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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30)화 (30/310)



〈 30화 〉테라포밍

뭐, 그렇다고 한들 내가 아기 천사를 대하던 태도를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아기 천사가 중급 천사가 되기까지의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고,
중간에 여성이 되겠다는 결심이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열심히 해봐. 응원할게.”

“…네? 아 네… 감사합니다?…”


“뭐야, 내가 순순히 응원해 주니까 이상해? 또 괴롭혀 줄까?”

“으악! 아니요! 괜찮아요! 그럼 의문은 전부 풀리신 것 같으니 전 가볼게요!”


- and I↗ will always love you↗↗


아기 천사는 도망치듯  앞에서 사라져버렸다.


‘좋아. 드디어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왔군.’


며칠 뒤 발생하는 첫 번째 챕터의 주요 사건.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는 바로 훈련소 내부다.
나는 반드시 그 사건이 일어날 당시에 훈련소 안에 있어야 한다.


사실, 이번 챕터의 사건은 나로서는 엮이고 싶지 않은 사건이었다.
아무리 소설을 구석구석 읽어 봐도 내가 이득을 뽑아낼 구석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드 모드 퀘스트만 없었다면!’

무려 첫 번째 퀘스트로 전체 일반 퀘스트 클리어 시 획득 카르마를 25%나 늘려주는 보상을 준 퀘스트다.
과연 본격적인 패널티가 달린 보상은 얼마나 대단할까?


하지만 위험하기 때문에 보상을 확인하지도 않고 기회를 놓치라고?
나는 그런 아까운 짓거리 못 한다.
일단 나오는 퀘스트부터 확인해 보고, 정 수지가 안 맞으면 깔끔하게 포기하면 되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위 계획이 전부 실행되기 위해서는 훈련소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일시적으로라도 이 지옥 훈련을 중지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브랙의 설득이 필수겠지.

“젠장… 벌써 1시간이 지났나…”

멀리서부터 근육질의 대머리가 나에게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제 다시 훈련할 시간이다.

*


- 탁탁탁!

인간을 한 꺼풀 벗어난 각력으로 땅을 쭉쭉 밀며 나아간다.


‘흐음… 역시 2주일이나 얼굴을 비추지 않는 건… 너무 위험해.’

베넷 교관이 어떤 심정으로 악당의 역할을 맡는지 자신은  알고 있다.
그녀에겐 항상 미안한 감정을 느낀다.
내게 뻔뻔한 연기를 할 수 있을 재능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마음이 여린 그녀에게 이런 역할을 떠넘기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이래서야 이제는 다신  수 없는 친구를 마주할 면목이 없다.


‘이런 식으로라도 매일 훈련소에 얼굴을 비추는 수밖에 없겠어.’


훈련소에 가는 이유엔 남들에게 밝히지 못할 사정이 있다.
나는 주기적으로 난동을 피우는 베넷 교관을 말리고,


그녀로부터 훈련생들을 보호하며,
그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는 역할에 충실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그녀가  노력이 전부 허사로 돌아가고 말겠지.’


내가 훈련소에 가지 않으면, 말릴 사람이 없는 베넷 교관은 날뛰지 못한다.
무려 2주 동안.
망각의 동물인 인간이 첫인상을 잊기에 충분하고도 넘치는 시간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훈련생들을 통제하기 어려워진다.
우리가 괜히 이런 골치 아픈 연극을 해대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렇기에 나온 해답이 이것이다.
식후 운동이라는 핑계를 삼아,  점심시간마다 훈련소를 방문하는 것.

방금 전도 미리 합을 맞춰 놓은 연극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다.

‘다음 난동을 부리는 날을 3일 뒤로 정했었나?’


탁탁탁!!

당연한 이야기지만…
베넷 교관은 매일같이 난동을 부리지는 않았다.
주로 2~3일에  번의 주기로 그녀가 난동을 부렸고,
내가 말리는 것을 반복했다.


난동이 예정된 일자는 3일 뒤다.
그러나 나는 내일도 모레도 훈련소에 얼굴을 비출 것이다.
훈련생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다.


