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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11)화 (11/310)



〈 11화 〉테라포밍

“왼발! 왼발! 맞춰서 뛴다! 왼발! 왼발!”
“허억! 왼발! 허억! 왼발!”
“뒤처지면 나한테 엉덩이 차인다! 뛰어! 뛰어! 뛰어!”
“끄아악!”

탁탁탁!


우리는 아침부터 달리고 있다.
매일 아침마다 훈련생이 해야  구보라고 한다.
구보치고는 무척이나 빠른  같지만, 아무튼 구보란다.


대머리 교관 브랙이 앞서서 성큼성큼 뛰어가고 있었고, 광년이가 우리를 뒤에서 쫓고 있다.
광년이이게 차이기 싫으면 죽어라 뛰는 수밖에 없었다.
남자 여자 가리지 않고 척추가 저릿할 정도의 강도로 차였다.


나?
나는 차인 횟수가 양손으로 셀 수 있는 숫자를 넘어섰다.
몸이 물리적으로 무거워 빠르게 뛰지 못했기 때문이다.
개같은 년이  엉덩이가 쿠션감 있어서 차는 맛이 있단다.

“허억… 허억…”
“야! 준비운동이나 다름없는데 벌써 지치면 어쩌자는 거야!”


퍼억!

“아악!”


살살좀 차라!
체력이 문제가 아니었다.
특성 덕에 스텟상 보이는 체력 이상의 지구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문제가 되는 것은 속도다.
155cm의 짧은 다리로는 아무리 빠르게 달려도 일반인이 구보하는 속도를 맞출 수 없었다.

퍼억!

“제발!…”
“제발? 제발 뭐. 꼬우면 빨리 뛰던가! 고개 앞으로 돌려! 넘어진다!”

진짜.
내가.
어떻게.
해서든.
복수한다.
두고 보자.
씨이발.


나름 자신 있었던 표정관리가 도무지  된다.
분노와 복수심으로 일그러진다.


퍼억!


“악! 왜요! 이번엔 안 느려졌잖아요!”
“표정 관리 안하냐? 인상 안 풀어?”
“개같은 년!”
“크하하하!  별명이야!”

욱해서 나도 모르게 진심이 담긴 욕이 튀어나왔다.
헌데 욕을 먹어도 오히려 좋아한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인간이다.

“앞으로  바퀴만 더 뛴다! 몇 바퀴?”
““세바퀴!””
“목소리가 작다! 다섯 바퀴! 몇바퀴?”
““다서어엇바퀴이이!!!””
“뛰어!”
““으아아악!””


브랙 저 인간도 훈련할 때만큼은 평소와 달리 무척이나 엄격했다.
 이 훈련소 생활을 전부 수료하면 이제부터 나를 소개할 때 군필이라고 소개할 것이다.
반박 안 받는다.

*


“물… 무울…”
“콜록 콜록…”
“죽을 것 같아…”

빈속에 뛰니 더 힘들다.
아침은 물론이고 어제저녁도 먹지 못했다.
목마르고 배고파서 더이상 힘도 안 났다.

꼬르르륵…

“휴식 끝! 이제 아침 식사를 하러 간다! 식사 시간은 1시간! 정확히 1시간 뒤에 이 자리에 집합한다! 이상!”


식사시간이 시작됐음에도 일어나서 식당으로 향하는 훈련생들은 없었다.
훈련생들 모두 지쳐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저는 먼저 식사하러 가보겠습니다.”
“와아… 강인씨는 전혀 지치지 않아 보이네요. 대단해요!”
“하하. 너무 띄워 주지 마세요.”
“아뇨… 멋있어요. 헤헤…”


한쪽에서는 이강인이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드라마 한편을 찍고 있었다.
저런 외모를 가진 이성을 두고만 보고 있을 리 없지.


“가지가지 하네…”

이제는 다리에 힘이 풀린 척하며 이강인의 어깨에 기대는 여자까지 있다.
온갖 연약한 척, 가냘픈 척, 순진한  총동원하여 아양을 부리고 있었다.


