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39)화 (39/310)



〈 39화 〉지구

띠링!

=
[퀘스트]
내용: 오늘이 지나기 전까지 과제 정시 제출 완료하기.
보상: 300 + 75(25%) 카르마
실패 패널티: -
=


“…이건 참… 좋긴 좋은데…”

퀘스트는 지구에서도 나왔다.
내게는 다행인 것이, 신경을 기울이지 않아도 저절로 클리어되는 퀘스틀 들이 줄지어 나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강의실에 지각하지 않기, 편의점 직원에게 인사하기, 어제 입었던 옷과 다른 옷 입기, 식사가 끝난 후 양치하기 같은 당연하게 해야  것들 위주로.
정말 (전)박찬영을 사람답게 만들겠다는 의지가 강력하게 느껴지는 퀘스트들이다.

문제는 나를 그 새끼와 비슷한 수준의 정박아 취급하는 것 같기에 기분이 살짝 나쁘다는  정도인데…

“퀘스트가 클리어되는 속도를 보면 뭐… 충분히 참아줄 만 하지.”


보상 뒤에 붙어있는 + 25%가 나를 온갖 스트레스로부터 관대하게 만들어 주었다.
벌써 며칠째 보고 있기에 익숙해질 만도 하지만,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빠르게 과제를 끝낸 나는 교수님께 메일을 보내며 퀘스트가 클리어되는 것을 확인한 후.

나는 시스템 창을 불러내어 테라포밍 속으로 들어갔다.


*



하루를 테라포밍 속에서 훈련하며 보내고,
하루를 지구에서 수업을 듣는다.
나는 그렇게 균형을 맞춰가며 생활하고 있었다.
지구에서는 3일이 흘렀지만, 내가 겪은 일수는 총 6일이다.

“야. 너  그랬냐… 걔가 마음에 안 들어서 정 떨구려고 한 거야?”
“어?… 그냥 좀…”

백하민과 고다연은 헤어졌다.
내 예상대로 정확히 3일이 걸렸다.
백하민에게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그들의 행적은 대학의 전교생이 알고 있었다.
고다연은 SNS를 활발하게 하는 타입이었고, 무엇보다 둘이 사귄다는 소문이 너무 넓게 퍼져 보는 눈이 많았던 것이다.

대학 생활의 로맨스 코미디에 로망이 있는 20대 초반의 젊은 남녀는 누구나 선남선녀의 연애 소식에 온 신경을 기울인다.
특히 그것이 가십거리가 될만한 것이라면 더더욱.
학교 근처 카페에서 데이트해도 소문이 나고, 어디 이름난 거리에 쇼핑하러 가도 소문이 난다.
둘이 개인적으로 하는 메신저까지는 밝혀지지 않는 것이 정상이겠지만…


‘고다연 성격상 본인에게 원인이 있어서 헤어졌다는 소문이 난다? 절대 그런 꼴을 두고 볼 리 없으니 망설이지 않고 진실을 밝히려 하겠지. 억울할 만도 해. 들려오는 소문을 보니 고다연은 거의 잘못이 없던데…’

고다연은 SNS에는 은근한 암시만을 했다.
만인에게 공개된 SNS에 대놓고 저격을 하면 자신을 곱게 보지 않는 눈 또한 생길 테니까.

고다연이 택한 방법은 자신의 친구들이었다.
그녀의 의도대로, 친구의 입을 타고 알음알음 소문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백하민이 요 근래 3일 동안 어떻게 행동했는지.

“…어휴. 네가 그렇게 정색을 하던 과 CC하겠다고 했을 때부터 눈치챘어야 했는데…”
“…”
“지금 지연이 너한테 화났어. 고다연한테 정 떨구려는 건 알겠는데, 그렇게 대놓고 그래 버리면 둘을 소개시켜준 지연이가 뭐가 되냐… 지연한테 나중에 톡으로 라도 사과해라.”


백하민은 점점 고개를 수그리고 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녀석의 표정은 너무 읽기 쉬웠기에 손쉽게 생각을 짐작할  있었다.

놈은 지금 불만스러워하고 있다.
고개를 숙여 남들에게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눈이 좋고 키가 작은 나는  수 있었다.
험악하게 일그러진 백하민의 얼굴이.


‘병신새끼.’

어째서 소개시켜준 지연이라는 여사친이 화났는지, 어째서 자신이 실패했는지조차 이해가 안 되는 눈치다.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보이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자신에게 잘못은 없으리라 생각하는 것이 뻔했다.


내가 아주 잘 알고 있는, 알게 되어버린, 저 새끼의 성격을 떠올려 보자.
자신의 불행의 모든 원인을 단 하나라도 자신에게서 찾은 것이 아닌, 외부에서 찾은 놈이다.
그것이 과연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생각이 변했을까?

‘절대 아니야.’

20여 년간 자신의 행동이 부정당해 온 이유는 오로지 외모의 탓이었으니, 외모가 바뀌면 같은 행동을 해도 반응도 달라야 할 텐데.
정작 돌아오는 것은 자신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이다.


