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8)화 (8/310)



〈 8화 〉테라포밍

띠링!

=
[퀘스트]
내용: 친구를 한 명 만드세요!
보상: 80 카르마.
실패 패널티: -
=

‘친구를 만들라니… 내가 애도 아니고…’

퀘스트 내용에 황당해하고 있을 때, 이 시스템이 몸이 바뀌기 전 박찬영을 위해 만들어졌단 것을 기억해 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런 유치원생 같은 퀘스트 내용도 이해가 가능했다.
다행히 패널티도 없었고, 내용도 무척이나 쉬운 편이었다.
불만이 있다면 이강인과 친해지기 전에 퀘스트가 나와줬으면 하는 정도.

퀘스트 창을 보며 고민에 잠겨 걷길 몇 분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훈련소에 도착했다.
해는 이미 넘어가는 와중이라 하늘이 붉었다.

쉘터의 외각으로 가면 갈수록 점점 낙후되는 시설과는 반대로, 훈련소의 외관은 의외로 무척이나 깔끔했다.
중앙 지휘소의 합금만큼은 아니지만 잘 마감된 목재를 보아하니 적어도 비바람 맞으며 잘 일은 없을  같다.

하긴, 훈련소의 시설이 개똥 같으면 당장 저 지랄 같은 광년이가 가만히 있지 않겠지.
기대치 않던 문명의 편의를 맛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허억… 드디어… 도착…”
“으… 발에 물집 잡혔어…”

대부분의 훈련생들은 얼굴이 밝아 보였다.
한참 긴장된 분위기 속에 말없이 걷다가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하니 긴장이 풀린 듯하다.
무엇보다 드디어 마음 편히 쉴 수 있을 것 같았기에 분위기가 좋았다.

소설대로라면 본격적인 훈련의 시작은 내일이다.
나 또한 마음 편히 쉬면서 퀘스트를 깨며 얻은 카르마를 사용할 생각에 가슴이 들떴다.

“오늘은 늦었으니 쉰다! 다섯 명당 하나의 방이다! 룸메이트는 니들끼리 알아서 정해!”
“음… 이강인 훈련생, 잠깐 나를 따라와라.”
“예.”
“아, 젠장. 설마 벌써 특별대우? 납득할 수가 없는데.”

브랙 교관이 이강인을 불러내었다.
그런 브랙에게 광년이가 불만을 터뜨렸다.

“그래도 대화가 필요하지. 네가 직접 겪지 않았나? 그의 실력은 진짜야.”
“그래서 뭐.”
“두각을 보이는, 또는 재목이 있는 훈련생을 선별하는 것 또한 우리의 업무다.”
“…그래 너 일 존나게 잘한다!”

광년이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짜증이 담긴 시선으로 이강인을 향해 쏘아붙이듯 말했다.

“야 씨발놈. 브랙한테면 몰라도 내게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나대지 말라고. 알아들어?”
“…알겠습니다.”

- 퉷.

이강인과 광년이 사이의 불화는 익숙지 않았다.
원작을 달달 외운 내가 시뮬레이션 한 관계는 이렇게 날카롭지 않았으니까.

“…저는 따로 가봐야 할 것 같네요. 다음에 또 얘기 나누죠. 찬영씨.”
“네. 먼저 들어가세요.”

브랙이 이강인을 데리고 건물을 향해 사라졌다.
분명 오전에 광년이와 싸운 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함이겠지.

‘젠장…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이강인이 이렇게 따로 교관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본편에 없던 내용이다.
광년이의 마음에 들어서 싸움 자체가 발생하지 않았으니까.
그저 큰 변수가 일어나지 않기만을 기도했다.

*

훈련소는 주택가 주변에 있지 않았다.
인위적으로 나무를 베어  숲의 길 끝에 훈련소가 있었다.

밖에서  훈련소의 크기는 꽤 큼직했다.
길게 누운 직사각형 모양의 2층 건물.
특이한 구석 하나 없이 흔하게 볼 수 있는 형태였다.

저벅 저벅.

