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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33)화 (33/310)



〈 33화 〉테라포밍

“흐음…”


내 말을 들은 이강인이 침음을 흘렸다.
아마 생각이 복잡할 것이다.
나와 판단이 갈렸으니까.

그가 알고 있기로 나는 어리석은 생각을 할 사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본인은 회귀자.
미래를 알고 있는 자신의 시야가 좀 더 넓으리라 생각하겠지.

“…죄송한 말이지만,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는  같습니다.”

 예상을 증명해 주듯, 이강인이 나의 말을 끊고 들어왔다.
나는 그가 설명하기 전에 이강인이 할 말을 미리 짚었다.


“건물 내부에서 농성하는  말인가요?”
“!!… 맞습니다.”

그는 강하다.
우유부단과는 거리가 확연히 멀고,
머리도 꽤 잘 돌아가서 현명한 축에 든다.

하지만 그것이 완벽하다는 뜻은 아니다.
저 판단은 이강인의 실수다.


“농성은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닐 겁니다.”

“이미  생각을 알고 계셨군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 하신 건가요? 식당은 농성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저희 전부를 넉넉히 수용할 수 있지만, 입구는 좁죠. 의자와 책상으로 만든 바리게이트 뒤에 몸을 숨기며 50개의 창날을 들이밀면 절대로 들어올 수 없을 겁니다.”

이강인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내게 물어보았다.
고개를 돌려 훈련생들을 쳐다보았다.


스윽…


- 강인씨 말이 맞지 않아? 밖으로 나가면 훨씬 위험할  같은데…
- 건물 안은 엄폐할 공간도 많다는  같고…
- 바…밖으로 나가기 무서워…


내 눈에 익은 몇 명을 제외한, 다른 훈련생들 전부가 이강인의 말에 동조하는 눈치였다.
그의 말이 합당하게 들리는 것 또한 원인  하나였지만, 나와 완벽히 상반된 그의 외모도 한몫을 했을 테지.
청자를 설득 하는 데는 논리뿐만이 아니라 화자의 신뢰성 또한 큰 영향을 끼치니까.

나태함에 몸이 찌든 것처럼 보이는 나와, 훈련  항상 두각을 보이는 이강인.
둘  누구의 말에 무게가 실리는지는 안 봐도 뻔했다.


이대로면 하드모드 퀘스트는 실패한다.
이 분위기를 뒤집으려면 이강인부터 설득해야 할 필요가 있다.


퉁퉁!


나는 옆의 나무 벽을 두들겼다.

“이 나무 벽, 관리가 잘 되어서 깔끔하지만… 부수기에는 어려울 것 같지는 않군요. 교관님 정도의 무력을 가졌다고 예상되는 습격자 앞에서는요.”

원작 속 이강인의 작전은 나름 괜찮은 축이었다.
10분 정도는 습격자들이 바리게이트가 쳐진 식당에 들어올 엄두도 못 냈으니까.


하지만 놈들이 식당의 벽을 어렵지 않게 부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뒤,
이강인은 습격자들과 맞서 싸워야 했다.
그것도 혼자서.


훈련생들은   싸웠냐고?
10분이 지나며 이곳은 안전하다고 확신을 했을 때, 기습적으로 벽이 부서지며 혼란이 일었다.
습격자가 몇 명인지 제대로 확인도 안   대부분의 훈련생들이 도망치기를 택했다.
그래서 원작에서 훈련생들이 납치 당한 거고.

다 자기들 업보다.
그 장면을 읽으며 고구마를 먹은 듯 속이 답답했기 때문에, 내심 납치를 두려워하는 훈련생들의 모습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내 안전이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지 않기에 경우가 다르지만.


훈련소를 습격한 반군은 총 다섯 명.
교관들이 줄곧 발을 묶는 것에 성공한 인원은 세 명이다.
그렇기에 우리를 쫓을 습격자는  명.


벽을 부수고 식당에 난입한 습격자  명  한 명은 어떻게든 막아서는 것에 성공한 이강인이었지만…
다른 한 명은 어쩌지 못했다.
그것이 바로 원작에서 훈련생들 중 일부가 납치를 당한 이유고.


“가장 벽이 두꺼워야 할 무기고가 이렇습니다. 식당이라고 예외적으로 벽이 두터울 것 같지는 않군요.”


그들은 벽을 부수는 것으로 바리게이트를 무력화시킬 것이다.
나무 벽으로 둘러싸인 방은, 절대로 안전하지 않다.
나는 이강인에게 생각을 전달했다.

다행인 점은 이강인은 자신의 계획을 완벽히 반박당하더라도, 반발심을 가지는 소인배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모두의 앞에서 인정했다.
내가 보기에도 시원스러울 정도로.


“…제 생각이 짧았네요. 찬영씨 말이 맞습니다.”




수군거리던 훈련생들이 조용해졌다.
소리까지 내며 이강인을 두둔하고 나섰는데, 정작 의견을  당사자가 내가 옳다고 인정해 버린 것이다.


외모 차별주의자 놈들.
속이  시원하네.
내 의견의 근거도 듣지 않고 묵살하려고 그래?


스윽.

