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5화 〉 epilogue. 새 가족이 너무 늘어난다. (19금 일러스트) (후방 주의)
* * *
“다녀왔습니다!”
집이다!
오랜만에.
정말로 오랜만에 집에 돌아왔다.
돌아오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다. 정말로.
너무너무 그리웠다. 몸이 근질거려서 기절할 뻔했다.
“어서 와, 선후야.”
내가 집에 돌아오고 싶었던 첫 번째 이유.
엄마가 잔뜩 부른 배를 안고서 나를 맞이했다.
“엄마!”
배가 눌리지 않게 조심하면서 엄마를 끌어안는다.
오랜만에 엄마의 체온을 느꼈다.
마음의 허전함이 채워진다.
그리움이 행복으로 바뀐다.
“고생했어, 우리 아들.”
“응.”
정말이라니까.
눈물 나게 고생했다.
이번 촬영은 거친 액션도 많고 스케쥴도 빡빡했으니까.
이런 건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마지막 촬영을 마치자마자 곧장 도망 온 참이었다.
“아! 엄마, 또 이거 보고 있었어?!”
거실 TV에는 오늘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온 넷플릭스 드라마, ‘우리는 죽지 않는다’가 나오고 있었다.
좀비 아포칼립스 물이라 임신 중에는 그렇게 보지 말라고 했는데.
“게다가 하필 이 장면이야? 전에 본 거잖아. 뭐하러 또 봐?”
지금 나오는 장면은 여동생이 좀비에 물려서 돌아버린 주인공(나)이 좀비 무리를 향해 전기톱을 휘두르며 돌진하는, 피와 내장이 난무하는 클라이맥스 장면이었다.
만삭의 임신부가 이런 걸 보다니. 엄마는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우리 아들이 보고 싶대.”
“안 된다니까. 태교에 안 좋다고.”
“아들한테 아빠가 활약하는 장면을 보여줘야지.”
“나 참. 배 속의 아들이 뭘 안다고.”
그렇다.
지금 엄마의 뱃속에는 내 아들이 자라고 있다.
그것도 이달 출산 예정인 아들이.
내가 미친 듯이 촬영을 서둘러서 일정을 일찍 끝마치고 온 것도 엄마의 출산일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엄마의 사랑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서 아들만은 낳고 싶지 않았는데. 젠장.
……뭐, 그만큼 씨를 뿌려댔으니 그중 한 명쯤은 아들이 생기는 것도 어쩔 수 없겠지.
문제는 이 아들 외에는 죄다 딸이라는 거다.
젠장! 부러운 자식!
태어나자마자 가족 하렘이라니. 용서할 수 없다.
게다가 나의 엄마까지 빼앗아간 나쁜 놈이다.
태어나기만 해 봐.
스파르타로 키워줄 테니까.
“누나는?”
내가 일찍 오고 싶었던 이유 두 번째.
바로 누나다.
“누난 스포츠 센터 갔어.”
“또?! 그렇게 얌전히 있으랬더니! 엄마가 좀 말리지 그랬어?”
“네 누나가 엄마 말을 듣니?”
“하아. 진짜 내가 못 산다니까.”
나는 한숨을 푹 쉬며 바로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나는 한참 신호음이 울리고 나서야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골프공 치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만 들어도 어딘지 알 수 있었다. 아파트 지하에 있는 실내 골프 연습장이었다.
“누나! 지금 뭐 하는 거야?”
『뭐하긴. 운동하지.』
태평하게 대답하는 누나.
나는 손으로 이마를 감쌌다. 머리가 아프다.
“진짜…… 예정일도 얼마 안 남았으면서. 조금만 참으라니까.”
누나도 엄마와 마찬가지로 출산 예정일이 며칠 남지 않았다.
지금 저러고 한가하게 골프나 치고 있을 때가 아닌 것이다.
작년 겨울, 엄마와 낳은 첫째 소윤이를 보고 마음이 동한 누나는 가족과 상의도 없이 약을 끊었다.
그 결과, 겨울이 지나기도 전에 덜컥 임신에 성공, 곧바로 둘째를 가진 엄마와 나란히 배를 불리고 있는 것이었다.
