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테라포밍
반군의 일원인 죠셉은 아직까지는 여유로웠다.
눈앞의 훈련생을 폭력으로 굴복시키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기에.
게다가 훈련생은 움직이지 못한다.
돌팔매질을 연습하기 딱 좋은 대상인 것이다.
휘익!
- 빠악!
“…”
물론 힘 조절은 필요했지만.
‘놈은 갑옷도 입지 않은 맨몸이야… 힘 조절을 잘못해서 피부가 터지면 손쓸 수 없다.’
과다 출혈로 죽어버리면 곤란했다.
동료에게 위협이 되는 전투직이 아니라면 죽여서는 안 된다,
레지스탕스 내부에 내려오는 규칙이다.
낡디 낡은 규칙이라 생각하는 죠셉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이 규율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규율이 없다면…
단순한 도적떼와 혁명을 위해 모인 우리들의 차이점이 도대체 무엇인가?
휘익!
- 빠악!
“…”
죠셉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그들이 갑옷을 입은 것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피부가 터질까 봐 힘 조절 할 필요 없이, 갑옷이 가려주는 부위를 가격해 뼈를 부숴버리면 되니까.
저들을 제압하기 훨씬 편해졌을 것이다.
‘개 같은 놈들이… 왜 창은 들고 있으면서 갑옷은 안 입은 거야?’
죠셉이 알고 있기로는 무기고엔 무기와 가죽 갑옷이 같이 있다.
몇 달 전, 그는 반군의 무기 보충을 위해 다른 구역의 훈련소를 습격했다.
그렇기에 잘 알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휘익!
- 빠악!
“…”
50여 명 전원이 창을 들고 있다면 무기고에 들어갔다는 뜻이다.
병아리라서 갑옷을 입는 것까지는 생각이 닿지 않은 걸까?
참 공교로운 우연이라고, 죠셉은 생각했다.
이는 장창 방진을 떠올릴 때부터 돌팔매질을 염두에 둔 박찬영의 계책이었지만,
죠셉으로썬 그것을 알 리가 없었다.
훈련생 무리 중 미래를 알고 있는 자가 있어, 자신들이 규율 때문에 본인들을 죽이지 못한다는 것을 역으로 이용해, 의도적으로 갑옷을 입지 않았다는 것을 어찌 예상할까?
휘익!
- 빠악!
“…”
돌에 실린 힘은 강력했다.
하지만…
훈련생은 처음 몇 번과 달리 이제는 침음 하나 흘리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그것이 괘씸해진 죠셉은, 손에 힘이 더 강하게 들어가 버렸다.
휘이익!
‘이런! 너무 힘을 많이 주었…!’
- 빠아악!!
“!…”
지금까지와 확연히 차이 나는 강력한 충격이 훈련생을 뒤흔들었다.
그럼에도 훈련생은 참아내었다.
표정조차 흐트러지지 않았다.
“…”
어깨를 가격당해 부들부들 떨리는 팔에 들린 창의 끝은 여전히 죠셉을 향하고 있었고,
몸의 균형을 무너뜨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돌팔매를 밀집시킨 허벅지는 굳건히 버티고 있었으며,
고통에 찡그려질 법한 눈은 부릅떠진 채 죠셉 자신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죠셉이 조금이라도 움직임이 보이면 누구보다 빠르게 반응하겠다는 것처럼.
‘이… 미친…’
온몸을 소름이 더듬는다.
과연 죠셉 본인이 저 자리에 서서 팔매질을 버틴다고 한다면…
방금 그 돌멩이를 맞고 신음하나 흘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
죠셉은 점점 다급해져 갔다.
그의 본능이 이 사내는 평범한 병아리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넉넉하리라 생각했던 제한 시간 내에 이들을 굴복시킬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느긋하게 손에 착 감기는 돌멩이만을 찾던 죠셉의 손이 바쁘게 땅을 흩는다.
근처에 널브러진 울퉁불퉁한 돌멩이를 품에 담을 수 있는 만큼 주워든다.
놈을…
이겨내야 한다.
죠셉의 이성은 이미 말하고 있었다.
굳이 저 사내를 상대하지 말라고.
다른 병아리들부터 공략하면 된다고.
하지만 죠셉은 그럴 수 없었다.
방금 그는 이 훈련생에게 위압되었다.
가슴 속 누구보다 뜨거운 혁명의 불씨를 품었다고 자신하는 그가,
고작 이곳에서 일주일도 안 지낸 애송이에게.
죠셉은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그건 무언가의 아집이 되었다.
‘나는! 그 누구보다 굳센 신념을 가진!’
돌멩이가 죠셉의 손을 떠난다.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휘익!
-빠악!
“…”
열 번.
휘이익!