멀리서 블랑을 비롯한 룸메이트 무리와 눈이 마주쳤다.
나를 보며 작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블랑.
아까 내게 부정적인 분위기에서 유일하게 블랑 무리만이 나를 걱정하는 눈치였다.


참, 내게 완전히 호의적인 사람이 남정네 밖에 없다니…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새끼… 나중에 여자라도 소개 시켜줘야지.’


물론 내가 가지기엔 별로지만, 그렇다고  주기엔 또 아까운 수준의 여자만.
매력 있는 여자는 나에게도 급하거든.

“그럼… 밖으로 나가시죠. 저희가 맨날 구보했던 공터가 적당할 것 같군요.”

이제 목적했던 무기 파밍이 완료되었으니 밖으로 나가면 된다.




“음… 찬영씨? 엄폐물의 의미가 사라지고, 농성을 포기한 이상, 외부로 나간다는 판단은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어째서 숲이 아닌, 탁 트인 곳으로 가야 하는지 설명을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우선 건물 밖에 나가면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이강인의 말투는 나를 의심하는 어조가 전혀 아니었다.
그저 순수하게 내 생각이 궁금했기 때문에 묻는 것이 분명했다.


하긴, 지금까지 내가 보여준 것이 있는데.
아직도 나를 안 믿으면 그건 답도 없는 머저리다.

탁 트인 곳으로 가야 하는 이유.
그것은 여기서 설명하기 힘들다.
밖에 나가야 내 말에 설득력이 실린다.
그렇기에 나는 대답을 미루며 걸음을 옮겼다.

우르르…

50명의 인원이 한꺼번에 움직였다.
나의 말을 따라 건물의 밖을 향해서.

“밖에 도착했군요. 이젠 설명을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쉬잇!”

나는 웅성거리는 훈련생들을 잠시 조용히 시켰다.
또한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미약하게 공중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에 사람들이 집중할  있게끔 했다.

…챙챙!…


“들리지 않습니까? 칼과 칼이 부딪히는 소리가.”

이걸로 이들도 확실하게 들었겠지.
규칙적으로 금속과 금속이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를.


나는 이 소리를 건물에 들오기 전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이것을 근거로 그들을 차근차근 설득하면 된다.

…그러나 나의 계획은 약간 삐끗해 버렸다.

“어… 하나도 안 들리는데요?…”


이름을 모르는 훈련생이 대답했다.


뭐?
무슨 소리야?
 귀를 기울이면 확실하게 들리는…

‘아! 선령일일 만요월월(仙令日日 灣謠月月)의 효과!’

나는 스킬의 덕에 오감이 훨씬 상승한 상태다.
달이 뜨지 않아서 2배가 되지 않았다고 한들, 거의 초인에 근접한 청각인 것이다.
내가 이렇게 미약하게 잡아챌 수 있었던 소리를 그들이 들을  있을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50명쯤이나 있으면 한 명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들리시는 분은 한 명도 없으신가요?”


…챙!…

“음… 그렇게 말씀하시니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착각인 것 같기도…”

역시 그렇게 형편 좋은 얘기가   없나…
약간 설득력은 떨어지겠지만, 감수할 수밖에 없다.
최소한 이강인과 블랑은 나를 믿어주고 있을 테니.

“제가 유독 귀가 좋습니다. 제겐 확실히 들려요. 칼과 칼이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가.”

“믿겠습니다. 그렇다면 습격자가 인간 혹은 칼을 사용할 정도의 문명을 지닌 존재란 뜻이군요”

“예. 아마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보니 습격자는 소수 정예인 것 같고요.”


“네?… 어째서요?…”


내가 단정 내리듯 말하자, 이름 모르는 훈련생이 내게 이유를 물어보았다.
 설명해야 해?

여태까지 말을 너무 많이  목이 말라 온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에게 설명을 부탁하려 했지만…
놀랍게도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아니, 50명이나 있는데 전부 이걸 모른다고?
이강인 너도?

‘얘는 회귀해서 정답을 알면서도 단서가 이어지는 과정을 떠올리지 못하네…?'

조금만 머리 굴리면 어렵지 않게 유추 가능한 내용일 텐데.


나는 미래를 몰랐더라도 이 정도 단서가 주어졌으면 충분히 짐작해 내었을 것이다.
자신할 수 있다.

이렇게 고민하는 사이에도 깨닫는 이가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10분이 지났습니다. 습격자들이 이곳에 온 지. 초인이라고 한들 교관님은 고작 2명입니다. 그들이 다수라면 이렇게 오랜 시간 발을 붙잡을 수 있을 리 없습니다. 실제로 저희는 단 한 명도 습격자들의 모습을 본 적이 없지 않았습니까?”


그렇기에 습격자는 소수인 것이 확정이다.


습격자가 10명 이상 일 때.
5명 정도가 교관들을 무시한 채 우리에게 향하면?
브랙과 광년이는 손 쓸 수 없다.


훈련생들은 습격자들의 목적이 자신이란 것은 모르지만,
그들이 무언가의 목적을 가지고 있단 것은 안다.

