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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9)화 (9/310)



〈 9화 〉테라포밍

“이봐 찬영. 너는 안 갈 거야?”
“나는 안가.”

블랑 프랑수아.
내게 말을 건 인물이자 오늘 하루 룸메이트가 된 남자다.
성에서 알 수 있다시피 프랑스 태생 22살 청년이다.

“너야말로 진심으로 갈 생각인 거야?”
“용기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 법! 세계 어디를 가도 들을  있는 유명한 격언이지.”
“정 그렇다면… 행운을 빌어줄게.”
“흐흐흐… 오늘은 느낌이 무척 좋아.”


그 느낌, 별로 믿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이런 속내를 숨긴 채로 오매불망 밤을 기다리는 블랑을 딱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말린다고 들을 것 같지도 않고.
그냥 내일 아침 위로나 해줘야겠다.

그나저나 블랑이 어디를 그렇게 가려고 하냐고?
당연히 광년이의 방이다.
조금 전 광년이의 충격적인 행동과 발언은, 훈련소 남자들의 마음을 현재 진행형으로 흔들고 있었다.
이것이 함정임을 아는 나조차 혹했을 정도이니  다했지.


맞다.
방금 전 광년이의 유혹은 함정이다.
정확히 무슨 함정인지는 내일 아침의 즐거움으로 놔두도록 하겠다.


“그런데 블랑, 우리 친구 맞지?”
“뭐? 한국에는 간지럽게 그런  물어보는 풍습이 있어? 그래도 대답하자면 당연히 친구지!”


띠링!

=
[퀘스트] <완료>
내용: 친구를 한 명 만드세요!
보상: 80 카르마.
실패 패널티: -
=

빠른 퀘스트 완료에 만족스럽게 웃음이 나왔다.
블랑이 인종차별이나 외모차별을 하지 않는 호탕한 남자라서 다행이다.


‘음… 보답 삼아 지금이라도 블랑을 말려야 하나?’


관두자.
저렇게 들뜬 상태에서 남의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지.
괜히 반감만 산다.
어차피 간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그냥 트라우마가 하나 생길 뿐이다.

‘아… 근데 확실히 꼴리긴 하네.  발  수도 없고…’

냉정한 이성과 별개로 나의 양물은 아직까지 건강함을 뽐내었다.
벌써 일이 발생한 지 1시간 가까이 흘렀음에도…
 몸은 아무래도 욕구가 무척이나 강한가 보다.
물론 나 또한 섹스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렇게 정신과 육체가 환장스러운 콜라보레이션을 일으켜, 한창 뜨거운 속을 달래야 했다.


‘젠장, 자연치유는 이런 것은 어떻게 못 해주나?’

못해주나보다.
1시간째 이 상태인 것을 보면.


주변을 둘러보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방을 잡았다.
고로 이 방에는 5명의 남자밖에 없었다.

나를 제외한 4명의 남자들은 광년이의 방에 가느냐 마느냐를 두고 격한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내가 혼잣말을 하더라도 별로 신경을 쓸 것 같지는 않았다.
좋아.


“상태창.”

=
[이름] 박찬영
[직업] -
[힘] 4  [민첩] 1
[체력] 2 [지능] 5
[기교] 1 [매력] -23

[특성] 『자연치유』

보유 카르마: 130
=

‘보유 카르마 130’을 보자 마음이 든든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고작 초반퀘스트 2개를 클리어한 보상이다 보니 큰 효과를 보지는 못하겠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우선은 상점 창을 먼저 열기로 했다.
직접 능력치를 올리는 것보다 값싸게 먹히는 영약 같은 것이 있다면 구매하기 위해서다.

띠링!


[<도움> 전체 상점 창의 길이는 전부 확인이 불가능할 정도로 무척이나 깁니다! 상단 필터의 <구매 가능한 목록만 열람>항목을 활성화하세요!]


나는 시스템의 권장대로 필터를 한 뒤, 다시 상점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분명 필터를 했음에도 무척이나 스크롤이 길게 늘어지기 시작했다.


주르르륵!


=
[소모품 상점]
상처약 [5카르마]
물 1L [5카르마]
빵 2개 [5카르마]
자연산 더덕 [15카르마]
.
.
.


[기능 상점]
-구매 가능 목록 없음-

[스킬 상점]
어설픈 칼질 0Lv [10 카르마]
어설픈 창질 0Lv [10카르마]
어설픈 몸놀림 0Lv [10카르마]
.
.
.

