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5)화 (5/310)



〈 5화 〉테라포밍

휘익-! 퍼억-!

“크윽…”
“개새끼야. 자세 똑바로 잡아라. 못 막으면 뼈 나간다?”


파악! 탁-!


광년이가 다시금 도약해서 달려든다.
그녀와 맞서는 남자는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고 막는 것을 반복하였다.
잘생긴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진 것을 보면 피하는 것조차 무척이나 버겁게 느낀다는 것을  수 있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광년이가 몸을 움직이는 속도가 전혀 범상치 않았으니까.


지구에서 볼 수 없었던, 인간을 초월한 속도로 몸을 움직이며 주인공의 사각을 찾아내었다.
허무하게 허공을 가르는 이강인의 반격과 반대로, 광년이의 주먹은 착실하게 신체를 타격하였다.

“상태창.”

띠링!

=
[이름] 이강인
[직업] 회귀자
[힘] 12  [민첩] 13
[체력] 15 [지능] 9
[기교] 13 [매력] 63


[특성] 『팔방미인』『강인』
=

주인공 답게 특성이 2개인가…
그것도 보기만 해도 무척이나 좋아 보이는 것들로.

아무리 주인공이라고 하더라도 기본적인 스텟의 차이가 몇 배나 난다.
저렇게 버티는 것만 해도 자신의 재능을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그것이 이강인의 목적이겠지.
재능을 증명하고 교관들의 지원을 한몸에 받는 것.
도박에 가깝지만, 성공하면 무엇보다 빠르게 성장할 수 있으리라.

‘젠장! 그런  신경쓸 때가 아니야!’

어째서 소설과 내용이 달라졌지?
신이 소설 속 세상을 만들면서 수작을 부린 건가?

아니, 그것은 아니다.
아기천사는 소설의 그대로를 만들었다며 내게 못을 박아두었다.
천사에게 미리 물어봤던 질문이니 확실하다.
그렇다면 짐작 가능한 이유는  한 가지.


“나라는 변수가 생기며 내용이 달라졌다?… 벌써?…”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아직 소설에 진입한 지 1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심지어 이건 내가 제일 경계하고, 조심했던 상황이다.


나는 소설을 읽었기에 연중 되기 전까지의 미래를 알고 있다.
당연하지만 미래의 지식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원작의 그대로 흘러가게끔 변수는 최대한 줄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미래의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지금껏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끔 행동을 제한했었다!
혹시 놓친 것이 있었나?
지금까지 나의 행적을 빠르게 되새기기 시작했다.

…젠장 모르겠다.
도저히 광년이의 행동 변화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다.
절대로 튀는 행동은 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벌써 미래가 바뀌어버린 것이지?


턱! 빠악! 턱!

“벌써 지쳤어? 팔이 느려졌는데? 음… 좋아. 인정할게. 이 정도면 웬만한 머저리에게 개갤 만한 실력은 되네. 물론 그렇다고 너를 용서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야. 처맞을 짓을 했으니 처맞아야지. 안 그래?”

“하아… 하아…”

“나는 씨발, 눈치 없는 새끼들이 싫어. 지구에서는 눈치가 없으면 본인만 손해를 보지만, 이곳에선  전체가 몰살되거든. 그런 의미에서… 너랑 저 새끼는 감점. 알아?”

광년이는 아직까지 쓰러져있는 중년 남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후우… 좋아. 진정됐어.’

미친듯이 요동치던  감정도 빠르게 잦아들었다.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자연치유, 생각보다 아주 좋은 특성이야.’

이정도면 갑작스러운 기습이나 배신에 거의 정신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다.

미래가 틀어졌지만, 괜찮다.
언제까지고 원작 그대로 따라갈 생각은 없었다.
언젠가는 나의 이익을 위해 원작을 틀 생각이었고, 지금이 그때라고 생각하면 된다.

또한 굵직한 사건들은 광년이와 이강인의 사이와 관계없이 일어난다.
내가 이용할  있는 사건들은 아직까지 무척이나 많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무척이나 집중해서 상황에 따라가야 할 필요가 있으리라.
지금 이 변수가 얼마나 크게 돌아올지 아무도 모르기에…

나는 광년이를 쳐다보았다.
마나를 담은 공격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나름 손속에 사정을 둔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손쉽게 주인공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녀는 미친년이지만 놀랍게도, 아주 아주 놀랍게도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전사이자 교관이다.
아무리 폐급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그녀의 손을 거치면 엘리트 전사가 된다.
 기수의 총 교육기간이 3개월이니, 고작 3개월 만에 전사가 그녀의 손에 탄생하는 것이다.
그것도 수십 명이나.