- 빠아악!!
“…”
스무 번.
휘이익!
- 빠아악!!
“…”
스물다섯 번.
“이익!!…”
쓰러지지 않았다.
절반쯤 힘이 풀린 다리 때문에 옆의 작고 뚱뚱한 남자의 힘을 빌리긴 했지만,
아직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과하게 컸기에 주워들지 않았던, 갓난아이의 머리통만 한 돌을 주워 들려는 그때.
“죠셉. 돌아가지.”
투욱.
여태 구경만 하던 마스턴이 입을 열었다.
죠셉의 손이 닿기 직전의 돌을 발로 차 치우면서.
“뭐? 그게 무슨…”
‘개소리야.’를 이어 입에 담으려던 죠셉의 말을 막아선 것은 귀를 간지럽히는 휘파람 소리였다.
- 휘이이익-!
죠셉은 이 소리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이건 퇴각을 지시하는 제라드의 신호였다.
“우리는 임무에 실패했다. 하지만… 꽤 좋은 것을 봤기에 불만은 없군. 돌아가지.”
“마스턴! 이런 개자식이! 구경만 한 주제에! 닥치고 있어. 내게 조금의 시간만 주면 저놈을…”
- 짜악!
뺨에서 느껴지는 얼얼한 고통에 뜨거워진 죠셉의 머리가 식었다.
화는 나지 않았다.
오히려 죠셉은 마스턴에게 고마워했다.
하마터면 자신이 규율을 지키지 않는, 한낱 ‘도적떼’가 될 뻔한 것을 막아주었기에.
죠셉은 입을 열었다.
“…돌아가지.”
“그래. 잘 생각했어.”
타악!
마스턴이 먼저 출발했다.
죠셉은 그를 따라 출발하려다가 다리를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
“…”
시선이 교환된다.
“죠셉. 죠셉 디스킨이다.”
“…이강인.”
“이강인… 기억했다. 다음에는 전투직이길 기대하지.”
그래야 규율에 제약받지 않으니까.
뒷말을 삼킨 죠셉은 곧 마스턴이 간 길을 따라 출발했다.
타악!
*
털석!…
“허억… 허억…”
“이 무식한 놈아…”
젠장 이 멍청한 새끼…
놈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이강인은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다행히 기절은 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니까 중간부터 나한테 맡기라니까.”
“허억… 이제… 허억… 말… 놓는 거야?… 으윽…”
몸에 힘도 제대로 안 들어가면서 억지로 미소를 띠며 내게 대답한다.
나는 웬만해서는 남자를 칭찬하지 않는다.
…그런데 인정하기 싫지만 얜 좀 잘나긴 했네.
딱 이 정도까지만 말하겠다.
아무튼 내가 얘한테 화내는 이유는 간단했다.
돌팔매질이 열다섯 번에 가까워질 무렵.
나는 이 녀석이 한계라고 판단하고 내가 어그로를 넘겨받으려고 했다.
그런데 이놈이 내가 나서려는 걸 몸으로 막아섰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 모습이 ‘다리에 힘이 풀린 이강인을 지탱하는 나.’로 보였겠지만…
진실은 ‘대신 나서려는 나를 막아서는 이강인’이었던 것이다.
에휴…
위태하게 버티는 꼴이 보기 안쓰러워서 안 어울리는 도움의 손길 좀 뻗어 보려 했는데 본인이 마다하다니.
참 손해 보는 성격이다.
이용해 먹기도 양심에 찔리네.
앞으로도 실컷 이용해 먹긴 할 거지만…
“뼈는? 괜찮아?”
“…으윽. 왼쪽 허벅지가 좀 불안한데…”
이놈이 이렇게 엄살 피울 정도면 최소 금이 간 것이다.
걷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나는 주변의 훈련생들 중 겉옷이 있는 자들의 옷을 여러 벌 받아온 뒤, 창 두 개와 옷을 엮어 간단한 들것을 만들었다.
“블랑? 좀 도와줄래?”
“어? 알겠어!”
내 부름을 받은 블랑이 다가온다.
나는 블랑과 함께 이강인을 들것 위에 올릴 준비를 했다.
“야. 여기 올릴 거니까 아파도 좀 참아라?”
“프흐… 갑자기 너무 편하게 반말하는 거 아니…”
“하나. 둘.”
“…끄으으윽?!”
스르르륵!
단순히 끌어 올리는 정도의 행위였지만, 전신에 심각한 타박상이 있는 이강인에겐 그것조차 상당히 힘겨웠나 보다.
저 꼬락서니를 보니 『강인』이라는 특성도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의 정신이 꺾이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신체에 데미지는 정직하게 쌓여 있었으니까.
우선 이강인을 훈련소 내부의 침대로 옮기기로 했다.
