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6)화 (6/310)



〈 6화 〉테라포밍

“이곳이 우리 쉘터의 중앙 지휘소다. 이곳에서 훈련소 입소 수속을 밟게 되면 자네들은 정식 훈련생이다. 본 교관도 앞으로 훈련생들에게 말을 놓도록 하겠다.”
“브랙, 그거 알아? 너 진짜 FM충이야.”
“칭찬인가? 고맙다.”
“하… 꼴통 새끼. 그래 칭찬이다. 칭찬.”

현대의 문명을 전부 잃어버리고 사람의 손으로만 지어진 건물은 어떻게 생겼을까?
나무와 말린 덩굴을 엮어 만든 나무집이나, 땅을 다지고 입구를 막은 동굴을 예상했다면 틀렸다.

의외로 세련되고 튼튼해 보이는 외벽을 가진 거대한 건물이 우리를 반겼다.
자세히 보니 건물 전체에 분해와 조립을 염두에  것 마냥 작은 블록 형식으로 나누어진 이음새가 보였다.

‘그 이전에… 저건 전부 금속이지.’

소설 설정을 알고 있는 나는  자재들이 가볍고 튼튼하면서, 복잡한 이름을 가진 합금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참고로 현대에서도 존나게 비싸고, 존나게 가공이 힘든 금속이다.
가공이 힘든 금속이 왜 지구도 아닌 이곳에 있냐고?
곧 알게 된다.

“꼴들이 살면서 처음 KFC 본 촌놈 같네. 킥! 그만 두리번대고 따라와!”


사람들은 건물 안에 들어서도 주변을 두리번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쉘터 내 가장 중요한 건물이라고 해도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곳곳에 현대의 손길이 닿아있었다.
시계, 유리, 그리고 전기까지.

내부에 있던 사람들은 바쁘게 돌아다니며 일을 하고 있었다.
가끔 우리를 향한 짧은 시선 또한 느껴졌다.
이 장소에 있으면 마치 이곳이 지구의 조금 이색적인 연구소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기 저 눈에 띄는 웜홀만 없었으면.

“저기… 저건 뭔가요? 저것도 마법 같은 것인가요?”
“아. 저거? 저거 지구로 통하는 차원 문이야. 우리가 만든 건 아니고, 원래부터 있었어.”
“지구! 지구로 통하는 통로라고요?”

그 말에 전원이 깜짝 놀랐다.
물론 나와 주인공은 제외하고.
무리 내에 작은 소리가 소근소근 들려온다.
앞서 걸어가는 교관은 듣지 못하겠지만, 나는 무리내에 있었기에 들을 수 있었다.
 육체의 청각이 좋았던 이유도 있고.

“뭐야, 돌아갈 수 있는  아니야?”
“저기로 들어가면…”
“근데 위험해 보이잖아요… 부작용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요?”
“그러고 보니 블랙홀에 맨몸으로 들어가면 분자 단위로 산산이 찢긴다고 하던데…”
“블랙홀처럼 위험한 것이었으면, 저렇게 차단막 하나 없이대놓고 내놓지 않았겠죠. 제겐 오히려 안전해 보이는데요?”

실제로 저 웜홀은 지구와 이어져 있다.
아마 웜홀의 입구 쪽에는 어느 나라의 정부에게 발견된 즉시 그 자리에 건물이 지어져 있지 않을까?
소설 속에 묘사는 없었기에 나도 추측만 할 뿐이었다.

“이익! 나는 이대로 못 살아!”


그때였다.
앞에 있던 사람들을 거칠게 밀치고 사람 한 명이 뛰쳐나왔다.


뭐지?
원작에는 이런 사건이 없었다.
나는 어떤 사건에도 빠르게 대응할  있게끔 온몸을 긴장시킨 채로 돌발 행동을 한 사람을 쳐다보았다.
누군가 했더니 광년이에게 찍힌 일본인, 마다치 켄지였다.


“훈련? 전투? 내가 왜 그런걸 해야 해! 잘 있어라 썅년아! 나는 지구로  거야! 흐하하! 너 같은 미친년이나 실컷 괴물들이랑 싸우다 뒈져!”
“엇? 안됩니다! 멈추세요!”

마다치 켄지는 자신을 실컷 두들겨 팬 광년이에게 후련한 표정으로 욕을 퍼붓고, 곧장 차원문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차원문 주변을 연구하던 연구원들이 제지하려 했지만,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마다치 켄지를 막지 못했다.
그제서야 그의 목적을 깨달을 수 있었다.

‘미친…’


나는 곧 이어질 미래를 예상하고 이마를 짚었다.
내가 다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차원문에 가까이 접근하는 데 성공한 마다치 켄지는 멋지게 차원문으로 몸을 날렸다.
마침내 허공을 가르던 몸이 차원문에 닿았고…

우당탕!

“케헤엑!”


