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42)화 (42/310)



〈 42화 〉지구

아이템 정보 확인 Lv 1
상태창 Lv 2
인벤토리 Lv 1
소설 진입 여유 공간 +1


내가 받은 보상의 목록들이다.
상태창 Lv2의 경우는 지난번에 봤으니 패스.
우선 인벤토리 기능부터 살펴보기로 했다.

=
[기능]
이름: 인벤토리
레벨: 1
효과: 인벤토리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상세:
3x3x3M만 한 공간을 보관용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Lv 1)
인벤토리 내부의 공간은 시간이 흐르지 않습니다. (Lv 1)
인벤토리 내부의 물건은 섞이지 않습니다.
지성이 있는 생명체는 안에 넣을  없습니다.
=

“천사야. 인벤토리는 어떻게 여는 거냐?”


“허억! 서…설마 그 기능 벌써 여셨나요? 어…어떻게?”

“다 방법이 있어. 그래서, 어떻게 여는데?”

“…그냥 넘어가는 건가요… 어쨌든, 인벤토리를 사용하는 방법은 감각으로 쓰는 건데요… 눈에 보이지 않는 차가운 물 덩어리가  있고, 그곳에 손을 집어넣는다는 느낌으로 하시면 될 거예요.”


나는  말대로 허공에 차가운 물이 떠 있는 이미지를 상상했다.
그리고, 손을 허공에 집어넣자…

쑤욱-!


“오.”
“네! 그렇게 쓰시면 돼요!”


나는 길가에 굴거다니는 돌멩이를 주워 몇 개 넣고 꺼내 보며 감각을 익히기 시작했다.
확실히 유용한 기능이다.
이런 기능이 있다면 더는 ‘키 크는 약’을 먹고 난 후 유리병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내 예상이 틀렸길 바라야 겠네… 그렇다면 무궁무진하게 쓸 곳이 많은데.’

“…천사야. 이거 혹시, 인벤토리란 것 말이야… 지구랑 소설 속 세상이랑 이어져 있는 거야?”
“지구에서 오토바이를 인벤토리에 넣어 가져가면, 소설 속에서 꺼낼 수 있냐는 말씀이신가요?”
“맞아.”
“인벤토리의 기능만 해제하셨으면 안될 거예요. 아직은. 각각 세계마다 별개의 3x3x3M 공간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젠장.
역시 그러려나?
인벤토리가 전 차원에 공통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소설과 지구에 오갈 때 소지품을 유지해주는 기능이 존재할  없다.
누가 이 기능을 해금하려 하겠는가?
인벤토리가 그 기능의 완벽한 상위호환인데.


‘…아쉽네. 내 예상이 맞아버려서…’

나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음 기능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
[기능]
이름: 아이템 정보 확인
레벨: 1
효과: 아이템의 상세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상세:
사용자의 의지로 사물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과도하게 높은 등급의 아이템은 감정이 안될 수도 있습니다. (Lv 1)
비밀이 숨겨져 있거나, 봉인이 걸려있으면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Lv 1)
=

이건 사용하기 쉬웠다.
그저 들고 있는 돌멩이를 지긋이 노려보고, 정보를 확인하려는 의지만 보였는데도 정보창이 떴으니까.
그냥 평범하고 흔한 돌멩이라서 그런지  내용은 없었기에 신경을 거두고 버렸지만.


판타지 세상을 돌아다닐 일이 많은 만큼 유용한 기능이 될 것이다.
나는 마법적인 물품과 유적은 물론이고, 그곳에서 사는 동물과 식물,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지 못하는 것도 구분하지 못하니까.
다른 소설들에 들어갈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으리라.

“다른 소설이라… 흐흐… 드디어!”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기능은 하나.
바로 ‘소설 진입 여유 공간 +1’이다.
제일 기대가 되는 기능이기도 하다.

‘테라포밍’이 내게 도움이 안 되었냐고 한다면 그렇지는 않다고 대답하겠지만…
알다시피 테라포밍에는 써먹을 만한 기연은 많지 않았다.
미래를 알고 고생한 것에 비하면 얻은 이득은 그리 크지 않다고 할까?
보통 웹 소설에서는 미래를 미리 알고 있거나, 창작물의 엑스트라에 빙의한 소설들을 보면 기연을 독식하고는 한다.
그런데 테라포밍은 그런 것도 적다.
당장 살아남기도 버거운 생존물에 가깝단 말이지…

하지만 이제는 내게도 그런 독식의 기회가 찾아온 걸지도 모른다.
나는 시스템을 열어서 소설 진입 창을 활성화했다.

