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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26)화 (26/310)



〈 26화 〉천계

“…세상에는 천사가 있으니 악마도 있다네. 그리고 신의 힘이 담긴 자네의 시스템은, 그들의 입장에서 아주 먹음직스러운 먹이지.”
“악마… 말입니까?”
“그래. 상상해보게. 자네가 가진 시스템이 무한의 삶을 사는 악마에게 넘어가면 어떻게  것 같나?”

단 2일 만에 버러지 같던 신체 능력을 일반인 수준으로 끌어 올려준 시스템의 힘.
그걸 생각해 보면…


“…걷잡을 수 없이 강해지겠군요.”
“그렇지. 그렇게 얻은 힘을 악마가 선한 일에 쓰겠나? 상상하지 못할 만큼 악독한 일에 사용하겠지. 지상 전체가 위험할 정도로.”

천사가 있으니 악마도 존재하리라 생각해 오긴 했다.
그들이 천사들처럼 지상에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늙은 천사의 말을 들어보니 지상에 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닌 듯했다.


“그러므로 악마들은 그 시스템을 비롯한 신의 힘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지. 흠… 자네에게는 이렇게 비유를 하는 것이 좋겠구먼. 악마들의 목적은 자네의 시스템을 해킹하는 것이라네.”


“해킹?”


“그래. 시스템을 해킹하여 소유자를 자신에게 옮기고, 귀찮은 퀘스트 클리어 없이 보유 카르마만 무한대로 늘려 초월적인 힘을 손에 얻는 것. 그것을 노리겠지.”

시스템을 해킹해 소유권을 변경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의 악마라면, 이미 손에 들어온 시스템의 보유 카르마를 늘리거나, 아이템을 무한정으로 사들이는 것쯤은 손쉬울 것이다.
해킹하는 악마는 상상이 가지 않았지만, 비유가 그럴 뿐이니 어렵지 않게 이해했다.


“천사들이 시스템에 접속할 방법이 존재한다면, 아무리 보안이 뛰어나더라도 언젠가는 악마에게 침입을 허용 당한다네. 1만 년이 걸리던, 2만 년이 걸리든 상관 없지. 악마들은 무한의 삶을 사니까.”

“그 벌레들의 집착과 광기를 생각한다면 1만 년 동안 그것만 시도할 놈이 수두룩하게 널리고 널렸어!”


“지상의 시간의 흐름과 천계의 시간 흐름, 지옥의 시간의 흐름이 모두 별개로 흐르니… 자네 입장에서는 악마들이 시도한 지 1초도 되지 않아 시스템을 빼앗긴 거로 느껴질게야.”


이런 시발.
1만 년 2만 년 하길래, 나랑 전혀 상관없는 이야긴 줄 알았다.
그 정도 시간이면 인간의 문명이  번이나 스러졌다 다시 생기기 충분한 시간이니까.
그런데 각 차원의 시간의 흐름이 다르니 순식간에 해킹당한다니!

이해하기 난해한 내용이었지만, 그들의 표정을 봤을  거짓말을 하는  같지 않았다.
너무나 진지하게 말하고 있었으니까.


“그들이 시간과 관계없이 시스템을 탈취할 수 있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그러나 그건 저랑 관련 없는 시스템 자체의 문제 아닌가요? 어째서 제가 문제가 되는 거죠?”


“시스템에 악마의 침입을 막기 위해 안배해 놓은 조치 때문이지.”

“방비가 이미 되어 있었군요?”


휴…

나는 작게 안도했다.
그래도 다행이다.
상상만 해도 두려운 일에 대한 대비가 되어있다니.
심지어 그것이 가능성 수준이 아니라 거의 확실하게 일어날 일이란 것을 생각해봤을 때, 참으로 다행인 일이다.

분명 신이 만들어 놓은 방비이니, 절대 악마들이 뚫지 못하겠지?


“…아니. 방비 따윈 없네.”
“예?”

이게 무슨 헛소리야.

“잠깐… 그게 무슨 개소… 아니, 무슨 헛소리에요? 방금 조치를 해놨다면서요? 그런데 방비가 안 됐다니요?”
“음… 조치는 되었지만, 방비는 하지 않았네.”


나는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천사의 말을 논리적으로 분석해 보면 하나의 결론이 나온다.



‘천사도 늙으면 치매가 오는구나!’

이런 결론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저 늙은 천사의 헛소리를 듣고서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신기한 거지.


좁혀진 내 미간을 본 천사가 보충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설명이 너무 부족했군. 까마득히 오래전, 어차피 뚫리는 것이 예정된 수많은 시스템의 보안에 대한 한가지 의견이 나왔다네. 그 의견이 실현된다면 그 누구도, 어떠한 일이 있다고 한들 뚫을 수 없는 방법이었지.”

“그 방법이 뭡니까?”


“시스템 자체를 밀폐·독립 시켜 그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었다네. 그것이 제작자라고 한들.”