“하암…”
“어… 저… 교관님? 저희는…”
“뭔데? 쉬라니까?  안 쉬어?”
“아니… 그러니까…”
“몰라. 나 퇴근 시간이야.”

광년이는 멍청히 서 있는 우리를 버려둔  건물로 들어갔다.
쉬라고  봤자, 건물 내부에 존재하는 방이 한두 개도 아닐 테고…
우리는 어디가 숙소인지 전혀 모른다.
쉬라는 말을 들어도 그저 멀뚱멀뚱 서 있을 뿐이었다.

걸어가는 광년이를 붙잡을 만한 용기를 가진 사람은 없었다.
그녀가 그리 이성적으로 행동하지 않다는 것은 훈련생 모두가  알고 있었으니까.

물론 나는 숙소가 어딘지 알고 있다.
다만 여기서 아는  해봐야 수상하기만 할 뿐이니 입을 다물고 있을 뿐.
가만히 기다리면 어차피 알게 된다.

“어… 어쩌지?…”
“일단 따라가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여기서 가만히 서있는다고 해도   있는 건 없고…”

의견이 하나로 모인 훈련생들은 멀어지는 광년이의 뒤를 따라 발을 옮겼다.
더 멀어져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것 같았기에.

우르르…

건물 외부는 물론 내부도 깔끔했다.
주기적으로 청소를 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있었다.
빨래나 청소, 요리는 누가 하냐고?
다행히 훈련생이 하지는 않는다.
이곳에 고용된 인원들이 따로 있다.

부스럭 부스럭!

아니나 다를까, 곳곳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훈련소 내부의 첫인상은…
일단 내부가 청결하다는 것 자체만으로 충분히 합격점이다.


무엇보다 내부에 전기가 들어와 있다.
지금 밖은 해가 거의 다 져서 상당히 어두워졌다.
하물며 훈련소에 유리로 된 창은 하나도 없다.
대부분이 환기를 위해 만들어진 나무 창문이다.
원래라면 실내가 밝지 않아야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이야기다.

그럼에도 천장 곳곳에는 전등이 매달려 있어 충분히 밝았다.

그렇게 광년이를 따라가며 내부를 구경하던 그때, 그녀가 계단을 올라 2층으로 가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도 그녀를 따라가 2층으로 올라가려 했다.

“엉? 뭐냐? 너네 왜 2층으로 올라와?”
“네? 어… 어디가 숙소인지 몰라서…”
“아!  말  했어? 여기 건물 전체가 숙소야. 훈련은 죄다 밖에서 하거든. 1층은 훈련생 숙소, 2층은 교관 및 직원 숙소.”
“가…감사합니다.”
“엉. 다섯 명이서  1개 잊지 말고. 아 참, 1층에 식당이랑 목욕탕도 있는데, 그 커다란 식당을 숙소라 착각하고 자는 머저리는 없으리라 믿을게.”

계단 위에 올라선 그녀가 진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내려봤다.

와…
뜬금없지만, 방금 실감했다.
그녀는 웃으니까 확실하게 미인이다.

심지어 우리는 계단 몇 칸 위에 올라가 있는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다.
그 말은 각도상 외모에 너프를 몇 단계는 받는다는 뜻이다.
어떤 영화배우도 굴욕 사진을 피하지 못한다는 존못 각도…
그런데도 광년이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마치 후광이 있는 것 같았다.

‘아!’

모든 사람이 그녀의 아름다움에 넋이 나가 있는 와중, 나는 눈치챌  있었다.

‘의도한 건가? 아니면 단순한 우연?’

계단의 중간층.
활짝 열린 나무 창에서 쏟아져 오는 노을이 그녀를 비추고 있었다.

그녀의 머리 색은 노을을 닮은 주홍빛이다.
그렇기에 착시현상을 일으켰다.
실제로는 그저 머리카락이 노을빛을 반사하는 것이었지만, 주홍빛 노을과 주홍빛 머리카락이 어우러져 마치 스스로 빛을 내는 것처럼 착시를 일으켰다.