“뭐… 데이트할 동안 한마디도 안 하고 밥만 먹은 건 그렇다고 쳐. 그 정도는 딱히 너만의 잘못은 아닌 것 같으니까… 그런데…”
“…”
“평소 양도 적게 먹는 놈이  레스토랑에서 메인메뉴 4개를 혼자 먹으려 했냐? 고다연 인스타 보니까 결국 절반도 못먹었더만.”

‘식탐 때문이겠지.’


“그리고 15만원 넘게 나온 거 고다연보고 전부 결제해 달라고 했다며? 그건 도대체 왜 그런 거야?? 걔 인스타에 영수증 사진을 같이 올렸던데. 결국 고다연이 결제한 거 맞지?”
“으응. 워…원래 잘생긴 남자한테는 여자가 사주는 거 아니었어?…”


“…뭐?… 무슨… 잠깐, 말이 이해가  되는데?”


‘와… 설마 몸이 바뀔 때 꿈에서 말한, ‘여자는 잘생긴 남자한테 돈이며 선물이며 전부 바친다’가 과장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생각이었던 거야?’

심지어 그걸 데이트 첫날에 실천한 거고?
…감탄만 나온다.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헤프닝이 첫날에 소문이 안 난 건지 모르겠네.
저걸 바로 조리돌림  한 고다연이 부처다.
진심으로.

백하민의 입이 쩍 벌어질 만한 발언을 들은 친구는, 머리를 감싸 쥐고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크게 한번 한숨을 쉬었다.

- 후우…


“…아무래도  못 하는 고다연에게 악감정이 쌓인 이유가 있나 보네… 이렇게 대놓고 물 먹이면 너만 이미지 씹창날텐데, 괜찮겠냐?”
“어…으음…”
“에휴… 네가 나보다 똑똑하니까 알아서 감당하겠지.”

이야…
저걸 한번 못 들은 척 해주는 부처가 여기 한 명 더 있네.
나랑 쟤랑 좀 많이 친했나 보다.

하긴, 정상으로 사고를  수 있는 인간이라면 도무지 백하민의  말이 진심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고다연에게 남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이유로 화가 나 있고, 그걸 대놓고 티 내는 중이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이지.

“…일단 너한테 직접 듣고 싶은데, 그 소문은 사실이냐? 그건 과장 된 거지?”
“어…어? 뭐가?…”

뻐금… 뻐금…

- 하아…

“…아니다. 역시 밖에서  말은 아닌 것 같네. 네가 정말로 그랬을 리도 없고. 신경 쓰지 마.”

백하민의 친구는 말을 꺼내려다 한숨만을 내쉬고 다시 도로 주워 담았다.
나는 그가 하려고 했던 말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말이 백하민의 친구의 입에서 나오는 일은 없이, 한마디를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마지막으로 좀 씻고 다니고. 솔직히 요즘  냄새 난다.”

나도 저 기분을 충분히 안다.
내가 처음 몸이 바뀌었을  내 몸에서 나는 냄새가 그렇게 역겨웠거든.
사람의 체취가 이렇게 지독할 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놀라운 건, 방금 저게 떠도는 소문 중 강도가 제일 약하다는 것이지.’


일단 저 친구가 말을 한 것을 제외한, 내가 들은 백하민의 만행을 말해보겠다.
스킬의 덕에 귀가 밝아서 사람들이 소근거리는 소문도  들을 수 있었거든.

첫 번째.
저놈은 고다연이라는 여친이 있음을 전교생이 다 알고 있는데도 여자의 번호를 따러 다녔다.
여기서  때리는 것이, 무려 같은 대학의 여자 동기를 상대로 찝적 대었다.
남친이 있든, 없든 신경조차 쓰지 않고.
그래서 저놈을 손절한 동기만 여럿에, 여자들 사이에서 이미지가 완전히 쓰레기가 되었다.



 번째는 우습게도 나와 관련이 있다.
나는 내게 찾아온  현자 타임 때문에 SNS를 설치하지 않고 있었기에 남에게 듣기 전까지 몰랐다.
놈이 SNS에 내 실명을 거론해가며 온갖 쌍욕을 다 했다고 한다.
외모, 키, 피부의 지적에 이어 ‘박찬영’이 고아라는 것을 들먹이기까지.
수위가 너무 심해서 많은 사람이 눈살을 찌푸렸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고소가 가능할 것 같아 얼른 SNS를 설치해 죄다 캡처를 떠 놓았고.

내가 전에 대학에서는 노골적인 왕따는 없다고 말했었나?
그런데 이놈은 그 금기를 건드린 것이다.
명문대생이라 자부하던 동기와 선배들이 동문인 백하민의 그 게시글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솔직히 나도 잘 믿기지 않는데, 백하민이 고다연을 술 먹이고 모텔에 데려가려 했다고 한다.
아마 방금까지 백하민과 이야기하던 남자애도 이 말을 꺼내려다 말았을 것이다.
아무리 사귀는 사이라고 해도, 공식적으로는 처음 얼굴을 튼 지 2일 만에, 그것도 술을 먹이고 인사불성이 되었을  시도 했다는 이야기는…
사람이 아니라 금수 취급을 받는다.