“누난 그러다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잘못되긴 개뿔이. 가만히 있는 게 더 해롭거든? 내 몸은 내가 더 잘 아니까 쓸데없는 걱정 마셔.』
“하아…….”
『아무튼 끊어. 운동 마무리하고 올라갈 테니까.』
뚝.
누나는 두말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내가 못 살아.”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예전에 했던 걱정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누나가 애를 가지면 ‘아이는 강하게 키워야지!’라며 벼랑 위에서 밀어버릴 것만 같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나쁜 예상은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지 모르겠다.
누나가 처음 임신했다고 했을 때는 진짜 어떡하나 했었는데.
그래도 이 만큼 멀쩡히 출산일에 가까워지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큰 논란도 없었고 사고도 없었다.
오히려 누나 덕분에 ‘성공한 여성의 비혼 출산’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버렸다.
덕분에 바닥을 찍은 출산율에도 조금은 도움이 됐다곤 하는데, SNS에 자랑하는 용도로 무지성 인공수정을 받으려는 비혼모도 늘어나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나참. 아이를 뭐라고 생각하는 건지.
뭐, 그것까지 우리가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그런 건 나라님이 알아서 해결해야 할 일이다.
“엄마, 우리 소윤이는?”
임신한 엄마와 누나에 이어 내가 집에 빨리 오고 싶었던 이유 세 번째.
우리 큰딸 진소윤이다.
소윤이는 엄마와 나의 첫 번째 사랑의 결실이자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여자아이이며 아빠를 제일 좋아하는 공주님이다. 얼마 전엔 벌써 영상통화로 ‘아빠’라고도 불렀을 정도로 똑똑하기까지 하다. 혹시 우리 딸은 천재가 아닐까?
어떻게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있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귀엽다. 역시 엄마의 유전자는 위대하다니까.
엄마는 곧 나올 아들을 끝으로 ‘임산부 은퇴’를 선언했지만, 의무적으로 세 명 정도는 더 낳아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나라의 출산율 증진을 위해서라도. 기왕이면 딸로.
소윤이의 유일한 단점이란 너무 귀엽다는 것이다. 분명 크면 남자들을 홀리고 다닐 팜 파탈이 될 게 틀림없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늑대들의 청혼을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이 아빠는 벌써부터 걱정이었다.
“미소가 데리고 있어. 방송에 내보낸다고.”
“뭐?!”
나는 엄마 말을 듣자마자 부리나케 방송실로 달려갔다.
거긴 아이돌을 그만둔 뒤 전업 유튜버로 전향한 미소가 ‘찐남매 튜브’ 방송을 위해 집안에 만들어놓은 스튜디오였다.
“야, 진미소! 내가 그렇게 소윤이 방송에 내보내지 말랬지!”
“꺅!”
스튜디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자, 아니나 다를까 게임 캐릭터 코스프레를 한 미소와 공룡 잠옷을 입은 소윤이가 유튜브 생방송 중이었다.
“오빠! 깜짝이야!”
“압부~.”
아빠를 보고 활짝 웃는 소윤이.
“어이구~ 우리 소유니~~.”
나는 미소에게서 소윤이를 받아 안았다.
“우리 쏘유니. 아빠와쩌. 아빠 많이 보고 시퍼쩌?”
“바브~.”
“그래쩌? 아빠도 보고 시퍼쩌.”
역시 우리 소윤이는 귀엽다. 세상에서 제일 귀엽다. 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애가 나왔을까. 정말 천사가 따로 없었다.
“찐남매 튜브 시청자 여러분, 오늘의 비밀 손님! 대 배우 진선후 씨를 모셨습니다! 와~!”
“대배우 같은 소리 하네. 진미소 너, 내가 그렇게 소윤이 방송 내보내지 말랬지.”
찐남매 튜브는 요즘 인터넷 방송치곤 굉장히 건전한 편이지만, 아직 엄마 아빠도 제대로 못 부르는 아기를 방송에 출연시키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에이, 소윤이가 나오고 싶다고 했단 말이야. 소윤이도 우리 찐남매니까. 그치 소윤아?”
“아부우.”
“나 참.”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애가 뭘 안다고.