둘의 싸움은 서서히 끝을 보이고 있었다.
점점 그녀의 공격을 피하지 못하였고,  막는 횟수보다 유효 타격 되는 수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크윽!…”


보기만 해도 고통이 느껴진다…
이제는 체력이 다 떨어져 악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제야 가만히 팔짱을 끼고 구경하던 브랙이 나섰다.
주먹을 올려 이강인의 얼굴을 내려치려던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그만하지.”
“놔. 아직 멀었어. 이 새끼 눈을 봐. 아직 안 꺾였어.”
“더 하면 내일 훈련에 지장이 있다.”
“그냥    부러뜨리고 4개월 동안 치료한 뒤, 다음 기수랑 같이 훈련시키면 되잖아.”
“이 예비 훈련생과 7개월 동안 얼굴 보겠다고? 그냥 지금 그만둔 다음 3개월 뒤 보내.”
“…씨발. 알겠으니까 놔.”

팍!

광년이는 잡혀있던 팔을 뿌리친 뒤, 브랙의 뒤로 걸어갔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본 브랙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바닥에 대자로 쓰러져 쉬고 있는 이강인과, 중년 남성에게로 다가와 몸을 살피기 시작했다.


“말은 저리해도 어디 금이  곳은 없을 겁니다. 일어나서 대열에 합류하세요.”
“예… 분란을 일으켜 죄송했습니다.”


이강인은 순순히 브랙의 말에 따라 지친 몸을 일으켜 우리에게 걸어왔다.
사과의 목소리에는 진정성이 담겨있어 브랙은 의외라는 눈빛을 보내었다.

당연하다.
이강인의 목적은 교관과의 대립이 아니라 자신의 증명과 지원이니까.
선을 잘 탈 필요가 있다.


그러나 중년 남성의 행동은 달랐다.


“으윽! 저 다리가 부러진 것 같습니다. 아까 저년한테 맞을 때 다리에서 이상한 소리가…”
“음? 그럴 리가…”
“아악… 다리가 너무 아픕니다… 제가 선천적으로 뼈가 약해서…”

남성은 다리를 부여잡고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을 지었다.
나는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저거… 꾀병이네.’

정말로 다리가 부러졌다면?
그럴리가 없다.
 소설에서 사람을 조절하며 패는데 광년이 만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없다.
아마추어도 아니고 그녀가 그런 실수를 할 리가.

“이런 씨발놈이!”

아니나 다를까 뒤에서 뚱한 표정으로 딴짓하던 광년이가 남자의 말을 듣고 격분해서 달려왔다.
나조차 남자의 말이 꾀병임을 알았는데 직접 때린 그녀가 모를까?

확실히 광년이의 말 대로 남자는 눈치가 없는 것이 분명하다.
다친 사람을 치료해준다는 말을 듣고 꾀병을 부린 모양인데, 제 무덤을  것이다.
저렇게 어설프게 머리 좋은 사람이 가장 고생한다.


“이 개새끼가 입을 털어? 너 시발 덜 맞았구나?”
“히익! 아…아니!… 저는 진짜로 아파서…”
“그렇겠지 이 시발놈아. 피해라. 안 피하면 죽는다.”

갑자기 광년이는 옆에 있던 어지간한 경차만 한 돌덩이를 들어 올렸다.
…근력이 강한  알고 있긴 했는데 이 정도로 강했나?
과연  무게는 그녀에게도 버거웠는지 힘을 쓰느라 얼굴이 붉어졌다.
아니, 자세히 보니 분노 때문에 얼굴이 붉어진 것 같다.

힘겹게 머리 위로 돌을 들어 올린 그녀는…
그 커다란 돌덩이를 중년 남자에게 집어 던졌다.

“으…으아악!!”


콰--앙-!!

“콜록!콜록!”

거대한 흙먼지가 퍼지며 시야를 가렸다.
하지만 나는 흙먼지가 피어오르기 전 똑똑히   있었다.
돌이 날라오자 다리가 부러졌다던 남자가 벌떡 일어나 몸을 던져 피한 것을.