‘미수에 그쳐서 다행이지… 저 씹새끼.’


진심으로 미수에 그쳐서 다행이다.
백하민 저 새끼 때문에 인생이 망가진 희생자는 더는 늘어나지 않았으면 했으니까.

백하민과 고다연이 술을 먹은 장소는 대학의 근처였기에 친구가 많은 고다연을 알아보는 사람이 나온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었다.
술에 완전히 취한 고다연은 모텔에 들어가기 직전에 친구에게 발견되었고, 친구의 집에서 신세를 졌다고 한다.
다음 날 아침 사건의 전말을 듣자마자 고다연은 경기를 일으키며 이별을 선언했다.
실제로 두 명이 사귄 시간은 48시간을 약간 넘는 정도일 것이다.


나는 밖으로 나가며 백하민 곁을 스치듯 지나가며 나지막이 말을 흘렸다.

“곧 네 집에 찾아갈 고소장 기대해.”
“!!…”

시발 눈깔 봐라?
누가 보면 내가 SNS에 욕한 건 줄 알겠어?
아주 웃기는 새끼다.

나는 놈을 한번 크게 비웃어 주고 앞으로 걸어갔다.


*


- 끼익… 쿵!


“어? 아기천사야?”
“씨익씨익… 엇! 박찬영님! 안녕하세요!”


아기천사는 화가 가득 들어찬 얼굴에서, 집에 도착한 나를 확인하자 표정을 풀고 인사를 건네왔다.
나는 아기천사와 얘기 중이던 안젤리를 보고 표정으로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다.


“어서 와 찬영! 으음… 다름 아니라, 백하민쪽 담당 천사 있잖아? 걔가 내 후배한테 무리한 요구를 해서… 화가  난 것 같네.”
“너무 얼토당토않은 요구를 하잖아요!”


안젤리의 말을 듣자 아기천사의 얼굴에 다시 분노가 차오른다.
천사라는 것은 이렇게나 3D업종이었나?
아기천사는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  같네…
원인의 절반은 나겠지만.

“무슨 일인데?”
“음… 찬영이랑 관련이 있는 얘긴데, 그 백하민이 한 SNS 욕설 있잖아?”
“아… 설마?”
“그쪽 담당자가 욕설 건 고소하지 말아 달라고… 찬영을 설득해 달라고 하더라고.”


“절대로 개입  해요! 천계의 개입은 어디까지나 원인이 저희한테 있을 때만 가능한 거라고요! 제가 지금까지 어떤 심정으로 그걸 아득바득 지켜왔는데! 거기 담당자는 SNS에 욕설 올릴  안 말리고 뭐 했대요?? 본인이 실수해 놓고 그걸 왜 우리가!”


쿵! 쿵!


아기천사는 분통이 터진다는 듯 가슴을 두드려대었다.


“…안젤리? 혹시 아기천사한테 구름나무 차 좀 타줄  있어?”
“앗! 알겠어!”

벌떡!


총총총…


구름나무 차의 효과에는 스트레스를 막아주는 효과가 있으니 한결 편해질 것이다.
안젤리는 내 제안을 받아들여 주방으로  찻잔을  잔 가지고 왔다.

후릅…


“후우… 죄…죄송해요. 제가 좀 많이 흥분했네요…”

아기천사의 말을 들어보면, 백하민을 담당하는 천사가 따로 있나 보다.
그렇다고 한들 그놈이 천사의 말을 순순히 들을 리가 없지.
애초에 남의 말을 잘 들었으면 저런 성격이 될 수가 없다.

“그래서? 난 분명히 말해두겠는데, 너네가 말리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거다?”

아무리 안젤리가 부탁해도 아닌 건 아닌 거다.
난 걔한테 엿을 먹여야 직성이 풀릴 것이다.
고소는 할 것이다.

‘백하민이 그보다 더한 대가를 치르지 않는 이상은.’

“저희는 말릴 생각 없습니다! 찬영님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아니, 오히려 꼭 고소를 해줬으면… 그쪽 담당자가 좀 많이 마음에 안 들어서요.”
“으응… 그렇다네? 내 후배랑 그쪽 담당자랑 앙숙이라서… 사이가 안 좋아.”
“반드시 제가 그놈보다 먼저 중급 천사에 도달할 겁니다!”

- 홀짝!

아기천사와 안젤리가 사이좋게 찻잔을 들어 마시며 말했다.
구름나무 차는 스트레스는 막아주지만, 분노는 막지 못하나 보다.


어쨌든 안젤리와 아기천사가 막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럼 이제 나는 백하민 쪽 담당자가 찾아오기만을 기다리면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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