할  있을 것 같아. 약간 불편하지만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라서.”

성실하기는.

‘나 같으면 다리를 핑계 대고 며칠 정도 더 누워있었겠다.’

…젠장.
솔직히 방금 나의 생각이 진실이라고 장담 못 하겠다.
농땡이를 피우기는 나를 상상하기에는 요즘 너무 열심히 살고 있거든.
남들에 비해 3배의 시간을 쓰고 있음에도,  시간 한 시간을 절대 낭비하지 않고 활용했다.
몸이 이렇게 쓰레기 같은 것에 조급해져서 그럴까?


“그래도 회복을 도와주는 약초를 일주일간 꾸준히 먹어야 하지만 말이야.”

회복을 도와주는 약초?
나는 이강인의 말에 그의 손바닥을 보았다.
그의 손바닥에는 울퉁불퉁한 모양의 초록색 열매가 들려있었다.

이런 것도 있었나?
처음 보는 열매다.
원작에서도 나오지 않은 것 같은데?

“…그 열매 혹시 잠깐만 구경할 수 있을까?”
“그럼! 상관없어. 자.”


상점창에 새로운 열매 하나가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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