그나저나 나의 천사님은 어쩜 이렇게 귀여우실까. 이렇게 귀여우니까 시청자들이 소윤이를 보고 싶어 하는 것도 이해하지만 말이야. 소윤이만 나오면 시청자 수가 2배로 뛴다고도 하고. 하여튼 우리 소윤이가 너무 귀여워서 탈이라니까.
“오빠. 시청자분들한테 인사 한마디만 해줘.”
역시 진미소. 혼날 때 혼나더라도 시청자를 끌어올 기회는 놓치지 않는구나.
“안녕하세요, 찐남매 튜브 시청자 여러분, 오랜만입니다. 진선후입니다.”
나는 미소 말을 따라 카메라를 향해 인사했다.
소윤이가 나오는 건 좀 그렇다지만, 나는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찐남매 튜브에는 나도 신세를 많이 지기도 했고. 우리 가족의 열혈 팬은 여기 다 모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지금 찐남매 튜브는 인터넷 방송계에서 대기업 중의 대기업이 됐다.
이미 국내에는 비빌 만한 채널조차 없을 정도다.
전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우리는 죽지 않는다’의 단독 주인공인 진선후 대배우님조차 그 화력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오빠, ‘우죽않’ 이제 촬영 다 끝났어?”
“어.”
“엔딩 어떻게 되는지 알려줘. 지금 채팅창 난리 났어.”
“너 제정신이니? 그러다 내가 진짜 말하면 어떡하려고 그래?”
“나한테만 살짝 알려줘.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
참나. 얘는 생방송 중에 무슨 소리야?
당연한 얘기지만 결말 스포일러는 심각한 계약 위반이다. 여기서 내가 말해버리면 그 말이 진실이든 아니든 엄청난 배상금을 물어내야 할 수도 있다.
나는 방송 마이크를 끄고 미소의 귓가에 소곤소곤 속삭였다.
‘원작이랑 엔딩이 달라.’
“허거걱!!”
내 귓속말에 미소는 뻔한 연기처럼 소스라치게 놀란다.
‘우죽않’은 대한민국 최대의 웹소설 플랫폼인 노벨피아에서 연재된 웹소설 원작 드라마다. 최고의 작가가 최강의 공모전에서 대상을 탄 원작이 넷플릭스와 계약해 이번에 드라마화까지 했고, 나는 거기에 주연배우로 캐스팅됐다.
‘우죽않’은 나도 평소 노벨피아에서 재밌게 읽고 있었다. 캐스팅 제안이 왔을 때는 뒤도 안 돌아보고 출연을 결정했을 정도다. 드라마의 흥행 성공은 사실상 정해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리고 지금 ‘우죽않’은 넷플릭스에서 역대 흥행 신기록을 새로 써 내려가고 있다. 이걸로 소윤이가 다 클 때까지는 가만히 집에서 소윤이랑 놀고먹을 수 있지 않을까. 으흐흐.
‘오빠, 오빠.’
이번엔 미소가 내 귀에 귓속말한다.
‘나도 약 끊으면 안 돼?’
“너 진짜 혼날래?”
“으히힛.”
누나의 임신이 발각된 후, 미소는 호시탐탐 임신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미소에겐 아직 임신은 이르다고 생각한다.
앞날이 창창한데 임신은 무슨. 미소나 선하는 최소 누나 나이는 되고 나서 생각해 봐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누나도 이르다고 생각하지만, 누나는 내가 어떻게 제어할 수 없으니까 방임할 수밖에 없다.
“아무튼 소윤이는 데려간다. 지금 말한 거 방송에다 말하면 안 돼.”
“세상에! 세상에! 여러분! 지금 들으셨어요? ‘우죽않’ 엔딩이 글쎄──”
나는 소윤이를 안고서 스튜디오에서 나왔다.
미소도 즐거워 보여서 다행이네. ‘스프링’이 어이없는 이유로 해체됐을 때는 어떻게 될까 싶었는데.
전업 유튜버가 된 미소는 아이돌 시절보다 일도 더 즐겁게 하면서 돈도 더 잘 벌고 있다. 미소한테는 아이돌 보다 인터넷 방송이 더 잘 맞는 것 같다.
소윤이를 안고 거실로 나오자, 어느샌가 집에 돌아온 선하가 엄마와 함께 앉아 있었다.
“오빠, 어서 와.”
“……선하 너.”