심정이 어떠냐고?
눈물 나게 부럽다…
나도 여자 좋아하는데…
내가 가진 것은  여자보다 더 큰 가슴살뿐이다.


“내겐 믿을게 너밖에 없다… 상태창.”

띠링!

=
[이름] 박찬영
[직업] -
[힘] 4  [민첩] 1
[체력] 2 [지능] 5
[기교] 1  [매력] -23


[특성] 『자연치유』

보유 카르마: 430
=


선남선녀들의 멜로 영화를 보고 있자니 배가 아파와서 상태창을 불러내었다.
내가 제일 달리기가 느렸기에 다른 훈련생들과 나 사이의 거리가 꽤 되었다.

어?
보유 카르마 상태가 조금 이상하다.


“430 카르마?”


분명 남은 카르마는 80 카르마가 되어야 정상인데?
아침에 약을 사고 남은 카르마 30과, 땅을 팔 때 클리어 한 퀘스트 보상으로 얻은 50 카르마가  마지막 기억이다.
그 이후엔…

“아! 설마 알림창 비활성화 상태가 조금 전까지 계속 유지된 건가?”


나는 재빠르게 퀘스트창의 알림 이력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
[퀘스트] <완료>
내용: 아침 산보! 새벽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50M 산책하기.
보상: 50 카르마.
실패 패널티: -


[퀘스트] <완료>
내용: 땀이 날 정도로 아무 운동이나 해보기.
보상: 200 카르마.
실패 패널티: -

[퀘스트] <완료>
내용: 실외에서 100M 뛰어 보기.
보상: 150 카르마.
실패 패널티: -


[퀘스트]
내용: 무릎을 바닥에 댄 상태에서 푸쉬업 3번 성공하기.
보상: 150 카르마.
실패 패널티: -
=


방금까지 분노했던 것이 거짓말같이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아진다.
이게 금융치료인가 뭔가 하는 그것인가 보다.
자동으로 얼굴에 웃음이 실린다.

“야야, 저쪽 멀리 보여?”
“저 돼지? 와… 혼자서 실실 웃는 것 봐…”
“으으… 진짜 못생겼다.”

혼자 좋아하는 나를 발견했는지 여자무리 중 하나가 나를 가리키며 말을 했다.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시력 청력 후각 등 오감이 좋은 이 신체는 그 말들을 똑똑히 들었고…
그래, 나를 마음껏 욕하고 무시해라.
나는  할 일이나 하련다.


‘그래도 저년들 얼굴은 기억해 둬야지…’


나는 몸이 바뀌기 전부터 독하고 뒤끝이 있는 사람이었다.
애초에 독하지 않으면 하루도 빠짐없이 헬스장을 나가지도, 한끼 한끼 칼로리를 계산하며 식단조절을 하지도 못한다.

“흐읍! 흐읍!”


나를 향하는 시선을 무시한  바닥에 무릎을  상태로 푸쉬업을 했다.
개인 시간이 있을 때 최대한 빠르게 퀘스트를 깨는 것이 좋다.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가면 이럴만한 체력도 없을 테니까.

띠링!


=
[퀘스트] <완료>
내용: 무릎을 바닥에 댄 상태에서 푸쉬업 3번 성공하기.
보상: 150 카르마.
실패 패널티: -
=

이제 내게 있는 카르마는 580 카르마.
무려 키 크는 약을 5개나 마실 수 있는 정도다.

나는 걸음을 옮겨 아무도 없는 곳으로 이동했다.
이 정도의 카르마가 쌓이니 스텟에 투자할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키 크는 약을 5개 구매하자.”

역시 아니었다.
아무리 기본 스텟이 낮다고 해도 특성의 덕으로 어느 정도 커버가 되었다.
쉽게 지치지 않고, 조금만 쉬어도 체력이 회복되었으니까.
 증거로 지금 나는 고작 3분 만에 숨이 고르게 돌아왔다.


