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7)화 (7/310)



〈 7화 〉테라포밍

“…이쪽 생활에 대해 잘 알고 계시네요.”
“그냥 교관들이 해준 말을 듣고 유추했을 뿐입니다. 아마 훈련소에서 퇴소당하게 되면 저희도 이렇게 되지 않을까요?”
“그걸 바라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물론 그런 분들도 도움이 될 겁니다. 중요한 일은 아니더라도, 옷을 만들거나 물건을 옮기는 일에는 사람의 손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침착하게 이강인의 눈을 응시했다.
그는 나와 대화를 이어나가길 바라는 듯했다.
다만, 전혀 호의적인 시선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를 의심하는… 나라는 인간을 알아보기 위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행동이 빨라!…  적어도 훈련소에 도착하고 나서 접근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원작을 읽으며 파악한 그는, 육체뿐만이 행동력까지 강인한 사람이다.
실제로 이강인이라는 인간은 망설임이 없는 듯했다.
회귀하고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승부수를 걸며 교관에게 덤벼들고, 요주의 인물인 나에게 말을 걸었다.

“박찬영이라고 합니다.”
“엇… 혹시 한국인이신가요?”
“예. 설마 그쪽도?”
“네. 이강인입니다. 설마 싶어 말을 걸어봤는데, 걸기를 잘했네요.”
“그러게요. 이쪽에서 고향 사람을 볼 것이라 그리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내게 주인공을 적대할 생각은 없었다.
물론 무조건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그를 적대한다고 내게 이득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와 친하게 지내야 한다.
내게는 소설 속 지식이 있지만, 고작 초·중반부밖에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짧다.


그러나 주인공에게는 회귀 전 지식이 있다.
또한 사건의 중심에는 대게 주인공이 있기 마련이다.
이를 반드시 이용해야 하는 나로서는 그와 친하면 친할수록 도움이 된다.

당연하지만 그와 친해지기 위해서는 우선 그의 경계부터 풀어줄 필요가 있다.

“사실, 저는 강인씨랑 친해지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말을 걸어주신데다가 한국 사람이라니, 이런 우연도  있네요.”
“…저를 전부터 알고 계셨나요?”


이강인의 눈매가 조금 더 날카로워진다.
이제는 확실히 나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혀 당황할 필요 없다.


숨기는 것 하나 없다는 듯이 밝은 미소가 중요했다.
다행히 표정 관리는 나름 자신 있는 분야다.

“그럼요. 제겐 강인씨에게 갚아야 할 빚이 하나 있거든요.”
“예? 빚이요? 분명 저와 찬영씨는 초면일 텐데요?…”

“하하. 처음  세계에 왔을 때 기억하시나요? 그때의 강인씨는 상당히 눈에 띄었죠. 남들이 전부 당황스래 소리 지를 때, 혼자서만 침착하게 생각을 정리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무엇보다 강인씨의 키가 무척 큰 편이잖아요? 인기 많게 생기기도 했고요.”

내 입에서 남자의 외모를 칭찬해야 하는 날이 올 줄이야.
그것도  의지로…

거부감이 들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은 참을 수밖에.

“하하… 감사합니다.”
“아마 그때 당시 저희의 거리가  되어서 강인씨는 저를 못 봤을 수도 있겠네요. 보시다시피 제가 키가 좀 작아서.”
“아하… 그나저나 제게 빚이 있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요?”
“제 신체를 보면 아시겠지만 저는 벌레잡이로 빠질 수 있었어요. 하지만 강인씨 덕에 검사원이 귀띔해 준 ‘전투직’을 하기로 했죠.”
“저의 덕이요?”

전혀 짐작 가는 것이 없다는 표정이다.
아직 내 말을 완전히 믿지 않고 있었다.

작게 호흡을 가다듬은 뒤.
본격적인 연기를 시작한다.

나를 향한 의심을 없애기 위해 그를 속여야 한다.


“강인씨는 저와 상반된 사람이잖아요. 키 작고, 못생기고, 뚱뚱한 저와 완벽한 반대죠.”
“…으음 그건…”
“억지로 부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실이니까요. 그보다… 평소 저는 외적인 부분은 몰라도, 머리와 정신력만은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자만해 왔어요. 아직 이룬 것은 없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두각을 보일 게 분명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이건 지구에서 미리 생각해 둔 스토리다.
정교함을 더하고자 몸이 바뀌기 전 그 새끼의 이야기를 섞었더니, 금방 그럴싸한 사연이 만들어졌었다.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느끼면  돼.’

대화 상대에게 진심이 와 닿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생각한 정답은 이것이다.

- 후우…


기나긴 말을 하기 위해 잠깐 숨을 고른다.
곧, 그와 나 사이에는 오롯이 내 목소리만이 울리기 시작했다.

“지구에서 전… 갑작스러운 상황에서의 대응에 나름 자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 모두가 당황할 때, 저만은 이성적일 거라 생각해왔죠.”

이강인과 마주한 시선을 뗐다.
그리고 몸을 돌려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바라보았다.