존못 각도 따윈 간단히 씹어먹어 버릴 만큼 너무나 몽환적인 아름다움이었다.
오히려 이런 각도였기에 노을빛에 눈이 부시지 않고 자연스럽게 아름다움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지금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면, 그녀 인생에 이보다  아름다운 사진을 찍는 것이 가능할까?
계획된 연출이라고 믿는 것이 더 신뢰가 가는 기적적인 우연이다.

몸매는 또 어떠한가?
몸의 가리지 않은 부분이 가려진 부분보다 몇 배나 많은 덕에 그녀의 슬림한 몸매가 전부 드러났다.
측면에서 오는 노을빛 덕에 부드러운 근육의 태가 더욱 부각되어 보였다.

하얀 피부 또한 흉터만 아니었다면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아니, 오히려 몸 곳곳의 흉터가 의상과 어울려 더욱 섹시해 보였다.


남자가 미인에 환장하는 것은  세계 공통인걸까?
그동안 보여준 광년이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남자 훈련생 대부분이 그녀를 향해 뜨거운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솔직히 여자를 밝히는 나도 마찬가지로 그랬고.


꿀꺽…

잠깐의 정적.
그 때문에 누군가가 침을 삼키는 소리는 유독 크게 들려왔다.
게다가 그 소리는 그녀의 귀에까지 닿은 듯했다.

당연한가?
그녀의 청각은 인간의 한계를 훨씬 웃도니까.
광년이는 눈썹을 약간 들어 놀랍다는 듯 우리를 향해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호오?”

그리고 장난기 넘치는 미소가 얼굴에 그려졌다.

아…
젠장,저 표정을 보니 납득을 했다.
어째서 저런 성격에도 그녀가 남자 훈련생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지.
그 정도로 그녀의 표정은 관능적이었다.
남자의 심금을 흔드는 분위기가 이곳에 깔려있었다.

“뭐야, 지금 이거 내가 생각하는 그거?”


그녀의 머리보다 훨씬 붉은 혀가 입술을 흩고 지나갔다.
행동 하나하나, 말투 하나하나 전부 악동 같은 유혹을 담고 있었다.

괴력을 담고 있으리라 도무지 상상이 불가능한 부드러운 손이 천천히 상체를 향해 올라간다.


집중해라 박찬영!!


몸이 바뀌기 전, 나는 시력이 엄청나게 나빴다.
그러나 이 육체의 시력은 무척이나 좋은 편에 속했다.
그렇기에 손쉽게 안력을 끌어올려 집중할 수 있었다.
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고 있다.
최대한 집중해서 그녀의 가슴 쪽을 바라보았다.

“좋아. 뭐, 나도 그걸 싫어하지 않고.”

새하얀 손이 그녀의 상의에 닿는다.
아니, 상의라고 하기에 저 옷은 너무 노출이 심하다.
배와 허리가 전부 드러난 스포츠 브라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스르륵!

외출복 보다는 가죽으로 된 타이트한 캐미솔에 가까운 상의.
그녀는 상의를 스스로 들어 올려 자신의 가슴을 내보였다.

“어엇?!”

스륵!

0.5초쯤 되었을까?
올라간 상의는 곧바로 다시 내려가 가슴을 가리는 역할에 충실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놓친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 나는 미리 집중했던 덕에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슬림한 몸매에 의외로 볼륨있는 가슴과…

‘피…핑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와…”
“미친년…”
“개 쩐다…”

남자들은 감탄했고, 여자들은 경악했다.
어느 세상에 자신의 가슴을 애인도 아닌 사람에게 자의로 내보이는 여자가 있을까?
그것도 수십 명의 사람을 앞에 두고.
나를 제외하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기행이다.
광년이라는 별명이 붙는 이유가 충분히 납득할 정도의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장난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방금의 행동은 놀이에 불과했다는 듯, 열기가 담긴 목소리로 속삭였다.

“2층 왼쪽 끝에서 3번째 방. 나랑 하고 싶은 사람은… 밤에 찾아오던가… 킥!”

저벅! 저벅!

장난스래 혀를 내밀며 우리를 유혹한 그녀는, 마지막 폭탄을 떨군  유유히 2층으로 올라갔다.
시발…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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