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21)화 (21/310)



〈 21화 〉테라포밍

띠링!


=
[소모품 상점]
상처약 [5카르마]
물 1L [5카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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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 상점]
-구매 가능 목록 없음-


[스킬 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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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창이 주르륵 올라온다.
나는 필터를 적당히 활용해 가며 쓸만한 물건을 찾기 시작했다.


“역시… 1500 카르마 가지고 살만한 물건은 없나…”

그나마 구매를 고려해볼 만한 물건은 소모품 항목에 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유용하냐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대부분 식자재나 생필품이네… 포션 같은 것도 없고.”

지구에서 구할  없는 판타지적인 물건은 ‘키 크는 약’이 유일했다.
즉, 전부 급하게 필요하지 않았다.


[스킬 상점]과 온갖 아이템이 있는 [기타] 상점.
기대와 달리 질이 낮은 물건밖에 없었기에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심지어 기능 상점은 구매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네…”


기능이라면 분명 짐작 가는 것이 있다.
이 소설에 처음 진입할 때 본신으로 진입할지,
또는 주인공이나  주변 인물로 진입할지 선택하는 기능이 있었다.

아직 해금되지 않았다고 경고 메세지가 뜨며 강제로 본신으로 진입이 고정되기는 했지만, 분명 이 기능 상점에서  기능을 구입해서 해금할 수 있으리라.

하나  있다.
첫째날 천사가 흘리듯 말해준 덕에 존재를 눈치챈 기능.
‘소설 진입, 혹은 현실 귀환 시 소유한 물건을 가지고 갈 수 있는 기능’이다.
만약 해금할 수 있다면 어마어마하게 유용할  불 보듯 뻔하다.

“뭐… 지금 당장 쓸만한  하나도 없지만…”

괜찮다.
애초에  기대는 하지 않았다.

1530 카르마.
지금 내가 보유한 카르마다.
천사는 퀘스트 클리어 속도가 대단하다고 띄워주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단 하루 만에 모은 카르마다.
많은 수치일 리가 없다.
물론 (전)박찬영의 기준으로 한 달 치 분량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양이라고는 하지만…


‘그건 그 새끼가 병신인 거지 내가 뛰어난  절대 아니야.’


지금까지의 퀘스트 중, 나만이 클리어 가능한 어려운 퀘스트도 없었고…
평범한 사람도 독기를 가지고 미친 듯이 한다면 이 정도의 카르마는 모을  있을 것이다.
고작 하루 만에 모을  있는 카르마 가지고 유용한 스킬과 아이템을 손쉽게 얻을  있으리란 생각은 없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목표.
카르마를 어느 정도 모아서 무엇을 살지 정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아무 계획 없이 무작정 카르마만 모으는 짓은 머저리나 할 행동이다.

‘무엇보다 뚜렷한 보상이 눈에 보이면 의욕이 샘솟기도 하고.’


나는 상점 창의 필터를  더 상세하게 조정했다.
구매 가능 목록만 표시하는 필터를 제거하고, 1,000 ~ 5,000 카르마의 가격 상품만 표시하도록 설정했다.

주르륵!

“엇?!”

=
[소모품 상점]
1등품 자연산 송이버섯 0.5kg [1,000카르마]
천삼(天蔘)등급 홍삼 3뿌리 [1,000카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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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 상점]
하드모드 퀘스트 해금 [5,000카르마]


[스킬 상점]
어설프지는 않은 칼질 0Lv [1,000카르마]
눈뜨고 봐줄만한 몸놀림 0Lv [1,000카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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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합성 섬유 재질의 방한용 외투 [1,000카르마]
마리아쥬 홍차 티 세트 [1,000카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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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모드 퀘스트?”


5000 카르마 비용의 기능이 하나 생겼다.
다른 것보다 기능에 대해 궁금해했던 탓일까?
눈에는 오로지 그 상품만이 들어왔다.

띠링!