내가 블랑보다 키가 작았기 때문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선 내 쪽에서 힘을 더 줘 높이 올려야 했다.
상관없었다.
지금 내 근력은 인간과 초인 사이의 애매한 균형을 이루고 있으니까.
…
여자들은 이강인의 간호를 자처했다.
그럴 가능성은 사실상 없지만, 혹시라도 습격자들이 돌아오면 기절한 이강인을 지켜야 할 사람들이 필요했기에 나 또한 여자 훈련생들이 방 안에 남는 것에 찬성했다.
…그들이 그럴만한 무력을 가졌는지는 둘째 치고, 이강인을 지키겠다는 여자들을 방해하면 그날 이후 여성 훈련생들의 주적이 될 것이 뻔했기에 모르는 척 넘어간 거긴 하지만.
“찬영? 우리 이제 어떻게 할까?”
“…교관님들이 있는 곳에 가보자.”
솔직히 불안했다.
우리를 납치하는 데 실패한 두 명의 습격자는, 놈들의 우두머리에게 합류했다.
그것이 문제가 된다.
혹시라도 우두머리에게 합류한 두 명의 적이 기습을 해서 교관들이 당한다면?
원작에서는 훈련생의 납치에 성공한 습격자 2명이 우두머리에게 합류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우두머리에게 신호를 보내면서 목표 달성을 알리고 따로따로 도망치기 때문이다.
내가 간다고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들의 무사함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광년이와 브랙은 이 소설의 중요한 조연들이기에.
*
다행히 나의 걱정은 기우로 끝났다.
우두머리를 비롯한 습격자들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아마 광년이와 브랙을 해치우기보다는, 도망친 것을 택한 것 같다.
브랙과 광년이 모두 무사했다.
칼에 스친 자상도 십수 개가 있었고, 매우 지친 듯이 보였지만…
신체 결손만 안 생기면 멀쩡한 거지 뭐.
마나 각성을 한 초인들은 신체의 재생 능력이 조금 높아지기에 저 정도의 자상은 금방 회복될 것이다.
광년이가 땀에 젖어 얼굴에 들러붙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떼며 내게 말을 건네었다.
“허억… 허억… 박찬영? 다른 훈련생들은? 설마!…”
“다들 무사합니다. 각각 죠셉과 마스턴이라는 습격자 두 명이 저희 쪽으로 오기는 했지만… 실종자나 사망자는 없습니다. 부상자는 있지만요.”
“뭐?… 그래서 아까 온 두 놈이 빈손이었던 건가?… 도대체 어떻게…? 아니, 그보다 부상자는! 몇 명? 얼마나 다쳤지?”
광년이가 심각하게 얼굴을 굳혀오며 내게 물어왔다.
뭐야?
저렇게 진지하게 우리의 안위를 확인하려 하는 것을 보니 정말 훈련생들이 걱정되어 물어보는 것 같다.
평소에는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주제에…
그래도 사람의 목숨은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건가?
“음… 심각한 사람은 한 명이요. 아마 뼈가 금이 가거나 부러진 것 같은데,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훈련소 내부에서 쉬고 있고요.”
“젠장… 후유증이 남을지도 모르는 부상이라… …그래도 그 정도로 끝난 건 솔직히 말해 기적이지…”
“…기적이 아닐지도 모르지. 박찬영 훈련생. 내가 자네에게 훈련생들을 맡긴 것은 좋은 선택이었는가?”
브랙이 내게 물어보았다.
‘너의 덕분에 훈련생이 무사한 것인가?’라고.
여기서 겸손을 떠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당당하게 내 공로를 어필하기로 했다.
“제가 말하기도 뭐하지만, 제 판단 덕에 모두 무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아, 이강인의 덕도 좀 있고요.”
“…뭐?”
광년이가 황당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뭐 어쩌라고?
나는 틀린 말 하나 안 했다.
“크하하! 역시! 내 눈은 정확해! 나중에 전말을 자세히 듣기로 하지!”
“잠깐 브랙, 저 말을 믿는 거야? 진지하게?”
“그럼!”
음?
광년이의 반응이 내가 생각한 것과 약간 다르다.
내가 파악한 그녀의 성격이라면, 이럴 때 겸양을 떠는 것보다는 자신감 있게 실적을 내보이는 것이 더 호감을 살 거라고 생각했는데?
브랙은 나의 생각대로, 내 입에서 나온 뻔뻔한 말에 호탕하게 웃으며 좋아했다.
그러나 광년이의 반응이 별로였기에 약간 떨떠름했다.
‘으음… 뭐 상관없나.’
광년이 쟤는 너무 호감도를 쌓아도 문제다.
원작을 알고 있는 나는 그 사실도 똑똑히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