이정도면 어느정도 훈련에 따라갈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 섰다.
장기적으로 보면 아무리 봐도 키를 늘이는 것만 한 선택이 없다.
방금 구보하며 그것을 더욱 실감했다.
단순한  걸음 정도도 신장의 차이 때문에 이토록 힘겨운데 다른 훈련은 다를까?

꿀꺽 꿀꺽!


자연스래 손에 쥐어진  5개를 연달아 마셨다.
그리고 병을 처리하기 위해 슬며시 자리를 옮겼다.

이미 밥을 먹으러 출발한 이강인과, 아침의 일이 트라우마로 남았는지 고개를 숙인 채 혼자 생각에 잠긴 블랑.
나에게 신경을 기울일 만한 사람은 없었다.
새벽과 마찬가지로 유리조각을 땅에 묻은 뒤, 식사하기 위해 발을 옮겼다.

‘이것으로 나도 한 달 뒤면 169cm…’

1차 목표가 생각보다 빨리 달성됐다.
170cm 정도면 절대 작은 키는 아니니까.
지금처럼  때문에 불편을 겪는 일은 드물게 일어날 것이다.
이제 앞으로 얻는 카르마는 무조건 약을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 투자할만한 여유가 생긴 것이다.


*

훈련 첫날은 훈련생 개개인의 체력과 능력을 측정한다면서 극한까지 몰아 붙였다.
단순하고 외우기 쉬운 동작이지만, 뒤질  같이 힘든 동작을 몇 번 몇십 번 반복했다.
의외로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은 광년이가 아니었다.
주로 브랙이 나서서 훈련생들을 굴렸다.


“엉덩이 더 내려! 더! 더!! 스쿼트  해봤어? 더 내려! 그 상태에서 버텨! 15초 버틴다!”
“허리 펴! 척추 다친다!”
“다리 높게 안 들어? 그게 45도야? 무릎 굽히는 놈은 20초 추가다!”

여기저기서 훈련생들이 죽어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원작 설정에서 브랙은 외인부대 출신이었으며, 은퇴 후 헬스장의 트레이너로 살아가고 있었다.
참으로 쉘터의 교관으로서 이 이상 어울리는 사람을 찾을 수 없는 인재다.


“우웩! 우웨에에엑!”

식사 후 너무 격렬하게 몸을 움직여 토를 하는 사람까지 종종 보였다.
우리에겐 좋은 소식이다.
토한 토사물을 치울 때까지 훈련은 중단되었으니까.
 5분도 안 되는 짧은 휴식시간이지만 달콤하기 그지없는 휴식이었다.

“허억… 허억…”
“야… 좀 천천히 치우자…”
“안 그래도 그러고 있어요…”


훈련생들은 한마음으로 눈치껏 설렁설렁 청소해 가며 휴식시간을 조금이라도 길게 늘이기 위해 노력했다.
다행히 지금 교관들은 우리에게 신경을 쓰고 있지는 않았다.
브랙과 광년이는 우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먼 위치에서 서로 진지한 얼굴로 대화하며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다.


“…이번 기수… 커리큘럼을…”
“…확실히… 지난 기수들… 기초 체력 상태가…”

밝은 귀로 언뜻 들리는 단어를 들어보니 훈련생들의 교육 방향을 결정하는 듯싶었다.
의외로 광년이는 진지한 얼굴로 적극 의견을 내비쳤다.


‘그녀는 우수한 교관이다.’라는 소설 속 묘사가 진실이라니…
도저히 믿고 싶지가 않다.
그야 누구라도 저년에게 엉덩이를 10번 넘게 차여보면 장점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저번 기수…사망자…사인이…중점으로…”
“…그래…사망률…최우선…”


시발.
방금 사망률이란 단어가 나오지 않았나?
잘못 들었겠지?
잘못 들었을 거야.
원작에서는 훈련 도중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고…

“진짜 특성이 없었으면 큰일 날 뻔 했네…”


이렇게 몇 분 쉬는 것만으로 소모된 체력이 돌아온다.
그에 비해 다들 걷는 것조차 힘겨워 다리를 떨고 있었다.
무려 그 이강인조차 지쳤는지 무릎에 손을 대고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띠링!