초점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허공이지만, 보이지 않는 풍선이라도 떠 있다는 듯 그곳을 응시해 바라보았다.
거의 노려보는 것에 가까울 정도로.


“그러나 조금 전. 실제로  세계에 처음 왔을 때 제가 어땠을까요?”

어떤 이는 상대방에게 진심을 전할 때, 눈을 본  말을 하라고 한다.
그러나 이 방법은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했을 때만이 효과가 있다.

“주변 사람들과 같았습니다. 공황했고, 패닉 했으며, 비이성적이었죠. 그리고 침착해 보이는 강인씨가 눈에 들어왔고, 깨달았습니다.”

그와 나 사이의 거리는 대략 1M 남짓.
친분이 없는 사이인 상태에선 불편함을 느낄 정도로 가까운 거리다.
어째서냐고?
피아가 구분되지 않은 대상이 나를 언제든 공격할 수 있는 거리에 들어와 있음에서 오는 유전자에 각인된 위기본능.
그것이 불편함이라는 생체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다.


”아. 나는 평범한 사람이구나. 남다를 것이라 자부했던 내 지성은… 남들과 전혀 다르지 않구나. 근거 없는 자만에 불과했구나.”


이 상태에서 그와 눈을 마주한 채 이야기한다면 어찌 될까?
올곧은 시선과 단호한 말은, 무의식에서 본인이 공격받고 있다고 느껴버린다.


“강인씨야 말로 평소에 제가 상상하던 제 모습이었습니다. 어떤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도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누구보다 정확하게 상황을 분석하는. 하지만 저는 그러지 못했죠.”


생각해 봐라.
초면인 사람이 코앞에서 단호한 어조로 말을 하면, 왠지 불편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기에 절대 언어에 담긴 뜻 그대로를 수용하지 못한다.

“제가 상상하던 저 자신은 허상이었습니다. 제 실상은 남들과 같은 정신력에, 남들보다 못한 육체를 가진 머저리였죠.”

지금은 다른 곳을 응시하며 다짐하듯 내뱉는 것이 더 좋다.
나랑 그는…

친하지 않으니까.

“부끄럽지만… 패배감을 느꼈습니다. 저보다 월등한 외모에, 월등한 정신력을 가진 강인씨에게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약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마치 자책을 하는 것만 같아 보이도록.

“그래서 억지로 발악했습니다. 일부러 평소라면 하지 않을 선택을 했습니다. …‘전투조’에 지원하는 것 말입니다.”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마찬가지로 시선은 허공을 향해 있었다.
지금의 나는 ‘쪽팔림 때문에 도저히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있음’을 연기해야 했다.

“누군가는 반발심에서 기인한 합리적이지 못한 선택이라 할지도, 강인씨를 향한 패자의 아집이라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잠깐의 망설임.
후에 이어질 말에 청자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한 기초적인 화술이다.
뻔하지만, 그만큼 뚜렷한 효과를 보이기에 남용하지 않도록 주의해가며 사용하곤 한다.


“…그대로 패자로 남기는 싫었습니다. 힘겨운 일에  돌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여태까지 그래 왔듯 망상만 하는 것이 아닌, 직접 손과 다리를 움직여 움켜쥐어 보고 싶었습니다. 비록 실패한다고 해도요.”


목소리에 실린 힘을 차근차근 높이기 시작했다.
이강인을 바라보지 않아도  수 있었다.
그는 내가 일방적으로 쏟아 내는 말을 무언가에 홀린 듯 듣고만 있었다.


“저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제게 있어 강인씨는 경쟁자입니다. 언젠가 이겨야 할 대상이죠.”

기나긴 나의 말이 슬슬 끝을 보여왔다.
다행히 이강인은 분위기에 잘 휩쓸려 주었다.
그는 중간에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경청했다.
고맙게도.

“그래서 강인씨와 친해지고 싶었습니다. 지금 제가 강인씨를 질투까지 하는  너무 꼴사납잖아요?”


말을 끝맺으며 고개를 돌려 이강인을 바라봤다.
미간은 살짝 모으고, 눈은 의식적으로 크게 뜨며, 입술은 끌어 올려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보인다.
고개를 약간 들어 햇빛을 받아 얼굴 굴곡의 음영을 지웠다.

거울을 보며 연습하던 ‘자신감 넘치는 표정, 야외버전’이다.


‘하나. 둘. 셋.’


“앗!…”


속으로 3초를 센 뒤, 표정을 풀었다.
그리고 정신이  척을 하며 놀란 얼굴을 했다.


“…아… 저를 전혀 모르실 텐데, 너무 갑작스럽게 제 얘기만 했네요!… 재미없으셨죠? 공감도 하나 안되셨을 테고. 불쾌해하셔도 제가 할 말이 없네요…”
“아! 아닙니다! 전혀!”
“죄…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쌓인 말이 막 나와버려서…”


나는 횡설수설 변명하는 척을 했다.
일부러 어색한 표정을 지어냈고, 당황한  손을 허공에 내저었다.