=
[기능]
이름: 하드모드 퀘스트
레벨: -
효과: 높은 난이도의, 높은 보상을 가진 퀘스트가 랜덤으로 출현합니다.
상세: 노멀 퀘스트와 별개로 하드모드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하드모드 퀘스트는 클리어하는데 많은 시간, 노력, 행운이 필요합니다. 실패 또는 중도 포기  패널티가 있으나, 발생했을 때를 한정해 퀘스트를 거부할  있습니다.
가격: 5000 카르마
[구매하기]
*경고. 보유한 카르마가 부족합니다.
=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이 기능은 가능한 빨리 해금해야 하는 기능이라고.


“지금까지 실패 패널티가 거의 없었던 이유는 하드모드 퀘스트 때문인가…”


‘실패 패널티’라고 할만한 것이 있었던 적은 단 한 번이었다.

소설에 진입한 첫날.
쉘터장, 닥터에게 내 인적사항을 말해줬을 때 뿐이다.
그때 받은 퀘스트에는 전투 직군으로 배정받지 못할 경우, 배정받을 때까지 처음으로 돌아가는 패널티가 달려있었다.

“그 이후 나온 퀘스트들은 실패 패널티가 사실상 없었지…”

즉, 원래 퀘스트 실패 패널티는 하드모드 퀘스트를 위해 만들어진 기능이라는 뜻이다.


나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단순히 감을 믿고 이 기능을 목표로 정하는 것이 아닌, 최대한 이성적으로 이 기능의 유용함을 판단하고자 했다.


시스템 창에 적힌 ‘높은 보상’.
유추해보건대 분명 카르마와 아이템, 스킬을 보상으로 줄 확률이 높았다.
어떠한 경로던 카르마 자체의 수급 창구는 늘리면 늘릴수록 좋다.


“특히 이 기능은 시간이 지나면 5000 카르마 따위는 만회하고도 남을 테니…”


그러나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면 호구나 다름없다.
이 시스템 메세지에 속으면 안 된다.
단순히 퀘스트를 실패했을 때, 퀘스트 창의 ‘실패 패널티’만이 패널티가 아니다.
‘내가 도전하고 실패했을 때의 내가 처한 상황’ 이란 현실적인 실패 패널티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오크를 죽여라]란 퀘스트가 주어졌을 때, 실패 패널티가 500 카르마 차감이라고 한다면…
단순히 실패했을 때 500 카르마만 차감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오크의 사냥을 나서서 실패했을 경우가 어떤 경우겠는가?


바로 역으로 오크에게 당했을 경우다.
즉, 나는 500 카르마 차감과 별개로 오크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고, 죽음과 회귀로 인해 [소설 완결] 보상이 줄어들겠지.
그때 느끼는 고통과 트라우마는 별개고.


“그러니 결론은…”

정해져 있다.
이 기능을 빠르게 해금해야 한다.
특히 나의 본신의 힘이 약하면 약할수록 더.

단점을 잔뜩 늘어놓은 것에 비해 결론이 이상하다고?
전혀 이상하지 않다.


 스텟이 높아지면 분명 ‘--를 죽여라’ 따위의 단순한 일이 아닌…
‘--국가를 자신의 세력 안으로 합병해라’, ‘--의 흉포한 악룡을 완벽히 길들여라’ 같은 터무니 없는 퀘스트를 내줄  같거든.
힘이 강해질수록 불가능한 일은 줄어드니, 그에 맞는 난이도를 유지하려면 토악질 나오는 조건이 줄줄이 달라붙을 것이 분명하다.


반면 지금의 나는?
달성하기 힘든 일이 널리고 널렸다.
시도한다고 해도 목숨이 위험하지도 않고, 실패해도 불구가 되지 않는 ‘달성하기 힘든 일’이 많다는 것이다.
현실적인 실패 패널티가 강하지 않다, 이 사실 자체만으로 빠르게 해금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카르마의 수입을 늘리는 기능은 반드시 해금해야 해. 빠르게 하면 할수록 좋겠지.”


운영이 중점이 되는 게임들은 수입을 빠르게 늘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물론 하드모드 퀘스트란 게 클리어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워 단  번도 클리어하지 못한 채 5000 카르마를 통으로 잃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런 극단적인 가능성을 일일이 신경 쓰면 절대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한다.
묻지마 살인을 두려워해 출근도 퇴근도 하지 않는 건 술안주로도 쓰지 못할 우스갯소리지 않은가?