“아부~.”
나는 선하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넌 옷차림이 그게 뭐야?”
“옷차림? 내 옷차림이 뭐가 어때서?”
“치마! 오빠가 무릎 위로 올라오는 거 입지 말라고 했지!”
“하…… 오빠, 임산부도 그런 거 안 입어.”
우리 선하는 대학생이 되고 나서 굉장히 예뻐졌다.
지금도 갈수록 점점 예뻐지고 있고.
그나마 여대라서 다행이지. 일반대였으면 당장 그만두고 집에서 살림이나 하라고 했을 것이다. 오빠인 내가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선하는 예뻐졌다.
“항상 몸가짐 조심하라고 했잖아. 요즘 세상이 얼마나 위험한데.”
“세상에서 오빠가 제일 위험하거든? 그치, 쏘윤아~?”
“아브브.”
선하가 나에게서 소윤이를 받아 안으며 말한다.
“선하 너, 우리 소윤이한테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소윤이가 진짜 그렇게 생각하면 어쩌려고 그래?”
“흥. 소윤아, 아빠 조심해야 해. 가족한테도 서슴없이 손대는 남자니까. 절대 아빠랑 둘만 있으면 안 돼, 알았지?”
“야, 김선하!”
대학생이 된 선하는 외모뿐만 아니라 성격까지 변했다.
예전엔 오빠 말도 잘 듣는 귀여운 동생이었는데. 어쩌다 저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요새는 무슨 청년 정치에도 발을 담그고 있다는데…… 하아…….
제발 이상한 일 벌이지 말고 얌전히 지내줬으면 한다.
삐리리릭.
선하에게 잔소리라도 해주려고 했더니, 마침 휴대폰 벨이 울렸다.
액정에 뜬 발신자 표시는 「진소영 누나」였다.
“어. 누나, 왜?”
『야. 진선후.』
뭔가.
누나 목소리가 평소와 달랐다.
무언가 참고 있는 듯한, 누나답지 않게 긴장한 듯한 목소리였다.
“……누나?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덩달아 내 목소리에도 긴장감이 서린다.
그런 나를 엄마와 선하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본다.
『후…… 여기 빨리 좀 내려와. 애가 나오려나 봐.』
“……애가, 나온다고?”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어떻게? 지금 어떤데? 배 아파? 양수 터졌어?”
『아, 몰라! 빨리 내려오라고! 악!』
“아, 알았어! 누나, 조금만 참아!”
『애가 X이냐! 나온다고 참게! 빨리 기어오기나 해!』
뚝.
누나는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애가 나온다.
출산 예정일을 생각해서 서둘러 왔지만, 막상 애가 나온다는 얘기를 듣자 내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당황한 나머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차, 차키. 차키 어디 있지?”
“선후야. 운전하지 마. 선하야, 119 불러.”
“아, 네!”
당황해서 허둥거리기만 하는 나와 달리, 엄마는 침착하게 선하에게 지시했다.
역시 엄마다. 폼으로 애를 셋이나 낳은 게 아니었다.
“일단 누나 옷이랑 수건만 많이 챙겨. 그리고 선후 넌 누나 옆에 계속 붙어있고. 알았지?”
“응. 엄마. 난 다녀올게.”
엄마의 뺨에 키스하고 준비를 서두른다.
“오빠! 나도 같이 가!”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
나에게 있어서는 둘째 딸, 누나와는 첫 번째 딸이다.
물론 밖에서 낳은 딸은 또 있지만……아니,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은 누나가 중요했다.
“오빠! 신발은 신고 가야지!”
“아차!”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
누나와 나 사이에.
새로운 가족이 태어난다.
다음은 엄마와 나 사이에.
그 뒤에도 또, 새 가족이 태어날 것이다.
나와 엄마를 닮은 딸이.
나와 누나를 닮은 딸이.
나와 엄마를 닮은 아들이.
그 뒤에는 나와 미소를 닮은 아이가,
그리고 또 나와 선하를 닮은 아이가, 앞으로도 계속 태어날 것이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새 가족들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내 손에 쥔 이 행복을,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다.
새 가족이 너무 잘해준다. 完
(후방주의!! 아래에 19금 일러스트가 있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님들을 위한 선물!)
감사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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