몸은 차원문을 관통하여 차원문 뒤쪽 바닥에 얼굴부터 처박혔다.
당연하지만 차원문은 아무런 변화 하나 없이 여전히 그 위치에 존재했다.


“푸하하하핫!! 아하하하!! 들었어? ‘나는 지구로 갈꺼야!’ 존나 멋있어. 푸하핫!!”
“킥킥…”
“크흡…”

건물이 떠나가라 웃는 사람은 당연히 광년이였다.

솔직히 나도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바닥에 처박힌 마다치 켄지의 어리둥절한 얼굴을 보면 도무지 참으려야 참을 수 없었다.
 모습이 얼마나 어수룩해 보였던지 소란을 구경 온 연구원 몇 명 또한 입을 가리며 웃는 것이 보였다.

“야,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구나! 설마 했는데, 어떻게 예상한 그대로 행동 하냐? 존나 웃겼어. 아 아직도 눈물 나네. 크히힉!”
“이…이게 어떻게 된… 분명 지구랑 이어져 있다고… 이! 이이!… 나를 속였구나! 이 개 같은 년!”


사람의 얼굴이 저렇게 시뻘게 질 수 있구나.


분노 때문인지 고통 때문인지 쪽팔림 때문인지 얼굴을 검붉게 물들인 마다치 켄지가 소리쳤다.
게다가 바닥에 얼굴을 부딪힌 충격으로 코피가 나오기 시작했다.
 모습에 몇몇 연구원들은 웃음을 참지 못해 주저앉기까지 했다.


푸흐흐흐…
- 아… 웃으면 안 되는데… 킥킥…


“…후우. 방금 내가 말을 꺼내려 했지만,  차원문은 일방통행이다. 지구에서 이곳으로밖에 이동하지 못하지. 차원 문이라기 보다는 입구와 출구 같은 개념이라고 보아도 좋겠군.”

“이야, 일부로 말 안 한 보람이 있어. 이 새끼 눈치가 좆같이 없어서 개폐급인줄은 알았는데 이쯤 되면 존나 웃기네! 한 바퀴 돌아서 호감이야. 와… 벌써 훈련 들어갈 때가 기대된다. 넌 오늘부터 내 장난감이다. 알겠어?”

“자…장난감이라니… 사람이 어떻게…”
“너 아까 나보고… 뭐? 썅년? 미친년? 뒈져라? 딱 2시간 전처럼만 처맞을까?”
“하…하지만… 아까 그게 별명이시라고…”
“하긴, 우리가 서로 별명을 부를 만큼 친하긴 하지? 왜 이 씨발놈아. 이참에 서로 말 놓자고는 안 하고?”

“…하겠습니다… 장난감…”

마다치 켄지는 고개를 숙이고 예비 훈련생들의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중앙 지휘소 건물은 지상 위로 총 3개의 층이 있었다.
교관들의 안내에 따라 마지막 층을 올라가자, 보기만 해도 높은 사람이 있을 것 같은 방이 보였다.
다른 방들은 전부 문이 한 짝으로 되어있었지만, 이 방의 문 만큼은 2개의 문짝으로 되어있었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끼익…

방은 무척이나 넓었다.
50명의 인원이 단번에 들어찼음에도 넉넉할 만큼.

“어서 오세요. 이번 기수의 훈련생들인가요?”
“아직은 예비입니다.”
“하하. 그렇네요.”

전형적인 영국계 미국인이다.
진갈색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쳐내 위로 올린 스포츠 컷, 구레나룻에서 턱 라인까지 이어진 친 커튼(Chin curtain) 수염.
멋지게 늙은 서양 중년인의 표본이었다.


“저희 쉘터는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남자가 나를 발견하고 가볍게 웃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

“다시 보네요.”
“이런 대단한 분이셨습니까?”
“하하. 제가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서요. 매달 신입들을 마중 나가고 있죠.”
“의사 겸 물리학자 겸 생물학자라니… 쉘터장님은 대단하네요.”
“감사하게도 대학에서 학위 동시 취득을 허가해 줬거든요.”

나는 그의 천재성을 칭찬한 것인데…
그는 자신의 업적이 관대한 대학의 덕이라고 공을 돌렸다.
평범한 사람은 동시 취득을 허가한다고 한들 단 하나도 제대로 따내기 힘들다.
그런 그의 천재성과 겸손함을 인정받아 모두 기꺼이 그에게 리더의 자리를 맡긴 것이겠지.

“쉘터장님이라고 부르시지 마시고 닥터라고 불러주세요. 다들 그리 부르거든요. 마음에 드는 별명이기도 하고.”
“닥터라, 많이 어울립니다.”
“그렇죠? 하하하.”

눈앞의 있는 남자는 소설에 처음 들어왔을 때 만난 나의 이력을 조사하던 남자다.
몰래 전투직을 빼라며 배려해준 바로 그 사람.
설마 그 사람이 쉘터의 리더라니, 소설속에 묘사되지 않은 이스터에그다.
그래서 나는 그의 얼굴을 본 뒤, 찾아온 당황을 특성을 이용해 빠르게 잠재워야 했다.