목표가 정해졌다.
나는 최대한 빠르게 5000 카르마를 모을 것이다.

*


해가 밝았다.
따스한 햇볕이 물안개 낀 강가를 밝혔고, 나는 눈앞이 새하얗게 변했다.
눈이 부셔서 그런 것이 아니라 힘들어 죽을 것 같아서.

“끄아아아악!!”
“우하핫! 재생능력이란 것, 성능이 확실해! 역시 자네도 이런 능력이 생기니 훈련 의욕이 샘솟나 보지? 어제보다 확실히 열정적이군!”
“네에에에엡!!”
“좋아! 그 기세로 5개만 더!”
“끄으으읍…!”


살을 빼는 것이 목적인데 도대체  나는 무산소 근력 운동을 하고 있을까?
 원인은 재생 능력을 극도로 활용하고 싶다며 일정을 대폭 수정한 브랙에게 있다.

‘죽여… 차라리 죽여줘…’

사실 나 또한 무산소 운동을 추가로 하는 것에 동의했다.
브랙의 말처럼 특성을 유용하게 사용하기 위함이 아니다.
대부분 일정 시간 이상이 필요한 유산소 운동에 비해, 무산소 운동의 퀘스트가 훨씬 빠르게 클리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드모드 퀘스트 기능의 해금과 현실 귀환 퀘스트의 등장을 앞당기는 것.
두 가지 목적이 있는 나는 최대한 빠르게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싶었다.
적어도 오늘 새벽까지는.


“네에엣…! 다스어어엇…!”
“한 개! 딱 한 개만 더! 한 개만 더 하면 5분 휴식 준다!”
“씨이이이바아알…!”


각오는 했지만 직접 해보니 미치도록 후회된다.
차라리 유산소가 좋다.
무산소는 팔다리 근육이 찢어지는 것같이 아프기 때문이다.
실제로 근육이 찢어지는 것 또한 맞고.


운동 좀 해본 사람들은 유산소가 훨씬 힘겹다고 평가한다.
단순히 근육이 찢어지는 고통은 하다 보면 어느 정도 익숙해지지만,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느껴지는 흉부의 통증은  번을 겪더라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정신은 어질어질하지, 눈앞은 흐려지지…
금방이라도 호흡곤란과 패닉이 올 것 같은 그 좆같은 기분은 나도 엄청나게 싫어했다.

“좋아! 5분 휴식.”
“흐아아아…”


철푸덕!

그러나 지금 나는 유산소가 더 편하다.
특성의 덕에 숨이  안 찼고, 숨이 차더라도 정신과 시야는 멀쩡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연치유는 근육이 찢어지는 것까지 막지는 못했다.
내가 느끼는 고통 또한.
심지어 운동 강도가 내가 상상한 것을 훨씬 넘어섰다.
그 때문일까?
퀘스트의 클리어 속도는 어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아침 먹은 것을 게워내지만 말도록.”

오늘 아침이 소화에 좋은 죽이 아니었으면 진작에 토하고도 남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속이 메스꺼웠지만, 목젖을 치는 음식물을 억지로 참아내었다.
단백질 섭취와 별개로,  비대한 육체는 시도 때도 없이 배가 고팠기 때문에 공복에 시달리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싶었다.

육체 자체의 위 크기가 무척 크다.
그렇기에 평소 식사 시간에도  1인분만 먹기 위해 신경을 기울여야 했다.
뷔페식으로 원하는 만큼 마음  먹을  있는 훈련소의 식당 특성상, 유혹을 견디는 것 또한 고역이었다.


지금은 브랙이 알아서 식단관리까지 해주었지만.


“58초… 59초… 휴식 끝! 다음 훈련으로 넘어가지!”

개 같네.
5분이 이렇게 짧았나?


*

한 세트의 훈련을 마치고  시체 마냥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볼을 땅에 댄 채로.
흙이 입안에 들어왔지만 뱉어낼 기운도 없었다.

띠링!

[체력 스텟이 1 올라갔습니다.]