평소에는 전혀 안 보이다가 베넷 교관이 난동을 부릴 때만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나서 말리는 모습만 보여준다면…
눈치 빠른 사람은 이상한 점이 있음을 손쉽게 알아챈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가 난동을 부리지 않는 날에도 꾸준히 훈련소에 얼굴을 비춰야 하는 것이다.

탁탁탁… 탁!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박찬영 훈련생! 몸을 풀게! 곧바로 시작하도록 하지.”
“하아… 네엡…”


나는 도착하자마자 나를 기다린 훈련생에게 말했다.
고작 1시간의 휴식이다.
그러나 마나 각성을 하며 특수한 능력을 손에 넣은 그는 그것만으로 오전의 피로를 전부 날려버린 듯 활기가 차 있었다.
도무지 부러움을 감출 수 없는 훈련에 특화된 신체다.

‘그뿐만이 아니지…’

 훈련생을 처음 봤을 때.
그를 훈련시키는 일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 예상했었다.
그의 신체만 보아도 얼마나 나태한 삶을 살아왔는지 충분히 짐작이 가능했기에.

그러나 이 훈련생은 말만 저리 퉁명스레 할 뿐,
정작 훈련에 들어가면 묵묵히 나의 지시에 최선을 다해 따라와 주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수백 명을 훈련 시키면서도 보지 못했던, 깜짝 놀랄 정도로 강력한 정신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도무지 미워할  없는 훈련생이다.


“좋아! 그럼  번째 훈련은…”





“저도 훈련소에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말은 갑작스러웠다.
오후의 훈련까지도 무사히 마친 뒤.
훈련생이 저녁을 먹으며 꺼낸 말은 나를 약간 당황시켰다.

“…어째서지?”

“어째서냐고 하시면… 설마 저를 2주 동안 훈련소에 접근도 못 하게 하실 생각이셨습니까?”

으음…
내가 점심때마다 훈련소에 다녀온 것이 부러웠나?
그도 훈련소 안에서 친해진 친구가 있을 테고…

딱히 박찬영 훈련생을 훈련소에 데려가더라도 안될 것은 없다.
다만, 문제 되는 것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데리고 가지 않았을 뿐.

“…자네는 나와 달리 다리가 느려. 왕복에 2시간이 걸릴 테지. 그럼 그날 훈련은 일정대로 진행하기 힘들 텐데?”


“그건…”

“설마 이곳에 올 때처럼 자신을 업고 가달라는 것은 아니겠지? 음… 아무래도 같은 남자를 두 번이나 그런 식으로 데리고 가는 것은 꺼려지는군…”

부상자를 이송하는 것이면 또 모른다.
그러나 굳이 업어 가면서까지 그를 훈련소에 데려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자네를 데리고 갈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으면 고민해 보겠네. 단,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처럼 어린애 같은 사유는 당연히 안 되겠지.”

“…전투 조는 모두 팀 단위로 활동하고 있죠?”

“음? 아직 그 이야기는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디서 들었지?”

“광년이 교관님한테서요. 첫날 그분이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이곳에서는 눈치가 없으면 ‘팀’ 전체가 몰살된다고.”


“…확실히 그랬던 것 같군.”


“그 말을 대충 짜 맞췄습니다. 다행히 예상이 맞았네요. 뭐… 생각해 보면 괴물을 상대할 때,  단위로 움직이는 것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요.”


첫날, 이 세계에 떨어져 혼란스러웠을 상황에서 스치듯 들은 말 한마디를 잡아챈 다라…
그저 우연일 뿐인가?
그 스스로도 말하길 끼워 맞춘 거라고 하기도 했고…
일단 그의 말을 더 들어보기로 했다.


“아무튼. 전투조 대부분이 팀으로 움직인다면, 당연히 훈련소에서도  단위 훈련이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정확하다. 기초 체력 단련이 어느 정도 완료되면, 본격적인 팀 단위 훈련이 시작되지. 한데 그것이 왜?”


“이대로 가면 저는 정상적으로 팀 단위 훈련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뭐?”

나는 그의 말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고민을 했다.
그러나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어째서 그런 판단이 나온 것이지?


나는 곧 그 해답을 훈련생의 입에서 들을 수 있었다.