…이해할  없는 답안이다.


물론 문 자체를 없애버려 밀봉해버리는 것 또한 방의 침입을 막는 방법의 하나다.
아무리 뛰어난 도둑이라도, 문이 없으니 들어올 방법이 없겠지.


하지만 그래서야 방의 주인도, 방을 건설한 건설자도 못 들어간다.
물론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방이 아니라, 개념적으로 존재하는 시스템이다 보니 소유자인 나는 사용할  있었다.
 정확히는 내가 도둑의 손길로부터 방 안의 지켜져야 할 물건이다.


그러나 이런 식이면…
한번 만든 시스템 설정의 변경이나 패치 같은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지금껏 시스템 내부의 수정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한 겁니까?”
“그래. 시스템을 수정할 방법은 없다네. 대외적으로는 그렇게 되어있지.”

대외적으로 그렇게 되어있다라…
악마와 같이 시스템을 탐낼만한 자들은 그렇게 알고 있지만,

실제론 알려진 것과 달리, 시스템을 수정하는 방법이 있다는 소리다.
내가 눈치챈 것과 같이.

“실제로는 시스템을 통제할 ‘문’을 없애지 않으셨군요.”
“…”


늙은 천사는 반박하지 않음으로써 내 말에 긍정했다.


“어째서 그랬습니까?”

“의미가 없기 때문이라네. 앞서 말했지만, 그 얼마나 견고한 방벽이라고 한들… 영원의 시간 앞에서 스러지는 것은 필연 아닌가? 확률이 한줄기라도 존재한다는 것은, 무한의 앞에선 ‘반드시’를 뜻하니.”

천사의 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 성격상 절대 납득하지는 못했다.
의미 없는 행동에 불과하니 그저 손 놓고 포기하라니?

“이해할 수 없군요. 그래도 방비를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겁니다. 설령 헛짓거리에 불과하다고 한들, 발버둥이라도 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마도 자네와 나의 관점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 같군. 그럴 수밖에… 자네는 필멸자이고, 우리는 불멸자이니.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겠지. 우리의 시선에서 자네가 말한 ‘발버둥’이란, 정해진 미래를 알고 있음에도 눈을 닫는 어리석은 행위와 다르지 않다네.”

“…그렇다고 한들…”


“무엇보다 방비하는 것보다 나은 수가 있지. 그들이 자발적으로 시도할 엄두조차 못 내게끔 한다면?”

악마가 시도할 엄두를 못 내게 하는 방법…
나는 이미 그 방법을 알고 있다.
이미 천사가 전부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게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믿기지 않는다.
도저히 제정신으로 내릴만한 판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문맥상 그 방법이란 건 분명 이것밖에 없는데… 말 그대로 너무 도박 수 아닌가?’


나는 반신반의하며 내가 떠올린 방법을 말했다.

“’방에 문이 없으면 들어올 수 없다.
문이 없는 방을 침입하고자 하는 사람은 없다.
관리자는 방을 들어가야 한다.
그러니 사실 문이 있지만, 없는 척하면…
관리자는 들어갈 수 있지만, 침입자는 침입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라는 건 아니겠죠?“


눈이 질끈 감긴다.
나는 내 스스로가 틀렸길 바랐다.
천계는 그렇게 멍청하지 않다고 이 눈앞의 천사가 꾸짖어 주었으면 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당장 1초 뒤 악마가 시스템을 탈취했다고 한들 이상할 것 하나 없었기에.

“자네가 생각한 것이 맞다네.”

씨발.
왜 항상 내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을까?
그놈의 방법이라는 것이 너무 허술해서 발안자의 멱살을 쥐고 물어보고 싶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멍청한 의견을  것인지.


수많은 악마 중 한 명이라도 탈취를 시도한다면?
수많은 천사 중  명이라도 이 비밀을 발설한다면?
혹시 천사  첩자나 배신자가 있다면?

변수가 수도 없이 많아서 반박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

나는 천사를 향해 손바닥을 펴 보이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표정은 말 그대로 황당함 그 자체.
표정 연기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표정이었다.

“이거 참… 일일이 말하기도 힘드니 그냥 정보를 머릿속에 직접 전달해 주도록 하겠네. 그럼 자네의 의문도 어느 정도 풀릴게야.”


천사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머릿속에는, 잊고 있던 기억을 찾은 것처럼 자연스레 정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아기천사가 나에게 박찬영 관련 기억을 줬을 때와 비슷했다.




“…이건 어쩌면… 가능할 수도…”
“실제로 가능했지. 자네가 상상할 수 없는 세월 동안 이 비밀이 지켜졌고, 단 한 번도 침입을 허용하지 않았으니.”


10초 전까지만 해도 전혀 믿지 못하던 그 ‘방법’.
그러나 이제는 천사들이 이런 방법을 채택한 이유가 이해가 가버렸다.