그래…
어제에 이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강도의 훈련을 하는데 스텟까지  올라가면 억울해서 못하지.

의욕이 조금 살아나는 것이 느껴졌다.
이왕 훈련하는  열심히 하면 스텟이라도 오르지 않겠나 싶었기에 노력했는데, 다행히 기대가 배반당하지 않았다.
그러나 희소식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띠링!

=
[퀘스트]
내용: 수영 1km 하기. 어떤 영법이든 상관없음.
보상: ‘현실 귀환’ 기능.
실패 패널티: -
=

초탈한 마음가짐으로 쌓인 퀘스트 발생 메세지를 지우고, 클리어 메세지를 치우길 반복하던 그때.
흐려지던 내 의식을 또렷하게 만드는 글자가 등장했다.


“드디어!… 드디어어!…”

갓 햇볕에 말려 보송보송한 이불과, 김이 펄펄 나는 뜨거운 물을 마음껏 사용한 샤워, 미세먼지와 매연에 뿌옇게 흐려진 하늘이 눈에 아른거린다.
분명 인간의 육신에 잠재된 모든 힘을 다 썼다고 자신했지만, 출저를 모르는 힘이 몸에 맴돌기 시작했다.


“끄으으으윽!”


억지로 쓰러진 몸을 일으켰다.
이것만 끝내면 쉴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한다.
다리와 팔이 매너모드 된 핸드폰마냥 부들부들 떨렸지만, 어떻게든 일어서는 것에 성공했다.

“아니? 분명 끝까지 쥐어짰을 텐데!? 설마 정신력만으로?… 대…대견해! 대견하다! …좋아! 휴식 시간을 지키는 것 역시 무척이나 중요하지만, 그런 정신력을 보여준다면 도저히 참을 수 없지!”
“수…수영… 수영으로…”
“허허! 심지어 본인이 나서서 훈련 내용을 고르다니? 그것도 전신 운동인 수영을? 그렇게 지친 상태로 수영이라… 후회는 없나?”


대답할 기운은 없었다.
몸을 움직이는  집중해 도무지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나는 뇌가 반쯤 썩어버린 좀비처럼 비적비적 강가를 향해 움직였다.

첨벙… 첨벙…

차가운 물이 발목을 거쳐 종아리를 적신다.
거의 구르듯 들어갔기 때문에 금방 가슴께까지 물이 차올랐다.

아…
물에 들어오면 이것이 좋다.
150kg 가까이 되는 몸무게가 부력 덕에 떠올라 가해지는 부담이 훨씬 덜해진다.
좀 머리가 돌아가는 느낌과 함께 한줄기의 생각이 떠올랐다.


‘잠깐, 생각해 보면 쉬던 거마저 쉬고 수영을 해도 상관없지 않나?…’

이런 시발!
고작 5분의 휴식이라고 해도 자연치유가 있는 내게는  시간의 유무가 천지 차이나 다름없다.
퀘스트가 도망갈 리도 없는데,  이렇게 허겁지겁 물로 들어왔지?
내가 이렇게 멍청했나?


갑자기 너무 억울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자처한 일이니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다.
내 멍청함을 자책해야지 뭐…


…시발!
그래도 억울해!
나는 몸이 지쳐서 대가리가 안 굴러가는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정상 참작해서 1분 전으로 시간을 돌려줘!


“아… 저기… 다시 생각해 보니… 쉬는 것이 좋을  같지 않나요?… 과도한 훈련은 부상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고…”
“시도도 해보기 전에 포기하지 마라! 방금의 정신력을 다시 되새겨라! 너는 무슨 심정으로 다리를 일으켰나!”

내가 훈련을 하고자 하는 의지만으로 몸을 일으킨 줄 아는 브랙은 흥분해서 나를 다그쳤다.
 목적은 1분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휴식을 취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알 리가 없는 브랙은…


“이미 물에 들어온 이상 한 세트가 끝날 때까지 휴식은 없다! 준비 자세 실시!”

절대 물러서겠다는 눈이 아니다.


‘내가 미쳤지… 내가 미쳤어…’


눈에서 느껴지는 습기는…
수영 준비 자세를 하며 튄 물방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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