=
[퀘스트]
내용: 5분간 교관의 지시에 반항하지 않고 따르기.
보상: 300 카르마.
실패 패널티: 클리어 전까지 이 퀘스트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

몸이 바뀌기 전 박찬영이라면 교관의 지시에 5분조차 따르지 못하고 반항한다는 뜻인가…
하긴, 그 새끼라면 지금까지 교관의 명령에 따르기는커녕 못한다고 드러누웠을 것이 뻔했다.
지금의 내게는 어렵지 않은 퀘스트다.


나는 이미 2시간 넘게 교관의 지시를 따랐다.
게다가 그들의 지시에 거스를 생각 또한 없었다.
폐급으로 찍히는 순간 지금보다 더한 지옥도가 펼쳐진다.


“하루 정도는 참아  생각이었는데…”
“첫날부터 이 정도로 굴리는 게 말이 돼?!”
“더는 못하겠어요… 팔이 어깨 위로 안 올라가요…”


길어진 교관들의 회의 탓에 감시가 소홀해졌다.
또한 훈련생들이 짧은 휴식을 하며 머리가 돌아갈 정도로 기력을 찾게 되었다.


‘비합리적인 상황에 대해 불만이 튀어나오기에 아주 완벽한 조건이지…’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주로 체력적으로 많이 떨어지는 여자 훈련생들의 입에서.
‘힘들다’에서 ‘못하겠다’로, ‘못하겠다’에서 ‘안 하겠다’로.
시간이 흐를수록 훈련생들 사이에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끼어들지 않는 건가…’

슬쩍 이강인을 쳐다보았지만, 팔짱을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다.
나처럼.


‘옳은 판단이다.’


누누히 말하지만, 교관들의 청력은 인간을 초월했다.
내가 교관의 말을 조금이나마 엿들을  있었던 거리에서, 교관들이 훈련생의 말을 듣지 못할까?
교관들은 이미 훈련생들 사이의 분위기를 알고 있었다.

아니, 일부러 유도하고 있었다.
고의적으로 이런 분위기를 만든 것이겠지.
언젠가 확실하게 일어날 반항을 자신들이 통제가 가능할 때 처리 하기 위해서.

“강제로 끌려온 것도 억울한데… 내가  이런 걸…”
“그냥  하겠다고 하자. 훈련생 과반수가 안 하겠다고 하면 지들이 뭐 어쩔건데?”
“설마 이 많은 사람 전부를 하나하나 때리기야 하겠어요?”
“차라리 때리라고 해… 맞고서 드러누우면 더는  시키겠지…”


정말로 맞아보면 절대 그런 소리 안 나올 텐데…
어제와 오늘 아침.
교관이 얼마나 사람을 무자비하게 때리는지, 얼마나 고약한 짓을 하는지 훈련생 모두 두 눈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나 보다.


이 사람들은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그야 그럴 법하다.
생판 처음 보는 타인이 느끼는 고통과 수치스러움 따위보단, 당장 본인이 죽도록 힘든 것에 온통 신경이 쏠려있을 테니.

“좋아. 내가 대표로 말할게.”
“언니! 저…저도 뒤에서 도울게요!”
“다들 동의하시죠? 제가 직접 교관과 담판을 지을 테니, 뒤따라와 주세요!”

크게 목소리 높여 말하는 이는 없었지만, 저 여자의 말에 모두 동의하는 몸짓을 했다.
앞장서서 나선 여자의 이름은 리 샤오린.
아다치 켄지, 블랑 프랑수아 다음으로  번째 본보기가 되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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