역시 부러졌다는 소리는 꾀병임이 드러났다.
아주 과격한 방식으로.
다리가 부러지면 일어서는 것은커녕, 아파서 땅에 딛지도 못한다.

“야 이 시발놈아. 다리가  어째?”
“아… 그… 제 착각이었나 봅니다…”
“너 이름이 뭐야.”
“그… 그건 왜…”
“대답.”
“그러니까… 물어보시는 이유를…”
“대다압!!”
“아다치 켄지입니다!”
“일본인? 뭐 좋아. 넌 내가 주시한다. 대가리가 멍청해서 무슨 뜻인지 모르지? 너 찍혔다고. 나한테. 앞으로 편하게 생활할 생각은 접는 게 좋을 거야. 내가 또 괜히 미친년이 아니거든.”
“히익!…”


광년이는 살기 등등한… 아니, 광기 등등한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소설에는 저렇게 대놓고 찍힌 인물은 없었는데…
주인공과 광년이가 마찰 한 것이 이런식으로 돌아왔다.
물론 내 알빠는 아니다.


안찍혀도 힘든 것이 그녀와의 생활이다.
도대체 찍히게 되면 얼마나 지랄을 할까?
어후 끔찍해…

“두 번 말 안 해! 매달 지구로부터 무작위 100명이 이곳으로 전이된다! 너희는 그 재수없는 100명 중 하나이고! 이유는 몰라! 마찬가지로 처음 보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 또한 원인 불명이다! 신의 뜻인지, 고등 생명체의 장난질인지, 밝혀진 건 없지만 그냥 그렇게 이해해!”

 소설의 제목인 ‘테라포밍’.
말 그대로 다른 차원의 행성을 개척하는 내용이다.


“이곳은 자원이 너무나 부족하다! 그에 비해 먹여야할 입은 넘치도록 많지! 당연하지만 개인의 능력에 따라 다른 생활 수준을 보장받는다! 의사, 공학자, 과학자 등의 전문직들이 가장 큰 대우를 받는다!”

100명이 도착하면 가장 먼저 전문직을 분류하고, 장애인, 어린아이, 노인을 분류한다.
그리고 남는 것이 몸이 건강한 것 외에 장점이 없는 인원들이다.
바로 우리.

“너희들은 쓸모없는 인간으로 판단되었다! 쓸모없는 기술을 가지고 있거나, 그마저도 없는 사람들! 그것이 너희다! 그런 놈들을 먹여 살릴 만큼 우리 쉘터는 부유하지 않아!”


어린아이와 노인마저 일하고 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은 각자의 전문분야에서 맡은 일을 하고 있다.
지금 당장 1인분을 못하는 사람들은 우리를 제외하고 없었다.


“그런 네놈들이라도 제구실을 할  있다! 성별, 나이, 출신 예외는 없어! 전원 3개월간 훈련을 받으며, 수료 즉시 전투조로 투입된다! ‘전투’조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설명 안해도 알겠지?”

광년이는 자신의 신체에 새겨진 상처를 슬쩍 내비쳤다.
그것으로 설명은 충분했다.


충격적인 말에도 반항은 하나 없었다.
그야 사람을 그렇게 무자비하게 패는 사람 앞에서 배짱 좋게 불만을 말할 사람이 있을 리가.

심지어 돌을 던진 행위는 좋게 봐줘야 살인미수다.
말 그대로 미친년 앞에서 대놓고 반항할 만큼 간이 부은 사람은 없었다.


“전투직 종사자들은 전문직보다 뛰어난 대우를 받는다. 지구에서 고만고만하던 너희들이 상위 카스트가 될 기회라고?”
“저… 그… 위험하지 않나요?”

“당연히 위험하지. 그러나 훈련소 중도 퇴소는 자의로 불가능하다. 인권? 선택의 자유? 개인의 다양성 존중? 좆이나 까. 오로지 교관의 판단하에 도무지 개선이 불가능하다 판단될 때만 퇴소할 수 있다!”


“퇴…퇴소 되면 어떻게 되나요? 설마 괴물들이 있는 숲에 버려지는 건…”


그 말에 광년이가 사악하게 웃음 지었다.
 웃음에 나와 주인공을 제외한 사람들이 긴장에 침을 삼켰다.