“훈련소에 남아있는 훈련생들은 제가 없는 2주간 서로 얼굴을 익히고, 고된 훈련을 함께하며,”

“동료애가 생기겠지. 애초에 훈련의 강도가 높은 이유  하나가 동료애를 키우기 위해서니…”

“맞습니다. 전부 서로를 어느정도 믿을 수 있는 아군이라고 여길 겁니다. 50여 명  저만을 제외하고요.”

“…”


“물론 시간이 지나면 저와 훈련생들 사이의 어색한 기류는 사라지겠지만… 팀 훈련에서 제가 속한 팀에 민폐가 되겠죠. 대비할 수 있다면, 대비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낭비 될 시간을 줄이는 것을.”

“음…”

“서로 부대끼며 훈련은 하지 못하더라도, 얼굴만 익혀둘  있으면… 앞서 말한 부작용은 훨씬 덜해질 것입니다.”



내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다.
여태껏 이런 식으로 따로 훈련생을 불러내어 개인 훈련을 진행한 적이 없었으니 당연하다.


‘하아… 아직도  부족하구나… 교관이란 놈이 훈련생에게 훈련 관련 내용 수읽기에 뒤지다니…’


이제는 알 수 있었다.
그가 베넷 교관이 첫날에 흘린 말을 잡아챈 것은 우연이 아니다.
 훈련생은 겉보기와는 전혀 다르다.
나태한 듯 보이나 실은 성실하고,
해이한 듯 보이나 실은 독기 있고,
어리석어 보이나 실은 현명하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저런 성격으로 이렇게 관리가 되지 않은 몸이 되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저… 교관님?  말에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까? 어째서 대답을…”


“아. 미안하군. 잠깐 넋 놓고 있었다. 그래. 자네의 말이 맞는 것 같아.”


“그렇다면?”

“다음부터는 훈련소에  때 자네를 데리고 가도록 하지.”


씨익.


훈련생이 미소 지었다.

*

“후우…”

지구에서 복습 삼아 소설을 한  더 확인하고 왔다.
사건이 벌어지는 것은 3일 뒤.
정말 다행히도 내가 훈련소에 있을 수 있는 점심 시간대다.

행운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이 딱딱 들어맞는 아귀였다.

‘젠장… 허리 아파라…’

나라고 브랙에게 업혀서 가는 것이 좋을 리가 없다.
남자와 살을 맞댄 채 격렬하게 움직이라니?
평소의 나라면 죽어라 거절했을 것이다.

승차감 또한 최악이다.
브랙의 몸은 성벽처럼 단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겨내었다.
모든 것은 하드 모드 퀘스트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했는데, 내 정성을 봐서라도 꿀 같은 퀘스트 좀 내줬으면 좋겠다.

“찬영씨!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나요?”

“예 뭐… 똑같죠. 힘들게 훈련하고, 곯아떨어지고…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가더라고요. 어? 키가 조금 크신  같은데요? …착각인가?”

이야.
얘 눈썰미 엄청 좋네?
내가 약으로 인해  달에 걸쳐 14cm가 커지니, 하루에 0.5cm씩 자란다.
지구와 테라포밍 속에서 보낸 시간을 대략 합쳐보면 6일쯤 되니 3cm 안팎으로 자랐을 것이 분명하다.
그걸 감으로 눈치채다니, 정말 주인공답다고 해야 할지…

“하하! 그런가요? 사실 제가 어렸을 때 한약을 잘못 먹었거든요. 이렇게 공기 좋은 곳에 오니 몸 안에 있던 독기가 빠져나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아하! 과연…”


앞으로 키가 급격하게 커지더라도 의심받지 않을 만한 떡밥도 좀 뿌려두기로 했다.
단순히 한약의 탓으로 하기에는 아주아주 빠른 급성장을 할 예정이지만,
뭐 어떤가?

내가 내 입으로 한약이 원인이라고 했고, 실제로 키가 자란 것을 눈으로 보았는데.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강인과 잡담을 하며 점심시간을 보내고.
나를 보며 반갑게 손을 흔드는 광년이를 이를 갈며 노려보고.
저녁에 훈련하며 퀘스트를 깨고.


다음날이 되고,

 다음날이 되고,


마침내 사건 당일의 아침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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