[기타]
커터칼 [3카르마]
흰 티 [3카르마]
얇은 반바지 [3카르마]
.
.
.
=


“종류가  이렇게 많아…”


스크롤을 쭉쭉 내려가며 목록을 살펴봤지만, 좋아 보이는 것은 그리 없었다.
싼값의 물건이나 스킬들은 분명하게 하자가 있는 것이 많았다.
특히 스킬의 경우는 설명을 읽어보면…

=
[스킬]
이름: 어설픈 칼질
레벨: 0Lv
효과: 칼을 손에서 놓칠 확률이 아주 약간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상세: 어린아이가  법한 어설픈 칼질입니다. 도저히 남에게  쓰는 법을 배웠다고 하지 못할 수준입니다.
가격: 10카르마
[구매하기]
=


이런식의 구매 의욕을 떨어뜨리는 수준의 스킬밖에 없었다.
심지어 ‘줄어듭니다.’도 아니고,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다.
이런 곳에 10카르마나 사용하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차라리 모아서  개의 좋은 스킬을 사는 것이…

“엇!”


별로 기대를 하지 않고 다른 목록을 살피던 중, 소모품 상점에서 내 눈길을 끄는 상품  가지를 발견했다.

=
[소모품 상점]
.
.
.
고급스러운 향수 [95카르마]
키 크는  [100 카르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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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는 약!
나는 홀린 듯이 그 상품을 터치해 상세 설명을 띄웠다.

=
[소모품]
이름: 키 크는 약
레벨: -
효과: 1개월 동안 신장 2cm 상승.
상세: 1개월간 천천히 2cm의 신장을 상승시키는 약입니다. 상체와 하체의 비율이 1:1로 자랍니다. 중첩 가능합니다.
가격: 100 카르마
[구매하기]
=

“헉!”

무의식적으로 구매 버튼으로 향하는 나의 손가락을 막았다.
이 신체로 24시간밖에 살아보지 않았지만, 작은 키는 큰 불편함 중 하나가 되었다.
모든 사람을 올려다봐야 하는 행동은 생각보다 자존감을 깎았다.
키가  삶을 살아오다 작아지니 더욱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조급하게 결정하지 말자. 일단 지금 당장 내게 필요한 것이…’

부족한 것은 턱없이 많다.
전체적으로 부족하기 짝없는 스텟, 짐이나 다름없는 살덩이, 작은 키…

마음 같아선 외모부터 전부 뜯어고치고 싶지만, 그러면 미래가 감당이 안된다.
이 세계의 상황이 그렇게 안일하게 행동할 정도로 가볍지 않다.
당장 내일 훈련에 따라가려면 힘과 체력을 올리는 판단이 맞다.
그러나…


“역시 키부터 어떻게 해야돼.”

키를 늘리게 되면 따라오는 이득이 상당하다.
같은 근육량이면 키가 큰 사람일수록 유리하다.
힘의 효율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다.


또한 키를 늘리게 되면 움직이는데 크게 방해되는 살덩이 역시 조금은 들어갈 것이다.
155cm 150kg와 185cm 150kg은 비율부터가 상당히 다를 테니까.
혹시 모르니 [외모 편집]항목에서 즉시 키를 늘릴 경우 어느 정도 카르마가 필요한지 확인해 보았다.
그럴 일은 적겠지만, 약으로 늘리는 것보다 시스템으로 늘리는 것이 카르마가 적게 사용될 확률이 있기 때문이다.

“100카르마에 1cm인가… 약의 효율이 2배 정도 좋네.”

약과 다른 점은, 외모편집으로 키를 늘리게 되면 다리의 길이만 늘이는 것이 가능했다.
또한 한 달을 기다릴 필요 없이 즉각적으로 늘어나기도 하고.
 매력은 느끼지 못했다.
당장 카르마가 부족한 내게는 1cm가 더 크는 것이 중요했다.
망설이지 않고 [구매하기]버튼을 눌러 약을 구매했다.

턱!


갑자기 내 손에 작은 유리병 하나가 나타났다.
나는 갑자기 나타난 병에 놀라 누가 본 사람이 있을까 싶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니까 그거 분명히 신호라니까?   거야?”
“우리끼리 우르르 가서 뭐할 건데? 우리만 올  같아? 적어도 10명은 갈 것 같은데…”
“10명이서 한 여자랑… 우웩… 나는 죽어도 싫어.”
“이 세계에서 이번 기회 아니면 언제 여자랑 해보게? 기회가 있을 때 잡아야지!”
“난 그렇게까지 굶지 않았어.  상식상 여럿이서 그런 짓을 하는  도무지 이해를  하겠다.”
“나도 동의. 가려면 블랑  혼자 가.”

다행히 이쪽을 보고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다들 대화에 집중하고 있어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재빠르게 병을 열어 내용물을 마셨다.

‘사과 주스 맛…’

한모금 안되는 약을 소리  나게 삼킨 뒤, 유리병을 주머니에 숨겼다.
이런 유리병도 이곳에선 흔하지 않은 물건이다 보니 들키지 않게 처리할 필요가 있다.
약을 먹은 뒤, 몸에 변화는 딱히 느껴지지 않았다.