나는 진실을 알고 있기에 그녀가 겁을 주는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이곳이 막장 세계관이라도 사람의 죽음을 쉽게 보지는 않는다.
기본적으로 21세기에 살던 현대인들이 전이한 세계인 것이다.

그녀가 말한 뉘앙스처럼 상황이 극단적이지 않다.
당장 굶어 죽는 사람은 적다.
끼니를 거르는 사람이 많을 뿐…


“뭐, 사실 다른 직군으로 배정받지. 그렇게 배정받은 직업 대부분이 벌레잡이 아니면 잡일이야.”

그 말에 다른 사람들 모두 눈에 띄게 얼굴이 환해졌다.
만약 퇴소당하더라도 확정적으로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버…벌레잡이가 뭔가요?”
“말 그대로 벌레잡이야. 숲에서 벌레를 잡아 모아오는 거지. 주로 노인, 어린이, 장애인, 그리고 퇴소당한 쓰레기들이 하는 일이고.”
“예? 벌레들을 왜… 혹시 벌레를 식량으로 쓰나요?…”
“워, 훈련 일정이 아니라 벌레잡이 일에 흥미가 많나 보네? 존나 의심스럽게.”
“아…아니… 그냥… 알아두면 좋을  같아서요…”

씨익.


“그래? 그런 거로 하지. 아무튼, 벌레를 우리가 왜 먹어? 먹는 놈은 따로 있는데.”


께에에엑-!

광년이는 턱짓으로 치킨을 가리켰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이해하였다.
모은 벌레들은 전부 치킨의 양식에 사용되리라.


모인 사람들, 특히 여자들은 엄청나게 안심하는 눈치였다.
아마 여기 모인 인원 대부분이 훈련에서 퇴소 판정을 받게끔 행동할 것이 눈에 보였다.
가령 교관에게 반항한다든가, 명령에 복종하지 않다던가…
아무리 고되고 더러운 일이라 해도, 괴물과 싸우며 죽음이 스쳐 지나가는 전투직보다는 훨씬 나을 테니까.

…과연 그리 흘러갈 정도로 교관들이 만만할까.
이곳은 폭력이 금지되지 않은 세상이다.
어디까지 ‘교육’이라는 명목 아래 허용되는지…
이 사람들은 깨닫지 못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전투직에 종사하는 자는 쉘터 내 최고의 대우를 받습니다. 물론 현대에 비하면 부족한 면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이곳은 역설적으로 현대에서는 있을  없는 일까지 가능합니다.”
“현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뇨??”
“아무래도 이곳은 계급이 대놓고 존재하다 보니…”
“그래! 만약 네가 벌레잡이가 되고… ‘이놈’이 전투직이 된다? 너는 그럼 얘가 대달라 할 때마다 대줘야 해.”

휘익-!


눈치 빠른 훈련생 몇몇이 깜짝 놀라 광년이가 가리킨 ‘이놈’을 일제히 쳐다보았다.
나는 표정이 무척이나 썩어들어갔다.
광년이가 지목한 ‘이놈’이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이런 씨발, 이렇게 많은 사람 중 하필 왜 나를 예시로 들어?

사실 나는 그 답을 알았다.
눈에 띄고, 존나게 못생겼으니 그렇겠지.


“예? 대…대달라니… 그게 무슨…”
“섹스 말이야 시발년아. 섹스! 아 좆같네. 이번 기수 눈치 없는 새끼들이  이렇게 많냐. 존나 꼴받게.”
“저…정말이에요?”


하아…


광년이의 곁에서 한숨 소리가 새어나온다.
다른  명의 교관인 브랙이 내뱉은 한숨이다.

“…이봐, 너무 극단적인 예시잖아. 물론 공식적으로 성 상납은 금지를 하고 있긴 하지만… 일부가 암암리에 행하곤 합니다. …아니, 부끄럽지만 사실 흔하게  수 있습니다.”
“마… 말도 안 돼!…”
“이봐, 이제야 조금 감을 잡은 것 같은데… 퇴소 조치는 절대 좋은  아니야. 서열이 아주 밑바닥으로 처박히는 것이니까. 뭐, 직접 쉘터 내 상황을 보면 내가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절실하게 깨달을걸?”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고 있다.
특히 여자들은 내가 벌써 성 상납을 요구한 것 마냥 혐오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씨이이발…
가만히 있는 나한테 왜 그러냐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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