아무 이유 없이 훈련소를 습격할 리 없으니…

훈련소 내부에 있는 물질적인 무언가든.
교관들을 향한 죽은 동료들의 복수든.
아니면 인간의 고기를 노리는 괴물이든.
목적은 존재한다.

어떠한 경우라도 한번 피 맛을 보러 온 이들이 이 장소에 있는 우리들을 가만히 내버려  리가 없지.


우리는 무조건 무사할 것이라고 기대를 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의 머리를 가르면 분명 꽃향기가  것이다.
머릿속이 꽃밭이 아니고서야 할  없는 생각이니까.

“적은 정예지만, 그렇게 강하지는 않은  같네요. 그들이 항거 불가능할 정도로 강했다면 벌써 교관들을 죽이고 저희를 찾아왔을 테니…”


“아!…”

“하지만 약한 것도 아닙니다. 교관들이 저희들을 전부 대피시켜야 할 만큼 위급한 상황인 듯했죠.”

우리에게 대피를 지시하던 광년이와 브랙의 표정은 단단히 굳어졌다.
게다가 조금 조급함을 느끼는  같기도 했고.
훈련생 대부분이 눈치챌 만큼 상황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그렇기에 훈련생들은 갑작스러운 대피 명령에도 질문 하나 안 하고 나를 따라온 것이다.

“아마 적들은 우선 교관님을 죽이고, 목적을 달성하려는 계획을 세웠겠지만… 다행히 교관님들이 잘 버텨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지원군이 오는 것이 확실해진 지금, 습격자들은 조급해 하겠죠.”



“지원군?”
“톰! 그러고 보니 교관님이 톰에게 무언가를 시켰어!”
“톰이라면…”
“그 있잖아, 매일 아침 우리를 깨우러 오는 남자 꼬마애.”
“아!”


다행히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설명해 줄 필요는 없었던  같다.
최소한의 눈치는 있는지, 어째서 지원군이 오는지 정도는 깨달은  같으니.

“교관님들의 청력이 좋듯이, 습격자들도 청력이 좋을 겁니다. 지원군을 부른 것은 그들도 알고 있을 테죠. 설령 듣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시간을 끌려는 것이 뻔히 보이는 저희와 교관님들의 태도를 보면 누구라도 눈치를 챌 겁니다.”
“으윽…”

점심시간 광년이의 뒷담화를 하다 들켜 괴롭힌 당한 훈련생이 침음을 흘렸다.
초인들은 청력이 좋다는 것을 몸으로 겪어가며 깨달은 남자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존재감을 내비친 저 남자의 덕에 나의 말에 설득력이 더해졌다.

…챙! 채앵!…


아직까지 칼 소리가 들려온다.
상황은 아슬아슬 하지만, 원작 속 교관들은 죽지 않는다.

“제한 시간은 점점 다가온다. 교관을 빠르게 처리하려는 계획은 틀어졌다. 그렇다면… 막아서는 교관들을 무시하고 ‘목적’을 먼저 이루려고 할 것입니다.”

“우리는 습격자들과 엮인 것이 하나도 없잖아! 어디 숲속에 얌전히 숨어만 있으면…”


머릿속이 꽃밭인 놈이 여기 있네.
공포에 머리가 굳어 안 굴러 가는 건가?

“숨소리조차 숨길  있다면 괜찮은 의견입니다. 하지만  ‘목적’에도 저희가 포함되어 있다면 어쩔 생각이죠? 50명이 남긴 흔적은 어렵지 않게 추적 가능할 겁니다.”


목숨을 행운에 맡기려 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가 지켜내어야 하지.


툭툭.


“맞서 싸워야 합니다. 아, 실제로 싸우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 의지가 있다는 것만 보여 주면 되죠. 그래야 상대도 쉽게 보지 않고 덤벼들기 주저할 테니.”

나는 창을 건드리며 말했다.

“빈 공터로 가서. 서로 등을 맞댄 채. 원형으로 진을 짜서… 우리를 공격하는 적들을 향해 창날만 들이대면 됩니다. 연습 해본 적도, 발을 맞춰본 적도 없지만, 수가 50명이나 되면 그 자체만으로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50개의 창.
4방향으로 나눴을 때, 무려 한 방향에 12개의 창날이 지키고 있다.

어디를 목표로 이동하는 것도 아니고,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단순히 시간을 끄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한 정도다.

거대한 수직 절벽에 등을 대며 사각을 줄인다면  좋겠지만…
이 근처에 그런 형편 좋은 지형은 없었다.
그저 나무가 울창한 숲과 사람이 인공적으로 나무를 베어 만든 공터가 전부인 지형.

그렇다면 공터가 훨씬 좋다.

놈들은 나무를 탈 수도 있고, 나무를 엄폐물로 삼아 버리면…
전투 경험이 없는 우리는 속수무책이니까.


반면에 우리는 나무를 엄페물로 삼아도 놈들은 나무를 부술 힘이 있다.
아무리 초인이라도 나무를 부수기는 쉽지 않겠지만,  명의 희생자만 생겨도 퀘스트가 실패한다.
절대 하면 안 되는 선택이다.

“가시죠.”

지금껏 얌전히 듣고만 있던 이강인이 입을 열었다.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인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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