“그나저나 신기하네요. 차원문은 일방통행인데, 지구와 통신은 가능하다니.”

“오! 흥미 있으신가요? 그건 지구 쪽에서 차원문을 향한 물리력이 유지가 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에요! 지구에서 차원문을 향해 사과를 던지면, 이 차원문에서 운동력을 가진 사과가 날라오죠. 전기 또한 전자의 이동에 의한 물리현상의 일종이기 때문에 이를 응용해 유선으로 이어진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하하…”
“이런, 죄송합니다. 철학과라고 하셨죠? 관심 없으셨겠네요… 제가 한번 빠지면 저도 모르게 말이 많아져서.”


나는 어깨를 으쓱여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는 어필을 했다.
잡담도 좋지만 빠르게 용무를 마쳐야 한다.
뒤에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 말씀하신 대로 출신지는 한국의 서울, 남겨진 재산은 없고… 안부를 전할 친구나 부모님도 없다… 맞습니까?”
“예.”
“흐음… 정말로 없습니까? 사정이 있으신 듯한데, 이번 기회가 아니면 지구쪽과 완전히 인연이 끊기게 됩니다. 아무래도 통신 장비는 쓸데가 많아 사적인 일로 사용하지 못하니까요.”
“괜찮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박찬영씨는 지금부터 훈련생 신분입니다.”

띠링!


=
[퀘스트] <완료>
내용: 전투 직군을 배정받으십시오.
보상: 50 카르마.
실패 패널티: 처음부터 재시작.
=

[50 카르마를 획득했습니다!]

드디어 첫 번째 퀘스트를 완료했다.
메세지를 보자 첫걸음을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당장 카르마로 할 수 있는 것들을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들뜬 가슴을 억누르고 닥터에게 배웅을 받고 방을 나섰다.

“그럼, 기회가 될 때 다시 보죠.”
“예. 무탈하길 바랄게요. 박찬영씨.”


*

“허억… 허억…”

나를 제외한 사람들의 입에서 숨찬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입소를 마치고 훈련소로 향하는 길.
훈련소는 쉘터의 외각, 가장 북쪽에 있었다.
의외로 쉘터는 엄청난 넓이를 자랑했다.
그야  달에 인구가 100명씩이나 증가하니 당연한 이야기인가?

가장 중심에 있는 중앙 지휘소에서 훈련소로 향해 3~4시간을 걸었음에도 도착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전부 지쳐 보였다.
물론 아무런 짐 없이 지급받은 수통만  채 맨몸으로 이동하였기에 낙오자는 없었지만…

의외로 나는 버틸만했다.
걸어 다니면서 떨어지는 체력의 속도보다, 특성의 덕에 회복되는 회복력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목이 무척이나 마른 것은 어쩔 수 없다.
당장 수통을 들어 전부 마셔버리고 싶었지만, 얼마나 뒤 도착할지 모르기에 최대한 아껴 마실 필요가 있다.


“잠깐 휴식한다! 전과 마찬가지로 10분  출발이다!”
“으헉!”

털썩!


남자 여자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오가는 길 한가운데에 주저앉았다.
물론 나는 살짝 숨찬 수준이었기에 서서 잠깐 숨만 고르는 것으로 충분했다.

남은 10분의 시간 동안 주위를 둘러보았다.
쉘터 외곽의 건물들은, 중심 쪽 주택가의 세련되고 깔끔한 퀄리티와 상당히 차이 났다.
이쪽은 가공이 덜 된 원목을 이용해 지어진 건물이 줄지어있다.
급조한 티가 팍팍 났다.


힐끗 힐끗…

그곳에 주거하는 사람들이 우리들을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확실히 이제는 쉘터의 외각에 가까워진 것이 체감되었다.
딱 봐도 낙후되어 보이는 시설, 헤지고 거친 옷, 충분히 먹지 못해 비쩍 마른 팔과 다리…
서열이 낮은 사람들은 쉘터의 외곽에 살고 있나 보다.


무엇보다 눈동자에 생기가 없다.
오로지 우리를 향한 거부감과 배척만이 담겨있었다.
약간의 두려움도.


그야 그럴만하다.
우리들은 아직까진 훈련병이라고 하더라도 3개월 뒤면 넘볼 수 없는 서열에 위치해 있을 테니까.


“안전한 삶을 사는 대신 바닥을 치는 생활 수준과, 목숨을 걸고 싸우는 대신 받는 높은 대우 중의 선택이라…”
“그들이 틀린 것은 절대 아니죠. 그저 선택을 했고, 받아들인 결과일 뿐입니다.”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깜짝 놀란 속을 숨기기 위해 표정을 관리해야 했다.

‘이강인!… 네가 왜?’

나에게 말을 건 사람은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회귀자 이강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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