“원래 이런 말을 하는 성격이 아닌데, 어쩌다 보니 감정이 격해져서…”
“좋은 이야기를 들었네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왠지 저까지 의욕이 샘솟는 기분입니다.”
“하아… 정신이 드니 엄청나게 쪽팔리네요.”
“하하하하! 창피할 것 없습니다! 제 눈에는 보기 좋았어요. 하하하!”

나는 쪽팔려서 열이 오른 척 얼굴에 손부채 질을 했다.
동시에 냉철하게 이강인의 표정을 읽어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웃음을 그치지 않고 있었다.
 만남과 달리 그의 표정은 한결 시원해 보였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꺼풀 벗겨  듯한 모습이다.


마치, 해가 진 깊은  속을 혼자 거닐 때.
뒤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확인하기 위해 긴장한 채 가려진 수풀을 걷었더니…
귀여운 새끼 토끼가 낸 소리란 걸 보고, 귀신이나 맹수인 줄 알고 긴장한 자신이 우스워 웃는 것 같았다.

…성공했나?

“…내가 과거와 달리 당황하지 않았기에… 그래서 그렇게 된 거였군… 나비효과인가…”
“예? 뭐라고 하셨죠?”
“아! 아닙니다.”


성공 했군.
이 육체는 청력이 좋다.
지금은 못 들은 척해야 하지만.
열심히 연기한 보람이 있다.

‘이걸로 의심은 사라졌겠지.’


이강인이 회귀하기 전에도 전투직이었다.
회귀 전, 그가 있던 훈련소에 내가 있을 리 없다.
나는 소설에 난입한 이방인이니까.

내 몸은 안 좋은 의미로 무척이나 눈에 띄는 몸이다.
초고도비만에, 키는 무척이나 작은 단신이다.
이런 특이사항을 가진 인간을 한번 보면 쉽게 잊을 리 없다.
그건 주인공도 마찬가지가 분명하다.

회귀 전.
자신이 같이 훈련한 훈련생 중, 없던 사람이 생겼다?
그것도 저런 눈에 띄는 사람이?
당연히 의심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 속인 것이 바로  이유다.
열심히 대가리 굴려 만들어낸.


이강인도 회귀 전에는 처음 이 세계로 전이했을 때 엄청나게 혼란스러워했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와중, 단 첫날에만  수 있는 다른 직군 배정자의 얼굴을 모두 외울  있을 리가 없다.
3달간 함께 먹고 자며 훈련할 예비 전투직들이라면 몰라도.
그렇기에 이강인은 전 회차의 내가 벌레잡이를 했으리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게끔 유도했으니까.

“강인씨는 제 은인이죠. 저를 망상에서 현실로 일깨워주셨잖아요. 자의가 아니라고 한들, 감사한  감사한 거죠.”
“이거 참, 제가 한 것도 없는데…”
“아니에요. 강인씨가 없었다면 평소처럼 몸이 편한 벌레잡이를 했을 겁니다. 그러면 상위 계급이 될 기회조차 없었을 테고요.”

좋아.
이제는 나를 의심하고 있지 않다고 확신했다.
분명 자신의 행동 탓에 나비효과가 발생한 것이라고 여기겠지.
그의 눈에 나는 내면의 열등감을 이겨내고자 도전한, 의심하기 모호한 사람으로 비칠 것이다.

그런 그의 이어질 행동은 무엇일까?


‘나를 자신의 옆에 두겠지!’

이강인에게 나는 회귀 전과 달라진 첫 번째 이변이니까, 더 이상의 나비효과를 막기 위해 나를 옆에 둘 것이다.
내가 이강인과 따로 행동하다 그가 알고 있는 미래에 변수가 생긴다면?


현명한 사람이라면 분명 그런 일을 예방하고 싶을 것이다.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왠지 저도 찬영씨가 상당히 친근하게 느껴지네요. 하하!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보도록 하죠!”
“정말입니까? 하하! 다행이네요. 적어도 제 스스로가 꼴사나워지지 않아서.”
“이거 따라잡히지 않게 노력해야겠는걸요? 저를 따라잡는 것, 쉽지 않을 겁니다.”
“쉬울 거라 생각  했습니다. 저도 나름 전력을 다해 부딪힐 거라.”

씨익.

역시!
예상이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이걸로 최초로 정해둔 목표는 달성인 건가!’


이로써 겉은 서로 간 친분이 있는 관계지만…
이강인은 나의 돌발 행동을 감시하고, 나는 ‘주인공’의 돌발 행동을 감시하는 비이상적인 관계가 완성되었다.
첫걸음이 성공적이다.


“일어서! 이제 출발한다!”

휴식의 끝을 알리는 광년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앉아있던 훈련생들이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나 또한 발목을 풀며 다시 이동할 준비를 했다.


“찬영씨, 체력이 꽤 남으신 것 같은데… 가는 길에 잡담이나 할까요?”
“저야 좋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