걱정은 없었다.
시스템이 내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을 테니까.
남은 카르마는 30.
혹시 이것으로 스텟을 늘릴 수 있는지 확인해 보았다.

[카르마가 부족합니다!]

“쩝…”

이 카르마는 아껴둬야겠다.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니…
그나저나 다음 퀘스트는 언제 오지?
빠르게 깨서 팍팍 모으고 싶은데.
아니나 다를까, 이런 생각을 품자마자 바로 다음 퀘스트가 올라왔다.


=
[퀘스트]
내용: 일찍 일어나기! 다음날 누가 깨우기 전, 스스로 일어나보세요!
보상: 100 카르마.
실패 패널티: -
=


“…”


역시 너무 쉬운 퀘스트다.
일찍 일어나는 것은 일찍 자면 그만인 이야기니까.
심지어 이번 퀘스트를 깨면  크는 약을 한 번  먹을 수 있다!

나는 만족스럽게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내게 배정받은 침대… 라고 하기 민망한 목제 가구 위에 몸을 뉘었다.

끼이익!

“뭐야. 벌써 자게?”
“응. 결국, 가는  너 혼자?”


육중한 몸무게 덕에 침대가 비명을 질렀고, 덕분에 이쪽을 돌아본 블랑과 눈이 마주쳤다.
블랑은 다른 남자들과 달리 혼자서 옷의 먼지를 털고, 머리를 정리하는 등 아주 부산을 떨었다.

“그렇게 됐어. 나야 반갑지. 여럿이서 하다가 중간에 남자끼리 눈 마주치면 그거만큼 뻘쭘한 일이 없거든.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나는 좋아.”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은 상황에 대한 친절한 해설 고맙다.

그나저나 단 한 명만 간다니…
의외로 상당히 적은 숫자다.
당장 계단에서 그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남자 대부분이 달려갈 기세였다.
아마 다들 휴식하며 머리가 식은듯하다.

광년이의 함정에 희생되는 남자가 적은 것은 좋은 소식이다.
희생된 남자 중 블랑이 있다는 사실은 안타깝지만.

“뭐… 힘내봐. 슬픈  있어도 기죽지 말고.”
“하하! 까이는 것을 두려워하면 여자를 얻지 못한다고?”
“까이는 것을 말한 건 아닌데…”


어깨를 으쓱여 대답을 살짝 돌린 뒤, 이불을 뒤집어썼다.
퀘스트를 깨기 위해선 일찍  필요가 있다.
다행히 오후 내내 걸으며 운동한 덕인지 노곤한 기분에 휩싸여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

“하아암…”


띠링!

=
[퀘스트] <완료>
내용: 일찍 일어나기! 다음날 누가 깨우기 전, 스스로 일어나보세요!
보상: 100 카르마.
실패 패널티: -

[퀘스트]
내용: 아침 산책! 새벽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50M 산책하기.
보상: 50 카르마.
실패 패널티: -
=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주위가 어둡다.
전등은 켜지 않았다.
나머지 3명이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블랑은… 돌아오지 않았나.”

쯧쯧…
블랑의 침대는 빈자리 그대로였다.

나는 쩍쩍 하품하며 퀘스트 창을 확인했다.
퀘스트가 클리어 됨과 동시에 새로운 퀘스트가 발생했다.
잘됐다.
어차피 밖으로 나갈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나서서 퀘스트를 주다니…


끼이익!

침대에 일어나서 건물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새벽의 찬 공기를 마시고 있으니 정신이 맑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특성의 덕분에 잠은 이미 깬지 오래지만.

아직 어두운 밖을 천천히 걸으며 상점에서  크는 약을 다시 사서 먹었다.
100카르마가 날아갔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이로써  달 동안 총 4cm가 자랄 것이다.


“어디… 눈에 띄지 않는 곳이…”

건물 주변을 돌아다니다 드디어 적당한 곳을 발견했다.
나무와 수풀이 우거져 온종일 그늘진 곳이었다.
나는 그곳으로 다가가 나뭇가지로 땅을 조금 파내었다.
곧 작은 웅덩이만 한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곳에다 유리병 2개를 넣은 뒤, 주위에 소리가 퍼지지 않게 큰 돌로 으깨었다.


파삭! 파삭!


곧 유리병은 유릿가루가 되었고, 구덩이에 흙을 메꾸니 감쪽같이 흔적이 사라졌다.
이것으로 유리병의 보유 여부로 쓸데없는 의심을 받을 만한 부분은 사라졌다.
순조롭게 목적을 달성했다.

“좋아… 이제 건물로 들어갈…”
“어? 뭐야. 사람이었어? 야생 동물인 줄 알았네.”


깜짝이야!
1M도 안 되는 거리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했는데!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조차 없었다.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나를 웃으며 내려다보는 광년이가 보였다.

“여기서 뭐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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