‘젠장… 천사들이 너무 인간같이 생겼기에 착각해 버렸잖아.’

악마와 천사를 인간과 같은 시점에서 놓고 보면 안 되었다.
천사와 악마는 인간이 아니다.
불멸의 삶을 사는 초월자들이다.
그렇기에…

“불멸자는 의미 없는 시간을 버텨내지 못하지.”
“인간이 살기 위해 밥을 먹는 것처럼… 당신들도 그럴 수밖에 없는 거군요. 살기 위해서.”

불멸자에게 ‘살기 위해서’라는 말을 쓰니 우습지만, 그들에게도 죽음은 있다.
육신은 스러져도 소생한다.
영혼은 불변하여 결코 손상되지 않는다.
그러나 자아가 무너진다면, 그것이 바로 불멸자의 죽음이다.
빈 껍데기가 된 인형만 남는 것이다.

“자네가 영원을 사는 초월자라 생각해 보게나. 산이 협곡이 되고, 바다가 사막이 되는 무량억겁(無量億劫)을 무의미한 행동에 쏟아 부을 수 있겠는가? 광활한 시간, 자아조차 휩쓰는 소용돌이를 표류하며 불확실한 목표만을 쫓을 수 있겠는가?”

‘거 뜬구름 잡는 소리 잘하시네.’


저 쓸데없는 비유가 가득 들어찬 말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어마어마하게 긴 시간.
그런 시간을 단 한 가지 일에만 매달려도 그 끝에 ‘과실’이 있다면,
쏟아부은 시간에 의미가 있음을 스스로가 알고 있기에 자아는 무너지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불멸자의 자의식은 매우 강력하니까.

그러나 몇천 년 몇만 년이고 빈 독에 물을 채우는…

가령 문이 없는 방에 들어가려고 한다는 끝 없고, 의미 없고, 과실 없는 행동에 미치지 않고 버텨낼 수 있을까?

‘그런 게 가능하면… 그건 더 이상 생명체가 아니지.’

인내심과 광기의 수준이 아니다.
감정과 생각을 잃어버린 기계에 가까운 무언가가 되어있을 것이다.
말 그대로 자아가 사라진 기계가.

“물론 몇몇 모자란 이들이 ‘문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우리의 주장을 거짓으로 치부하고 탈취를 시도할 수는 있다네. 실제로 악마가 꾸준하게 2천  정도 시도한다면 충분히 뚫을만한 보안 수준이고. 그러나…”
“100년도 버티지 못하겠네요.”
“그래.”


아무리 멍청한 생물이라도 지성체인 이상 한 달만 지나면 깨달을 것이다.

만약 입구가 없다는 천사의 말이 진실이라면?
1만 년이 지나더라도, 다시금 그만한 시간이 지나가더라도,  그 배의 시간이 지나가더라도…
쏟아부은 시간과 관계없이 물리적으로 불가능 한 일이니,
영원히 시스템을 뚫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  행동은 무슨 의미가 있지?


라고.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시스템이 뚫리기까지 2000년.
무려 2000년 동안이나 위 의문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의심하고, 가능성을 의심할 것이 분명하다.
탈취를 시도할 때, 잘 때, 먹을 때, 쉴 때를 가리지 않고 24시간 내내.


“한 티끌 존재하는 의심에 매여 안식 없는 나날만을 보내게  게야. 100년? 아니, 끊임없는 정신적 고문에 뇌가 이지(理智)를 포기한  스스로의 자아를 죽이는 데는 50년이면 차고 넘치지.”

시스템을 뚫을 실력을 갖춘 이들은  사실을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다.
시도 자체가 자살이라고.

똑똑한 이들만이 시스템을 뚫을 수 있지만, 똑똑한 이들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이론상 절대로 뚫릴  없는 방벽 완성이다.


“완벽하네요. …입구가 있다는 것만 알려지지 않으면요.”
“그래. 그래서 자네가 불려온 것이라네. 자네는 알아버렸으니까.”


이런 시발.
왜 그런 중요한 힌트를 한낱 인간이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허술하게 관리했던 거지?
누구야? 이런 중대한 실수를  천사가.


“으으…”


끙끙 앓는 소리에 옆을 돌아보니 객석에 앉아있던 안젤리가 시꺼멓게 죽은 얼굴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크는 약을 인벤토리에 넣은 것, 안젤리가 나를 배려해서 한 행동이라고 했지?


‘안젤리가 그랬으면 인정이지.’


나는 태도를 바꿨다.
기본적으로 나는 예쁜 여자에게 매우 관대하다.
그것도 저 정도로 아름다우면 웬만한 것은 용서할 수 있다.


경국지색의 뜻이 나라를 기울게 하는 미인이라고 했던가?
우리 안젤리는 차원을 기울일 뻔했다.
그러니 어떤 경국지색 미녀보다 안젤리가 더 아름다운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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