=
[소설 진입]
테라포밍 - 57화 연재 중단. 작가 필명: 서울새
현재 상태: 연재 중


- 비어 있음.
현재 상태: -
=


“어? 자동으로 등록되는 것이 아닌가 보네? 비어 있음이라니…”


처음 소설 진입 때는 ‘테라포밍’이 자동으로 등록이 되어 있길래 알아서 등록이 되는 줄 알았으나, 그건 아닌가 보다.
‘비어 있음’이라는 글자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것을 보니, 내가 직접 클릭해서 고르라는 뜻 같다.


“설마… 찬영님? 설마 벌써 소설 진입 칸을 확장했나요?…”

“응. 이거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네에에에?! 어떻게?! 어떻게 벌써요? 제가 만들 때 분명히 ‘테라포밍’ 소설의 진행이 어느 정도  뒤에야 가능하게끔 확실히 조절했는데?!”


아기천사는 경악에 차서 나를 쳐다보았다.
인벤토리를 이렇게 빠르게 해금 한 것까지는 납득을 했으나, 어떻게 소설 진입을 벌써 해금했는지는 이해가 안 되는 눈치였다.

“버그! 버그 맞죠!”
“…버그는 아니야. 시스템 AI가 생각보다 똑똑하더라?”
“…으아. 모르겠어요. 생각해 보니 버그일 리가 없죠… 제가 QA(테스팅의 상위 개념. 개발자들이 내부에서 실시하는 설계 오류 점검.)를 몇백 번이나 했는데…”


한숨을 크게 한번 내쉰 아기천사는 전보다 1년 늙어 보이는 얼굴을 했다.
그래 봐야 나이대가 1자리  꼬맹이로 보이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두 번째 소설은 처음과 달리 선택할 수 있나 보네?”
“네에… 테라포밍은 첫 번째 소설로 고정되어 있었어요. 작품 속 환경이 박찬영님을 훈련시키기에 아주 알맞았으니까요…”
“…아하.”


즉, 기연은 하나도 없고 오로지 훈련, 훈련, 훈련만 하는 나날을 보내는 소설인 테라포밍이 첫 번째 소설인  개발자의 의도였다?
이런 개 같은…


나는 잠시 아기 천사를 원망해야 할지 고민했으나,
실제로 테라포밍이라는 세계관 덕에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살이 빠지고 있는 것은 인정했기에 원망하지는 않기로 했다.
온갖 사건이 끊임없이 터져 나가는 평범한 웹 소설에서는 이렇게 느긋하게 스텟을 키우고 훈련할 시간이 없었을 테니까.
지구와 테라포밍의 시간을 합쳐 반개월 만에 20kg 가까이 빠지는 것은, 솔직히 뉴스 홈페이지의 어디 작은 구석에 적힐 만큼 대단한 이야기다.

‘그래도 이해가 완전히  되는 선택은 아니었네.’


그러면 이제 망설이지 않고 선택하면 된다.
내가 다음으로 들어갈 소설을.

띠링!

=
히어로 앤 빌런 - 45화 연재 중단. 작가 필명: q1w2e3r4
하얀 고래의 발자취 - 51화 연재 중단. 작가 필명: 파맛첵스
게임 속 마법 아카데미 - 37화 연재 중단. 작가 필명: 이정도면가능이지
=


고작 3개?
일단 나는 눈에 불을 켜고 찾았다.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소설을.


‘SF! SF 어딨어!’

양자 어쩌고 무기나, 광자 저쩌고 배리어!
그 밖에 신선하고 창의로운 미래 세계관의 물건들!
가격은 비싸겠지만, 상점창에 등록을 해 놓으면 무엇보다 든든할 것이 분명하다.

‘젠장…  보이네…’

사실 웹소설 시장에서 SF소설이 차지하는 비중은 정말 낮다.
그래서 큰 기대는 하지 않긴 했지만…
종종 신규 작품들 속에서 발견되는 스페이스 오페라나, 사이버 펑크물 조차 없는 것은 큰 안타까움을 안겨 주었다.

어쩔 수 없이 작품을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우선 히어로 앤 빌런.
이건 제목에서 드러나다시피 이능물이다.
설정이 조금 특이하긴 하지만…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 생겨나고, 빌런과 히어로가 대치하는 구도는 비슷했다.
사건 사고도 꽤 많다.
그러나 기존 판타지 소설처럼 영약이나 특수한 아이템을 얻을 수 있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급격하게 강해질 만한 기연은 없다는 뜻이다.




두 번째로 하얀 고래의 발자취.
정통 판타지 소설이다.
흔히 말하는 회귀, 빙의, 환생이 없다.
판타지 세상 속 주민인 주인공이 ‘하얀 고래’라는 용병단에 들어가면서 방랑하는 이야기를 담은 소설.
꽤나 담백한 맛이 있어서 정통 판타지치고는 인기가 정말 높았다.


그리고 세 번째로…




‘잠깐, 게임  마법 아카데미?’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물론 연중한 소설이 맞다.
그리고 인기도 많은 소설이었다.
하지만…


‘이거 남녀역전물인데?…’


여자가 남자보다 강한 성욕을 지녔고, 남자가 여자의 고백을 받는 세계.
그것이 바로 남녀역전의 세계였다.

솔직히 나보고 동하냐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나는 이 소설을 보다 거부감이 들어 하차한 기억이 있거든.
근데 그게 현실이 된다면 이야기가 또 다르긴 하다.


“아… 겁나게 어지럽게 만드네… 천사야. 여기 나온 목록들, 다음에 열면 갱신되거나 그래?”

“아니요? ‘테라포밍’을 완결 짓고, 여유 공간이 남더라도 지금 보시는 목록이랑 똑같이 나와요! 아, 3개의 선택지는 유지되기 때문에 지금 선택하시는 소설 대신에 새로운 소설이 올라올 겁니다!”


“알겠어. 그럼 일단 이 소설은 걸러야겠네.”

나는 ‘게임 속 마법 아카데미’를 거르기로 했다.
지금은 내 성장을 우선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마법을 배울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 소설의 내용은 마법이 중심이 아니다.
소설 내부에 마법 수업에 관련된 묘사도 거의 없었고, 사건의 주가 되는 것은 대부분이 히로인들과의 갈등이 중심이었다.
아카데미를 배경으로  로맨스 코미디 소설에 가깝다고  수 있다.
그렇기에 마법을 배운다는 목적으로 이 소설을 선택하기에는 상당히 꺼려진다.

게다가…
아무리 남녀역전 세계라고 해도 이런 외모의 남자라면 거부당할 것이 뻔했다.
솔직히 말해서 키 작고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에게 구애하는 남자는 없지 않던가?

‘오히려 지금보다  경멸 당할 수도…’

논리적으로 따져보자면 가장 선택할만한 가치가 높은 것은 ‘하얀 고래의 발자취’다.
배경이 판타지 세계관답게 숨겨진 기연과 아이템들도 조금 있었고,
무엇보다 상점창에서 판타지적인 물건들을 해금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게다가 당장 내일 세계가 멸망할 위협이 터지는 것도, 마왕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마음 편히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다는 거지.”

하얀 고래의 발자취는 내부의 시간이 꽤나 속도감 있게 흘러간다.
한화 한화 만에 며칠씩 훅훅 지나가는 것이다.
마을에서 마을을 이동하는 것만 해도 며칠이나 소모되니, 당연한 얘기다.


이건 거대한 장점이다.
내가  소설 속에서 3주나 짱박혀 훈련한다고 해도, 내 기억대로라면 원작에는 5화까지밖에 지나지 않았을 테니까.


혹시 모르니 원작 소설을 찾아서 읽어 보았다.
다행히 연중 되어 있음에도 아직 플랫폼에서 내려가지 않았다.

‘우연히 작가가 아직 내리지 않은 거야? 아니면 이 시스템이 인터넷에서 삭제되지 않은 소설만을 보여주는 거야?’


음…
확인하기 위해서 ‘히어로  빌런’과 ‘게임 속 마법 아카데미’를 찾아봤다.

‘아하. 인터넷에서 원작이 내려가지 않은 것만 보여주나 보군.’


테라포밍에 이어 나머지 3가지 소설이 전부 내려가지 않았다.
우연일 확률은 낮았다.
아무리   하는 천사라도 이 정도 센스는 있다는 건가…
아예 확실하게 내게 텍스트본이라도 줬으면 했지만,

‘…그러고 보니 천계에 인권 같은 것도 있었지. 그러면 설마 저작권 개념도 있나?…’

그럼 설마 소설을 원작으로  소설 속 세계는 천계의 2차 창작물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고?


…헛소리는 여기까지 하자.
별로 궁금하지도 않고.
그냥 인터넷에서 지워지지 않았단 것에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차근차근 소설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작은 문구라도 빼놓지 않겠다는 듯 집중해서.








다행히  기억은 틀리지 않았다.
하얀 고래의 발자취는 지금 내게 딱 어울리는 소설이다.
적어도 저 3개의 선택지 중에서는 제일.

“좋아. 역시 이걸로 결정이다.”

나는 ‘하얀 고래의 발자취’를 선택했다.

띠링!

=
[소설 진입]
테라포밍 - 57화 연재 중단. 작가 필명: 서울새
현재 상태: 연재 

하얀 고래의 발자취 - 51화 연재 중단. 작가 필명: 파맛첵스
현재 상태: 연재 중
=


“우선… 소설  분위기가 원작과 같은지 확인이라도 해봐야겠지?”


나는 망설이지 않고 소설 속으로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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